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장. 어느 여름날.(7)
“아악!”
갑자기 조용한 기내에 울려 퍼진 날카로운 비명.
“아가씨!”
에두아르가 크게 놀라며 외쳤다.
앞으로 닥칠 아사신과의 대결을 위해 최대한 심신을 이완시키고 있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직통 장거리 비행 중.
최선의 컨디션을 위해 가수면에 빠진 상태에서 비명 소리를 듣고 놀라 눈을 떴다.
“……그들이에요! 마법으로 은신했어요!”
눈을 감고 환영을 지켜보는 비비안.
‘벌써!’
에두아르는 속이 바짝바짝 탔다.
아사신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강력해지고 있는 그들과 달리 기사단의 전력은 약화됐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기사단을 노렸다.
고위급 기사들을 비롯해 하위 기사단원들이 여럿 죽어 나갔다.
쉽게 충원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닌 만큼 손실이 막대했다.
그 문제로 기사단장은 바빴다.
과거 아사신을 상대했던 수백 년 전의 선배 기사단원들이 사용했다던 마법을 찾기 위해 비밀 지역으로 떠난 상황이다.
미래 기사단장인 루이스가 이 사태를 버텨내느라 최선을 다했다.
다행스럽게 비비안이 근 미래를 보는 눈을 각성해 몇 번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오래 버티기가 어려웠다.
아사신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에두아르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현 시대 최강 마법사 다니엘을 추천했다.
그러나 루이스가 반대했다.
자랑스런 기사단의 역사와 명예에 누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한낱 자존심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루이스.
아내인 클라라와 다니엘의 관계를 알게 된 뒤 더 예민해졌다.
세이셀에서 다니엘을 만나고 온 뒤부터는 자존심을 더 세웠다.
비비안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것까지 만류했다.
루이스는 기사단장 대리를 하고 있는 터라 비비안도 마음대로 거스를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을 낱낱이 지켜봐야 했던 에두아르.
다행인지 불행인지 먼 한국 땅에서 아사신이 그간 없던 테러를 계획했다.
상대는 야훼바트.
과거부터 이어져 온 기사단의 중요한 동맹 중 한 라인이었기에 비비안을 파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비와 어둠을 틈타 숨어 있어요! 아아…… 무서운 피 냄새가 진동해요! 어둠의 힘이 그들을 축복하고 있어요!”
비비안의 가늘고 청아한 목소리가 전하는 말은 멈추지 않았다.
‘더 빨리 움직일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덩치 큰 비행기는 느리게만 느껴졌다.
직행이었지만 거리가 멀었다.
아직도 한국 영공에 들어서려면 몇 시간이 더 남았다.
‘맞아! 그들이 있었지!’
에두아르는 프랑스 대외보안총국 고위직과 직통으로 연결이 가능했다.
그들을 통해 정보를 받기도 하는 기사단.
또 대외보안총국은 다른 첩보국과 연결되어 있기도 했다.
야훼바트를 경호하는 차일드 가문과 모사드.
급히 위성 전화를 들었다.
“조심해요……. 다니엘! 당신에게…… 아악! 카, 칼과 창이!!!”
현장에서 전투가 시작된 듯 다급해진 비비안의 목소리.
“기사단에서 긴급 통신 요청합니다!”
그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에두아르는 차분하게 긴급 통화를 시도했다.
***
“물러서요.”
“네?”
로리아나는 갑작스럽게 앞을 막아서는 다니엘에 당황했다.
항상 상상만 해오던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비가 온다는 핑계로 용기를 내 다니엘과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가졌다.
태어나 아버지 말고 다른 남자의 팔에 몸을 기댄 건 처음이었다.
야훼를 섬기는 자는 몸과 마음이 늘 순결해야 했다.
육체는 두말할 나위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흠결이 없어야 했다.
익히 알고 있는 수녀 이상의 금욕생활을 유지하며 고행의 길을 걸어야 하는 야훼바트.
그러나 웬일인지 다니엘을 상대로 야훼는 일정 거리를 허락했다.
이상하다 생각되긴 했지만 로리아나는 조심스럽게 허락된 거리만큼 한 발자국씩 다니엘에게 다가갔다.
때마침 휴가였고 비도 왔다.
이국적 분위기와 싫지 않은 남자 다니엘에 취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남자 다니엘.
그가 거칠게 로리아나 앞을 막아섰다.
파슷.
“!!!”
그 순간 로리아나도 느꼈다.
어둠 속을 뚫고 스쳐 지나가는 날카로운 기운.
‘살기!’
로리아나의 표정이 금세 굳었다.
평소 그녀를 호위하던 가문의 특급 경호원들이 지금은 없었다.
야훼의 은총으로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제한적이었다.
“누구냐…….”
다니엘이 어둠속을 노려보며 물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채운 짙은 어둠속을 노려보는 다니엘.
“……키키키키.”
“케케케…….”
기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휘리리리링.
그 순간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진득한 어둠의 기운.
“아……사신!”
로리아나는 금방 어둠속에 숨어 있는 자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감히 자신을 노리고 덤벼들 자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겁 없는 아사신밖에 없었다.
과거부터 끊임없이 악연으로 점철되어 온 유태인과 아사신.
기사단도 과거 유태인들의 지원으로 설립됐다.
세상을 피로 점령하려는 이슬람 과격분자들보다는 그래도 야훼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따르는 신교도를 지원하라는 계시를 받으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이슬람과의 전쟁에 기사단을 참여시켰다.
일명 대리전.
기사단은 로도스 공방전을 비롯해 수없는 전투를 이슬람과 벌였다.
어둠속의 비수 같았던 아사신도 기사단이 막았다.
야훼가 허락한 간단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기사단이었다.
유태인들은 베네치아를 이용해 자금과 물자를 지원했다.
