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장. 헉! 당신은!!!
꿀꺽.
속이 타는 리처드 요한슨은 홀로 와인 잔을 기울였다.
달콤한 화이트 와인이 쓰게 느껴졌다.
“내가 당한 건가? 허허.”
리처드 요한슨은 다니엘 장이 자리를 떠난 후 밀려온 여러 감정에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젊은 시절에 다니엘과 같은 패기는 없었다.
절대 권력자였던 차일드 가문의 수장 앞에서 숨소리도 못 냈다.
방계의 대표로 선출됐지만 직계의 손발에 불과했다.
절대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기던 과거 직계의 수장.
다니엘에게서 그 같은 향기가 느껴졌다.
미소를 흘리며 상대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말 속에 담긴 묵직한 의미들.
대화를 나누는 중에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노련한 정치인을 상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의심과 경고가 담긴 말을 다니엘은 가볍게 물리쳤다.
예의가 없는 태도의 건방진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 지켜보겠다는 마지막 경고의 말에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을 하겠다고 응수했다.
그의 말을 들리는 대로 듣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은 그와 같이 경고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지켜보겠다!
“사라까지 끌어들이다니…… 나쁜 놈.”
오랜만에 긴장감이 도는 적수를 만났다.
불쾌하다 말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야망 넘치는 남자는 언제나 여자에게 매력적인 법.
딸인 사라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돼 한편으로 마음이 좋았다.
남자를 보는 눈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적이냐 동지냐!
그 선택이 남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적으로 판명된다면 사라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제거해야만 한다.
위험한 자였다.
도대체 속을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로버트 라이언을 전면에 내세웠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숨겨져 있었다.
한국에서의 평가도 마찬가지.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다니엘에 대한 소문은 많지 않았다.
“아직은 새끼 사자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키우고 있음을 알리는 암묵적인 메시지.
아직까지 위협이 될 만한 위험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의 힘은 의외로 공고했다.
천재들을 이용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고 실행해 왔다.
슈퍼컴퓨터와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백 수천 가지 가능성까지 예측해 설계했다.
자연재해와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면 모를까 그 밖의 대부분 일들은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좌우됐다.
그런 치열한 전쟁터에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경쟁자가 늘어난다는 건 좋지 않았다.
여러 정보를 총합해 봤을 때 그 존재가 다니엘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납치하다시피 해 예정에 없는 초청을 했다.
다니엘 스스로 미약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이미 전쟁터에 참가했다고 확언한 셈.
아직은 세력이 큰 판을 뒤흔들 만큼 확장되지 않았지만 주의가 필요했다.
적인지 아군인지 아직 파악이 안 된 상황.
다행이 딸 사라와의 관계는 긍정적이다.
대신 적이 될 수도 있는 직계의 로리아나와도 인연이 깊다.
야훼에게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바트 로리아나.
그녀에 있어서는 리처드도 두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방계들의 힘이 과거에 비해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원류에서 뻗어 나온 곁뿌리에 불과했다.
야훼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방계를 어느 정도 봐주고 있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일정 수위 이상 도발하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는 수밖에…….”
잠깐의 감정적인 문제로 적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아까운 인재다.
그렇다고 친구로 삼기에는 보이지 않은 벽이 존재했다.
답은 역시 언제나처럼 정해져 있지 않았다.
다만 술맛이 오늘따라 달콤하지 않다는 것.
“트럼프를 만난다고……. 트럼프라.”
리처드 요한슨는 은근히 트럼프에 관심이 갔다.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똑똑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호색한이자 자신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결코 감추지 않는 자.
“흐음.”
리처드 요한슨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다니엘의 선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양털을 밀어야 할 중국.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무식한 트럼프 같은 인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
“오! 나의 친애하는 형제여!!!”
와락.
하아. 이 기분 진짜 별로다.
황금 털이 숭숭 나 있는 덩치 큰 미국 아재가 격하게 날 껴안았다.
점심 메뉴로 햄버거를 먹은 듯 강렬한 치즈와 소스 냄새가 뒤섞여 풍겼다.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빅 브라더라는 말을 날려줬다.
‘큰 형’이라는 뜻과 함께 독재자를 의미하기도 하는 빅 브라더.
트럼프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인정받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전형적인 모습.
“많이 기다렸다네. 오다가 누굴 만나기라도 한 거야?”
정보력이 많이 뒤떨어지는 트럼프.
그만큼 세력이 약하다는 반증이었다.
아직은 돈 많은 부동산 재벌에 불과했다.
“갑자기 예정에 없는 초청을 받아 늦었습니다.”
“누구?”
“궁금하십니까?”
“그럼~ 동생에 관해서 이 형님은 관심이 많아.”
속이 다 보이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이번 미국행은 철저하게 비즈니스 차원에서 움직였다.
“리처드 상원의원님을 만났습니다.”
“응? 리, 리처드 상원의원!”
트럼프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파르르 떨렸다.
리처드의 위명을 모르면 미국 내 경제인이 아니었다.
“공항에 경호원이 마중을 나왔더군요.”
“왜?”
궁금하지? 흐흐흣.
사람 속 태우는 게 취미는 아닌데 최근 들어 그 맛을 즐기게 됐다.
트럼프 입장에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미국을 지배하는 권력자 중 1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리처드 요한슨.
“이것저것 물어보더군요. 리처드 요한슨 의원님 딸인 사라 양이 저와 친분이 좀 있습니다.”
사라를 한 번 더 팔았다.
만나면 잘 해줘야겠다.
“알고 있지. 사라 요한슨은 참 매력적인 여성이지.”
트럼프, 사라는 눈에 담지 마!
“그리고 이런저런 경제 문제와 다음 대 미국을 이끌 지도자에 대해서도 제 의견을 묻더군요.”
