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6장. 아마존의 눈물. (663/1,284)

666장. 아마존의 눈물.

“최 교수. 요즘 실적이 영 마음에 안 들어. 더 분발해야겠어.”

“죄송합니다. 교수님.”

“죄송이 문제가 아니라 학자라면 당연히 연구를 하고 발표를 해야지. 내가 최 교수 꽂아 주려고 얼마나 공을 들인 줄 알아? 요즘은 예전처럼 한국대 출신이라고 정교수 장담 못 해. 정교수 달아야지. 그러려면 더 노력을 해.”

“죽을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죽을힘을 다해. 나 때는 말이야. 오병진 교수님 밑에서 코피 쏟으며 밤새 공부했어. 겉멋만 든 해외파들에게 밀리지 않도록 밤새서 연구하고 교수님 시중까지 다 들었다고. 그런데 요즘 대학원생들은 안 그래. 교수 자리는 아무나 얻는 줄 알고…….”

낙랑 경제 연구소의 이사장실.

눈썹이 짙은 다소 거친 인상의 고용호 교수가 자기가 꽂아 넣은 지방대 교수를 몰아붙였다.

요즘 들어 식민지 시절 경제 상황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통 올라오지 않았다.

한국대 시절부터 밑에 두고 키워왔던 최 교수.

‘이놈의 새끼가 어디서 변심을 하려고그래!’

정보에 의하면 고용호 교수가 주장하는 식민경제사관에 반대하는 교수들과 접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대학 아래서 연계된 사회는 좁았다.

조금만 다른 움직임을 보여도 그 정보가 곧바로 고용호에게 전해졌다.

자신이 나서서 꽂아준 지방사립대 조교수 자리.

자칫 마음에 안 들면 정교수 임용을 막을 수도 있었다.

“미흡한 제자 때문에 마음을 다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다음 달 이내로 새로운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우리가 은혜를 받고도 모른 척하는 양심 불량 학자는 아니잖아. 동아시아연구재단에서 요즘 항의가 들어와. 연구만 해도 1억, 책으로 발간하면 2억. 그 돈이 적어? 거저 주는 돈을 왜 안 받고 발표가 늦어지느냐 말이야. 더군다나 시기도 좋잖아. 무지몽매한 놈들은 친일파 식민사관이라 멋대로 부르지만 그거 다 헛소리야. 자네도 연구해 봐서 알잖아. 일본이 대한민국 근대화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됐어.”

고용호가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한국대 경제학부에서 공부한 후 교수로 임용됐다.

스승인 오병진 교수의 뒤를 참 열심히 닦고 쓸었다.

동경제국대학교 출신인 오병진 교수는 대표적 뉴라이트 운동의 선봉장이었다.

제자들을 잘 키워 각 대학에 교수로 임용시켰다.

동아시아재단에서 밀어주는 자금으로 비밀리에 이뤄진 교수직 매매.

한국대라는 타이틀은 웬만한 지방대에서 어렵지 않게 먹혔다.

동시에 특별히 선별된 교수들은 1년씩 안식년을 두어 일본 대학에 보내 유학하도록 했다.

그 기간 동안 여성과 생활비 명목의 돈으로 회유해 약점을 만들고 나중에 빌미로 잡았다.

철저한 계획 아래 세뇌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협박을 당하게 되는 교수들.

한국에 돌아와서는 동아시아재단에서 지원하는 돈을 받아 신민사관 경제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그 과정을 잘 밟고 나면 오병진 교수가 키워낸 교수들은 대부분 무리 없이 낙랑 경제 연구소 소속 교수가 됐다.

소속 교수들은 반 자의와 압력에 의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낙랑 경제 연구소 소속이 되어 지속적인 관리를 받았다.

동아시아연구재단에서 논문이 발표될 때마다 약속된 자금을 지원 받았다.

지금에 와서는 연로해 기력이 딸린 오병진 교수 뒤를 이어 고용호 교수가 학계와 연구소를 지휘했다.

“맞습니다. 일제시대에 있었다는 강제 동원과 식량 수탈은 다 거짓말입니다. 일자리와 먹을 게 필요해 자발적으로 서명하고 제국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위안부 성노예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살 게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팔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위안부들도 모두 돈을 받았습니다. 떠나기 전에 집에 큰돈을 선물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썩어빠진 중개상들이 상당수 갈취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발적이었습니다. 그건 여러 연구 결과와 자료들에 의해 보고되었습니다.”

최 교수는 지금까지 연구하고 조사한 내용을 줄줄 나열했다.

눈 딱 감고 양심을 내던졌다.

조교수 자리는 살얼음판처럼 위험했다.

“그렇지! 일본은 결코 반인륜적, 반인권적으로 한국을 다스리지 않았어. 일본 천황의 관료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놈들도 재판을 통해 인권적으로 처리했어. 무식한 국민들 개화시키려 학교도 만들고 근대 문물을 얼마나 들여왔는데. 그 공로로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한 거야. 한일수교 때 받았던 자금은 공짜야? 몇 억 달러라는 거금은 그때 1년 해외 총수출과 맞먹었어. 그런데 최근 그때 맺었던 조약이 무효라고 주장을 하니……. 사람들이 양심이 없어. 그래서 내가 마음이 아파. 재단 쪽 일본 인사들에게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

고용호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국대에서 화려하게 명예퇴직을 했다.

