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4장. 제 친구를 소개하겠습니다. (661/1,284)

664장. 제 친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아!”

바바라는 온몸으로 몰려오는 상쾌한 기운에 절로 신음을 토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온몸에 찾아드는 이상한 느낌.

그동안 자신의 삶에는 관심도 없던 신이 이제야 돌봐주는 느낌.

곁에 다가와 그녀의 고단했던 인생을 위로한다며 품에 안아주는 듯했다.

주루룩.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자 맑은 눈물이 흘렀다.

살아오는 동안 스스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마치 몸을 옥죈 쇠사슬을 끊어낸 기분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산뜻해지며 날아갈 듯 영혼과 육체가 가벼워졌다.

경건함과 성스러움으로 가득한 긴 복도를 홀로 걷고 있는 착각마저 일었다.

“축복받으셨네요.”

바바라는 몽롱한 상태에서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네?”

“당신을 위해 여러 신들이 저주를 거두고 축복을 선물해 주고 갔습니다.”

“그게 무슨…….”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베토벤 재림자.

그의 얼토당토 않는 말에 바바라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사이도 없이 물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자유입니다.”

‘저주…… 축복…….’

저주와 축복이라는 말만 들었는데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테스트 한번 해볼까요?”

“테스트요?”

바바라는 재림자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껏 내놓을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신의 저주와 축복은 소설 같은 얘기일 뿐이었다.

“모차르트 좋아하죠?”

“…….”

좋아한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찬란한 아침 햇살처럼 인생을 시작했지만 사랑은 비참했고 현실은 냉혹했으며 세월은 무정하였다.”

재림자가 바바라를 보며 마치 시를 읊듯 소리내었다.

“서른여섯의 삶은 고단했기에 신들의 세상에서도 그는 두려웠노라. 모차르트……. 당신이 남긴 음악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세상은 뒤늦게 깨달았노라. 나의 모차르트여. 이제 당신의 재림을 진심으로 추앙하노니 당신을 경멸하고 질투했던 어리석은 모든 것들을 당신의 이름으로 부셔버리소서!”

귓가에 윙윙 울리는 베토벤 재림자의 모차르트를 위한 찬사.

쿵! 쿵! 쿵!

그 소리를 들은 바바라의 영혼이 점점 뜨거워지더니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전장에 나가는 기사처럼 어디선가 투지가 불끈 치솟았다.

“!!!”

바바라는 자신의 요동치는 심리 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바바라. 수고했어요. 저도 당신께 축복을 드립니다.”

“…….”

재림자의 말에 바바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림자 님 지금 제가……. 전혀 이해를.”

“다니엘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네…….”

“가죠. 우리를 위한 파티가 열렸습니다.”

다니엘이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대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동료나 오래도록 맞춰온 파트너 같은 느낌이었다.

사락.

손바닥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모차르트는 바이올린이죠.”

재림자 아니 다니엘은 바바라를 이끌고 파트를 위해 고용된 현악 4중주 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본래 현악 4중주는 실내악중주였지만 LA에서는 고급 파티 야외 분위기용으로도 사용된 지 오래였다.

끼리리리링~♬.

마침 연주가 끝났다.

“잠시 바이올린을 빌려도 되겠습니까?”

다니엘이 정중하게 연주팀에게 양해를 구했다.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비올라로 구성된 연주자들이 뜬금없다는 듯 다니엘을 바라봤다.

바바라가 얼굴을 아는 연주자도 보였다.

바바라처럼 배고픈 LA필하모니 객원연주자였다.

그녀가 놀란 눈빛으로 바바라를 봤다.

“레이…… 이분이 베토벤 재림자셔.”

“오! 재림자!”

“세상에…….”

연주자들이 바바라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최근 들어 활동이 전무했던 베토벤 재림자.

몇 년 전 뉴욕 월가의 거물 로버트 라이언이 주최한 파티장에서의 연주가 끝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그가 나타났다.

“실례인가요?”

다니엘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연주자들에게 있어 개인 악기란 전쟁터에 나선 군인들의 총과 같았다.

함부로 빌려달라는 말도, 빌려주는 일도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재림자가 원한다면 기꺼이 내줄 수 있었다.

이 일 또한 자랑거리가 될 테니까.

“레이, 나도 부탁해.”

“다음에 밥 한번 살 거지?”

“물론이지.”

