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장. 어느 여름날.(8)
“다니엘 장……. 아니 장태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다 불어봐.”
“몰라.”
“사무엘. 오늘은 우리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하기로 했잖아. 나도 네가 원하는 걸 답할 테니까 너도 답해줘.”
그렉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었다.
다니엘 장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본국 발송 최우선 사안이다.
한국인들을 잘 모르지만 세계 영향력 순위 10위 안에 분명 들 것이다.
가진 재력과 인맥은 상상을 불허했다.
지금만 해도 차일드 가문의 주인이 개인 손님 자격으로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정치권 인사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월가의 거물 로버트 라이언의 하나뿐인 영혼의 동지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럼에도 세상 밖으로는 거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각국 첩보국에서도 예의 주시했지만 딱히 건질 만한 알짜 정보가 생각보다 없었다.
그래서 그렉은 사무엘을 물고 늘어졌다.
모사드는 FBI 이상으로 정보력 수집 능력이 월등했다.
과거 KGB와 쌍벽을 이룰 만큼 정보 수집 방법이 무식하고 과감했다
“난 자네에게 궁금한 게 없네.”
사무엘은 맥주에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목을 적셨다.
“이스라엘 지원금 건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알려줄게. 그것도 아니면 이란의 핵정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야.”
“아오! 그러지 말고 정보 좀 풀어. 난 그 녀석이 궁금하다고. 다니엘 장이 이런 시설을 왜 건축한 거야?”
그렉은 5성급 시설에 준하는 숙소에 머물렀다.
성벽 밖에 설치된 외부인을 위한 숙소.
먹는 것부터 시작해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것이 완벽했다.
직원들 모두 수준 높은 호텔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배치된 것으로 보일 만큼 서비스가 대단했다.
하지만 성벽 안쪽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최신 인공위성을 통해서도 성안을 확인하지 못했다.
긴급 보고에 의하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성안을 촬영하면 화면 전체가 뿌옇게 변해버린다고 전해왔다.
과학 기술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참아. 이쪽 바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면서 왜 이렇게 들썩거려? 입이 무거워야 살아남는다는 규칙 잊었어?”
“차라리 알고 죽는 게 속 편하겠어. 상부에서도 저자에 대해 매일같이 보고를 요구해.”
“시간 나면 내 메일로도 보내줘.”
“미친.”
“후후훗.”
농담을 던지면서도 사무엘은 묘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기분이 안 좋아.’
첩보 생활을 하다 보면 감이 극도로 발달하게 된다.
팔자 좋은 FBI와 달리 실전에 투입돼 수시로 목숨을 잃기도 하는 모사드 요원들.
위험한 만큼 오감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왜 그래? 오줌 마려?”
“이상하지 않아?”
“뭐가?”
“비도 오는데…… 조용해.”
“당연하지. 이런 빗속에서 누가 뭘 하겠어. 순식간에 속옷까지 흠뻑 젖을 게 뻔한데.”
그렉은 크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을 잡지 못한 게 분명했다.
띠리리리.
뚜루루루루.
그때 그렉과 사무엘의 비상 연락망이 동시에 울렸다.
“!!!”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두 사람.
“무슨 일입니까?”
- 코드 레드! 코드 레드!
보호 요인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상부의 최고 경계령.
“젠장! 모두 출동해!!!”
방 밖으로 뛰쳐나가며 그렉이 외쳤다.
타다다닥.
기다렸다는 듯 대기를 타고 있던 요원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코드 레드다! 무조건 VIP를 사수해!”
처저저적.
요원들이 총을 뽑아들었다.
모사드 요원들도 마찬가지.
얼굴이 잔뜩 굳은 채 그들은 비가 퍼붓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문 열어! 빨리 문 열라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연구소 문 앞에서 그렉이 소리쳤다.
경비원들이 퇴근해 버린 듯 정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갈겨!”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요원을 향해 명령하는 그렉.
타다다다다닥.
나무문을 향해 쏟아지는 총탄 세례.
타다다다다당.
“피해!!!”
