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장. 아마존의 눈물.(3)
‘흐흐. 쥐새끼 같은 년.’
안토니우 실바를 따르는 조직의 행동대원인 이반.
신부와 낯선 남자를 바라봤다.
신부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동양 계집을 지켜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마을 근처 숲에서 운 좋게 도망쳐 나왔지만 이제는 끝이다.
보스의 명이 떨어졌다.
오늘 안에 처리하라는 지시.
몸을 숨기고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들과 함께 성당을 찾았다.
명분이 좋았다.
“신부님. 자경단원 이반입니다.”
작은 병원과 성당이 있는 마을의 치안을 책임지는 자경단의 대장, 이반.
마을에 따로 경찰이 배치돼 있지 않아 그 임무를 위임받아 마을 치안을 맡고 있다.
“이반 형제, 무슨 일입니까?”
바울 신부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이반을 쳐다봤다.
자경단원들 모두 폭력 조직원 일원이라는 사실을 바울 신부는 알고 있었다.
“실종자들 문제로 저기 있는 동양인 여자를 경찰서로 압송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협조해 주십시오.”
“압송요? 조이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건 조사하면 확인될 겁니다.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것도 수상하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억지를 부리는 이반.
“절대 안 됩니다!”
바울 신부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신부님…… 성당이 관여할 수 없는 범죄 사건입니다!”
이반이 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카톨릭을 믿지 않았다.
최소한의 존중은 해주었지만 신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짐승의 눈빛으로 동양 계집을 노려보는 이반.
‘저 새끼가 헬기 타고 온 놈인가?’
운동장 한가운데로 헬기를 타고 나타났다는 동양 남자.
키는 제법 컸지만 역시 뭇 동양인들처럼 허약해 보였다.
반면 이반을 비롯해 자경단원 일원들은 덩치가 꽤 컸다.
허리에 차고 있는 정글도와 총 한 자루면 제압 못 할 자가 없었다.
“당신들은 뭡니까?”
동양인 남자가 이반을 예리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물었다.
정확하게 포르투칼어를 구사했다.
“그런 당신은 뭐요!”
이반이 과한 반응을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다니엘 장이라고 합니다. 여기 있는 조이는 제 회사 직원입니다.”
‘회사 직원? 그럼 이 새끼도…….’
동양인 남자의 손목시계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빛깔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가죽구두도 마찬가지.
이런 밀림에 저런 슈트 차림이라니.
미친놈이다.
이 동네에서 구경하기 쉽지 않은 옷차림이다.
“형씨도 같이 가야겠소.”
이반의 머릿속에 반짝 하고 좋은 계획이 스쳤다.
여자 하나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는데 마침 잘됐다.
어차피 여자와 남자만 수중에 들어오면 모든 게 끝났다.
이송 도중 도망을 쳤다고 말하면 그만.
바울 신부가 문제이긴 하나, 어차피 신부가 아무리 떠들어봐야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자가 없었다.
게다가 바울 신부는 늙은이에 불과하다.
언제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시가 내려오면 소리 없이 제거할 자신도 있었다.
“나도 그 생각 중이었어. 너희들…… 나하고 같이 가줘야 할 곳이 있어.”
기세 좋게 처지도 모르고 반말을 내뱉는 다니엘.
“흐흐흐. 가끔 밀림에 오면 정신줄 놓는 자들이 있지.”
이반이 히쭉거리며 비웃었다.
“크크크. 맞습니다. 상황 파악을 못하는 놈들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죠.”
“켈켈.”
이반을 따라온 자경대원 일원 중 한 명이 이를 드러내며 함께 비웃었다.
“이반! 모두 데리고 썩 나가시오!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요!”
바울 신부가 다니엘과 조이를 뒤에 두고 앞으로 나서며 호통을 쳤다.
“신부님. 조이를 잠시만 보호해 주십시오. 저 친구들과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다니엘, 나가면 안 됩니다!”
“군대 시절 마리아님의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그분은 저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혀 꺾이지 않는 기세로 바울 신부를 안심시키는 다니엘.
“앞장 서봐.”
이반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는 다니엘.
“회……장님…….”
김한별이 숨을 죽이며 작은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다.
“나만 믿어요. 홍콩에서와 같은 일은 이번 생에 두 번은 없습니다.”
‘태산 씨…….’
김한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직접 겪고 보았던, 또 들었던 장태산의 위명.