“……그래?”
트럼프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로버트 라이언이 슈퍼팩에 많은 자금을 투자한 게 보고된 것 같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알게 모르게 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로버트 라이언도 언급했다.
슈퍼팩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도 돈이 많았지만 나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했다.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의 친구가 돈이 많다고 자랑했다.
눈치 빠른 트럼프가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역시 내 동생 다니엘! 리처드 상원의원이 초청했을 정도라면 진짜 대단한 거야. 앞으로도 이 형님 많이 도와주게.”
“그럼요. 확실히 밀어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잔머리는 굴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트럼프는 몰랐다.
그를 위해 여러 가지 옵션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트럼프. 오랜만입니다.”
“오! 미스터 조!”
조 이사님도 끼어들었다.
“파티가 한국까지 소문났습니다. 제가 초대장 없이 찾아왔는데 괜찮습니까?”
“당연하지. 미스터 조는 다니엘의 친구! 그럼 나의 친구!”
트럼프가 조 이사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행복하게 웃는 조 이사님.
떡고물에 관심이 많았다.
“고맙습니다, 트럼프. 신의 축복이 함께할 겁니다.”
조 이사님 요즘 영어 실력 많이 늘었다.
“들어가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부동산 재벌이 주최하는 파티다.
트럼프가 LA에 위치한 저택 별장을 파티 장소로 삼았다.
비싼 슈퍼카들이 주차장을 가득 채웠다.
따라 따라~♫.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오늘따라 4월 치고는 날씨가 포근했다.
넓은 실내가 활짝 열렸다.
잔디 밭 곳곳에 환한 조명이 켜졌다.
테이블 위에 맛있는 요리들이 차려져 있었다.
웨이터들이 활짝 웃으며 와인과 샴페인을 서빙했다.
점잖은 슈트와 고가의 드레스를 한껏 차려입은 남녀들이 눈에 들어왔다.
트럼프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 이들.
스타들도 간간이 보였다.
베버리힐즈가 가까웠다.
놀기 좋아하고 관심받기 좋아하는 샐럽들에게 파티장은 인적 교류의 장소였다.
“다들 인사하지. 여기 이 친구가 바로 내 동생 다니엘 장이야. 성공한 금융 투자자야. 로버트 라이언과도 친구야. 하하하하.”
트럼프가 날 제대로 팔아먹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어! 방금 내 이름을 불렀나요?”
“와아! 로버트 라이언이다!”
“오우! 트럼프 파티에 월가의 거물이 직접 나서다니…….”
“이 파티에 참가하기를 잘한 것 같아.”
“로버트 라이언이구. 세상에…….”
로버트 라이언이 깜짝 게스트로 나타났다.
“오! 로버트 라이언!!! 환영합니다!”
트럼프가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파티의 격이 로버트 라이언의 방문으로 확 올라갔다.
참가자의 명성으로 파티 수준을 평가받는 미국에서는 대단한 의미를 가졌다.
트럼프 아재 입이 찢어졌다.
“반가워요. 트럼프. 당신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로버트가 트럼프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놀람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트럼프와 달랐다.
역시 월가 로버트의 품격은 남달랐다.
이제는 움직이는 월가의 신화가 됐을 정도.
과거 명성을 차지했던 여러 세계적 투자자들보다 이름이 앞섰다.
“정말…… 당신이 방문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내 친구 다니엘이 먼 걸음을 했는데 보러와야죠.”
“다니엘, 정말 고마워!”
트럼프 아재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왔다.
그 정도로 로버트 라이언의 등장은 파격 그 자체.
“트럼프, 제 친구에게 잘해 주세요. 그가 당신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로버트는 약도 잘 쳤다.
“물론입니다. 다니엘은 내 사랑하는 하나뿐인 동생입니다. 하하하하.”
트럼프 웃음소리가 요란도 했다.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파티 주최자인 트럼프보다 인기가 많은 로버트 라이언과 인사를 하기 위해 모여드는 이들.
그들 중에는 미모의 여성들이 많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여성 스타들이 진한 향기를 뿌리며 웃고 있었다.
이 정도라니.
살짝 로버트가 부러웠다.
여기 모인 이들 모두 로버트 라이언이 보유한 모든 자산의 진짜 주인이 나라는 걸 몰랐다.
그저 트럼프가 챙겨주는 잘생긴 동양인 정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살짝 발을 뒤로 뺐다.
나도 파티를 즐기고 싶었다.
리처드 요한슨과 마셨던 와인은 맛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맛좋은 요리와 향기로운 술도 편안한 곳에서 마셔야 충분히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한 잔 드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서빙하는 웨이터에게서 와인 잔을 받았다.
트럼프가 돈 좀 썼다.
서빙 되고 있는 와인이 싸구려가 아니다.
최소 오늘 파티에 수십만 달러는 뿌렸을 것으로 보였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를 위해 파티를 준비한 트럼프의 성의에 만족했다.
지금 충분히 누려야 했다.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저…… 혹시.”
그때 등 뒤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좋은 경쾌하고 찰랑거리는 음성.
몸을 돌렸다.
처음 보는 여성이다.
눈에 띄는 미녀다.
파티복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피부는 돋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눈빛은 맑았다.
“누구십니까?”
정중하게 물었다.
“베토벤 재림자, 맞죠?”
이런~.
나의 이력에 관한 소문이 여기까지 났다.
“소문이 과합니다만. 맞습니다.”
“아! 역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녀가 자기 손을 맞잡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때.
- 신들의 인연자를 만났습니다.
응? 신들의 인연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들려온 알림음.
- 베토벤이 저주하는 자와 마주했습니다. 그녀는 바로…….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