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장. 리처드 요한슨.(4)
“바트시여. 리처드 요한슨이 다니엘을 만나는 중입니다.”
“어디서 말입니까?”
“LA에 위치한 리처드의 별장입니다.”
“이유는요?”
“아직 파악 못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를 만나기 위해 도착한 다니엘을 공항에서 가로챘습니다.”
“위험은 없나요?”
“다니엘의 한국 경호원들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렇군요.”
기도실에서 방금 나온 로리아나는 보고를 받았다.
그녀는 다니엘에 관련한 모든 정보를 그때그때 보고하라는 엄명을 내려놓았다.
‘리처드 요한슨이…… 왜?’
친족 관계지만 직계에게서 독립하려는 방계의 수장이다.
사라와 달리 리처드에 대해 로리아나는 부드러운 감정이 가지 않았다.
과거 자신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했다.
야훼께서 지켜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리처드는 인간된 생각에 멈춰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 없이 겪고 지나가야 하는 진통이었다.
남자 형제 하나 없는 로리아나를 남기고 아버지는 야훼 품으로 떠났다.
대대로 남자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차일드 가문의 유지.
로리아나는 처음 겪는 진통 속에서도 차분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 대한 불신은 점차 사라졌다.
야훼께서 친히 사랑하시는 분명한 자식이라는 걸 대부분 알게 됐다.
다만 미국에서 권력을 잡은 방계만 입장이 달랐다.
과거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처럼 행동했다.
때를 기다리고 있다.
자칫 방계를 치려다 다른 세력에게 힘을 빼앗길 수 있는 일.
차분하게 기도하면서 인내 중인 로리아나.
“감시하는 숫자를 늘렸습니다.”
“조심하세요. 리처드는 평범한 자가 아닙니다.”
“그도 모르는 이들입니다.”
“트럼프는 왜 만나는 거죠?”
“얼마 전까지 다니엘과 트럼프가 몇 번 조우한 적이 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로리아나가 파악한 다니엘은 트럼프와 질적으로 달랐다.
다니엘이 목표한 지향점과 욕망은 투명했다.
자국민을 위하는 정신이 암암리에 투철하게 비쳐졌다.
동시에 가족과 주변인들에 대한 배려가 넘쳤다.
간간이 내보이는 유머가 있었고, 강한 정렬과 함께 냉철한 투사의 심성도 갖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자신 앞에서도 결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라는 자는 달랐다.
사욕을 위해서는 못 할 게 없는 인간이다.
다음 대 미국 대통령으로 유력한 인사들에 대한 보고를 받은 바 있는 로리아나.
믿을 수 없었지만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어 경선에 출마하게 될 거라는 예상이 점쳐졌다.
차일드 가문에 소속된 연구소에 근무하는 인재들이 산출해 낸 예상 안.
‘다니엘이 그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접근했다는 거야?’
리처드 요한슨을 만난 일보다 트럼프와 인연이 닿아 있다는 데 더 신경이 쓰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방계 쪽은 몇 년 안에 손을 쓸 수 있다.
다만 야훼께서 원하는 바가 아니어서 아직은 손을 쓰지 않고 있을 뿐.
아무리 타락했다 해도 아들을 사랑하는 야훼였다.
“다니엘의 안전에 최선을 다해 주세요. 그는 야훼께서 눈여겨보고 계시는 자입니다.”
“알겠습니다.
차일드 가문의 수장이면서 신을 모시는 사제이기도 한 로리아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달콤한 속삼임에 외면하며 참아야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다니엘의 안녕을 기원했다.
다가올 여름휴가.
요즘 로리아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끌어당기는 관심사였다.
‘다니엘, 당신에게 야훼의 가호가 함께하시기를…….’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는 로리아나.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미국으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야훼 바트의 또 다른 상징이 바로 ‘참고 인내하는 신의 종’이었다.
***
- 야훼를 따르는 신실한 종이 당신에게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제공했습니다.
- 야훼께서 수수료를 제했습니다.
- 야훼가 당신에게 미약한 응원의 카르마 포인트를 보너스로 지급했습니다.
뭐라는 거야? 누가 뭘 주고 뭘 떼가?
갑자기 울리는 알림음.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지만 가끔 이럴 때마다 혼돈이 찾아왔다.
신들과 연결되어 있는 무속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자.
여러 혜택이 주어지고 재능이 넘쳤지만 이럴 때는 참 난감했다.
결코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이번 생이다.
