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6장 또 다른 깨달음.
차자자장!
카앙!
“컥!”
콰다다당.
비명과 함께 루이스가 거칠게 바닥에 뒹굴었다.
“뭐 합니까! 그런 실력으로는 아사신 하급 전사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대련실에 울리는 격한 음성.
기사단원인 에두아르가 냉정하게 루이스를 몰아붙였다.
에두아르는 한국에 다녀온 뒤 태도가 변했다.
차기 기사단장인 루이스를 극한으로 몰았다.
‘아직 멀었어! 아직!’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다니엘의 실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분명 만만치 않은 놈들이 다니엘과 야훼바트를 공격했다.
그러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다니엘은 야훼바트를 지켜냈고 그들을 쓸어버렸다.
불가사의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도저히 짐작이 불가능했다.
처음 만났을 당시 이미 엄청난 실력자였던 다니엘 장.
“오늘은…… 그만. 크으.”
날이 서지 않은 검에 맞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루이스는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렸다.
특수 가죽 갑옷을 착용했지만 물리적 충격을 모두 커버하지는 못했다.
“안 됩니다. 단장님의 명령입니다. 저와 대등한 실력이 될 때까지 훈련은 계속될 겁니다!”
에두아르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크읍.”
입술을 깨물며 에두아르를 노려보는 루이스.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검술을 수련한 적은 없었다.
더욱이 자신은 차기 기사단장.
언제나 루이스의 발언은 존중받았다.
지금까지 이런 험한(?) 수련은 해본 적도 없다.
“저를 노려보셔도 소용없습니다. 며칠 전…… 제가 가장 아끼던 단원이 아사신 전사에 의해 도륙당해 죽었습니다. 루이스님이라고 다르지 않을 겁니다. 죽음은 이제 우리 코앞에 와 있습니다!”
아사신의 발악이 가열찼다.
이라크에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 중이던 부하가 죽었다.
시신을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된 채였다.
유품 역시 피 묻은 옷자락과 신발이 전부였다.
“끄응…….”
루이스가 앓은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세세히 보고받았었기에 기사단에 닥친 불행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에두아르 경, 살살 좀 부탁해. 아사신을 만나기 전에 주님 품에 먼저 가겠소.”
루이스 역시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볍게 몸을 풀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단장님께서 원하시는 실력에 오르셔야 합니다. 그때까지…… 절 믿고 따라와 주십시오!”
에두아르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기사단장 아르노 백작이 대단한 것들을 가져왔다.
핵전쟁에도 버틸 수 있게 건설된 저택 지하에서 비밀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그 기회를 온전히 기사단이 흡수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다시 갑니다!”
검을 고쳐 잡은 에두아르.
기사단장으로부터 특별한 명을 받았다.
총기보다 검에 집중하라는 주문이었다.
“이제부터 나도 경을 봐주지 않겠어!”
루이스가 힘을 냈다.
기사단이 위험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에게까지 미쳤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도 위험해 노출되는 건 당연했다.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타핫!”
힘찬 기합과 함께 앞으로 돌격하는 루이스.
쇄애애앵.
검에 강맹한 힘이 담겼다.
“부족해…….”
비비안은 오빠 루이스와 에두아르를 수련장 2층에서 내려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미래 어느 시점의 아사신들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알 수 없는 버프로 상상 이상의 힘을 사용하는 아사신.
요즘 들어 자주 기사단원들에게 불행이 닥치는 환상에 시달렸다.
“다니엘의 도움을 받아야 해. 반드시…….”
아버지 아르노 백작이 코린 경과 함께 고대 마법서와 관련된 물건들을 가져온 사실을 그녀는 알았다.
끙끙대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결코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는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단절된 마법의 힘.
마법서를 아무리 연구해도 답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구별에 더 이상 진정한 인간 마법사는 없었다.
단 한 명만 빼고.
“계기가 필요해. 결코 아빠는 마법서를 다니엘에게 보여주지 않을 게 확실해.”
