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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장. 땡 잡은 날.(3) (691/1,284)

694장. 땡 잡은 날.(3)

스스스스스스스슷.

짙은 어둠이 가득한 지하에 위치한 신전.

스멀거리는 붉은 연기와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겁을 상실했구나. 내가 있다는 걸 잊다니……. 크크.”

악신의 은총으로 수십 년 만에 눈을 뜬 아사신의 장로 무자히드.

그가 얼굴 가득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세상을 파멸시키고 다시 재창조할 예언자가 잠든 요람.

그곳에서 그는 핏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잃어버렸던 과거의 술법들이 하나 둘 깨어났다.

아사신의 정예 전사들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로 육성됐다.

그 중심에 무자히드가 있었다.

어둠의 신에게 총애를 받는 자.

“주인님께서 깨어나시기 위해서는……. 더 큰 피의 재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더한 공포와 위기감을 조장해야 한다.”

무자히드의 붉은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주인님께서는 승리를 확신할 그 순간까지 철저하게 교활한 뱀이 되라 하셨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하다.”

무자히드가 잔혹한 생각을 하나 둘 떠올릴수록 붉은 빛이 더 진득하게 사방으로 퍼졌다.

“기회가 왔다……. 안전한 집을 떠난 신의 종. 너에게 주인님의 뜨거운 사랑을 허락하겠노라. 크크크.”

무자히드는 결정을 내렸다.

수년 동안 어둠 속에서 재건을 꿈꾸며 육성한 피의 전사들을 사용할 때였다.

기사단 따위가 목표는 아니었다.

세상의 기운을 지배하는 우두머리들 중 하나를 노렸다.

아무것도 모른 채 둥지를 떠나 길을 나선 신의 종.

그가 제거된다면 세상에 엄청난 혼란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더불어 준비하고 있는 재림할 신의 땅을 위한 대청소.

무자히드의 명을 따르는 악신의 병사들이 도처에서 대기 중이었다.

신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자행하게 될 피의 전쟁.

“무지한 자들아……. 마지막 축배를 들라. 곧 너희들에게 파멸이 찾아갈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

- 악신의 후계자가 지랄발광을 합니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요 며칠 쥐 죽은 조용하던 알림음이 뜬금없이 울렸다.

제법 기세가 큰 어둠의 종자가 또 무슨 꿍꿍이를 계획하는 것 같다.

구체적인 대상이나 관련된 정보는 없다.

빛과 어둠처럼 선과 악 역시 언제나 공존하는 법.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자들까지 일일이 관심 갖다가는 신경 쇠약으로 요절할 수도 있다.

기세가 확장되니 적도 많아졌다.

나와 가족, 주변인들에게 시비 터는 자들을 정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나를 다 고맙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나로 인해 불편해지고 눈앞에 이익이 사라져 버린 자들도 많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고대 성인들도 그 시대에는 다들 욕을 먹었다.

하물며 일개 회귀자인(?)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장 변. 덕수 씨 좋은 일 있어? 신수가 훤하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레 나에게 말을 놓는 팔미호 공수진.

검사실에서 칼퇴근 해 로펌으로 찾아왔다.

“산청 고향에 별장 샀잖아. 그것도 아주 오래된 고택.”

나도 이런 팔미호가 편했다.

“오! 취미가 독특하네. 요즘 같은 세상에 강남도 아닌 시골 고향에 집을 사! 그것도 고택을? 관리가 만만치 않을 텐데.”

로펌 대표 권주희 누님이 현실적인 시각으로 평을 내놓았다.

“다들 몰라서 하는 말인데 본래 오래된 고택은 어딘가 보물이 묻혀 있다고들 합니다. 주인들이 몰래 숨겨 놓은 금덩어리 같은. 발견되면 대박이죠.”

“에이. 전래동화도 아니고 고택에 무슨 금덩어리. 그런 게 발견되면 내 손에 장을 지져.”

권 대표가 믿지 못했다.

막상 궤짝을 직접 봤다면 다들 눈이 홱 뒤집혔을 것이다.

덕수 장가 밑천으로 쓰기 위해 고인이 되신 그의 부모님께서 보물을 지키고 있었다.

터주신으로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 누구도 감히 찾지 못했다.

염씨 집안 조상신들은 아무도 없었다.

살아생전 악행을 일삼은 자들은 죽음 뒤에 선대 조상들이나 가택신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공동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손을 떼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후손들 하는 짓으로 보아 염씨 집안 귀신들 대부분은 지옥으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덕수는 어무이를 부르짖으며 한참을 통곡했다.

