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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장. 춘화일시(春花一時) (679/1,284)

682장. 춘화일시(春花一時)

“동찬이가 죽어? 왜?”

“과속과 중앙선 침범에 의한 교통사고라고 합니다.”

“쯧쯧. 귀한 인재를 잃었군.”

한국대 경제학부 교수실.

조교의 보고에 고용호 교수가 혀를 찼다.

평소 신념과 사상, 그리고 집안 모두 마음에 들었던 양동찬.

학부생이지만 연구실을 드나드는 대학원생들 못지않게 챙겨줬다.

눈치 빠른 부모가 때가 되면 이것저것 챙겨 선물을 해왔다.

자신의 식민사관에 진심으로 동조했던 양동찬의 이름을 논문에 올려주기도 했다.

미래가 창창했고 특히나 아끼던 학생이었다.

서로간의 신뢰가 쌓이면서 은밀하게 공작소 운영진에게도 연결해 줬다.

‘어리석은 놈. 조용히 대학원에 들어와 교수질이나 할 것이지…….’

양동찬은 여러모로 밀어 줄만 한 인재였다.

젊은 애들 중에 말이 통하는 제자가 드물었다.

부모가 가진 재력 또한 든든해 지방대 교수로 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국대 박사 학위에 일본이나 미국 유학 한 번 갔다 오면 지방대는 수월하게 욱여넣을 수 있었다.

“동찬이 동기들이 상가 방문을 한다고 하는데 교수님은…….”

“됐어. 죽으면 그만인 것을. 그만 나가 봐.”

“알겠습니다.”

냉정한 고용호 교수의 축객령에 조교는 할 말을 잇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뭔가 찜찜한데…….”

괜히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뚜루루루루루루.

그때 구형 핸드폰이 울렸다.

오정이나 엘자의 최신형 스마트폰이 아닌 한국에서 몇 대 팔리지 않는 구형 일본 핸드폰.

“고용호입니다.”

- 교수님. 이태식입니다.

“오! 태식 군. 무슨 일인가? 이 번호는 뭐고?”

찝찝한 기분과 달리 고용호가 반색을 했다.

정치에 성공적으로 뛰어 든 본인이 키워낸 제자 중의 한 명이다.

공작소 사이트의 비밀 운영진을 맡고 있기도 했다.

- 교수님, 누군가 사이트를 해킹한 것 같습니다.

속삭이듯 조용히 말을 해오는 고태식.

“뭐라고 해킹!”

고용호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금세 해쓱해졌다.

지령을 받고 사이트에는 믿을 만한 인재들만 골라 심었다.

국정원까지 깊게 연결되어 있는 사업.

밖으로 알려지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자칫 자신뿐만 아니라 현 정권 그리고 일본에까지 쓰나미가 몰아칠지도 몰랐다.

- 일단 사이트를 해킹 할 수 없는 서버로 옮겼습니다. 중대한 자료들은 모두 삭제했습니다.

“자, 잘했네!”

- 다른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공작소 사이트 회원들이 이상한 얘기들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얘기?”

- 갑자기 회사에서 대기발령이 났답니다. 오정을 비롯해 엘자 등 대기업 팀장급부터 다양합니다.

“뭐라고!”

- 합격 소식을 전했던 신입사원들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으음…….”

고용호의 신음이 깊어졌다.

‘그럼 동찬이도?’

뭔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누군가 공작소 사이트를 해킹해 기업들에 제공한 것이 분명했다.

숨이 턱 막혀왔다.

생각보다 곧 터질 지뢰가 가까이에 와 있었다.

- 회원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나도 알아볼 테니까.”

- 알겠습니다.

“전화는 당분간 자제하고.”

- 걱정 마십시오. 지금도 대포폰입니다.

“알겠네.”

통화가 끝났다.

“도대체 누구야? 어떤 놈이 해킹한 거야!”

국정원이 관리하는 서버였다.

웬만한 해커들은 접근이 불가능했다.

티디딕.

급하게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고용호.

- 무슨 일입니까?

어눌한 한국말이 들렸다.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관리하던 사이트가 해킹되어 작전에 차질이 생길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보고하는 고용호.