신을 섬겨온 자가 불경한 물건을 세상에 공개할 수는 없었다.
신성모독일 뿐만 아니라 신에 대한 경외심에 해가 될 수도 있는 마법.
비비안은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다.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다니엘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아직 그 중요성을 다른 이들은 몰랐다.
기사단과 혼약으로 맺어진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새언니 클라라를 끼고 연결된 천지회.
가족으로 관계가 얽혀 있어 더 복잡해졌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어. 그걸 모르다니…….”
원하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비비안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 볼 수 없었다.
특히 요즘 들어 무슨 일인지 능력이 제한 됐다.
강력한 어둠의 힘에 의해 감춰진 미래.
“하아…….”
비비안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중에 기사단 긴급 호출을 받았다.
천신만고 끝에 입수한 마법서와 마법물품.
아사신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면 나약한 영혼은 깨어나지 못하는 법. 당신들의 오만과 무지, 어리석은 자존심이 스스로를 병들게 만들 것이니……. 그 값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마치 예언자처럼 말하는 비비안.
미래를 보기 위해 깊은 성찰은 기본.
비비안은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기사단에서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기사로…….
***
예쁘게?
임성철 회장님이 날 웃겼다.
이래서 사업하는 사람들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거다.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복종하라는 나의 조건에 예쁘게라는 단서를 달았다.
최소한 오정 회장으로서의 품위를 끝까지 지켜달라는 의미.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회장님. 무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계십니까?”
“…….”
조용히 날 바라보는 임성철 회장.
“챙겨야 할 이들이 많은 자의 숙명 같은 걸세.”
“모든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진실……. 그게 뭔지 아시지 않습니까. 대체 불가능할 것 같은 존재마저도 그가 사라지고 나면 대체재가 나타납니다. ……내려놓으십시오.”
“내 목숨에는…… 미련이 없어. 다만.”
임성철 회장은 말을 하다 멈췄다.
그리고 잔을 채운 와인을 잠시 쳐다보았다.
“오정이…… 매일매일 햇빛 찬란한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네.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세상을 주도하는 선도 기업 말일세.”
기업가는 모두가 이미 다 애국자라는 어느 칼럼 제목이 떠올랐다.
임성철 회장님 정도면 자신의 이익과 영달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들.
일반인은 평생 쓰지도 못할 규모의 재산을 축적했다.
마시고 놀고먹고 누리고 싶은 모든 걸 손에 쥘 수 있는 대한민국 부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욕심 또한 컸다.
오정의 이름이 살아남아야 인간 임성철도 그 세월만큼 회자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묻혀 조종자로 살아가고 있는 나와는 분명 달랐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이 남다를 것이다.
“회장님……. 매일 햇빛 찬란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시죠?”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러나 삶을 오래 살았다고 모든 이치에 통달하는 건 아니다.
“그곳은 사막이 됩니다.”
“사막…….”
“구름도 끼고 비도 오고 바람도 맞아야 내성이 생기는 법입니다. 아무리 오정이라 해도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기업은 없습니다. 핀란드 공룡 기업도 쓰러졌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애플이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세계적으로도 100년을 넘는 대기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생로병사처럼 기업도 태어나고 성장하다 멈추고 사라집니다. 자연스런 흐름의 현상을 억지로 막으려 하지 마십시오.”
“으음…….”
신음을 삼키는 임성철 회장.
“오정도 힘든 시기를 보낼 겁니다. 회장님도 그걸 직감하시기 때문에 수명에 더 집착하신다는 걸 압니다. 그렇다고 임박한 운명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기업도 삼대를 넘기기 힘듭니다. 하늘이 정한 공평한 법칙입니다.”
“장 대표는 오정의 위기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상식적인 견해입니다.”
“상식이라…….”
“반도체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과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특히 일본은 과거의 영광을 잊지 않고 있는 민족입니다. 자신들의 무능을 반성하지 않고 우리에게 그 탓을 돌립니다.”