죽어서도 자식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부모님의 사랑.

그리고 남은 자의 가슴에서 한이 된 그리움의 눈물.

보물 궤짝은 그 자리에 다시 묻었다.

덕수 부모님께서 깔고 앉아 계실 것이기에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했다.

점유 이탈물 신고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법을 수호하는 변호사 신분이지만 아닌 건 아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인과의 계산은 철저한 법.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령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 혼령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았던 덕수는 한결 더 개운해 보였다.

어두운 구석이 걷히고 성격이 밝아졌다.

커피를 내려 직접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온 덕수.

몇 년 사이 처음의 어리숙했던 산골 총각 모습은 사라지고 누가 봐도 세련된 도시남이 됐다.

복수의 어두운 기운이 걷히니 얼굴의 광채도 달라졌다.

“덕수 씨. 아니 오빠. 산삼 드셨어요? 오늘따라 좀 멋진데?”

역시 팔미호가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맡았다.

덕수의 기운 변화를 바로 알아챘다.

“그러게 뭔지 모르지만…… 귀티 난다. 매입한 그 시골집이 명당인가?”

권주희 누님도 덩달아 고개를 갸웃 거렸다.

“다 형님 덕분입니다. 형님, 이 커피 드시고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두 손으로 공손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는 덕수.

“올해 안에 장가가자. 형이 신혼집으로 강남 펜트하우스 해 주마.”

“펜, 펜트하우스! 진짜?”

팔미호가 기겁을 하며 되물었다.

수십억 대를 호가하는 강남의 펜트하우스.

“동생 장가가는 데 못 해 줄 게 뭐 있어.”

“형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자동차에 안정된 직장에…….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만으로도…….”

“덕수 오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구두로도 충분히 계약이 성립되는 거 몰라요? 그냥 오케이 해요. 강남 펜트하우스라잖아요!”

팔미호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뭐야? 수진이 왜 네가 더 설쳐?”

“언니. 기회는 올 때 잡는 거잖아요. 저기~ 장 변……. 나 시집가면.”

팔미호가 잔뜩 기대에 찬 시선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가전제품 일체. 로펌에서 지원될 거야.”

“아니 난 왜 가전제품이야! 덕수 오빠는 펜트하우스고!”

“내 맘.”

“와아아아아……. 사람 차별하는 거 봐.”

“몰라서 그러나 본데 나 사람 대놓고 차별하는 그런 남자야.”

“…….”

쿨하게 인정하자 공수진이 입을 떡 벌렸다.

“펜트하우스 갖고 싶어?”

권주희 누님이 팔미호에게 은근 진지하게 물었다.

“당연하지. 내 꿈이 펜트하우스 안주인인데. 언니도 알다시피 내가 좀 불우하게 컸잖아. 그런 보상이라도 있어야 인생 공평한 거 아니겠어?”

“그럼 간단하네.”

“뭐가?”

“덕수한테 시집 가.”

“에에에?”

“네에에에?”

공수진과 덕수 두 사람이 황당하다는 듯 놀랐다.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덕수한테 시집가면 집과 가전제품 다 해결되네요.”

“맞아. 이런 걸 일거양득이라고 하지. 어차피 수진이 너도 이제 슬슬 나이 먹은 티가 나잖아. 적당한 임자 있을 때 시집 가. 그래야 음흉한 검사들이 덜 집적거릴 거야.”

“언니!!”

공수진이 빽 소리를 질렀다.

반면 아무 말도 없는 덕수.

오호라?

“덕수 오빠 말해 봐.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오빠하고 나하고 무슨 결혼…….”

“……할 수도 있지.”

“!!!”

침묵하던 덕수의 한마디에 팔미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니에게 장가 밑천을 두둑이 받고 나니 덕수가 달라졌다.

특별히 내색하지 않아서 그렇지 팔미호가 마음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미모의 현직 여검사.

전생 팔미호였으니 뿌리고 다니는 끼도 장난 아니었다.

게다가 지리산 호랑이였던 덕수.

그 정도 그림은 되어야 팔미호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찬성.”

“호호호. 나도 찬성~. 결혼의 무덤에 어여 들어와.”

“……아니 다들 왜.”

말과 달리 공수진도 그렇게 싫은 눈치는 아닌 모양이다.

곁눈질로 듬직한 자세로 앉아 있는 덕수를 힐끔 쳐다봤다.

- 월하노인이 중매비를 요구합니다.

월하노인?

뜬금없이 튀어나온 알림음.

- 최고급 백년해로 붉은 실 사용 대가로 카르마 포인트를 요구합니다.

