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장. 아마존의 눈물.(5)
“미국 특수부대? 그게 사실인가?”
- 그렇습니다, 안토니우님. 방금 전 국방부로부터 비밀 지령을 받았습니다. 미국 특수부대가 항공 식별 장치를 달고 접근할 테니 레이더와 미사일 부대의 감시 활동을 잠시 멈춰 달라는 요청입니다.
“특수부대라…… 이유는?”
보아비스타에 머물고 있는 안토니우 실바는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결려온 호라이마주 담당 고위 장성의 전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큼 이곳의 군 장성이 갖는 파워는 남달랐다.
그런 장성을 안토니우 실바는 자기 사람으로 심어 놓았다.
그가 급박하게 연락을 해왔다.
-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특수 작전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수작전? 브라질의 내 땅에서?”
- 국방부에 있는 친구를 통해 들은 바로는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실종되었던 여성이 미국 유명 정치인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
안토니우 실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필!’
미국 시민권자들은 언제나 골치 아픈 존재들이었다.
타국임에도 자국민들보다 더 강도 높은 보호를 받았다.
시민권자에 대한 위협을 지키는 일에 나라의 명예를 걸었다.
미국 정부 또한 자국민 보호를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은 제대로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됐다.
“어떤 정치인?”
- 그건 잘……. 아! 마침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어서 말해봐. 누구 딸이라는 거야!”
- ……존 피어스 상원의원. 네, 존 피어스 상원의원의 딸이라고 합니다. 실종자 성명은 엠마 피어스입니다.
“뭐, 뭐라고! 존 피어스 상원의원!!!”
안토니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걸려도 지저분하게 걸려들고 말았다.
차라라락.
안토니오는 다급하게 얼마 전 부하가 건넸던 수색팀원들의 명단을 뒤적였다.
제거하기 직전에 소지하고 있던 여권을 빼앗아 기록해 둔 내용.
그들 명단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던 이름, 엠마 피어스.
‘젠장! 하필!’
정신이 몽롱해지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존 피어스는 세계인이 다 인정하는 미국의 위대한 정치 거물.
브라질 정부도 존 피어스 의원을 막을 수 없었다.
- 안토니우님?
“정보 고맙네.”
- 언제나 안토니우님을 위해 충성과 봉사의 자세 잊지 않겠습니다.
“수고했어. 다음에 연락하도록 하지.”
- 충성!
경례까지 붙이고 난 뒤에야 장성은 통화를 끝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이미 죽음의 강을 건넜을 텐데…….”
안토니우 실바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누구도 아닌 자신이 직접 내린 명령.
위성 전화기를 통해 지령은 틀림없이 하달됐을 것이다.
살인이 취미나 다름없는 부하들이 지금까지 살려두었을 리 없었다.
“경호원 놈들은 왜 리오로 날아가는 거야? 미치겠네.”
브라질은 치안이 확보되지 못했다.
납치 등의 문제로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 임원들은 대부분 경호원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이런 국가적 상황에 경호사업이 일찍부터 돈이 된다는 걸 알고 브라질 명문 가문과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나같이 호라이마주와 비교할 수 없는 중앙 거물들과 연결돼 있다.
그들이 거느린 경호원들의 수준도 무시할 수 없었다.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경호원 상당수가 이스라엘식 경호를 습득한 엘리트들.
실력을 인정받은 경호원들은 대기업 사원들 몇 배의 보수를 받았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위명을 날리고 있는 타이스 경호회사.
이스라엘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회사로 모사드 출신들이 상당수였다.
타이스 경호회사는 30일을 기준으로 거듭 테스트를 하여 능력이 떨어지면 바로 퇴출시켜 버리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런 운영 방식은 거물들에게 더욱 신뢰감을 주었다.
그놈들이 헬기를 이용해 리오로 날아갔다.
다급하게 핵심 조직원이자 양아들인 마르쿠스를 뒤쫓아 보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부하들을 무장시켜 동행시켰다.
예상치 못하게 판이 커졌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안토니우는 위성 전화기를 들었다.
