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6장. 친애하는(2) (653/1,284)

656장. 친애하는(2)

“황금 뻐꾸기가 접속했습니다.”

“위치는?”

“한국입니다.”

“한국? 정확한 위치는?”

“강남입니다.”

“대상은?”

“……상대측에서 암호화를 실시 중입니다.”

“암호화? 안 뚫려?”

“네……. 안 먹힙니다.”

“천사의 눈동자도?”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말도 안 돼. 천사의 눈동자로 안 뚫리는 게 어딨어?”

“사실입니다.”

미국 네바다에 위치한 미연방 국가수호국 ASG의 비밀 안가.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CIA와 다른 국가 수호의 핵심 비밀 기관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핵심 인물 몇 명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정부 기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비밀 기구.

명칭이 수시로 바뀌었다.

팀이 사라질 시에는 모든 자료가 함께 폐기됐다.

CIA에 할당된 의회나 행정부 감사가 필요 없는 특별 자금으로 운영됐다.

미국답게 그 자금 규모는 엄청났다.

테러에 민감한 만큼 도청 장치와 해킹 장치는 언제나 최신형으로 세팅돼 굴러갔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슈퍼컴퓨터를 비롯해 각종 해킹 프로그램과 천재적 해커들이 동원됐다.

거대한 지구 인터넷 망과 각국의 통신 장치를 원하는 대로 감시 가능했다.

인공위성 또한 장애 없이 양껏 사용했다.

그런 ASG에 최근 비밀 지령이 떨어졌다.

취급 인가는 최고 등급.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정보를 수령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감시 중인 황금 뻐꾸기 통화 내용이 방금 전 차단됐다.

미국 안보와 관련된 사항인데 최고 인재들이 투입되었음에도 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이런 사태는 한 번도 없었다.

팀장 자크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국이나 러시아 핵 보안도 최근에 완성된 천사의 눈동자로 충분히 뚫었다.

그런데 일개 개인 간 통화를 훔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어느 쪽이 방해하는 거야?”

“서울 쪽입니다.”

“……전혀 방법이 없어?”

“알려지지 않은 방어 코드가 떴습니다. 실시간 해킹은 불가능합니다.”

최고 해커 요원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중요 인물에 대한 통화를 비롯해 인터넷 정보가 수시로 모이고 있었지만 황금 뻐꾸기만은 방어막에 막혀 감감 무소식이다.

“흐음. 그렇다 이거지.”

팀장 자크는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자크도 해커 생활을 오래했다.

단 한 번도 이런 식의 난관에 부딪힌 적은 없었다.

승부욕이 발동했다.

“악마의 거미줄을 발동한다!”

“네? 아, 악마의 거미줄을요!”

최근 개발한 엄청난 해킹 프로그램.

아직 실험이 다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파괴적 위험까지 내장하고 있어 상부에서 허가를 미루고 있었다.

실행하는 순간 추적자 인근의 네트워크가 일시에 무너질 수 있는 막강한 프로그램이다.

“실시한다!”

“넵! 악마의 거미줄 실행합니다!”

타다다닥.

명령과 함께 해커 요원이 빠르게 명령어를 입력했다.

그 순간.

파바바바밧.

해커 요원의 모니터 화면에 수없이 많은 숫자와 기호들이 생성됐다.

악마의 거미줄을 가동하는 화면.

그리고.

“헛! 티, 팀장님! 역으로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우리 보안체계가 뚫린 거야?”

팀장 자크는 팀원의 비명에 눈이 화등잔만 해져 화면을 바라봤다.

***

“이것들이 어디서 해커질이야! 다 죽었어!”

그 시각.

실리콘벨리에 위치한 지하 사무실.

온시은이 화면을 바라보며 전투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장태산이 슈퍼컴을 사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녀석으로다가 말이다.

온시은은 행복했다.

미국에서 원하는 만큼 마음껏 공부했다.

그런 와중에 장태산으로부터 밀명을 받았다.

놀랍게도 장태산은 컴퓨터 해킹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듣고 보도 못한 해킹 수법을 온시은에게 세세하게 전달해줬다.

온시은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처럼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해킹 부분에 있어서 지금은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온시은에게 감지된 해킹 집단.

감히 장태산의 개인 스마트폰을 도청하려 시도했다.

상당한 수준의 실력으로 도청을 시도했지만 온시은이 더 막강했다.

“네바다에서 쥐새끼처럼 일하는 놈들이 어디서 감히!”

이 정도 수준의 해커라면 미국 정부 소속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온시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처했다.