정체 모를 할배가 역천의 거울을 사용해 날 회귀시키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웃는 이웃집 개들을 작신 두들겨 패라고 했던 할배.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누적되는 이번 생을 되짚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착실히 할배의 뜻을 따라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나아갔다.
지금도 리처드 요한슨이라는 거물을 상대하고 있다.
과거 생이었다면 이름도 한번 들어보지 못했을 만큼 나의 인생 그 어디에도 없던 인물이었다.
공시생이었던 내 입장에서 미국 상원의원의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겜블러라…….”
리처드 요한슨이 내가 던진 말을 곱씹었다.
세상살이 참 어렵게 하는 정치인이다.
쉽게 말해 도박판에 들어선 이상 판돈 크기를 알려주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기회가 있을 때 돈으로 확 찍어 누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게임 방식.
리처드는 눈치 없이 내가 보유한 자금의 규모를 캐물었다.
그건 나를 아직 어느 정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뜻.
“재밌군.”
재밌어?
어이 미국 아재요.
사라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면박당하면서 대화 시작했어요!
한 번쯤 만나야 할 인물이라 여기고 있긴 했다.
사라를 떠나 세계 금융과 경제를 책임지는 한 축이 바로 차일드 가문의 방계.
미국 금융 위기도 이 아저씨 작품 리스트에 들어갈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화폐 권력의 스토리 창작자 중 한 명이다.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세계를 상대로 한 카지노의 주인들.
어차피 도박판 소유자는 손해 볼일 없는 장사다.
미국 중산층들과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을 위험에 빠트려 재미를 톡톡히 봤다.
미국이 망할 것처럼 판을 흔들어 환율 폭등을 일으켰다.
널뛰기 환율과 선물 시장을 이용해 쏟아져 나온 돈을 쓸어 담았다.
아무도 연방준비은행을 이용해 달러를 프린트 해 낼 거라 짐작 못 했다.
단숨에 발권국의 힘으로 위기를 진정시켰다.
미래를 경험한 경력으로 나만이 리처드 요한슨이 흔드는 판 위에서 톡톡히 돈 맛을 봤다.
고맙다고 밥 한 끼 사도 되지만 그럴 일은 아니다.
2020년 당시 한국을 뒤덮은 불황도 이분들 작품이었던 게 빤했다.
미중 패권전쟁과 일본의 한국 때리기는 모두 세계 정치권력, 화폐 권력, 기득 권력의 합작품이었다.
인류가 소비하는 모든 물질은 유한했다.
적절히 나누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도록 각국의 모든 수호신들이 합의하여 배려해 놓은 걸작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물질이 신보다 우위를 차지하면서 욕심 많은 놈들 위주로 더 먹겠다고 혈안이 된다.
유한한 먹거리를 욕심내는 순간 싸움은 당연한 수순이 된다.
자유 시장 경제라는 명목 하에 사이좋게 나눠 먹던 좋은 시절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었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각국이 즐긴 파티비용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동맹국이 아니었던 중국이 그 첫 번째 대상이 됐다.
그다음 순서부터는 동맹국 중에서도 미국에 타격이 더 오는 순서로 순위를 매겨 선별한다.
채로 거르듯 각국을 걸러 미래를 함께할 파트너를 선택하는 게 마지막 단계다.
2020년의 대한민국을 덮친 경제적 위기는 미국의 그 선택지에서 한참 뒤로 밀렸었다는 얘기다.
간사한 일본은 미국에 바짝 엎드려 IT 권력을 제물로 바칠 준비를 미리부터 하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들은 미래에 가서 한국 반도체 기업과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한국으로의 부품 공급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반도체 공장을 넘기려는 수작.
한국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해 도발하는 것부터가 시발점이 된다.
자신들만 살겠다고 이웃 국가를 제물로 바치는 더러운 이웃집 개새끼들.
그걸 막으라는 사명을 띠고 내가 회귀했다.
무엇보다 화폐 권력자가 되어야만 했다.
리처드 의원이 나에게 이 세계의 지분을 물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게임에 뛰어들 만한 판돈을 보유하고 있냐는 물음.
굳이 대답해 줄 이유가 없었다.
힘은 감춰질 때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재밌지 않습니다. 불편하다고 말씀드리면 과할까요?”
끝까지 예의는 지켰다.
적절한 공격과 방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분을 논하기에는 아직 내가 보유한 판돈이 적었다.
강자에게 겸허히 고개를 숙일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한 시점.