- 보스. 마르쿠스입니다.
밀림 지역은 스마트폰 통화가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위성 전화로 연락을 취하는 안토니우 실바.
“마르쿠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 저도 그 생각 중입니다. 환경보호자 놈들을 처리하던 밀림 전초 기지와 연락이 안 됩니다.
“살아남은 놈들이 있다는 말인가?”
- 리오 마을에 나타났다는 동양인 남자가 걸립니다. 타이스 놈들이 향하는 방향도 리오 마을 쪽입니다.
마르쿠스의 말에 안토니우 실바는 눈을 질근 감았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
“만약 타이스 놈들이 살아남은 자들을 보호하면……. 쓸어버려. 뒤는 내가 책임진다.”
- 알겠습니다. 리오 마을까지 정리하겠습니다.
말뜻을 바로 알아듣는 마르쿠스.
“개미 새끼 하나도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
- 걱정마십시오. 보스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내 땅에서 날 거역하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안토니우 실바는 자존심을 걸었다.
만약 여기서 밀리면 모든 게 끝났다.
상대를 완전히 쓸어버려야 끝나는 아마존 원주민들의 결투 방식.
원주민의 피를 이어받은 안토니우 실바는 잠자고 있던 전의를 불태웠다.
***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새카만 빛깔의 헬기 다섯 대가 리오 마을 학교 운동장 상공을 몇 바퀴 돌다 차례로 착륙했다.
타다다닥.
그리고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아나콘다가 그려진 방탄복을 착용한 무장 병력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숫자는 약 30여 명.
“작전대로 마을을 보호할 수 있도록 사방 경계에 들어간다. 총알 넉넉하게 챙겨 이동한다. 실시!”
“실시!”
무장 병력이 군용 배낭과 손에 자동 소총을 들고 무리 지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밀림에 인접한 탁 트인 공간에 위치한 리오 마을.
출발 전 작전 계획을 전달받은 경호원들이 2인 1조로 빠르게 중요 위치를 점했다.
일반 경호뿐만 아니라 군사훈련까지 받은 베테랑들이었다.
“이게 뭐야?”
“무슨 일 있어???”
순박한 리오 마을 사람들은 벌어지는 상황에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저 정도 규모의 이방인 출현은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없었다.
마을 주민들 전체 규모라 해도 겨우 200여 명이 전부였다.
상점과 교회, 작은 보건소와 학교가 전부인 작은 마을.
밀림 원주민들과 교역하는 상인들이 가끔 이곳 마을을 찾는 주요 손님들이었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려 여행자들도 드물었다.
가끔 총기를 소지한 광산업자들이 드나들기도 했지만 마을 안에서는 큰 소란 없이 조용했다.
마을 자경단원들과 서로 한통속이나 보니 소란이 일어날 일이 거의 없었다.
나름 겉으로는 평화로웠던 리오 마을.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타이스 경호회사!”
“맞아. 타이스!”
TV로 보았던 유명 경호 회사 마크를 주민들이 알아봤다.
브라질에서 최고로 알려진 경호회사의 황금 아나콘다 표식.
“우리 마을에 무슨 일이지?”
“……여보! 빨리 애들 집안으로 불러들여!”
“마르시우! 마르시우!!!”
“에나! 에나! 어서 들어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경호원들 주변으로 몰려가자 주민들이 서둘러 아이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차박차박.
경호팀을 이끄는 팀장 아론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성당으로 향했다.
밀림에 다급하게 출동했다.
갑자기 회사에 의뢰된 S급 경호 요청.
대기 중이던 최고 경호요원들을 대거 이끌고 이동해 왔다.
무기도 평소 사용하던 권총 수준의 총기가 아니다.
정부에서 허락한 자동소총 사용 명령이 떨어졌다.
회사 소유 헬기를 타고 이동해 온 밀림.
마침 가까운 인근에서 훈련 중이었기에 대처가 빨랐다.
‘의뢰인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라니…….’
팀장 아론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이런 식의 대형 의뢰는 타이스 경호 회사 설립 이후 처음이었다.
