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6장. 아마존의 눈물.(2)
“그 계집은?”
“리오에 숨어 있습니다.”
“젠장…….”
“방심하다 놓쳤습니다.”
“밖으로 알려지면 큰일인데.”
“주변에 감시자들을 풀어놨습니다.”
“한국인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미국인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서 문제입니다. 납치한 계집이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아직 안 죽였지?”
“보스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브라질 북부 호라이마주의 주도인 보아비스타에 위치한 대저택.
우람한 덩치의 중년 남자가 인상을 잔뜩 쓰며 보고를 받았다.
안토니우 실바.
나이는 50세.
브라질 국민들 중 상당수의 비중을 차지한 남미 혼혈인이었다.
손에 꼽는 거부다.
호라이마주에서 금광과 목축업, 쌀농사로 대대로 부를 축적해 왔다.
거기에 호라이마주의 어두운 세력을 거머쥔 조폭이다.
안토니우 실바라면 주지사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안토니우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가는 하룻밤 사이에 총에 맞아 죽을 수 있었다.
브라질은 비옥하고 넓은 땅, 풍부한 자원에 비해 국가 경쟁력은 바닥을 기었다.
만연한 부패, 불법과 폭력, 마약, 공권력에 대한 도전과 불신이 브라질 국민들의 영혼을 잠식했다.
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할 수도 없었다.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불러온 풍경은 거지와 소매치기들의 천국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들은 경찰들이 바로 앞에 있어도 타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아 도망칠 정도로 대담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만큼 자치 조직들이 자연스럽게 결성됐다.
가문이나 조직의 이름으로 도시와 마을이 꾸려졌다.
특히 산간 외지 지역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호라이마주의 진짜 주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안토니우 실바는 고민에 빠졌다.
‘없애야겠지. 파리떼 같은 환경운동가 같은 새끼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볼 수는 없어.’
최근 멋진 금광 하나가 발견됐다.
요 근래 개발된 금광들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졌을 정도다.
문제는 브라질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보호구역 안.
브라질에는 1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원주민 보호 구역이 존재했다.
전 국토의 10%가 살짝 넘는 규모.
그 안에 거주하는 얼마 안 되는 원주민을 대법원이 판결로 보호했다.
이곳 호라이마주도 마찬가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원주민들을 조용히 쫓아내고 금광을 개발해야 했다.
나머지 대지의 나무를 벌채하고 대규모로 소를 키우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돈을 거머쥘 수 있다.
“바울 신부는 놔두고…… 그 계집만 죽일 수 있나?”
브라질에서는 아무리 개념 없는 강도라 해도 절대 성직자는 건들지 않았다.
카톨릭교를 믿는 브라질 국민에게 신부는 하느님의 대행자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안토니우도 신부는 조심했다.
괜히 중앙 정부까지 나서게 만드는 사건이 될 수 있었다.
“보스가 명하시면 바로 목을 딸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안에 한국에서 온 그 계집하고 미국 계집 둘 다 처리해.”
“애들이 좋아하겠군요.”
안토니우의 명을 받은 부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건 알아서 해. 대신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라고 해.”
“걱정 마십시오. 보스.”
“광산은 잘 되고 있지?”
“원주민들 수십 명이 열심히 채굴 중입니다.”
“사정 봐주면 안 돼.”
“그것도 걱정 마십시오. 우리 애들은 자비를 모르는 아마존의 전사들입니다.”
“일 마무리 되면 보너스 나갈 테니까 그렇게 말해둬.”
“존경합니다. 보스.”
“마르쿠스. 넌 내 양아들이다. 항상 난 널 믿는다.”
“보스이자 대부이신 안토니우님께 신의 가호가 함께하실 겁니다.”
“너에게도 신의 가호가 함께할 것이다.”
원주민들에게는 일체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는 자들.
하지만 무자비한 살육자들도 서로에게만은 신의 가호를 빌었다.
누가 봐도 이중적인 태도지만 신의 이름을 빌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아직 남아 있는 브라질 원주민은 돈이 되는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사냥해야 할 짐승에 불과했다.
***
“도대체 누가 이런 겁니까! 누가아아!!!”
“!!!”
귀청이 터질 것 같은 다니엘의 분노에 김한별은 당황했다.
태어나 이런 다그침은 처음이다.