“일본 민족의 특성은 나도 알고 있네.”
“가장 골치 아픈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집요하고 독합니다. 양심이라는 걸 진작 팔아치운 중국은 오정의 가장 골치 아픈 경쟁 상대입니다.”
“아직은 아니지. 그리고 기술 격차가…….”
“오정도 그렇게 컸습니다.”
“장 대표 말은…… 언제나 독해.”
“글로벌 밸류체인에 대해서 고민하셔야 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아니라 독일을 비롯해…….”
“장 대표가 투자한 러시아도 포함되는 건가?”
“네.”
“러시아를…… 뭘 믿고?”
“제가 만나 본 푸틴은 두 말을 쉽게 뱉을 인물이 아닙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무리하고 있지만 신뢰 면에서는 탁월합니다. 동시에 한국의 응용기술과 정보통신기술, 러시아의 탄탄한 기초, 원천 기술이 접목되면 시너지 효과가 대단할 겁니다. 불곰사업을 통해 무기 기술을 비약적으로 획득하지 않았습니까.”
“장 대표. 자네는…… 애국자야.”
“회장님도 마찬가지십니다.”
“나야…… 이익을 따지는 사업가지. 애국이야 보너스고 말이야.”
오정 임성철 회장님, 이래서 좋다.
진실할 때는 확실하게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그건 그렇고……. 우리에게 줄 건 없나?”
“네?”
갑작스런 물음.
“요즘 장 대표가 엘자와 연대에 엄청난 선물 보따리를 푸는 산타클로스가 됐다고 들었네. 곧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나도 좀 주게.”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작정한 듯한 임성철 회장.
천하에 오정의 주인이 이렇게 대놓고 선물을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생명 연장으로 부족하십니까?”
“우리 집안…… 손이 귀해. 손주들에게 뭐라도 남겨줘야지.”
“욕심이 참 대단하십니다.”
“욕심이 아니라 상대적 단위가 다른 것뿐일세. 서울 쥐와 시골 쥐 정도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야.”
동화까지 언급하며 삶의 수준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제 나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회귀 전 인생과 지금의 삶은 비교할 수가 없다.
물질적 부는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안락함을 제공했다.
“소문이 더 요란해지지 않을까요?”
“무슨 소린가. 소문을 더 내야지. 대한민국에서 그룹 주인이 된다는 건 연예인보다 더 심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일이네. 이럴 때는 차라리 대놓고 잘살면 돼. 억지로 감추면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욕을 먹어.”
“…….”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팍 스쳤다.
“장 대표는 잘하고 있어. 감추면서 많이 즐겨. 중국 부자들처럼 말이야. 난 이번 생은 틀렸네.”
요즘 세대들 사이에서 오가는 농담을 잘도 써먹는 임성철 회장.
“예쁘게 죽여 드리겠습니다.”
“기대되는군.”
“그날은 두 달 뒤입니다.”
“늦는 거 아닌가?”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습니다.”
“무슨 준비 말인가?”
“위대한 쇼가 필요합니다.”
“위대한 쇼? 거참……. 이해하기 쉽게 좀 말해봐.”
“다 알면…… 재미없습니다.”
“장 대표가 투자 회사를 경영하지 않았다면…… 사기꾼이 되었을 것이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하나만 더 묻겠네.”
“말씀하십시오.”
임성철 회장이 날 지그시 바라봤다.
“내가 자네에게 복종하면 그 삶은 내 인생이 아니겠지?”
지극히 당연한 의구심.
부드럽게 웃었다.
“다시 깨어나는 순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실 겁니다.”
“답이라…….”
“회장님.”
조용히 임성철 회장을 부르며 바라봤다.
파밧.
눈빛과 눈빛이 부딪쳤다.
“한 번쯤 익숙한 곳을 벗어나 멀리 떠났다 돌아왔을 때 그 세상이 더 선명하게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깨달음의 순간을 회장님은 충분히 맛보실 거라 전 확신합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