수백 년간 벌어졌던 지중해 전쟁의 처음과 끝은 바로 이슬람과 유태인들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오늘 또 그와 같은 전투가 이어졌다.
아사신도 자신들의 일에 장애가 되는 이들이 유태인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중동에 뿌리 박혀 있는 이스라엘과 아랍인들의 전쟁 역사.
유태인 수장이 집 밖으로 나오자 공격을 개시했다.
아사신의 흑마법에 당한 차일드 가문의 조력자들.
그들이 발설한 정보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스으윽.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
제대로 된 은신 마법을 사용해 이곳에 침투했던 것이다.
로리아나가 살펴본 궁전의 경비는 자신이 머무는 곳 못지않게 삼엄했다.
‘언제 저렇게…….’
로리아나 역시 수시로 아사신에 대한 정보를 보고받았다.
박멸하고자 노력했지만 세상을 파멸하고자 하는 순수한 악의 힘 역시 강대했다.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돈의 힘으로도 퇴치하기 어려웠다.
신을 향한 순교라 믿는 아사신의 전사들은 통제할 수 없는 순수 어둠이었다.
‘야훼시여…….’
로리아나는 자신이 믿는 절대자를 찾았다.
신은 침묵했다.
스으으으읏.
그 대신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아사신의 전사들.
손에 기형적 무기를 들고 사방을 포위 했다.
“비도 오는데…… 쓰레기도 왔네요.”
태연하기만 한 다니엘.
“경호원들을…….”
“이분들도 손님인데…… 뜨겁게 환대해 줘야죠.”
“네?”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다니엘.
도저히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대는 그 누가 아닌 아사신의 사냥개들이었다.
수도 많았고 마법까지 사용하는 자들이다.
생사가 달려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
“나 믿죠?”
“그게 무슨…….”
얼굴을 돌려 로리아나를 바라보며 묻는 다니엘.
쪽.
로리아나의 이마에 닿는 따뜻한 입술.
“움직이지 말고…… 이대로 있어요.”
로리아나의 귓가에 들려오는 듬직한 목소리.
거짓말처럼 로리아나에게 평정심이 찾아들었다.
야훼를 통해서 받았던 그 따뜻한 위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실드. 실드. 실드.”
다니엘 입에서 들려오는 연속된 마법 주문어.
팟! 파앗! 파아앗!
로리아나 주변을 감싸는 강렬한 세 줄기의 각기 다른 빛의 파장.
다중첩 마법의 시현이었다.
“아!”
마나를 읽어낼 줄 아는 신성 사제인 로리아나는 순간 신음을 토했다.
지금껏 자신이 경험했던 어떤 마법보다 강렬한 힘이 응축되어 있었다.
스윽.
다니엘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천천히 신형을 드러내는 신비한 검.
뛰어난 명장이 제련한 게 분명한 아름다운 검 하나가 텅 빈 공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로리아나는 전율을 느꼈다.
과거 시대에 위대한 마법사들만이 사용 가능했다는 아공간.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전설.
수천 년 동안 사라져 묻혀 있던 아공간 마법.
로리아나마저도 할아버지를 통해 동화처럼 전해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눈앞에 현실로 실재했다.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현세에서는 환상 소설에나 언급될 만한 일.
“너희들을……. 이 왕성의 제물로 삼겠다.”
검을 쥐고 아사신들을 향해 무섭게 외치는 다니엘.
파아앗.
순간 검에서 우윳빛에 가까운 빛들이 거침없이 뿜어져 나왔다.
***
악신의 조종을 받는 자들이 침입했다.
아사신이라 불리는 흑마법을 사용하는 놈들.
언젠가 비비안을 공격했던 자들과는 좀 달랐다.
그때보다 좀 더 강해졌다.
연구실에 설치된 경호 시스템과 사방에 배치돼 있는 경호원들을 가볍게 뚫었다.
아직은 강화 마법과 몇몇 보조 마법만 설치되어 있는 연구단지.
어떻게 빈틈을 노리고 잠입했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감히 신성한 나의 땅에 발을 들인 더러운 자들.
“……네놈에게서 전사들의 피 냄새가 맡아지는군.”
죽음 같은 건 두려워하지 않는 아사신들이었다.
선두에 선 자가 나를 노려보며 이를 드러냈다.
“빨리 시작하자. 비올 때 청소 끝내자.”
투둑 투두둑.
놈들을 에워싸며 쏟아지는 빗방울.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살인 무기를 들고 궁전을 습격한 살수들을 막아내는 공주의 호위무사.
한 치의 두려움도 없었다.
아사신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계에서 물리친 오크 전사들 발뒤꿈치도 따라오지 못할 자들.
인간 중심인 지구에서나 개폼 잡고 큰소리치는 수준이다.
“신께 너희들의 피를 바치겠다. 크크크크.”
“크르르르르르르.”
“케케케케.”
젖은 대기를 타고 맡아지는 비릿한 혈향.
대사를 치르기 전 사전 모의를 끝낸 자들답게 놈들은 흥분해 있었다.
같은 호흡을 해도 전혀 이롭지 못한 숨으로 산소만 축내는 악인들.
말이 필요 없었다.
“죽여라!”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명령을 내렸다.
쇄애애애앳.
창을 치켜들고 달려드는 아사신의 전사.
하지만 폼만 그럴싸하고 별거 없었다.
턱!
빗물을 차고 몸을 띄우며 정면을 향해 달렸다.
마주오던 아사신 전사들 한 놈의 몸뚱이에 힘껏 검을 찔렀다.
푸욱!
단칼에 심장에 박히는 검.
결과는 즉사.
응???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케케케케!”
분명 심장을 관통시켰는데 웃고 있다.
야! 너 뭐야!!!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