707장 쉬바의 초청.
“크크크크큭……. 크크.”
임성철 회장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모두 다 부러워하는 명문 재벌가에서 태어나 일생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사회적 성공과 명성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이뤘다.
대한민국 내 기업들 사이에서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은 물론 법조계와 언론까지 손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영향력을 행사했다.
임성철 회장의 말 한마디면 나라의 대통령이 바뀔 수도 있었다.
무소불위(無所不爲)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런 임성철 회장도 죽음 앞에서만큼은 무력했다.
차라리 이 모든 상황을 몰랐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
사람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임성철 회장의 그림자 장한수 실장이 다가왔다.
“한수야.”
“네. 회장님.”
“우리 참 열심히 살았다.”
별장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임성철 회장이 조용히 내뱉은 말.
“회장님께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습니다.”
“총칼로 대통령이 된 놈들 시대도 꿋꿋하게 버티며 이 자리에 올랐다. 1000만 원 벌면 200만원씩 꼬박고박 빼앗아 가던 정치꾼들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여기까지 왔어. 내 돈 받아먹고도 나를 불러다 국회에 세워놓고 큰소리치던 놈들, 얼마나 역겹던지…….”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임성철 회장.
격동의 시절을 버티고 버텨 지금의 오정을 키워냈다.
“참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장한수도 덩달아 과거를 회상했다.
임성철 회장과 오정을 지키기 위해 뿌렸던 수 천 억이 넘는 정치자금.
그 덕분에 지금의 오정은 재계 1위가 될 수 있었다.
“기억나지? 트럭으로 돈 받아갔던 놈들?”
“물론입니다. 금고도 아니고. 전화해서 트럭으로 돈 달라고 말하던 놈이……. 지금 국회의장이지 않습니까.”
“그 자식 면상을 보면 웃음밖에 안 나와. 여자는 또 얼마나 밝혔던지……. 쯧.”
“덕분에 사업하는 데 편하지 않습니까. 법안도 빨리 통과해 주고 말입니다.”
“문제는…… 주순자야. 그거 물건이야. 분명 크게 사고 한번 칠 거야.”
“아직까지 요구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인 게야. 분명 크게 들어올 거야. 준비 철저히 해. 권력의 단맛에 취해 휘두르는 칼에는 앞뒤 생각이 없는 법이야.”
임성철 회장은 나름대로 미래를 예견해 봤다.
명확하게 색깔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 현 대한민국 대통령.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외람되지만……. 장 대표와 무슨 대화를 나누셨는지요?”
“궁금해?”
“요즘 들어 회장님께서 많이 약해지셨는데 그 원인이 장 대표한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젊은 친구가 똑똑하긴 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 반대는 생각 안 해봤어?”
“네?”
“내가 보기에 장 대표는 내 주변에서 가장 세상 물정을 잘 알고 있는 친구야. 몇 수 배워야 할 정도인데……. 걱정이라고?”
“그게…….”
“멀리 떠났다 다시 돌아와야만 선명해지는……. 그 세상이 뭔 줄 아나?”
“……네?”
“그 녀석이…… 내게 던진 화두야.”
“회장님께요?”
“그리고 또 뭐라고 한 줄 아나?”
“…….”
장한수는 입을 다물고 임성철 회장을 바라봤다.
장태산 만큼 임성철 회장을 자극하는 사람은 없었다.
몇 년 동안 장태산은 임성철 회장의 최대 관심사였다.
“오정이 햇빛 찬란하기만을 바라면……. 나중에는 사막이 된다고 하더군. 그 끝에 인생 강의를 들었어. 부끄럽지만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명언이지 않나?”
천하의 임성철 회장에게 거침없이 오정의 운명에 대해 말하는 청년.
“가만히 두셨습니까?”
“쫄렸어.”
“쫄……려요?”
“인터넷 안 봐? 명색이 세계적 IT 그룹 선두주자인 오정의 비서실 총책임자가 유행에 이렇게 뒤떨어져서야……. 쯧쯧.”
“죄송합니다.”
