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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장. 미래 경영(2) (681/1,284)

684장. 미래 경영(2)

‘뭐야, 이렇게 어려?’

고광문은 동생 덕분에 어렵게(?) 만나게 된 장태산의 실물을 보고 크게 놀랐다.

나이만 어릴 뿐 노련하게 생긴 사람일 줄 알았다.

장태산이 보여준 사업 추진력과 쌓아온 재력.

그 정도라면 인간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기를 많이 소진했을테니, 나이보다 노안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연지가 입이 닳도록 장태산의 얼굴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녀의 콩깍지 탓일 거라고 생각했다.

슬쩍 검색해 본 포털에 떠도는 사진은 흐릿하게 나온 몇 컷에 지나지 않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고는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장태산의 얼굴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음이 확실했다.

오정이나 다른 모 기업들과 달리 사설 경호 업체는 이용하지 않았던 엘자.

장태산에 대한 정보를 따로 수집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암암리에 드러나 있는 정보량이 어마어마했다.

투자회사 쪽에서 움직이는 자금만 해도 수조.

정체 모를 외국계 자본의 한국 대리인.

TS를 비롯해 굵직한 기업들에는 장태산이 선별한 사람들이 심어졌다.

미국 대통령이 장태산의 뒷배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 정도로 위세틀 떨치고 있는 장태산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렸다.

그것도 이제 겨우 대학교 1, 2학년 정도로 보이는 동안.

게다가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

대충 봐도 핏이 대단했다.

“고광문 회장님?”

‘회장? 내가?’

장태산의 말에 고광문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껌벅였다.

“태산 씨……. 우리 오빠야. 회장님이 아니라 고광문 전무님.”

연지가 나서 호칭을 정정했다.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엘자의 고광문입니다.”

엘자 그룹명을 이름 앞에 당당하게 사용할 자격이 되는 고광문.

먼저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것 같았다.

아직 때가 된 건 아니지만 고광문는 엘자의 다음 대 후계자로 점쳐지고 있었다.

그간 재계의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수없이 만나왔다.

처음 대면하는 장태산은 그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장태산 변호사라고 합니다.”

투자법인 대표가 아닌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장태산.

“연지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능력이 대단한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과찬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일단 합격이란 소린가?’

장태산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고광문은 살짝 긴장이 풀렸다.

허름한 순댓국집 한 자리 차지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오빠, 순댓국 먹을 줄 알아?”

“당연하지. 대학 시절 술 먹은 다음 날에는 꼭 얼큰하게 순댓국을 먹었다. 속 푸는 데 그만이지. 이모, 순댓국 한 그릇 주십시오. 고기는 곱빼기로 부탁합니다.”

고광문이 입맛을 다시며 주문을 넣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 비슷한 곳들을 자주 찾아다녔다.

고광문이 엘자 그룹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몇 년 동안 친구들은 알지 못했다.

대충 잘사는 집 자재 정도로 생각했다.

그만큼 소탈하게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었던 고광문이었다.

지금은 이런 자리에서 가볍게 밥 한 끼 먹기가 힘들었다.

일도 바빴고 같이 식사하는 이들 중에 순댓국을 좋아하는 인사들도 드물었다.

“소주 드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순댓국에는 소주 아닙니까.

장태산이 두 손을 이용해 공손하게 소주병을 기울였다.

마주 앉아 두 손으로 잔을 잡은 고광문.

겉모습만 보고 앞에 있는 장태산을 무시하지 않았다.

사회적 성공 기준은 그 사람의 나이가 아니라 그가 이룬 성과였다.

그런 점에서 장태산은 사업가로서 존중 받기에 충분했다.

또로로록.

잔에 채워진 맑은 소주.

“갑작스런 방문에도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술자리에 친구가 많아지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친구라……. 재밌군.’

장태산이 뱉은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

“많이 드시소~.”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뜨끈뜨끈한 순댓국 한 그릇을 내왔다.

머리고기를 비롯해 순대와 내장이 풍성하게 담겨 있는 순댓국.

“오빠와 태산 씨의 만남을 위하여~.”