모사드에서 근무하다 경호원 훈련을 위해 입사한 아론.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방을 샅샅이 훑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지만 분명 마을에 긴장감이 흘렀다.
밀림이 품고 있는 검붉은 기운이 음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이번 의뢰 건을 해결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걸 아론은 느꼈다.
죽음의 순간을 수없이 건너왔던 모사드 요원의 감.
아론은 현재도 모사드 요원이다.
브라질에 파견된 이스라엘 정부 비밀요원이 바로 아론이었다.
딸깍.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신 여호와를 섬기지만 방식이 달랐다.
천주교와 유대교는 신약과 구약처럼 거리가 멀었다.
아론은 내색하지 않았다.
성당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무슨 일입니까?”
성당 안에서 동양 여자와 긴장하고 있던 신부가 돌아보며 물었다.
“경호 의뢰를 받았습니다. 다니엘님 계십니까?”
아론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영어로 물었다.
“경호원들이군요!”
동양인 여성이 반색했다.
‘요원?’
여성의 눈빛과 행동에서 정보요원 냄새가 났다.
귀엽고 예쁘장한 외모이긴 하지만 자세에서 훈련받은 자의 각이 느껴졌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조이라고 해요. 다니엘은 제 보스에요.”
‘보스?
아론은 갖고 있는 정보를 꿰맞추기 시작했다.
‘월가 거물의 의뢰라더니……. 다니엘이라는 자와 연관 있군.’
상부에 보고해 놓은 상황이라 내려올 정보를 기다렸다.
지금도 실시간 초소형 마이크와 모니터를 이용해 위성으로 현장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중요하다는 상부의 평가가 내려왔다.
미군 특수부대가 리오 마을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착륙 직전 전달받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금광업자들이 환경운동가들과 원주민들을 피살했어요. 그리고 저와 제 동료들인 수색팀도 매복해 암습했어요.”
‘요원이 맞군.’
일반인 여성이라면 매복이나 암습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브라질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악질 사건입니다.”
말과 달리 아론의 눈빛은 냉정했다.
환경운동가 피살 사건은 과거부터 쭉 있어왔던 일이다.
“이름이…….”
“아론 팀장입니다.”
“팀장님, 보스가 오기 전까지 마을과 우리 신변을 보호해 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마을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뢰인 관계자 보호는 중요한 임무였다.
“안토니우 실바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신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상대해야 할 적을 알려온 셈이다.
“걱정 마십시오. 타이스 경호회사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아론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긴급하게 요청된 의뢰비는 상당한 금액이다.
의뢰한 사건 수행 중 사망이나 부상에 대해서는 업계 최고 대우를 약속받았다.
모사드 요원이면서 동시에 아론은 경호 업체 이사급 팀장.
받은 만큼 값을 한다는 업계 규칙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 팀장님. 다수의 무장병력 수송 차량이 도로를 이용해 접근 중이라고 합니다.
헬기를 이용해 주변을 살피던 정찰 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숫자는?”
- 대략 백오십 명 정도입니다.
‘150명? 밀림에서의 화끈한 밤이 되겠군.’
군이나 경찰은 이런 일에 바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걸 아론을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지역을 다스리는 가문과의 전쟁.
“들었지. 다들 엄폐물을 최대한 확보해.”
- 옛! 써!
개방형 무전이다 보니 다른 수석 조원들의 대답이 한꺼번에 들려왔다.
“신부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 정부 측 개입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십시오.”
“오. 자비로운 성부와 성모와 성자시여……. 저희를 악과 이 위기로부터 구해주소서.”
바울 신부가 성호를 그었다.
어느새 창밖으로 진한 어둠이 밀려와 있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작은 마을.
겨우 가로등 몇 개가 위태롭게 어둠을 물리치고 있었다.
끼이익.
그때 성당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둠과 함께 미끄러지듯 들어서는 한 덩어리의 그림자.
팀장 아론은 두 팔에 축 늘어진 여성을 안고 들어서는 동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 저…… 남자는!!!’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