- 공작소 말입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 모니터링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랬습니까?”

- 정체는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계획하는 걸 훼방하려는 목적이 확실합니다.

사상적으로 오염된 자들을 사회 기득권층에 심어 한국인의 정신과 문화를 훼손하려는 집단.

진작 포섭된 고용호의 얼굴에 분노가 서렸다.

“죽일 놈들 같으니!”

- 일단 대기 하십시오. 정확히 알아보고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이번에 나올 학회지 발표에 기대가 큽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 항상 응원합니다. 그럼.

역시 통화는 길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쥐새끼가 냄새를 맡은 거야? 찢어죽일 것들!”

풀리지 않는 의문에 마음만 복잡해져 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커들을 향해 격한 분노를 표출했다.

***

화르르르르르르르.

치이이이이이익.

사냥으로 잡은 새끼 암사슴 고기가 모닥불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었다.

특별 제조한 양념까지 발라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모스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엘크 섬.

국립공원이지만 차르는 구애받지 않고 사냥을 했다.

엘크섬에 위치한 국가 별장.

마당에서 샤슬릭을 구우며 세 남자가 마주 앉았다.

“미녀들은 늙어가는 내 몸을 위한 보너스 같은 존재들입니다. 언제나 피를 끓게 만들고 저돌적으로 앞으로 치고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까? 그렇지 않습니까. 차르~.”

“하하하. 맞습니다. 보드카와 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죠.”

오늘 처음 만난 트럼프와 푸틴은 죽이 잘 맞았다.

보드카 몇 병이 그새 비워졌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트럼프가 불콰하게 취했다.

그래도 정신줄은 놓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내 능력을 알아본 거야! 흐흐흐.’

다니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크게 용기가 나지 않았던 대통령의 자리.

오바마를 향한 분노와 오기가 오늘의 결실을 만들어 냈다.

“트럼프.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인 것 같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대화가 잘 통합니다.”

차르 푸틴은 술잔을 들어 보이며 트럼프에게 친밀감을 표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파격적 대우.

‘여자와 돈만 밝히는 비곗덩어리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다니엘의 추천과 부하들의 보고를 듣고 푸틴은 흥미를 보였다.

트럼프는 오바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 오바마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풀지 않았다.

풍부한 자원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경기는 계속 침체되고 있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옛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다.

국민들 관심사를 돌리기에 그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한계에 봉착했다.

따뜻한 집과 빵, 옷과 차를 원하는 국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발달로 평안한 생활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오바마는 상성이 맞지 않았다.

점잔을 떠는 가식 덩어리 오바마.

보기와 달리 철저하게 러시아 숨통을 쥐고 발전을 막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던 푸틴 앞에 다니엘이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던졌다.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접했다.

놀라운 건 떠벌이 호색한이라고 소문이 난 트럼프에게서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밀고 있어.’

푸틴은 다니엘을 유심히 지켜봤다.

몇 번의 술자리를 가졌지만 한 번도 취한 적 없는 다니엘.

역시 오늘도 잔을 거침없이 비워냈다.

‘무서운 녀석이야. 속을 알 수가 없어.’

푸틴은 다니엘을 인정했다.

홍콩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이 지금 이 자리까지 이어졌다.

푸틴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긁어줬다.

놀이동산 덕분에 자신의 인기는 전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쓸모없이 버려진 땅을 거금을 주고 매입해 줬다.

다니엘이 제공한 출처가 불분명한 달러 덕에 숨통이 트였다.

그에 이어 이번에는 거대한 사냥감까지 구해왔다.

알아서 마음껏 요리를 해 보라는 의미.

“형님. 그런 사랑스런 눈길은 미녀에게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느끼고 있었나?”

“물론입니다. 장작보다 더 뜨겁지 말입니다.”

“하하하. 알면 됐어.”

푸틴은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다.

만날 때마다 재미가 커지고 있었다.

다니엘은 적당한 아부와 농담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센스를 소유했다.

“다니엘, 내 사랑도 받아줘~.”

트럼프가 윙크를 날렸다.