홍콩에서 죽음의 목전까지 내몰렸을 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다니엘이다.
그가 진심으로 분노했다.
‘하아아…….’
김한별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 일인지 분노에 찬 다그침에 차라리 심신이 안정됐다.
다니엘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을 지배했다.
이 동네가 본래 이렇게 무서웠다.
지금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게 확실했다.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성당의 바울 신부님밖에 없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김한별도 몰랐다.
국정원 블랙요원에서 정리되고 다니엘이 운영하는 회사에 터를 잡았다.
김한별이 오랫동안 소망해 왔던 세계를 위한 봉사.
인류의 평화와 자연을 보존하는 기관에서 김한별은 요직을 맡았다.
다니엘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 덕분이었다.
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봉사는 김한별에게 삶 자체였고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렇게 세계 평화와 자연보호를 위해 헌신해 오던 김한별.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환경 보호 단체 소속 여성과 친구가 됐다.
엠마 피어스.
미국 명문대인 예일 대학교 출신으로 식물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인재였다.
그녀 역시 학창시절부터 세계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았다.
엠마 피어스와 김한별은 같은 꿈을 안고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서로 마음이 잘 맞아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두 사람은 어느 날 브라질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활동하던 환경운동가 실종 사건을 접하게 됐다.
수상함을 느끼고 관심을 갖던 중 또 다시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두 사람은 수색팀에 합류해 이곳 브라질로 왔다.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원주민들 모두가 실종자에 대해 입을 다물고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그 과정 중에 협박까지 받았다.
누군가 ‘벌집을 건들지 말라’는 쪽지를 전하며 돌아가라고 했다.
지속되는 위협 속에서 다행인지 리오 마을에서 바울 신부를 만났다.
두 사람에게 신부가 전한 진실은 놀라웠다.
금광 개발업자들이 보호구역의 원주민들을 죽이거나 채굴 노예로 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식한 김한별은 수색팀과 함께 원주민들을 찾아갔다.
정확한 증거가 확보되어야 조직적 대응이 가능했다.
그때 사건이 발생했다.
10여 명에 달하던 수색팀원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밀림은 복잡하고 위험 요소도 많았다.
특수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김한별도 별 도리가 없었다.
미래를 예견하는 힘도 원시의 밀림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김한별의 능력을 뛰어넘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채 리오 마을로 다시 돌아오던 중에 그들을 만났다.
어느 틈에 밀림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엠마와 김한별 두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 모를 자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자들의 눈빛이었다.
그들에게서는 피 냄새가 진득하게 풍겨왔다.
더러운 욕망에 찌든 눈빛으로 엠마와 김한별을 쳐다보던 자들.
여성들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덮치려다 김한별의 도발에 당했다.
마침 밀림 가장자리 쪽부터 숲에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엠마를 챙길 여력이 되지 않았다.
엠마를 그들 틈에 두고 탈출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다음을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밀림을 빠져나왔다.
고통스럽게 습득했던 국정원에서의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곧장 다니엘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른 어떤 누구보다 떠오르지 않았다.
오로지 생각나는 사람은 다니엘.
그는 언제나 버릇처럼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자신을 찾으라고.
“왜 말을 못 합니까? 말해 주십시오. 내가…… 반드시 처리해 주겠습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쉴 새 없이 다그치는 다니엘.
“고마워요……. 흐윽.”
터져버린 여러 의미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좋은 마음으로 세계를 위해 봉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잔인했다.
세상이 무섭다는 걸 김한별은 이번 사건으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았다.
스으윽.
눈물을 쏟는 자신을 다시 품에 안고 토닥거리는 다니엘의 따뜻한 손길.
“이제 괜찮아요. 내가 왔잖아요. 안전하게…… 지켜주겠습니다.”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김한별은 다니엘 품에서 마저 눈물을 쏟았다.
“오! 조이가 그토록 찾던 분이 오셨군요.”
그때 운동장으로 바울 신부가 다가왔다.
“시, 신부님. 여기 이분은 제가 모시는 다니엘 회장님이세요.”
김한별은 마음을 추스르고 바울 신부에게 다니엘을 소개했다.
“회장님. 바울 신부님이세요.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마리아님의 은총이 형제님과 함께하고 계심이 느껴지는군요.”
노회한 신부 바울은 다니엘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한눈에 봐도 선한 일을 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온몸에서 풍겨 나오는 좋은 사람의 향기.