괜히 이곳에 불렀나 하는 걱정은 없었다.
김한별에게 장태산 회장은 이미 그의 이름처럼 바라만 봐도 듬직한 큰 산이 되어 있었다.
***
“여기 좋네.”
마을에서 조금 비켜 나오자마자 바로 밀림이었다.
어느새 사방은 어둠이 내려 어둑어둑해졌다.
고산 밀림 지대에 위치한 리오 마을.
주변으로 크고 작은 호수가 꽤 많았다.
해가 지자 온도차로 인해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주변을 감쌌다.
“멍청한 새끼.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크크크크.”
이반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는 게 보였다.
놈의 누런 옥수수가 심히 눈에 거슬렸다.
브라질도 엄연히 법이란 게 존재하는 문명국가.
그럼에도 이 동네는 이상하게 이계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불법이 법이 되어 있는 세상.
“이곳……. 잘 알고 있지.”
“잘 알아?”
“네놈들이 마지막 숨을 쉴 장소.”
“이 새끼가 미쳤나!”
이반이 꽥 소리를 질렀다.
“짧게 끝내자. 형 시간당 페이가 많이 비싸다.”
“저 새끼 죽여! 겉옷은 상하지 않게 해. 피 안 튀기게 조심하고!”
미개한 동네에 살아도 보는 눈은 있었다.
“걸치고 있는 거 다 벗어. 그러면 깨끗하게 단칼에 끝내 주마. 흐흐.”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놈이 정글도를 휘휘 저으며 다가왔다.
처음부터 나와 김한별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던 자들.
마음에서 사람에 대한 인권 같은 착한 생각은 지웠다.
나와 사고방식이 같으리라는 착각은 금물.
마음은 냉정해졌고 눈빛은 차가워졌다.
놈들은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선 운동가들을 살해했다.
이유는 빤했다.
자신들의 일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무고하고 선량한 자들을 해친 자들.
김한별도 저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뻔했다.
까닥까닥.
가까이 다가오는 놈과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누가 봐도 상대를 자극하는 건방진 행동.
“이 벌레 같은 새끼가!”
쇄애애앳.
여유롭게 움직이던 정글도가 순식간에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놈들 주변으로 일렁이는 어둠의 기운.
부연 안개 속에서 흐릿한 실루엣이 여러 개 떠다녔다.
그만큼 이들의 손에 의해 사라진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
놈들은 크게 실수하고 있다.
총부터 썼다면 저항의 기회라도 얻었겠지만 나를 만만하게 본 듯 정글도로 덤볐다.
집중했다.
안개가 자욱한 공간.
움직임은 느릿하게 흘렀다.
굼벵이처럼 느린 정글도의 움직임.
정글도 끝이 몸 가까이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휘릭.
가볍게 공격해 들어온 자의 오른손을 잡아채 꺾었다.
우드드득.
제대로 뼈가 부러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울부짖는 비명.
꺾은 손목을 놓으며 자연스럽게 가로챈 정글도의 둔탁한 손잡이.
“헉!”
“으헛!”
귓가를 스치는 당황한 음성들.
쇄애앳.
손에 든 정글도로 가차 없이 허공을 갈랐다.
촤아아아아아앗.
부연 안개와 석양빛이 오묘하게 뒤섞인 공간에 뿌려지는 선 붉은 피분수.
떼구르르.
머리통 하나가 몸에서 분리되며 바닥을 뒹굴었다.
쿠우웅!
뒤이어 묵직한 몸뚱이가 따라 쓰러졌다.
“…….”
순간 안개의 흐름마저 고요하게 멈추었다.
약속이나 한 듯 찾아든 침묵.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놈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한 놈만 살려 놓을 생각이다. 엠마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똑똑한 놈으로. 없나?”
“으아아아아아! 죽여! 당장 저 새끼 죽여!”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않을 정도가 되어 버린 살인 명령.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죽어!!!”
정글도가 번뜩하더니 세 놈이 동시에 덤벼 왔다.
“훗.”
역시 말로 해서 안 되는 놈은 손맛을 보여줘야 한다.
입가에 차갑게 번지는 미소.
안개 속을 뚫고 가볍게 자리를 박찼다.
어둠이 짙어진 만큼 밤안개가 진득하게 밀려드는 밀림.
숨바꼭질하기에 완벽한 환경과 시간이다.