“……그 사랑은 안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

“차별하면 못써. 난 다니엘 자네를 내 가족보다 더 끔찍하게 사랑해.”

트럼프가 다시 한 번 사랑을 강조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귀염둥이~ 내 동생.”

푸틴도 거들었다.

“두 분 모두 술에 취한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잠을 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일 비즈니스를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은 속 깊은 대화까지 나누지는 않았다.

“아직 밤이 길어. 그래서 내가 특별 이벤트를 준비했지.”

“이벤트요?”

“기대가 되는군요.”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푸틴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반! 다들 모셔와!”

별장을 향해 소리치는 푸틴.

그리고.

사박사박.

차가운 밤공기를 헤치며 나타나는 세 명의 미녀.

늘씬한 키에 요염하게 몸매가 드러나는 가죽 치마와 재킷을 걸친 그녀들.

“오!”

트럼프 입에서 바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이 아름다운 분들은 누구십니까?”

“미인대회 출신들입니다.”

“세상에…… 엘프가 따로 없군요.”

미녀를 사랑하는 트럼프가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가슴이 풍만한 갈색 머리칼의 미녀에게 시선이 꽂혔다.

트럼프의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푸틴.

“귀한 손님이야 잘 모셔.”

푸틴은 바로 갈색 머리칼 미녀를 찍어 트럼프 옆에 앉도록 했다.

“옥사나라고 해요~”

“아름다운 레이디를 만나 영광입니다.”

옥사나는 영어도 능통하게 구사했다.

옥사나의 손을 잡고 키스하는 트럼프.

자신의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리타라고 불러주세요.”

다니엘 옆에도 연한 갈색금발 미녀가 앉았다.

“다니엘 장입니다.”

거절하지 않는 다니엘.

“그럼 우리 다시 한 번 건배할까요. 오늘의 뜨거운 만남을 위해~.”

다가온 마지막 미녀의 허리를 껴안고 트럼프가 잔을 들었다.

“뜨거운 만남을 위해!”

트럼프가 힘차게 따라 외쳤다.

쨍.

보드카를 채운 술잔이 부딪쳤다.

남자들만이 느끼는 우정(?).

모두 다 만족한 표정으로 거침없이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

“아…….”

술에 취한 위험한 러시아 미녀 리타.

내 품속으로 격하게 파고들며 육탄 공격을 본격적으로 퍼부었다.

그녀를 품에 안았다.

진하게 맡아지는 달콤한 체취.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정보국 출신답게 푸틴은 암수에 능했다.

리타는 러시아 미녀 스파이가 확실했다.

스으윽.

리타의 손길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상의 속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그녀의 손길.

러시아 아가씨 거기까지!

“슬립!”

가볍게 귓가에 속삭인 주문.

스르르륵.

마법에 의해 순식간에 잠에 빠져든 리타.

연체동물처럼 맥이 풀려 버린 그녀를 품에 안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푸틴 형님, 이런 고전적 수법은 약하지 않나요?”

방에 설치된 몰카와 도청장치는 들어오면서 전격 계열로 모조리 고장 냈다.

이런 흔한 수에 당할 내가 아니다.

“트럼프가…… 이렇게 당했군.”

과거 트럼프가 푸틴에게 약점이 잡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놀랍게도 보드카에 흥분제가 섞여 있었다.

평소에도 대놓고 밝히던 트럼프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한 수.

지금쯤 방을 몰래 촬영하고 있을 러시아 정보국 요원들이 많이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난 동영상만 받으면 끝.”

푸틴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관련한 정보가 결국 모두 내 손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말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초원의 들소 같은 트럼프.

푸틴이 초면에 코뚜레를 뚫었다.

제대로 꿰인 트럼프.

또로록.

방에 비치된 보드카를 잔에 채웠다.

모두가 뜨거울 이 밤.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차갑지만 뜨거운 술을 삼켰다.

“춘화일시(春花一時)라……. 봄꽃도 한 철일 뿐. 트럼프와 푸틴……. 당신들도 지금 쥐고 있는 그 권력의 허망함을 몸소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우리 다시 제대로 계산하도록 합시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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