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4장. 아마존의 눈물.(9)
“다니엘이 브라질에 있다 했나요?”
“그렇습니다. 바트시여.”
“무슨 일인가요? 여리고의 파수꾼이 움직였다면…… 큰 사건인가요?”
로리아나는 예기치 않은 보고에 무척 놀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금식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전해진 보고.
모사드를 통해 급보가 올라왔다.
로리아나는 다니엘의 신변 보호를 위해 직접 특급 보호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환경운동가 피살 사건 때문에 방문한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왜요?”
“그분이 지원하는 봉사 단체와 연관된 사건인 듯합니다.”
로리아나의 깊은 관심을 알기에 보고자는 말을 조심했다.
“위험하지 않나요?”
“지역 권력 세력과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전투요?”
전투라는 말에 로리아나는 더 크게 놀랐다.
“마침 파견되어 있던 요원의 즉각적인 보고로 현장 상황을 파악한 결과, 규모가 꽤 컸던 것 같습니다.”
“그는…… 무사한가요?”
“무사하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로리아나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브라질 정부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지금쯤이면 보고가 들어갔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감히! 겁도 없이 야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위협하다니!”
조금 전과 달리 로리아나에게서 풍기는 날카로운 분노.
보고자는 움찔했다.
야훼바트는 언제나 냉정함을 유지하는 성녀 중의 성녀였다.
그녀의 분노는 언제나 묵직하게 가라앉았으며 조용했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여느 때와 달리 거칠고 파괴적인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당연하죠. 브라질 대통령에게 전하세요. 만약 이번 일로 다니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간다면……. 브라질은 올해 안에 최빈국으로 전락하게 될 거라 확실하게 경고하세요.”
세계 경제를 손에 쥐고 있는 차일드 가문의 주인 입에서 생각지 못한 경고가 흘러나왔다.
바트에게 있어 허언은 있을 수 없었다.
브라질 경제 따위는 단 며칠이면 바닥까지 붕괴시킬 수 있는 힘이 그녀에게 있었다.
“명을 전하겠습니다.”
이의는 있을 수 없었다.
로리아나가 마음먹는다면 전 세계를 통틀어 온전할 국가는 어느 곳도 없었다.
설령 그 상대가 미국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다니엘을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보호하라고 하세요. 미국 정부에도 가문의 이름으로 통보하세요.”
부탁이 아닌 통보를 전하라 말하는 로리아나.
“바트의 뜻대로 되실 것이옵니다.”
최근 들어 야훼바트의 활동은 본격화되고 있었다.
차분하고 조용하던 성품이 돌변했다.
특히 다니엘에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예민했다.
다니엘을 두고 콕 찍어 야훼가 지켜보고 있는 자라 말했다.
그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입을 열 수도 없었다.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신이다.
로리아나는 차일드 가문의 수장인 동시에 야훼가 진실로 사랑 하는 야훼바트.
감히 그녀의 명을 거역할 자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러가세요.”
“쉬십시오.”
정보를 들고 왔던 보고자가 물러났다.
“야훼시여……. 그는 누구입니까? 왜 이토록 강하게 제 마음을 흔드는지요.”
창밖의 지중해를 바라보며 로리아나는 신께 물었다.
그녀의 말처럼 요즘 많이 흔들렸다.
다니엘을 향한 그리움은 신을 향한 그리움만큼이나 간절해졌다.
“…….”
오늘도 신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로리아나는 한숨만 내뱉었다.
“오늘도 무사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다니엘…… 당신에게 야훼의 가피가 함께하기를.”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로리아나.
그녀는 인내하며 기다렸다.
다가올 뜨거운 여름휴가를.
***
‘세상에! 너무 어리잖아.’
서양인들에게 동양인들의 외모는 몇 번을 봐도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그 정도로 다니엘은 동안인데다 늘 짐작한 나이보다 어렸다.
파티에라도 참석하는 듯 말끔한슈트 차림으로 나타난 다니엘.
실물로 다니엘을 마주한 건 처음이다.
여타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얄팍한 꼼수 따위는 부리지 않는 존 피어스.
다니엘이라는 이름만 몇 차례 들었지 사진으로도 그를 본 적 없었다.
피어스 가문 자체가 명망이며 권력 자체인 셈.
그런 가문의 핵심인 존 피어스 눈에 곱상하게 생긴 다니엘 장은 겨우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아빠. 여기 이분이 저를 구해준 다니엘 장이에요.”
엠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네. 엠마의 아빠인 존 피어스라고 하네.”
존 피어스는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놀란 마음은 단단한 피부 아래에 감추고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상원의원님.”
손을 맞잡은 다니엘이 정중하게 목례했다.
“날 아는가?”
“물론입니다. 미국의 영웅이 아니십니까.”
‘말솜씨와 행동이 제법이야.’
존 피어스는 과하지 않은 절제된 행동으로 듣기 좋은 말을 하는 다니엘 장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그런 태도가 내심 마음에 들었다.
외모 또한 유명 스타들만큼 잘생겼다.
호리호리해 보이는 체격은 의외로 탄탄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더욱이 딸을 구한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호감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속 축적됐다.
“충분히 보상은 하겠지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네. 다니엘 자네는 피어스 가문의 은인일세.”
존 피어스는 감사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엠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다.
“무엇을 바라고 엠마 양을 구한 게 아닙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엠마 양과 의원님이 이렇게 제 앞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제게는 선물입니다.”
‘겸손이 몸에 배었군.’
부드러운 말투와 겸손한 다니엘의 태도는 존 피어스를 미소 짓게 했다.
“회장님, 어디 다녀오셨어요? 차림이 바뀌었네요.”
