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9장. 로비스트. (676/1,284)

679장. 로비스트.

“TS그룹 회장 하관우일세.”

“!!!”

분노를 보이던 양동찬의 눈동자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이내 파르르 떨었다.

‘회장이 왜!’

TS그룹은 10대 그룹 안에 들었다.

그런 회사의 회장이 직접 면접관으로 나서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

“회……장님!”

면접장에 함께 앉아 있던 면접생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졌다.

TS그룹 회장이라고는 하지만 공식적인 언론 활동은 많지 않았다.

그런 인물이 직접 면접에 참여하고 합격을 통보했다.

이제 막 합격 통보를 받은 이들의 마음에 애사심이 불끈 치솟았다.

‘정말 저런 쓰레기 사상에 물든 안하무인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니…….’

하관우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방금 전까지 발악하던 양동찬을 쳐다봤다.

지난 과거 같았다면 하관우 역시 혹했을 만한 인재였다.

무려 명문 한국대 경제학부의 장학생이다.

게다가 한국대 교수 추천서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학업 성취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교수 눈에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능력 있는 교수의 인맥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양동찬 같은 인물을 뽑을 수밖에 없다.

어학 쪽 성취도 뛰어났다.

학점 역시 4.0을 가볍게 넘었다.

한국대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는 곳에서 이런 고득점을 유지했다면 그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증거였다.

외모 또한 특출났다.

환경 역시 상류층.

자기소개서에 은근히 흘려놓은 부모의 직업을 보니, 양동찬 아버지는 하관우도 알고 있는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전문의였다.

실력이 좋아 근래 큰 빌딩을 구입했다고 소문이 돌았을 만큼 명성을 날렸다.

어머니도 같은 건물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추정되는 재산만 해도 수백 억.

주변에 포진해 있는 인맥 역시 무시하기 힘들 만큼 장장했다.

웬만한 그룹 면접장 어디든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검사를 들먹이며 협박하고 명예훼손 운운하며 고소하겠다는 말을 뱉을 수준은 됐다.

하지만.

‘회장님이 아니셨다면 자칫 독사를 들일 뻔했군.’

하관우 회장은 누구보다 믿을 만한 인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과거 대웅 시절에도 양동찬과 비슷한 놈들이 회사와 동료를 배신한 전례가 있다.

같은 물을 마셔도 우유가 아닌 독을 생산해 내는 독사.

장태산 회장이 최종 서류 면접을 봤다.

TS그룹 신입사원 모집 요강은 다른 기업들과 비교될 만큼 특이했다.

학교와 학점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게 그 첫 번째.

최소한의 어학 점수만 충족되면 누구나 지원 가능했다.

자기소개서에 스스로 자랑할 만한 것들을 가감 없이 어필하도록 공고를 냈다.

개방형 모집 요강 덕에 서울 쪽 학교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지원서가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서 성의 없이 작성하고 어학 점수가 낮은 학생들은 1차 커트 대상이 됐다.

2차로 기본 인성 교육 테스트를 거쳤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선발된 최종 면접생들.

오늘 모인 면접자들 모두가 그렇게 선별된 청년들이다.

그들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최종적으로 장태산 회장이 합격과 불합격을 명시해 주었다.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이나 월권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하관우가 TS그룹의 회장이었지만 모두의 보스는 다름 아닌 장태산 회장이다.

그런 장태산 회장이 특별히 살펴야 하는 표시를 따로 해놨다.

하관우 회장도 뉴스를 통해 여러 차례 들어 알고 있는 ‘공작소’ 얘기.

그 패륜 집단 사이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이 최종 면접 대상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과 건전한 사회에 덮어 놓고 불만을 토해 내는 익명의 탈을 쓴 자들.

요하는 노력은 거부하고 주어지는 혜택만은 동등하게 요구하는 기형적 평등주의자.

그게 통하지 않으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싸잡아 지옥이라 몰아붙였다.

그들 무리에 촘촘히 박힌 이들은 친일파가 상당수였다.

정상적 사고라고 보기 어려운 행태를 보이는 이들이 대거 회원들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다.

사회 곳곳에 암세포로 잠복해 있다가 비슷한 부류의 인간쓰레기들을 만나면 기하급수적으로 활동 범위를 높이는 집합소 공작소.

지금 눈앞에 있는 양동찬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게 생긴 한국대 출신 면접생이다.