“이 친구야. 농담이야. 농담~ 흐흐흐.”
“!!!”
임성철 회장의 농담이라는 말에 장한수는 진심으로 놀랐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이 넘는 직원들을 휘하에 둔 임성철 회장은 평소 농담을 건네는 성격이 아니었다.
특히 지금 같은 웃음을 터트리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과묵하고 냉철한 승부사로 불려온 임성철 회장.
그가 천진한 얼굴로 웃으며 농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 내가 모르는!’
임성철 회장의 가족사는 물론 여자 문제를 비롯해 그룹 전반에 걸쳐 장한수 실장이 모르는 사건은 거의 없었다.
국정원보다 정보 수집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오정의 정보팀.
그 최고 정점에 임성철 회장이 아닌 장한수 자신이 있었다.
지금도 임성철 회장에게 밝히지 않은 비밀이 장한수 선에 존재했다.
요즘 들어 기력이 딸려 거동까지 조심하는 임성철 회장.
그가 들어서는 안 될 충격적인 내용도 몇 가지가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임윤아를 제외한 다른 자식들의 치열한 암투가 그 핵심이었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가족들 간 지분 싸움을 불허했던 임성철 회장이었다.
작고하신 임성철 회장의 부친과 그 형제들이 생전 오정의 지분 문제로 다툼을 했고, 그 여파로 지금까지도 원수처럼 지냈다.
직접 보고 겪어온 임성철 회장이었기에 더 예민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오정전자 같은 중요 계열사 지분을 넘겨주기 위해 작업 중이었다.
과거와 달리 그룹 후계자들의 승계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아 비밀스럽게 진행됐다.
그 사실을 알고 자매들이 나섰다.
합종연횡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이 모든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 장한수 실장.
아직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보고하는 순간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너무나 잘 알았다.
임성철 회장은 대노할 것이고 그 뒤부터 오정은 전란에 휩싸일 게 불을 보듯 빤했다.
“한수야. 무슨 일 있냐?”
“아닙니다. 회장님.”
“오늘따라 생각이 많아 보인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기에 임성철 회장은 장한수의 얼굴빛만 보고도 고민이 있음을 알아챘다.
“조만간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아서 해.”
“죄송합니다.”
“죄송은 됐고……. 한수 너 어떻게 할래?”
“뭘 말입니까?”
오늘따라 여러 가지를 물어오는 임성철 회장이었다.
“나 죽으면…… 따라 올래?”
“!!!”
“싫어?”
“아니 그게…… 같이 따라가겠습니다!”
장한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답했다.
사람들은 더러 자신을 두고 임 회장의 충견이라고 입방아를 찧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충성을 다한 대가로 수천억 대 재산을 일군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한 그룹의 2인자로 머물며 그만큼의 재산을 모은 자는 장한수 실장이 유일했다.
이곳까지 오는 중에 오정 일가를 위해 피도 보고 똥도 치우고 죽음의 강도 여러 번 건넜다.
피차 함께 늙어가는 마당에 임성철 회장 장단도 못 맞출 만큼 눈치 없지 않았다.
“말만이라도 고맙다.”
“아닙니다. 회장님. 저승길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장한수의 충정 어린 마음이 목소리에 담겼다.
“그건 됐고……. 한수 너 쇼 잘하냐?”
“쇼요?”
‘오늘 왜 이러시는 거지…….’
장한수는 오늘따라 낯선 임성철 회장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흐흐흐. 기다려봐라. 곧 꽤나 재미난 쇼가 벌어질 것 같으니…….”
천진한 악동 같은 웃음을 짓는 임 회장.
장한수는 눈만 껌뻑껌뻑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
“인원 충원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충성심이 확인된 신규 직원들 100명을 채용했습니다. 워낙 소문이 잘나 지원자가 많았습니다.”
“국정원 쪽은요?”
“그날 이후로 잠잠합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미국 대사관을 이용해 국정원에 압력을 넣었다.
장주시에 건설된 나의 왕국 TSJ연구소.
복합 연구소였고 명목상 다국적 투자처였다.