김한별이 잠시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잠깐…… 누구 좀 보고 왔습니다.”
“누구를요? 이 전쟁터 같은 밀림에서요?”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빙긋 웃었다.
“궁금한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마을 밖 전쟁터를 방불케 한 현장은…… 자네 작품인가?”
존 피어스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안전을 위해 네이비씰과 타이스 경호회사 측이 정찰을 나갔다.
그들이 보내온 정보는 실로 놀라웠다.
마을을 공격하려던 자들이 전멸했다.
장갑차까지 동원되었을 만큼 상당한 전력이었다.
그들 모두 다 화마에 휩싸여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홀로 밀림으로 향했다는 다니엘이 공격자로 지목됐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공격 헬기 정도가 지원되어야 가능한 파괴력.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적들을 정찰하던 중에 갑자기 불덩어리들이 나타나 공격했습니다. 그들 입에서 ‘숲의 마술사’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을 들었습니다.”
“숲의 마술사!!!”
바울 신부가 다니엘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신부님, 숲의 마술사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원주민들이 믿는 아마존 여왕의 전사들입니다. 마술을 사용할 줄 아는 이들로서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아마존의 여왕과 전사들요?”
애들이나 믿을 만한 판타지 같은 설명에 존 피어스가 반문했다.
“원주민들일 수도 있어요. 그들은 죽은 자들과 원수 관계입니다.”
김한별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원주민를 끌어들였다.
그게 가장 합리적인 시나리오였다.
물론 김한별은 보스가 벌인 일인 것을 알고 있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김한별.
그녀는 보스가 세상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믿을 수 없지만…… 믿어야겠군요.”
존 피어스도 사건이 더 확대되는 걸 원치 않았다.
딸은 무사했다.
월권에 해당하는 미국 군사력을 동원했다.
이로 인해 한 번은 오바마를 도와야 하는 정치적 도의적 빚이 생겼다.
그래도 존 피어스는 후회하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과 귀한 딸의 목숨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의원님.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성당 문 밖에서 네이비씰 장교가 출발할 때임을 알려왔다.
“다니엘 장. 만나서 반가웠네. 꼭 한 번 워싱턴을 방문해 주게…….”
긴 말은 필요치 않았다.
존 피어스는 다니엘 장에게 가장 큰 빚을 졌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다니엘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도 기다릴게요…….”
엠마가 반짝이는 두 눈으로 다니엘을 바라봤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기대하겠습니다.”
다니엘은 눈빛에 마음을 담아 웃으며 답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조이 양도 고맙네.”
“성령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의원님.”
서로 돌아가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엠마, 집으로 가자꾸나.”
“네. 아빠.”
존 피어스는 딸의 손을 잡고 성당 밖으로 나갔다.
모두 뒤를 따랐다.
처저적.
헬기에 탑승하는 존 피어스와 미국 특수부대원들.
스르르르르릇.
스텔스 헬기답게 조용히 이륙해 마을을 벗어났다.
싸사사삭.
서로를 향해 다들 손을 흔들었다.
한 편의 재난 영화 같았던 지난 며칠.
모두의 기억 속에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으로 진한 추억을 남겼다.
“신부님.”
다니엘이 바울 신부를 돌아봤다.
“네. 다니엘 형제님.”
“제가 아는 분께서 이 마을을 위해 기부를 하셨습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있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성당 앞에 세워진 지프차로 다가가는 다니엘.
어디서 끌고 왔는지 모르지만 미국산 대형 지프차는 덩치가 컸다.
딸깍.
다니엘이 트렁크 쪽 문을 열더니 커다란 백팩 하나를 꺼내왔다.
“받으십시오.”
“이, 이게 뭡니까?”
바울 신부가 얼떨결에 받아 든 백팩은 꽤 무거웠다.
“마리아님도 달러를 좋아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의문에 찬 눈빛으로 백팩을 열어보는 바울 신부.
“허어억!”
바울 신부의 눈이 순식간에 두 배는 커졌다.
미국 돈 100달러짜리 지폐가 다발로 수북이 묶인 채 가방을 가득 채웠다.
대충 계산해 봐도 100만 달러가 훌쩍 넘을 만한 뭉칫돈.
“성당도 확충하시고 병원도 더 크게 증축하십시오. 의사들은 보내드리겠습니다. 학교도 새로 지으시고 찾아오는 원주민들에게 예방 접종도 부탁드립니다. 모두 다 하느님의 자식들이 아니겠습니까.”
“다니엘 형제님…….”
태어나 처음 구경하는 거액에 바울 신부는 몸을 떨었다.
한밤중에 건네받은 정체 모를 거액의 기부금.
‘오! 자비로운 마리아시여…….’
꼭 필요한 돈이었다.
원주민들과 외부 세계 사람들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있었다.
면역력이 약한 원주민들이 현대인이 갖고 들어온 병에 노출되며 알게 모르게 시달렸다.
이대로 10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아마존 원시 부족민들은 모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 전에 예방 접종이 꼭 필요했다.
세상이 변해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외부 세계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삶.
항상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팠던 바울 신부의 기도에 하늘이 응답을 해왔다.
마을에 마리아의 은총이 듬뿍 내렸다.
그리고 그른 은혜로운 은총의 중심에 서 있는 한 남자.
‘신의 은총이 당신에게 영원히 함께하기를…….’
바울 신부는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아마존 원주민들이 섬기는 여왕의 전사나 다름없는 남자.
“밀림의 밤이…… 참 아름답습니다.”
하늘에서 금방 쏟아져 내릴 것처럼 흐르고 있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감성에 젖는 다니엘.
그런 그의 어깨 뒤로 성자의 후광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