고연지가 건배사를 읊었다.

“위하여!”

차자작.

세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크.”

한 잔을 목에 털어 넣은 고광문이 목젖을 적시는 화끈한 술맛에 신음을 흘렸다.

수저에 고기와 국물을 가득 떠 입에 넣었다.

“이집 맛집이네!”

고광문은 만족했다.

대학 시절 느꼈던 편안한 추억의 맛.

“오빠, 어때? 죽이지?”

동생 연지의 물음에 고광문이 미소를 지었다.

‘많이 컸네.’

엘자 그룹 여자 자손 중 유일하게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을 받게 된 여동생.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귀여운 여동생의 성장에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룹 내의 사내 정치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대부분이 엘리트 출신들이라 한 순간 작은 실수라도 하면 금방 자리에서 밀려났다.

고광문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엘자 그룹은 지분 관계가 복잡해 절대 안심할 수 없다.

경영권을 노리는 이들 중에 작은 아버지들도 한 몫 했다.

후손들이 많아질수록 내 자식에게 좋은 걸 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은 다 같았다.

고자룡 회장도 완벽하게 그룹을 손아귀에 넣고 지배하지 못했다.

타 그룹에 비해 복잡한 노선이 뒤섞인 엘자 그룹 내 교통정리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아버지와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장태산이 궁금했다.

직접 입으로 말씀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장태산의 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인생이란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사랑하며 내일을 희망한다……. 그래서 오늘도 난 나와 모든 이들의 내일을 축복하며 잔을 나눈다.”

“올! 우리 오빠 시인이었어?”

“친구들과 술 마실 때마다 나눴던 멘트다. 좀 느끼하지?”

“응……. 아저씨 같아.”

“아…… 저씨?”

“왜 그래. 장가가면 다 아저씨지. 파릇파릇한 20대도 아니잖아.”

“선경이가 그랬다면 바로 꿀밤 맞았다.”

고광문이 피식 가볍게 웃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 여동생.

둘째는 시집가서 조신하게 살고 있지만 고연지는 그렇게 할 것 같지 않았다.

눈빛이 예전과 달리 총기와 힘이 넘쳤다.

‘장태산을 만난 이후부터겠지.’

좋은 사람 옆에 있으면 그 기운이 전염되는 법이다.

인정할 만한 능력자인 장태산 곁에서 연지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두 분 사이가 좋습니다.”

장태산이 웃었다.

‘나쁜 놈이 아니네.’

웃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거짓으로 물든 탁한 눈동자가 아니었다.

고광문도 많은 사람을 만나온 만큼 정태산의 기본 성품을 알아봤다.

“아버님이 장태산 대표를 만나면 유익한 충고를 많이 들을 거라 하셔서 기대가 큽니다.”

술이 한 잔 돌고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 됐다.

“고자룡 회장님, 속이 아프셨을 텐데…….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장태산은 솔직한 마음을 감추거나 다른 꿍꿍이를 보이지 않았다.

“태산이 왔다 가면 아빠가 술독에 얼굴을 묻는다니까.”

고연지도 양념을 쳤다.

오늘 자리가 중요한 만남이라는 걸 고연지도 알고 있었다.

능력 측정 불가인 장태산.

오빠와 그룹에 도움이 된다면 뭐라고 하고 싶었다.

스스럼없이 엘자 그룹을 선물로 주겠다고 말했던 장태산.

‘오빠……. 힘내.’

고연지는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엿보이는 고광문을 향해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다.

“요즘 엘자 그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광문이 직접적으로 물었다.

“회장님이 아무 말씀 안 하셨습니까?”

“아버지와 레벨이 다릅니다. 그룹 경영에 이제 겨우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흐음…….”

장태산이 소주병에 손을 뻗었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고광문이 재빨리 술병을 낚아챘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 되면 친구 오빠이니 말을 놓으라고 할 법한데 장태산은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전무님은 젊으시니 심장이 튼튼하겠죠?”

“이거 손이 벌써 떨리는데요.”

“쫄지 않으셔도 됩니다. 단지 입에 쓸 뿐입니다.”