“신부님.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왜 조이 몸에 이런 상처가……. 오는 중에 헬기 조종사가 위험하다고 몇 번이나 경고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마리아시여…….”
다니엘의 폭풍 같은 질문에 바울 신부는 눈을 감고 성호를 그었다.
인간의 욕망 때문에 벌어진 살인과 방화, 그리고 잔혹한 폭력 행위.
그토록 막고자 지난 세월 끊임없이 노력해 왔지만 모두 허사가 됐다.
“성당으로 가시지요.”
보는 눈이 많았다.
지금도 곳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시선들.
저들 중에 누구의 눈이 호라이마주의 주인에게 지금의 상황을 보고할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들은 피사로의 후예들입니다.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던 타락한 영혼들에게 오염이 된 학살자들입니다.”
작은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몇 십 명 정도가 겨우 앉을 수 있는 아담한 성당.
예수 성상에 기도를 하고 난 바울 신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귀를 열고 들었다.
“회장님이 지원하는 환경 단체 소속 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실종되었어요. 그들을 찾으러 나섰다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떠는 김한별.
여성을 상대로 목을 겨냥했을 정도라면 충분히 죽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쯤은 짐작 가능했다.
신부님 말대로 학살자가 맞을 것이다.
어렴풋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환경운동가 피살 사건.
그냥 스쳐 지나갔던 미래에서의 세계 뉴스 한 꼭지가 바로 내 앞에서 실체를 드러냈다.
“브라질 정부와 경찰에 신고 했습니까?”
“……안타깝게도 대통령은 개발업자들 편입니다. 이곳 주정부와 경찰들도 개발 업자들과 손을 잡고 있습니다.”
바울 신부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조용하게 성당에 퍼졌다.
일단 공권력의 도움은 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수십 년째 개발도상국에 머무르고 있는 브라질.
넘쳐 나는 자원으로 이 정도 수준으로밖에 국가가 경영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가 기관의 권력이 타락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평범한 국민들의 몫이 된다.
국가 기관들과 비리의 온상 집단이 결탁해 낳은 새로운 권력 형태.
그 집단이 생산해 내는 자본은 국민들을 노예화 하는 작업에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였다.
“위험한 곳이군요.”
결론은 이미 나왔다.
이런 곳에 더 이상 김한별을 있게 할 필요가 없었다.
상처야 성수로 치료하면 됐다.
하지만 목숨을 잃게 되면 어떤 방법으로도 회생이 불가능했다.
“한별 씨 일단 미국으로 가죠.”
다행히 마을에서는 스마트폰이 잘 터졌다.
헬기를 불러 이동한 후 바로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미국으로 가면 됐다.
“회장님…… 전 못가요.”
“네?”
갑자기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제안을 거부하는 김한별.
“제 친구가 놈들에게 끌려갔어요. 회장님…… 엠마를 구해주세요! 그녀는…… 흑흑.”
김한별이 다시 오열했다.
빤히 그려지는 상황.
“조이, 회장님과 돌아가요. 엠마는 지금쯤…….”
바울 신부도 이미 포기한 듯한 엠마의 생사.
“아니에요. 엠마는 아직 살아 있을 거예요. 느껴져요.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놈들에게 잡혔어요. 바로 죽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김한별은 확신하고 있었다.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진 드림워커의 확신.
고민이 됐다.
김한별의 안정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혼자 움직일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리고.
- 보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에 오기 전 로버트 라이언에게 대기하라는 지사를 했다.
“로버트. 브라질에서 총기 사용 가능한 믿을 만한 용병들이 있습니까?”
- 물론입니다. 얼마나 준비할까요?
“소대 규모로 준비해 주십시오.”
-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의약품을 비롯해 생필품도 넉넉하게 부탁합니다.”
- 준비하겠습니다.
이유 같은 건 따로 묻지 않는 로버트 라이언.
바울 신부가 통화를 끝낸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순식간에 소대 규모 용병 지원을 요청하는 내 모습을 보며 당황하는 듯한 표정.
김한별을 데리고 떠나기 위해서는 엠마라는 여인을 먼저 찾아야 했다.
밀림은 나도 처음이다.
누군가 있어 놈들이 있을 만한 곳을 알려주면 더없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덜컹.
그때 예고 없이 성당 문이 열렸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