대한민국 소속이었다면 정치인들이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검찰과 경찰이 몇 번이나 압수수색을 하고도 남았을 것.
핑계야 그들이 만들면 그만.
그러나 나도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국적 연구소로 등록하고 그 힘을 본격적으로 발휘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항의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 촬영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제보했다.
확실한 물증 앞에 국정원은 비공식 루트를 통해 사과를 전해왔다.
앞으로는 감히 누가 나서서 나의 왕국을 감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경호원을 늘렸다.
소속 기업들의 보안을 위해서는 믿을 만한 자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다.
A.T 씨큐리티 한진웅 대표가 아낌없이 힘이 돼 줬다.
아무리 봐도 진짜 곰 같다.
그것도.
“한 대표님, 혹시 이런 꿈 꾸신 적 있습니까?”
“꿈요?”
“깊은 산에서 호랑이랑 여우하고 같이 곰 한 마리가 어깨동무하고 다니는 모습을 본 그런 꿈 말입니다.”
“어! 보스께서 어떻게…….”
한진웅 대표가 깜짝 놀랐다.
- 전생 지리산 곰이 각성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사람과 사람이 옷깃 한번 스치기 위해서는 전생에 3000번의 인연 공덕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 밑에서 밥 먹고 사는 한진웅 대표가 나와 평범한 인연일 리 만무했다.
하나둘씩 고리가 꿰어지고 있다.
반갑다 지리산 곰!
“다시 보니 반갑네요. 흐흐.”
“보스, 그게 무슨…….”
한진웅 대표는 짐작을 못 했다.
“혜린 누나와는 날짜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출산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3월이 예정입니다.”
곰이 얼굴을 붉혔다.
“축하드립니다. 평생 반려자에 아이까지. 복 받으신 겁니다.”
“모두 보스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한진웅 대표와 드워프 공장 과장이었던 공대 누나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보기 좋았다.
둘 다 나를 통해 인연이 되어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휴가는 넉넉히 보름 정도면 되겠죠? 약속대로 자가용 비행기와 신혼 여행지를 제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진웅 대표는 거절하지 않았다.
집도 차도 진작 선물했다.
도원결의의 삼국시대도 아니고, 충성과 의리가 물질적 바탕이 되는 이 시대를 사는 법칙 같은 것이다.
핵심 직원들에게 특히 아낌없이 투자했다.
“앞으로도 A.T 씨큐리티는 보안의 핵심입니다.”
“믿음에 절대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전생 지리산 출신 호랑이와 곰의 관계.
마늘과 쑥만 먹고 결국 사람이 먼저 된 곰은 믿을 만했다.
“신입 직원들 모두 신원이 확실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러시아와 미국 훈련소에 보내 정예 요원들로 육성하십시오.”
“충성!”
군대는 아니지만 경호원들 세계는 군대식 위계질서가 필요했다.
강한 훈련과 상명하복 조직은 사람의 정신을 규율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장주시에 건축 중인 아파트 공사도 거의 끝나갑니다. 직원들 입주에 차질 없도록 하십시오.”
“직원들이 매우 좋아합니다.”
연구소 직원뿐만 아니라 경호원들에게도 무상으로 주택이 제공될 예정이다.
주변으로 영화관을 비롯해 대형 쇼핑몰, 체육 시설들이 들어선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급 생활을 위한 필요시설이 순차적으로 들어서게 된다.
장주시 측에도 건축 허가를 비롯해 아낌없이 도움을 줬다.
대형병원도 신축 중이다.
내년에는 직원들의 자녀들을 위한 사립형 중고등학교도 개교 예정이다.
당연히 학비와 급식비 모두 무료다.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선생님들도 초빙 중이다.
압도적인 혜택에 지원자가 넘쳤다.
분당 급을 넘어서는 럭셔리 지방 혁신 도시.
삐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 회장님.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낭랑하게 들려오는 유세라 상무의 목소리.
“누굽니까?”
개인 전화가 아닌 회사로 급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 라훌 아스맛 회장님이십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