월하노인, 장사할 줄 안다.

덕수와 팔미호를 엮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럴 때는.

“덕수야! 수진이 마음에 들어?”

“넵!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덕수는 생각보다 씩씩했다.

직진남의 표본이었다.

“와아! 덕수 박력 있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아무 말 안 했어? 전혀 눈치 못 챘네.”

권주희 누님이 진짜 놀란 듯 물었다.

나도 의외였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하긴 했지만 덕수가 그런 마음으로 공수진을 대하고 있는 줄은 생각 못 했다.

“수진 씨는…… 누가 봐도 예쁘지 않습니까. 말하는 것과 달리 마음씨가 곱습니다. 연수원 시절 보육원봉사 갔을 때……. 아이들을 다정하게 안아주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있습니다. 나중에 아이들한테 좋은 엄마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전 덩치만 컸지. 돈도 미래도…… 부모님도 안 계시고.”

우리 덕수도 남자였다.

이제는 공수진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오빠아…….”

얼굴이 빨개진 공수진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분위기가 제대로 물살을 탔다.

“수진아. 넌 덕수 어때?”

권주희 누님도 필 받았다.

기회를 포착한 듯 밀어붙였다.

“그게 난…….”

“덕수 좋다고 하는 여자 변호사들 많다. 우리 로펌 여직원들 중에서도 덕수한테 선물 공세 하는 애들도 있어. 덩치 듬직하지. 키도 크지. 성격도 화끈하지. 게다가 일도 잘해요. 더군다나…… 형님이라는 분이 펜트하우스 선물로 준다잖아. 이거 놓치면 바보다. 집 있고 차 있고 직장 있으면 인생 반절 성공한 거야. 기반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도 알지?”

권주희 아줌마의 현실적 조언이 연속 터졌다.

나도 오케이다.

공수진이 겉으로 보이는 성격과 달리 마음은 순수하고 여렸다.

전생 팔미호의 습이 남아 있긴 하지만 호랑이 패밀리 앞에서는 어림없었다.

“제수씨 되면 내가 법무부 장관까지 쭉 밀어 준다.”

“버, 법무부 장관!”

법조계 인사들의 끝판 왕이 바로 법무부 장관이다.

검찰 총장을 지휘할 수 있는 권력자.

“와아! 내가 시집만 안 갔으면 덕수한테 올인한다!”

누님의 추임새가 좋다.

여름휴가 보너스 좀 더 신경 써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왜들 이러는데요? 언니하고 장 변 둘이 짰어요?”

“원래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다. 결혼도 거래의 일종이니까 분위기 좋을 때 밀어 붙이는 거지. 이렇게까지 밀어줬는데 덕수가 정장 한 벌 해주겠지~.”

“물론입니다. 대표님하고 부군 옷까지 맞춰드리겠습니다!”

모든 게 일사천리다.

“기분이다. 애들 교육비로 작은 빌딩도 하나 사주마!”

전생에 동생이었던 인연, 현생에 못 밀어줄 이유가 없었다.

“형님!”

“……으아아. 나도 다시 시집가고 싶다!”

꿀꺽.

팔미호가 정말로 갈등이 되는지 마른침을 삼켰다.

- 삼신할매 측에서 딜이 들어왔습니다.

삼신할매는 또 왜?

- 일타쌍피. 이란성 쌍둥이는 10% 할인, 일란성 쌍둥이 20% 할인, 아들 딸 차별 말고 시리즈는 특별 세일가로 모신다는 조건입니다.

“…….”

신들, 제대로 장사할 줄 안다.

월하노인이 중매를 서는 동시에 삼신할매도 숟가락을 올리셨다.

- 신씨 집안에서 특별 포인트를 지급했습니다.

덕수 집안 조상들도 난리가 난 모양이다.

하긴 덕수한테서 대가 끊길 뻔한 상황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게다가 손주 보기가 하늘의 별 보기보다 귀한 세상이었다.

장가들어 애만 낳아주면 조상들이 살아생전 벌어 둔 포인트 다 쏠 기세다.

더욱이 공수진은 미모와 지성이 겸비된 최고의 며느릿감.

잡는 순간 집안 모두 땡 잡는 것이다.

“제수씨 콜?”

공수진을 바라보며 마지막 의중을 물었다.

덕수보다 좋은 신랑감은 나 말고 세상에 없었다.

결혼만 하면 백년해로에 쌍둥이도 세알가로 안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난…….”

덕수를 바라보며 부끄러운 듯 입을 여는 공수진.

그때.

띠리리리리리리리리리.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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