어차피 몇 군데 우회 회로를 거쳐 실시된 방어와 공격이다.

결코 찾아낼 수 없는 망이었고 걸릴 일도 없었다.

타다다다다닥.

온시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미친 듯 움직였다.

대단한 스펙을 자랑하는 컴퓨터와 최신 프로그램 덕분에 모든 일이 수월했다.

그리고.

“아웃! 크크크.”

새하얀 피부의 유순해 보이는 온시은이 악당처럼 웃었다.

완벽하게 적의 컴퓨터에 침투해 악성 바이러스를 살포해버렸다.

해커가 설치한 방화벽이 제법이었지만 이미 허점을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가뿐하게 방화벽을 해체했다.

백업 본까지 찾아 박멸했기에 당분간 복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태산 씨 건들지 마라. 내 남자는 내가 지킨다!”

온시은은 꺼지지 않는 전의를 한껏 불태웠다.

미국에 머물며 가끔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지만 온시은 인생에 장태산을 제외한 두 번째 남자는 없었다.

어차피 컴퓨터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외골수 공대생이었다.

메마른 마음에 단비를 내려진 장태산은 온시은에게 하늘같은 존재.

그를 해하려는 무리들은 모조리 제거하겠다는 자신감이 차고 넘쳤다.

“다음은…… 오늘 새로 작업 들어온 공작소 똘아이들.”

장태산에게서 온 지시는 몇 개가 더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공작소라 불리는 타락한 인간 잡종들이 모여 기생한다는 사이트를 터는 것.

그들의 개개인 인적사항을 모두 수집하는 중이다.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다른 나라보다 잘 관리되고 있는 한국 IP.

회원들 명부만 해도 수십만 명에 달하는 양을 확보했다.

그리고 최근 대거 새로 가입한 쓰레기들까지 분리해 수집했다.

“누나와 여동생은 도대체 왜 궁금한데? 하아…… 개쓰레기들.”

화면을 보다 욕을 내뱉는 온시은.

짧고 굵게 화력을 불사르고 난 뒤 곧바로 일거리를 처리했다.

온시은에게 이번 생은 슈퍼컴퓨터와 장태산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런 온시은은 행복한 미소를 띠며 쓰레기 분리수거에(?) 앞장섰다.

***

내가 진심으로 형제라 여기는 그 분은 이계에서 신 노릇 하시느라 바빴다.

화통하게 웃는 반면 뒤로는 가식이 철철 넘치는 분과의 통화.

“잘 지내셨습니까.”

- 물론이지. 바쁜 와중에도 내 형제인 자네가 틈틈이 보고 싶었다네.

거짓말인 거 다 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분이다.

도덕적 의무나 인류의 보편적 행복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는 남자.

그가 바로 다음 대 미국 대통령이 될 레오날드 존 트럼프다.

“저도 형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많이.”

연기 많이 늘었다.

지켜보고 있던 조 이사님이 흥미진진하게 내 연기를 감상했다.

- 그렇지? 나만 보고 싶었던 거 아니지?

목소리에 애교까지 담겨 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선 듯하다.

황금을 숭배하는 자들은 관계상 이익을 안겨주는 자들과의 거래만을 트고 말을 나눴다.

여러 상황이 짐작됐다.

나에 대한 소문을 제대로 접한 게 확실했다.

전에 만나 내 입으로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알렸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나를 향한 확신에 찬 말투.

진정한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자 함이 엿보였다.

그렇다 해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트럼프는 빛과 어둠의 길에 각각의 발을 두고 걷는 자.

트럼프와 동행하게 되는 순간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더 많아질 게 확실했다.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차원 이동으로 소진해도 어둠의 거래를 통한 흔적은 남는 법.

내가 아직 모르는 신계의 비밀이 무수히 많았다.

되도록 착하게 살아 선한 카르마 포인트를 모으는 데 집중하고 싶다.

“별일 없으시죠?”

- ……항상 즐겁게 살고 싶지만 날 시기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이 형님이 동생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어.

오바마가 트럼프를 상대로 신랄하게 깐 외신 뉴스를 나도 봤다.

트럼프를 공개 석상에서 제대로 망신 주었던 오바마.

오바마의 패착이었다.

다른 이들 같았다면 대통령의 경고에 주저앉았겠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도전과 응전을 사양하지 않는 마초남.

“누가 그랬습니까? 다음 대 세계를 호령할 분을 몰라보고 말입니다.”

격하게 띄워주었다.