한국대 경제학부 장학생이나 되는 인재가 공작소 회원이라면 누가 믿겠는가.

놀라운 건 양동찬은 공작소 활동 회원 중에서도 악질중의 악질이란 점이다.

첨부된 증빙 자료에는 입 밖에 내기도 무서운 내용들이 다수였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불만은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

눈 뜨고 볼 수 없는 패륜과 금단의 욕망, 타인 비방이 끝을 달렸다.

밖으로 알려지기라도 하면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할 정도였다.

아이디도 천황폐하만만세.

“더 할 말 있나?”

얼굴색이 파랗게 질렸다 다시 하얗게 뜬 양동찬의 표정.

그에게 하관우는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 판사처럼 무거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내 아이디를 어……떻게…… 그걸.”

‘쯧쯧. 세상 물정을 저렇게 몰라서야.’

세상 어느 곳에도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걸 청년 양동찬은 모르고 있었다.

“그게 궁금한가? 본인이 던진 쓰레기네. 그걸 인터넷 세상에 투척하면 자네 것이 아닌 줄 알았나?”

“…….”

양동찬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최종 면접까지 봤으니 충고 하나 해주지.”

하관우 회장은 조용히 양동찬의 두 눈을 응시했다.

“익명으로 살게 되는 그 인터넷 세상 역시 또 하나의 세계네. 그곳에 던진 쓰레기들은…… 언젠가 다시 몇 배로 몸집을 불린 채 처음 던진 자에게 돌아오게 되네. 그게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이야. 그 법칙 안에서 누구도 예외는 없네. 이 어리석은 사람아.”

한때 하관우도 스스로 잘났다 생각하고 거만하게 굴던 때가 있었다.

지금 이 위치까지 오면서 그 동안 경험하고 터득한 살아있는 지혜로 그나마 겸허함을 깨달았다.

특히 장태산 회장을 만나면서 더 절실하게 깨달았다.

삶은 진정성 있는 자에는 언젠가 꼭 앞길을 열어준다는 것.

의심할 여지도 없이 절실하게 믿게 됐다.

다른 노하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인생내공.

그것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삶에서 오는 것이었다.

으드득.

양동찬이 직면한 상황을 부정하며 이를 갈았다.

‘악인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거리를 둔만큼 모든 게 한눈에 보이는 하관우.

양동찬의 두 눈이 이미 악을 품고 싹틔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사라지게! 당장!”

더는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사자후.

양동찬이 살기 번들거리는 두 눈으로 하관우 회장을 노려봤다.

그리고 거칠게 의자를 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면접장을 벗어났다.

“XX놈들!”

남아 있는 모두의 귀를 파고드는 양동찬의 거친 욕설만이 그를 배웅하고 있었다.

***

“멋진데…….”

탄성이 절로 터졌다.

워싱턴 국회의사당 방문은 처음이다.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호수와 워싱턴 기념관, 링컨 기념관이 보였다.

사진 찍기 명소라는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 동상 앞에서 펼쳐진 풍경을 즐겼다.

생각보다 좋았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적당히 따뜻한 태양이 봄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미국이 넓기는 넓었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아직도 못 가본 곳이 차고 넘쳤다.

“어떤가?”

기다리던 인물이 나타났다.

아마존에서 헤어졌던 존 피어스 의원.

그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자신감이 보이는군요.”

“미국을 떠나 세계인의 자유를 수호하는 힘이 느껴지지 않나? 저기 주철 지붕 위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이 그 상징일세.”

상원의원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서 미국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쳤다.

그의 시선을 따라 미국 국회의사당을 바라봤다.

국회의사당은 미국 정치와 역사의 산증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세계를 재패하고 세계 모든 국가들 위에 우뚝 선 미 연방.

세인트 폴 대성당과 로마의 성 베드로 바실리카를 본 따 만든 국회의사당에서는 미국의 정신이 느껴졌다.

역사는 짧았지만 유럽 제국들의 장점을 습득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세계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 국가.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모방에 지나지 않지만 누구도 조롱하거나 무시하지 못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아직은?”

할아버지 때부터 장군 집안인 존 피어스 상원의원은 나의 한마디에 의문을 표했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나다.

지금까지는 정상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대통령과 정치인으로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뒤에는 생각지 못한 인물이 이곳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간 누린 평화와 질서에 신물이 난 무지한 미국인들이 직접 뽑은 세계의 대통령.