같은 처지의 배고픈 연주자인 레이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바바라에게 건넸다.

“바이올린 앙상블입니다.”

재림자는 정말 친절했다.

다른 연주자들이 자리를 내줬다.

모두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바바라.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장조 1악장.”

바이올린 현을 자신이 원하는 음에 맞게 세팅도 하지 않고 재림자는 곡의 시작을 알렸다.

파르르.

바바라는 긴장감으로 몸을 떨었다.

과거에 일정 수준을 뛰어넘기 위해 수없이 연주했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곡.

협주곡 입문자들에게는 필수 코스이며 프로를 꿈꾸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연주하는 곡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고전적 기본기를 탄탄하게 요구하는 작품.

하지만 아무리 기본기가 우선이라 해도 생각보다 고급 테크닉적 요소를 요구하는 부분이 많았다.

정확하고 빠른 운지법으로 음이 뭉개지지 않도록 연주하는 게 포인트다.

말이 쉽지 연주자의 실력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3번 G장조는 모차르트만의 에너지와 삶이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서유럽을 여행했던 모차르트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설렘과 경탄,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등.

프랑스적인 색채가 강했지만 모차르트 자신만의 다양성과 복합성은 여실히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경쾌하면서 강약의 대비가 두드러진 제 1악장.

재림자가 바바라와 눈을 맞추며 활대를 움직였다.

치리리리 치리링~♫. 치리리링 치링~♬.

다른 악기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앞부분을 치고 나가는 재림자의 바이올린 연주.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은 빠르게 현과 현을 짚어가며 빠른 음률을 토해냈다.

“응?”

“어???”

놀랍게도 먼 곳까지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트럼프가 파티에 참석한 인사들을 위해 구색용으로 준비한 현악 4중주팀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음악은 베이스로 깔렸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형태와 분위기가 바뀌었다.

치리리리리리링 치링 치리리리리링~♫.

파티장 먼 곳에서 나름 중요한 얘기를 나누던 이들의 대화가 멈췄다.

귓가에 파고드는 신비로운 음률에 거짓말처럼 심장이 반응했다.

단지 바이올린 연주에 불과했지만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모두가 홀린 듯 바이올린 연주가 흘러나오는 작은 단상 쪽으로 몰려왔다.

“오! 마이 갓! 베토벤 재림자라니!!!”

“베토벤 재림자!”

“세상에…….”

누군가 연주 중인 베토벤 재림자를 알아봤다.

교양 있는 상류층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존재.

직접 보기를 원하는 자들은 많지만 알려진 바가 없어 알게 모르게 신격화되어 갔다.

그런 그가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다니엘…….”

트럼프가 당황했다.

“트럼프. 제 친구가 저렇게 유명합니다.”

로버트 라이언이 연주하는 다니엘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저렇게 유명했던 거야? 로버트 라이언을 밀어낼 만큼?’

돈과 술, 파티와 미녀들에게만 관심이 있던 트럼프에게 바이올린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버리는 다니엘의 행보는 충격 그 자체였다.

황금층으로 살아온 트럼프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파티 넘 멋져…….”

“앞으로 트럼프 파티는 모두 참석할 거야.”

“나도! 격이 달라!”

사방에서 트럼프를 흡족하게 만드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다니엘……. 넌 내 인생의 보물이야! 흐흐흐.’

트럼프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단상 위의 다니엘을 바라봤다.

음악에 무식한 트럼프가 듣기에도 천상의 소리 같은 다니엘의 연주.

치리리리리링~♪.

그때 다니엘과 본격적으로 합주를 시작하는 바바라.

놀랍게도 베토벤 재림자에 밀리지 않았다.

눈을 감고 완벽하게 바이올린과 동화되어 버린 듯 연주하는 여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이 떡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바라가 내는 소리는 모차르트 특유의 감정 표현이 올올이 담겨 있었다.

낭만파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모차르트.

오직 모차르트만이 풍겨 낼 수 있는 산뜻함과 발랄함이 형태 없는 음표가 되어 파티장 전체를 휘돌았다.

천상에서 벌어지는 악성(樂聖)들의 앙상블.

언제나 욕망에 불타오르는 인간들의 피를 잠시나마 식혀주는 신들의 선물.

“오…… 음악의 신들이시여.”

누군가 입에서 최고의 찬사가 흘러나왔다.