놀랍게도 나무문에 맞은 총탄이 불꽃을 튀기며 사방으로 튕겨 나왔다.
“……뭐야! 안 뚫려?”
긴급한 상황 속에서 그렉은 크게 놀라고 당황했다.
흠집 하나 남지 않은 나무 재질의 정문.
- 무슨 일입니까?
그제야 감시 카메라를 통해서 지켜보고 있던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뭣들 해! 문 열어! VIP가 위험해!”
그렉이 영어로 소리쳤다.
“NO!”
단호한 상대방의 한 마디.
“뭐라고?”
“보스의 명령입니다. 밤에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연구실 출입 금지입니다. 돌아가십시오.”
“야! 미친 새끼들아! 지금 그 안에서 사건이 터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
알고 있다는 말에 그렉과 사무엘은 입이 떡 벌어졌다.
“보스께서 알아서 할 겁니다.”
절대적인 믿음이 묻어나는 목소리.
“너희들……. 책임질 수 있어? 지금 그 안에 있는 존재가 누군지 알아?”
“보스의 손님입니다. 책임은 보스께서 지실 겁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
그렉이 사무엘을 돌아봤다.
말이 없는 사무엘.
“뜻에 따르십시오.”
어느새 나타난 차일드 가문의 경호원들.
의외로 그들은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인 눈치였다.
“지금 안에 아사신의 살수들이…….”
“파악된 내용입니다. 바트께서는 안전하십니다. 경호를 호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
사무엘이 입을 다물었다.
차일드 가문에 1차 경호 책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동요가 전혀 없는 차일드 가문의 경호원들.
“도대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그렉.
퍼엉! 퍼버버벙!
그때 성문 너머 안쪽에서 선명한 폭음이 연속 들려왔다.
***
“아…….”
로리아나는 눈앞의 상황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사신 전사들이 괴물로 육성됐다고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심장에 정확하게 검이 박혔지만 죽지 않았다.
도리어 흉포하게 괴기스러운 소리를 쏟아내는 아사신의 전사.
“이 미친 새끼들이!”
당황한 다니엘이 발로 전사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퍼억!
한 번의 발길질에 반쯤 부셔져 나간 전사의 머리통.
스스스스스슷.
놀랍게도 일그러진 전사의 머리통이 거짓말처럼 움직였다.
듣도 보도 못 한 괴이한 형태의 머리통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사나운 늑대의 얼굴처럼 변했다.
우두두둑.
걸치고 있던 사람의 옷이 찢겨지며 그 속에서 드러나는 근육질의 육체.
굵은 회색털이 온몸을 뒤덮은 듯 군데군데 찢긴 옷 사이로 삐죽하게 튀어나왔다.
“늑대……인간!”
유럽 쪽에서는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늑대인간의 전설.
믿을 수 없지만 분명 눈앞에서 아사신의 전사가 늑대인간으로 변했다.
“파이어 볼!”
다니엘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마법을 펼쳤다.
퍼엉! 퍼버버벙!
번개처럼 소환된 붉은 불덩어리들이 늑대인간을 향해 작렬했다.
“쿠라라라라라라라라라!”
늑대 인간이 울부짖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
쇄애애애앳.
불길을 뒤집어 쓴 채 다니엘을 향해 빠르게 앞발을 뻗어 공격하는 늑대인간.
카아앙!
다니엘의 검이 무서운 늑대인간의 앞발을 막았다.
불통이 튀었다.
‘도대체 아사신은…….’
현실이 된 공포가 로리아나를 덮쳐 왔다.
저 정도까지 능력이 배양됐다면 가문의 경호원들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차일드 가문의 비밀 수호 조직인 십계(十界)의 수호자들이 나서야 겨우 반격이 가능할 것 같았다.
“뭐야? 너희들……. 마수의 피를 마신 거야?”
다니엘이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마수?’
“제대로 해보자는 거지. 크크.”
다니엘이 다른 사람처럼 말하며 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화아아아아아아앗.
느닷없이 다니엘이 든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
푸른빛이 검을 타고 넘실거렸다.