내가 심은 X맨.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영국을 비롯해 수많은 제국들도 한순간의 실수로 권좌에서 내려왔습니다. 미국이라고 예외는 아닐 겁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군.”

“전 미국인이 아니니 좀 더 객관적일 뿐입니다.”

“한국이라면 동맹국 아닌가. 타국인들보다는 좀 후한 평가를 기대했네.”

“정치적 유동성은 국가적 이해관계 앞에서 무력하지 않습니까. 피 튀기며 싸웠던 일본이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이 될 거라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들이 알았겠습니까.”

“일본은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로 속죄를 했네. 미국의 우방이 될 조건은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생각하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으로 특수를 누렸던 일본.

미국이 원할 때마다 일본은 흔쾌히 집지키는 충실한 개가 돼 주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충분했다.

세계를 호령하던 강자인 미국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대신 부를 누렸다.

양털 깎기를 제대로 당해 고생을 하긴 했지만 지금도 부자였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군수물자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열혈 소비자 중 하나다.

미국 입장에서는 최측근 우방이라 부를 만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난한 친구보다 돈 많은 친구를 원했다.

그 점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후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방어하는 제 1방어선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미국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역시 공산권 세력의 남하를 막는 방패일 수는 있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성 역시 일본처럼 복종적이지 않았다.

미국 스스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맹국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역시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계륵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뒤 여과 없이 미국인의 본심을 드러냈다.

창고에 쌓아둔 비축분이 줄면서 동맹국들을 상대로 삥을 뜯기 시작하는 그들의 본성.

미국을 위대한 자유수호국가의 맹주로 믿고 살아가는 존 피어스 상원의원.

그가 나의 말이 내포한 깊은 뜻을 이해할 리 없었다.

“인정합니다. 일본만큼 미국에 충실한 시종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이 심하군.”

“한국에서는 그런 말을 팩트 폭력이라고 합니다.”

“으음…….”

존 피어스 상원의원이 필요한 인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고개 숙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딸을 구해준 건 우연이 겹쳤을 뿐.

사람이 만든 우연이 아닌 하늘이 허락한 기회였다.

“좀 걷지.”

존 피어스가 대화 주제를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월남전 포로 후유증으로 발목을 저는 존 피어스 상원의원.

그가 한 발 앞장서서 걸었다.

위대한 거인이라 불리는 인물이었지만 실제 모습은 왜소했다.

앞으로 몇 년밖에 삶이 남지 않은 남자.

그의 옆에서 발 폭을 맞춰 같이 걸었다.

“역사상 단시간에 이런 부와 권력을 획득한 나라는 없을 겁니다.”

“그만큼 많은 피를 흘렸다는 증거지. 조국을 위해 흘린 피는 반드시 유용한 밑거름이 된다네.”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불리기도 하는 존 피어스.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들과는 품격이 달랐다.

미국 보수당은 국가를 위해 피를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병역의무를 마치고 민족과 경제를 위해 정치색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존재들이었다.

“인정합니다.”

인정할 건 인정했다.

미국인이 흘린 피 덕분에 공산주의 바이러스가 일정 구역 외로 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선택들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그 또한 힘없는 약소국의 서러움일 수밖에 없었다.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고맙군.”

정말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존 피어스.

성격이 불같다고 소문이 나 있기도 했지만 이런 면모를 갖춘 정치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가벼운 조크로 아직 감정이 풀리지 않았음을 알렸다.

“엠마가 맛있는 저녁을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엠마 얘기로 나도 공격을 가했다.

“……나도 참석할 수 있나?”

의외로 조심스런 상원의원.

지금은 다 큰 딸의 사생활에 개입할 수 없는 걱정 많은 아빠의 모습이었다.

“따님에게 직접 물어보셔야죠.”

“끄응.”

존 피어스가 난처한 듯 신음을 흘렸다.

엠마가 생명의 은인인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런 점에서 엠마는 존 피어스를 공략하기에 좋은 무기였다.

“뭘 원하나?”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건 만고의 진리.

그 사실을 잘 아는 존 피어스 상원의원.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결투는 짧고 강렬해야 아름다운 법.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도와? 뭘?”

나의 입가에 번지는 여유 넘치는 미소

“의원님께서 저의 로비스트가 되어 주십시오.”

“뭐라고? ……로비스트!”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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