***
“으으으…….”
엠마는 손을 옥죄는 밧줄 때문에 고통스럽게 신음을 흘렸다.
미국 시민권자인 자신이 이렇게 핍박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선배 환경운동가들이 1년에 수십 명씩 행방불명되거나 살해된다는 얘기가 사실이었음을 이제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엠마는 이렇게 위험한 지역에 파견된 적이 없었다.
학업 문제도 남아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나름 미국의 명망 있는 가문의 후손인 엠마.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허락을 받았다.
활동 단체에서 만나게 된 조이 킴.
보통 환경운동가들과는 뭔가 달랐던 그녀와는 짧은 시간 금세 친구가 됐다.
나이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했다.
특별한 일 없이 활동하던 중 동료 환경운동가가 브라질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실종됐다.
조이가 먼저 방문 의사를 밝혔고 엠마도 따라나섰다.
자신과 달리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한 조이에게 관심이 많았다.
동료들을 찾기 위한 수색팀도 경력자들 위주로 꾸려졌다.
안내 가이드도 밀림 지리를 잘 아는 주민이 맡았다.
그게 실책이었다.
원주민들을 만나고 실종자를 찾아야 할 가이드가 습격자들과 한패였던 것.
하나 둘씩 일행에서 사라졌던 수색팀원 중 상당수가 이곳에 잡혀 있었다.
가이드를 맡았던 주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납치된 수색팀원들과 달리 습격자들과 어울려 술을 나누고 웃고 즐겼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총만 소지하고 있었더라면 가이드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조이가 구하러 올까? 그녀가 살아 있다면…….’
납치되고 만 하루 정도 지났다.
그 시간이 평생 겪은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겼다.
엠마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월남전에 참전했다 포로로 잡혔던 그녀의 아버지.
위기 속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면 분명 기회가 온다고 했다.
엠마는 누구보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믿었다.
딸칵.
그 때 통나무 집 문이 열렸다.
“엠마~.”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중년의 남자.
가이드를 맡았던 마을 주민이다.
“마우루,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이러고도 마을로 돌아가 바울 신부님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바울 신부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가이드였다.
“그건 걱정하지 마. 보너스 받으면 성당에 가서 속죄를 위한 공양을 올릴 참이야. 어차피 인간은 죽을 때까지 모두 죄를 범해. 나만 그러는 거 아니잖아~.”
“더러운 새끼! 널……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날 죽여? 어떻게? 설마 그 몸으로? 크크크크.”
“!!!”
마우루가 음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엠마는 우려하던 순간이 닥쳤다는 걸 알았다.
놈들은 자신을 죽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전에…….
‘혀를 깨물까.’
손발이 묶여 있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혀뿐.
주루루룩.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부모님의 얼굴.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질 슬픔의 그림자.
‘아마존을 수호하시는 여신이시여…….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평소 신앙의 중심이었던 하나님은 찾아지지 않았다.
원주민들이 믿는 아마존 수호 여신.
어쩐 일로 그들의 신을 찾았다.
원주민들이 전하는 그녀는 강의 여왕이었으며 수호자였고 전사였다.
각 부족마다 그녀를 수많은 이름으로 달리 불렀다.
아마존 강에서 서식한다는 분홍 돌고래를 타고 나타난다는 아마존의 수호 여신.
엠마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구원의 신호를 보냈다.
“엠마~. 처음 볼 때부터 너에게 반했어. 이제 기다림의 대가를 보상 받아야 할 시간이 왔어.”
마우루가 엠마에게 다가와 그녀의 헝클어진 금발을 쓸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듯한 느낌에 몸서리치는 엠마.
“왜 이렇게 떠는 거야? 그만큼 날 기다렸다는 뜻이야?”
구역질나는 역한 입 냄새를 풍기는 마우루.
엠마의 머리칼을 따라 흐르던 마우루의 손이 흙이 묻어 엉망이 된 옷자락에 닿았다.
‘아…… 신이시여.’
모든 걸 삼켜버릴 치욕.
엠마는 결단을 내렸다.
더러운 놈에게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게 나았다.
어금니 사이에 혀를 물었다.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 하늘에서 만나요.’
뜨겁게 흐르는 눈물.
온 힘을 다해 힘껏 혀를 깨물려는 순간…….
“어이 형씨! 그 더러운 손 치우지?”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