뭔가 상황이 변하고 있었다.
강렬한 에너지가 다니엘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팟!
빠르게 공간을 가르는 다니엘의 검.
툭.
짧은 소음과 함께 머리통이 분리되는 늑대인간.
푸스스스슷.
머리통이 몸통과 분리된 순간 검은 연기와 함께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는 몸뚱이.
‘악마의 재림. 오! 야훼시여…….’
과거 야훼의 땅에서 벌어졌던 악마와의 전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태인의 고대 비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타락한 자식들은 수시로 야훼의 직계 자식들을 노렸다.
그중 일부가 타락한 천사였던 악마와 손을 잡고 괴수처럼 돌변해 야훼의 자식들을 공격했다고 했다.
‘야훼의 검이었어…… 다니엘이.’
야훼께서 보내신 악마의 도륙자.
타락한 천사인 악마로부터 아담의 후손들을 구했다는 야훼의 검이 눈앞에 있었다.
“타앗!”
로리아나가 놀란 채 멍하니 있는 사이 맑은 기합을 터트리며 돌격하는 다니엘.
“전능하신 야훼시여……. 그를 악에서 구하시옵고 정의와 속죄의 칼날을 손에 들게 하시어…… 세상의 악을 멸하게 하옵소서.”
다니엘의 움직임에 로리아나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절실한 마음으로 야훼께 기도했다.
쇄애애앳.
그때 로리아나 뒤쪽 건물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늑대인간 하나.
실드로 보호 받고 있는 로리아나를 향해 그대로 달려들었다.
***
달달하던 로맨스가 갑자기 호러로 장르가 바뀌었다.
세상에…….
늑대인간들이 실존했다.
뱀파이어와 함께 서양의 2대 괴물 중 하나인 늑대인간.
인류 역사에 전해져 오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다.
아사신은 지난 과거에도 이런 괴물들을 수시로 사용했던 모양이다.
흑마법으로 무장시킨 늑대인간의 모습은 그간의 상식의 궤를 벗어났다.
하지만 나 역시 상식을 벗어난 건 마찬가지.
원하는 만큼 내공을 개방했다.
어차피 이 공간은 누구도 감히 들어오지 못한다.
어차피 로리아나는 빼도 박도 못 할 동업자.
그녀도 나도 상식적으로 이해받을 수 없는 마법사였다.
카아아아앙!
늑대인간의 목을 베는 사이 로리아나를 공격하던 놈이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튕겨나갔다.
중첩 마법의 무서움을 제대로 맛본 듯하다.
세 개의 중첩 마법은 7서클에 준하는 방어력을 품고 있다.
“…….”
생각지 못한 무력으로 자신들의 공격을 무력화시키자 크게 당황한 아사신의 전사들.
적어도 지금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대가리 새끼들. 신의 이름을 빙자한 너희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쓰레기들이다.”
대놓고 조롱했다.
전사들 주변으로 진득하게 깔려 있는 눅눅하고 어둠의 기운들.
이미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이곳에 침입해 오면서 강력한 흑마법을 스스로 펼쳐 인간이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 타락한 천사가 당신을 강력하게 저주합니다.
- 야훼가……. 고마움의 표시로 미약한 포인트를 지급했습니다.
이런 순간마저 한없이 쪼잔한 야훼.
우르르르르르릉 콰앙! 쾅!
천둥번개가 연구실 주변을 훤히 밝히며 한차례 몰아쳤다.
기세를 몰아치라는 듯 울려퍼지는 낙뢰.
순간 낙뢰로 밝아진 주변 때문에 모습이 드러난 늑대인간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난 집으로…… 쓰레기들은 쓰레기장으로!”
몸을 날렸다.
“크아아아아앙!”
“아우우우우우우!”
늑대인간들도 울부짖으며 마주 달려왔다.
그리고.
파앗!
폭우가 몰아치는 대기를 상쾌하게 가르는 검.
아사신이고 나발이고…….
한 큐에 하나씩…….
정확하게 대가리만 노렸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