동시에 강자가 나를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장치도 판에 함께 끼워 넣었다.
반짝.
리처드가 묘한 눈길로 날 봤다.
인정에서 호기심 그리고 이번에는…….
“자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경계심이 작동했다.
세계 경제 설계자가 날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리처드에 비하면 권력이 한 참 밀렸다.
진짜 세계를 움직이는 주인들 중 한 명인 리처드가 눈앞에 있다.
중세 시대 왕관을 쓴 황제보다 더 우위를 위치했던 교황과 같은 인물.
“제가 뭘 알겠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아직 지분도 변변치 않는 자가 말입니다.”
웃었다.
비수를 감추고 서로를 탐색했다.
여기서 등을 보이거나 약점이 드러나면 공격을 당할 수 있었다.
리처드가 소유한 검은 장검.
내가 들고 있는 검은 짧은 단검.
아직 본격적으로 싸우기에는 갖춰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었다.
그럼에도 날 멋모르고 공격했다가는 심장이 뚫릴 수 있음을 분명하게 경고해야 했다.
살기 위해서.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자리에서 리처드 제거하는 일도 가능했다.
마법을 써 소리 소문도 없이 한줌의 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있다.
문제는 뒷수습.
사람 하나 죽인다고 설계자들의 스토리가 바뀔 리 없다는 것.
도리어 나의 활동 범위에 제약을 받게 될 뿐이다.
미국 상원의원을 죽인 미친 한국 똘아이 타이틀을 달 필요가 없었다.
“변변치 않다 말하는 자들이 가장 무서운 법이지. 자네는 날 죽일 수도 있는 차가운 심장도 가졌군.”
세계를 조종하는 설계자답게 안목이 대단했다.
사라는 자기 아빠에 비하면 아직 순진무구했다.
“의원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방해되는 자들은 국가나 사람이나 모두 제거할 수 있는 권력자이지 않습니까.”
힘의 차이는 인정했다.
말 한마디 인심 썼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니다.
“무서운 심계도 가졌어…….”
아무리 그래도 당신만 하겠습니까.
“전 투자자입니다. 의원님도 아시다시피 투자할 곳이 있다면 어떤 경로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좋은 예입니다.”
미안하다 트럼프 형님.
당신 이름, 앞으로 많이 팔아먹을 예정이다.
방패로 사용하기에 제격인 트럼프.
그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나의 무능을 입증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시점이다.
“그럴까?”
복잡다단한 눈빛을 보이는 리처드.
이럴 때는 충격 요법이 필요한 시점.
“사라 양과 여름휴가를 같이 보내기로 했습니다. 의원님도 오시겠습니까?”
사라에게도 미안하다.
“!!!”
단박에 리처드의 평정심이 흔들렸다.
아무리 세계를 주무르는 권력자라 해도 자식 일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법.
“로리아나 양이 휴가지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얼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군요.”
로리아나 당신도 팔아서 미안.
나에 대한 정체를 최대한 감추기 위해 흙탕물을 좀 뿌렸다.
“……나쁜 놈이군.”
그렇지!
딸 가진 아버지라면 저렇게 나와야 정상이다.
“의원님도 젊은 시절 스캔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리처드도 피 끓은 시절에 몇 번의 실수를 한 전과가 있었다.
상대의 약점은 나의 단점을 가리고 그를 자극할 수 있는 무기가 되기 마련.
“사라를 어떻게 할 생각인가?”
“좋은 친구입니다.”
“사라는 아직 순수해. 상처라도 주면…….”
뒷말은 빤했다.
킬러를 보내 나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겠다는 경고.
“저도 순수합니다.”
각자의 순수 기준점이 다르다는 것의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파바바밧.
좀 더 거칠게 흔들리는 리처드 요한슨의 눈빛.
심사가 아주 복잡할 것이다.
“의원님, 약속 시간에 늦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 못다 한 대화는 다른 날을 잡도록 하죠.”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서로에 대해 견적은 이미 명확하게 나온 셈.
아직 서로 간에 적은 아니었다.
다만 한 치 앞의 어떤 미래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지켜보겠네. 다니엘 자네의 모든 걸.”
씨익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원님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파바밧.
마지막으로 마주치는 눈빛에서 불똥이 튀었다.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난 다니엘 장.
오는 적 막지 않고, 가는 적 뒤통수에는 비수를 꽂는 쿨한 남자.
당신은 나의 적이 되지 않기 위해 야훼께 간절히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