그동안 누렸던 많은 타이틀을 이제는 내려놓아야만 한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특히 한국대에서 키워왔던 교수들이 밀리고 있다.

해외파들이 속속 교수 자리를 꿰찼다.

동아시아재단에서도 변화하는 흐름에 대해 우려하며 꾸중을 했다.

그렇게 많은 자금을 투자했는데 그에 상응하는 인력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이다.

학창 시절부터 받았던 돈만 헤아려 봐도 재단 자금만 100억이 넘었다.

그 돈으로 고용호는 땅도 사고 애들도 키워내고 노후를 위한 빌딩도 구입했다.

돈에 양심을 넘기고 오염된 영혼만 남아 있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한창 시절 일본에 교환 교수로 가 있을 때 여러 가지 약점을 잡힌 것도 계기가 됐다.

냉정하게 따지면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군 변절자와 다를 게 없었다.

양심은 셀프로 숨통을 끊어버렸다.

손중자 연지대 이사장과 반영조 전 조국일보 회장이 뒤를 든든하게 봐줬다.

그들은 동아시아연구재단의 핵심 임원들이다.

연구서와 책, 강연을 통해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의 경제와 정치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주장하며 다녔다.

군사 정권 시절에도 지원을 받았을 정도다.

일본 배상 당시 엄청난 뒷돈을 챙겼던 조정희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재단의 요구를 밀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시대를 거쳐 오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민주항쟁을 통해 세워진 정권 아래서는 알게 모르게 구박도 많이 받았다.

눈치껏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 왔다.

시절을 잘 타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다 최병박 때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도덕적으로 약점이 많았던 최병박과 현 조근영 정권은 뉴라이트 식민사관으로 지식층을 채웠다.

친일 언론들과 정부에서 관리하는 시민단체들이 뒤를 밀어줬다.

“교수님 명성에 부끄럽지 않게 연구 보고서를 만들겠습니다.”

“그래. 최 교수 똑똑하잖아. 잘 해봐. 마침 기회도 좋아. 대법원에 징용공 배상 사건이 계류 중이야. 우리 쪽에 힘을 실어달라고 연락이 왔어. 이런 때 은혜를 갚아야지. 최 교수가 선봉에 서봐. 잘하면 내년쯤에 정교수 달 수 있을 거야.”

“확실하게 선봉에 서겠습니다!”

“하하하. 그래야지! 내가 최 교수 많이 아끼잖아.”

고용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아! 그리고 말이야. 부탁이 하나 있어.”

“말씀만 하십시오.”

“요즘 유튜브가 대세던데……. 그거 하나 만들어봐. 내가 나서서 무지한 국민들에게 진실을 널리 알려야 할 것 같아. 이건 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

“배움에 나이가 없다는 옛 선조의 가르침을 실천하시는 교수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나이가 먹어도 활발하게 살아야 해. 그래야 멍청하고 무지한 젊은 것들한테 무시를 안 당해.”

인터넷에서 자신을 친일파 경제학자라고 밀어붙이는 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그들과 제대로 한판 붙어보고 싶은 고용호 교수.

맑은 총기 같은 빛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새카만 눈동자.

오늘따라 전투 의지에 활활 타올랐다.

‘죽여야 해! 이 조선반도는 차라리 천황폐하께서 다스려야 해! 대일본 제국과 합병되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호령할 수 있어!’

천황과 일본을 극도로 찬양하는 고영호 교수.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의식조차 없어 보였다.

민족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일본에 전가해 버린 그의 삶.

오로지 자나 깨나 친일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처럼 여겨졌다.

‘계속해서 영혼을 깨우고 진실을 밝히고 친일로 무장시키는 일을 멈추면 안 돼. 잘못된 정신을 개화시키고 친일로 이끌어야 해!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 되지도 않는 통일 한국!!! 집어치우라고 해. 그러니 모자란 조센징이란 소릴 듣는 거야…….’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분노에 휩싸인 고영호.

속으로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그의 주변으로 새카만 아우라가 휘장처럼 내려앉았다.

***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헬기 진동이 제대로 골을 울렸다.

긴 강을 지나쳐 발밑으로 울창한 밀림이 끝없이 이어졌다.

자칫 추락이라도 하게 되면 그 순간 탐험 영화 한 편을 찍게 될 분위기다.

“곧 도착할 겁니다.”

헬기 조종사가 소음방지 헤드셋을 통해 도착 시점을 알렸다.

“네…….”

다시 한 번 발밑을 봤다.

곧 도착할 거라는 말과는 달리 아직도 광활한 밀림이 펼쳐졌다.

팔자에도 없는 아마존을 방문하게 됐다.

한밤중에 걸려온 스마트폰의 주인공은 K였다.

국정원 블랙요원에서 이제는 내가 만든 국제적 지원 단체 수장이 된 그녀.