- 흐흐. 말만으로 힘이 나는 것 같아.

내가 자신의 조력자가 될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한 트럼프.

“누가 뭐라고 해도 전 형님의 신념을 믿습니다. 쭉 그대로 가십시오.”

어차피 말려도 듣지 않을 인간이다.

태어날 때부터 본인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 인물.

뛰어난 머리와 술책으로 승승장구한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주 컸다.

최측근 주변인들도 쉽게 믿지 않는 트럼프.

가족만이 자신의 진정한 사업 파트너라 여길 정도다.

- 미국에 언제 올 거야? 내가 이번에는 제대로 대접하고 싶어.

“이것저것 벌려 놓은 사업도 있고 변호사 업무를 새로 시작해서 당분간은 많이 바쁩니다.”

- 그래?

대놓고 서운해하는 트럼프 목소리.

“그래도 형님이 보고 싶다는데 이번 주에 만나죠. 제 이탈리아 와이너리에서 작년에 생산한 포도주가 제대롭니다. 와인 한잔하시고 골프 치시죠.”

- 와인과 골프! 하하하. 미녀는 내가 준비하지.

“기대하겠습니다.”

- 다니엘 고마워……. 이 형님의 외로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건 동생밖에 없어.

“이런 감정이 진정한 유대감 아니겠습니까.”

-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난 자네 도움이 많이 필요해.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어조.

“물론입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그처럼 형님도 세상을 호령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동생은 눈치가 빨라서 좋아.

자신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자 만족해하는 트럼프.

생각보다 다루기 쉬웠다.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에 약이 되는 따끔한 충고보다 독이 될 달달한 아부가 먹혔다.

나도 목적한 뜻이 있어 트럼프를 만난 입장.

돈이 아무리 넘친다 해도 쉽게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형님을 도울 수 있어 영광입니다.”

결코 공짜가 아니다.

내 돈 먹고 함부로 토끼면 죽는다.

- 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처를 찾은 거야. 그 X둥이 녀석과 비교할 수 없도록 내 화끈하게 보은 할 생각이네.

역시 장사꾼이 확실했다.

말투가 최병박과 아주 똑 닮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써도 삼키지만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진국도 바로 뱉는 전형적 소인배들.

“물론입니다. 저 또한 손해나는 일은 지금껏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대답과 미약한 경고를 동시에 날렸다.

나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는 듣기 좋은 경고.

- 물론이지. 내 투자자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 웃었네. 동생도 그렇게 될 걸세.

상황이 많이 웃겼지만 참았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험난한 세상 서로 돕고 살아야죠.”

- 다니엘……. 난 자네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

아! 오늘도 미친 듯 닭살이 돋았다.

털 숭숭 난 거구의 백인 남자가 날 사랑한단다.

“저도…… 형님을 사랑합니다!”

그래 나도 간다아아!!!

- 기다리고 있겠네. 우리들의 화끈한 주말 밤을 위하여!

유부남이 저런 말 해도 돼?

“화끈한 주말 밤을 위하여!”

- 하하하하하하.

트럼프의 화통한 웃음과 함께 통화가 끝났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때 귓속을 파고드는 조 이사님의 박장대소한 웃음.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 됐다.

“왜 웃습니까?”

“장 회장……. 남자 좋아해? 크크크크. 트럼프라면 그 백인 남자 아냐? 화끈한 주말 밤…… 크크크.”

배까지 움켜잡고 미친 듯 웃어대는 조 이사님.

이것 역시 진심어린 애국이라는 걸 그는 몰랐다.

논개 누님의 심정으로 트럼프에게 장단을 맞춘 것이다.

부끄러움은 잠깐.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었다.

“주말에 시간 비시죠?”

“나?”

“미국 출장입니다.”

“주말에는 중요한 고객들과 골프 약속이…….”

“트럼프가 골프와 화끈한 주말 밤, 금발 미녀 쏜답니다.”

“몇 시야! 그러지 말고 우리 금요일에 가자! 나 시간 많아!”

조 이사님 목소리가 격하게 들떴다.

여기 앞에 계시는 한 분도 사상이 불순하기로는 트럼프 급이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미래를 위해 참고 인내하며 포석을 깔아가고 있다.

돈만 많으면 개를 두고도 첨지라 부른다는 속담이 있다.

오늘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활의 최전선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는 진정한 대한민국의 주인들.

지금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2020년의 경제 환란.

난 오늘도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들을 위해 개가 될 자세로 대기 중이다.

Dear.

친애하는 나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회귀의 전설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