***

꿀꺽.

모두가 돌아간 파티장은 적막했다.

흥청거림과 탄성, 흥이 넘쳤던 트럼프의 별장 파티.

요리는 맛있었고 샐럽들은 모두 대단했으며 바바라와의 앙상블은 파티의 대미를 장식했다.

몰아지경에 빠져들었다.

협주곡부터 시작해 피아노 소나타 변주곡까지 거침없이 이어졌다.

모차르트로 완벽하게 각성한 바바라.

그녀를 따라 나도 음계에 미쳐 연주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음표와 음표가 만들어낸 징검다리를 밟고 뛰어다니기 바빴다.

하늘을 날고 호수를 건너고 꽃밭을 뛰었다.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명곡까지 연결됐다.

무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한 연주.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서야 눈을 떴다.

그때까지 가만히 서서 모든 연주를 보고 들은 사람들.

그들 모두 넋이 나간 듯 입만 벌리고 서 있었다.

신들의 세계에 거주하는 악성(樂聖)들이 들려주는 천상 음악.

누구 하나 카메라를 꺼내 동영상을 찍을 정신도 없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평소 랩이나 듣던 베버리힐즈의 젊은 스타들도 넋을 빼고 흠뻑 빠져 있었다.

바라바는 완벽하게 각성했다.

나와 달리 평범한 수준의 인간이었던 그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을 게 뻔했건만 바바라는 미소 띤 얼굴이었다.

신들이 저주를 거두어들이고 그간 누리지 못했던 축복을 내렸다.

나도 일정 포인트를 그녀를 위해 사용했다.

“앞으로 시끄럽겠네.”

모차르트가 현세에 화신했다.

과거와 달리 여러 인터넷 매체가 발달한 지금 바바라는 확실하게 이름을 알리게 될 것이다.

압도적인 초격차 실력은 언제나 빛을 발하는 법이다.

신들의 버프를 듬뿍 받은 나와 쌍벽을 이룰 정도의 수준.

“그래도 키스라니…… 그건 아니었어.”

환상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모두들 감동시키는 완벽한 앙상블.

흥분하고 상기된 바바라가 나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거부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지금 기분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모차르트가 아닌 인간 바바라의 득음.

문제는 그녀의 키스가 결코 달콤하지 않았다는 것.

베토벤의 음흉한 웃음이 떠올랐다.

동시에 머리에 들어 있는 모차르트 아저씨의 초상화가 오버랩됐다.

이런 당황스러운 순간, 한 번이면 족하다.

다음에는 절대…….

뚜벅뚜벅.

굵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들어서는 트럼프.

“다니엘! 나 들어갈 거야!”

파티의 대대적 성공에 고무된 트럼프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울렸다.

끼릭.

나에게 배정된 별장 내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오! 나의 사랑하는 동생 다니엘! 너에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와락 껴안는 트럼프.

땀 냄새와 알코올, 그리고 백인 특유의 체취까지 물씬 코를 자극했다.

차라리 바바라가 훨씬 나았다.

“오늘 파티 괜찮았습니까?”

살며시 밀어내며 물었다.

“괜찮아? 무슨 소리야! 이건 완벽한 성공이야! 동생 덕분에 내가 여는 모든 파티에는 유명한 이들이 다 몰려올 거야! 하하하하하하하.”

웃는 거 보니까 진짜 좋았던 모양이다.

“축하드립니다.”

“이게 다 동생 덕분이야.”

트럼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동성을 좋아했다면 바로 청혼할 기세의 핫(?)한 분위기.

“이제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입니다.”

“……맞아. 이제 한 걸음이지!”

쉽게 흥분하고 또 쉽게 가라앉는 트럼프였다.

그에게 오늘이 전투의 시작임을 알려줬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형님에게는 새로운 조력자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력자? 로버트 라이언 말고?”

“네……. 바깥에서 형님을 도와줄 힘 좋은 조력자.”

“어떤 사람 말인가?”

두 눈을 치뜨며 호기심을 보이는 트럼프.

“제 친구를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친구라면…….”

“형님도 아는 분입니다.”

“진짜 궁금하군. 동생이 친구라 칭할 정도면…….”

궁금할 거다.

흐흐. 트럼프, 딱 걸렸다.

그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자 거부할 수 없는 유혹.

동시에 족쇄가 되어줄 인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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