지원은 빵빵했다.

월가에서 벌어들이는 자금의 상당수가 K가 맡고 있는 단체에 지원됐다.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구호품을 지급하고 환경 단체 지원도 함께 맡고 있다.

그 일로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쌓이는 포인트가 상당했다.

2020년 당시에 급변하는 환경 문제로 지구촌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덩어리는 여름 햇살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녹았다.

만년설로 뒤덮였던 설산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바다에는 물고기보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많았다.

얼마 남지 않은 바다 포유류 동물들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오랜 시간을 떠다닌 플라스틱은 미세한 입자로 바다 식물과 어류에 흡수됐고 다시 인간의 식탁 위로 되돌아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쓰였던 모든 물질들이 지구와 인간들을 함께 위협했다.

2020년 당시 되돌릴 수 없는 환경오염 실태를 알고 있는 만큼 투자를 시작해야 했다.

인류애 차원의 양심이 발동됐다.

“그런데 그곳에는 왜 가십니까? 요즘 상당히 시끄러운데…….”

헬기 조종사가 브라질 공용어인 포르투칼어로 물어왔다.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른다.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해온 김한별.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오랜만에 요청이 들어온 만큼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마침 LA에 머물고 있어 이동도 용이했다.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브라질로 넘어왔다.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대단한 나라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비자 발급이 필요 없었다.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브라질로 바로 올 수 있었다.

브라질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네크루 강과 아마존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도시 마나우스.

에두아르두 고메스 국제공항에서 내려 헬기로 옮겨 탔다.

로버트 라이언의 도움이 컸다.

브라질에서도 월가의 거물이 행사하는 파워가 먹혔다.

헬기를 타고 북부 호하이마에 위치한 하포사 세라 두 솔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진짜 몰라서 물었다.

“원주민들을 금광 업자하고 목축 업자들이 죽였어요. 소문에 듣자하니 해외에서 온 환경보호 운동가들도 섞여 있었다고 하더군요.”

“환경 운동가들요?”

“주지사를 비롯해 경찰서장 등 상당수 고위 관료들과 업자들이 연루됐어요. 원주민은 죽여도 무죄거나 몇 달 살다 나오면 그만이에요. 그러나 타 국적 환경운동가들을 살해했다면 문제가 되는데……. 그래서 킬러들은 환경운동가들을 죽이게 되면 옷을 벗겨 알몸으로 밀림에 묻어버려요. 며칠이면 다 썩어버리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 오는 헬기 조종사의 시체 처리 방법.

상황이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김한별은 방문 요청에 대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제발 도와달라고 말했다.

홍콩에서 그녀에게 목숨을 빚졌다.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하는 빚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엉망이네요.”

“어쩔 수 있나요. 인구는 늘어나고 돈 많은 자들은 더 많은 돈을 원하니……. 만만한 원주민을 죽이고 밀림을 파괴해 돈 될 일을 만들 수밖에요.”

참으로 친절한(?) 헬기 조종사의 부연 설명.

“저기……. 다 왔네요.”

헬기 조종석 너머로 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밀림 사이로 제법 넓은 터를 잡고 있는 마을.

도시에 비해 규모는 크지 않지만 건물이 제법 보였다.

교회 십자가와 병원 등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작은 학교 운동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헬기를 향해 손을 바쁘게 흔드는 김한별.

“여자친구세요?”

“동료입니다.”

“손을 흔드는 모습은 남자친구의 귀환을 반기는 여자친구 모습인데요.”

이것저것 말 많은 헬기 조종사.

두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운동장에 천천히 착륙했다.

스르륵.

베테랑인 듯 부드럽고 사뿐하게 내리는 헬기의 동체.

덜컹.

헬기 문을 열었다.

대낮에 과거 섬 착륙 당시처럼 뛰어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헬기 로터가 일으키는 바람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한별.

“연락 주시면 바로 찾아오겠습니다!”

“그러세요.”

“행운을 빕니다!”

헬기 조종사가 엄치척을 내밀었다.

나도 따라서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헬기에서 내렸다.

등에서 휘몰아치는 헬기 바람에 떠밀려 김한별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나를 내려놓은 헬기는 바로 이륙하며 하늘로 떠올랐다.

뿌옇게 일어나는 바람과 먼지.

타다다닥.

김한별이 뛰어왔다.

“회장님!!!”

덥석 나에게 안기는 김한별.

뭐지? 이 격한 반가움의 표시는?

“흐으윽. 흑.”

곧 품에서 전해지는 김한별의 울먹임.

왠지 기분이 싸했다.

“무슨 일입니까?”

김한별의 양 어깨를 잡으며 바로 세웠다.

“이제 자세히……. 헉! 이, 이게 뭡니까! 누가 이랬어요!!!”

울먹이던 김한별을 품에서 떼어내는 순간 눈에 들어온 김한별 목 아래쪽의 깊은 자상.

상처를 꿰맨 자국과 아직도 배어 있는 핏방울.

누가 봐도 칼로 인한 상처.

화르르르르 분노가 일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겁니까! 누가아아!!!”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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