첫 만남인데도 장태산은 거침이 없었다.

‘아버지가 당황할 만하네.’

대한민국 5대 그룹에 드는 엘자.

그런 그룹의 회장에게 뼈아픈 말을 던진 장태산.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준비 됐습니다. 쓴 소주로 입가심도 했습니다.”

고광문은 장태산의 한마디를 기다렸다.

회의실보다 차라리 이곳이 나을지도 몰랐다.

술 한 잔을 마시며 나누는 엘자 그룹에 대한 조언.

“그럼 주제넘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소주잔을 비우고 내려놓으며 고광문을 바라보는 장태산.

안주도 먹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엘자는……. 2020년이 지나면 한 시대의 흘러가버린 추억의 이름이 될 겁니다.”

“!!!”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장태산의 발언에 그대로 몸이 굳는 고광문.

“그게……. 무슨 말이야? 엘자가 망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야?”

연지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엘자 그룹 소멸.

장태산이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말을 내뱉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월이 가면 사람의 머리칼은 하얘지고, 가을이 오면 나뭇잎이 마르는 건 자연의 이치지.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데 과거에 안주하고 아직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걷는다면……. 대웅처럼 산산이 부셔지는 조각이 될 거야.”

덤덤한 말투로 말을 잇는 장태산.

고광문이 눈에 띌 만큼 파르르 몸을 떨었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애써 진정하려는 고연지.

서서히 식어가는 순댓국의 김이 흐릿하게 퍼지며 침묵을 더했다.

“해결 방법은 있습니까?”

고광문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

그룹을 목숨처럼 여기는 아버지가 같은 말을 들었다면 괴로워할 만했다.

아버지 앞이라고 장태산이 지금보다 더 친절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딱 봐도 장태산은 할 말 다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저것 괴로움이 따를 겁니다.”

‘방법이 있다고?’

고광문은 아버지의 당부를 기억하며 다급한 마음을 눌렀다.

이것저것 당장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엘자 그룹은 오래된 대한민국의 경제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영광은 과거와 같지 않지만 백색 가전과 LCD 디스플레이 쪽은 강자였다.

반도체를 빼앗긴 후 절치부심 노력한 대가였다.

“뉴욕에 가보신 적 있습니까?”

갑작스런 장태산의 질문.

“물론입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동경하는 뉴욕은 엘자 그룹을 닮았습니다.”

“네? 그게 무슨…….”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뉴욕은 미국 금융과 패션의 중심지다.

뉴요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멋쟁이들도 많았다.

좋은 뜻의 말 같지만 장태산의 어투로 보아 그렇지 않았다.

“좋은 말 아니지?”

참지 못하고 고연지가 물었다.

“세상에 알려진 겉모습과 달리 뉴욕은……. 단점이 많습니다. 100년이 넘은 지하철은 낡아서 고쳐 쓰기도 힘들 정도죠. 오래되었다고 좋은 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명화나 골동품이 아니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뼈가 있는 장태산의 말.

엘자 그룹이 과거의 유물이 아닌 한낱 낡은 시설이 되어간다는 의미였다.

“분리수거가 안 되는 쓰레기들이 거리에 넘쳐납니다. 충분히 돈이 될 만한 것들도 쓸어 담으면 같은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연이어 던지는 2차 폭격.

엘자 그룹의 방만함을 돌려 지적하고 있음을 고광문은 이미 알아챘다.

지주회사였지만 계열사가 너무 많았다.

넘쳐나는 자손들에게 적당한 명함을 만들어 주기 위한 계책에 시작된 계열사 늘리기.

흑자를 내는 자회사가 다른 여타 계열 회사를 먹여 살리는 구조였다.

“엘자는 뉴요커 같은 백조입니다.”

또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장태산.

“…….”

고광문과 고연지는 장태산을 조용히 바라봤다.

듣기 좋게 백조라는 말을 선택했지만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담담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장태산.

“남들 보기에는 아름답고 화려해 보이지만…….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수면 아래서는 치열하게 발버둥 치는 백조……. 그게 바로 지금 엘자의 진짜 모습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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