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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장.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3) (645/1,284)

648장. 죽어 주셔야겠습니다 (3)

“오늘 밤, 여러분들 앞에 최초로 제 출생의 비밀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화면 보시죠.”

백악관에서 주최되는 출입기자단 만찬회.

대통령 오바마가 특유의 화법으로 유쾌한 연설을 이어갔다.

화면이 띄워졌다.

[나즈 뱅야~♪]

유쾌한 어린이 만화영화 주제곡이 만찬회장에 울렸다.

“어떻습니까? 제 출생 비디오가 말입니다. 이제 의혹이 해소됐나요? 트럼프~.”

오바마는 웃으며 만찬회장 한편에 얼굴을 굳히고 서 있는 금발의 트럼프를 지목했다.

사람들과 카메라가 트럼프를 비쳤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트럼프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얼마 전 오바마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제기한 자신에 대한 모욕임을 모를 리 없었다.

“하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유쾌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너희들을…….’

트럼프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띤 그들을 하나하나 노려봤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오바마에게서 멈췄다.

권력을 가진 자의 오만함이 오바마의 얼굴에서 보였다.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 아니 세상의 대통령.

동시에 불안함도 엿보였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엘리트로 키워졌다.

관심을 끌기 위해 괴짜 행동을 일삼았지만 그의 욕망은 누구보다 컸다.

물론 머리도 뛰어났다.

부도 이룰 만큼 일궜다.

그에게 있어 남은 건 단 하나.

오만하게 청중들 앞에서 특유의 화법으로 말장난을 벌이고 있는 오바마를 노려보았다.

그가 서 있는 단상.

오로지 미국 대통령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

“만약 트럼프 당신이 이 자리에 있다면 백악관이 이렇게 바뀌겠죠?”

오바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이 바뀌었다.

백악관 잔디밭 앞에 거대한 풀장이 설치되고 늘씬한 금발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이 까르르 웃으며 즐기고 있는 풍경.

호색한 바람둥이로 알려진 트럼프를 대놓고 모욕하는 장면.

“푸하하하하하하하.”

“크크크큽.”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초대받은 사람들.

오직 트럼프와 그의 주변 인물들만 웃지 못했다.

“트럼프가 다음 미국 대선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는데…… 그거 농담이죠? 진담 아닌 거죠?”

트럼프를 향해 직접 묻는 오바마.

파바밧.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평소라면 맞받아쳤을 트럼프였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눈앞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자는 현 미국 대통령이었다.

사업을 하는 자는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행정부의 수장.

“미합중국은 편협함을 품지 않는 거대한 호수와 같습니다. 다양한 인종의 시냇물들이 합쳐져 강을 거쳐 미합중국이라는 거대한 호수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 성숙한 시민들이 바라는 진정한 연방 정신입니다. 특정 인종만이 주인이 아닌 모두가 주인이 되는 그런 국가! 그게 바로 미합중국입니다!”

오바마가 격정적으로 연설을 이어갔다.

“휘이이이이이이!”

짝짝짝짝짝.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터졌다.

연설의 신이라 불리는 오바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트럼프 연설 스타일과 많이 달랐다.

편 가르기가 없는 오바마의 연설.

하지만 그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오늘의 이 치욕 반드시 되갚아 주리라!’

집안과 주변인들이 모두 트럼프의 대선 행보를 반대하고 있었다.

괜히 돈만 쓰고 얼굴만 팔린다고 우려했다.

트럼프도 단순히 대선 출마를 사업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평생 오만한 자신감 하나로 살아온 트럼프였다.

그런 자신을 많은 사람 앞에서 폄훼하고 자극한 오바마.

‘이제 전쟁이다! 오바마……. 그리고 너희들 모두 다!’

출입기자단 만찬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기자들을 트럼프는 눈에 담았다.

지금은 잠시 몸을 낮추고 죽어지내야 하지만 때가 분명 올 것이다.

오바마의 재선 임기가 시작됐다.

오바마 케어로 인해 지지자들이 양분된 상황.

파고들면 허점이 너무 많았다.

공화당 의원들도 트럼프를 무시하지만 상관없었다.

여론만 등에 업고 백악관에 입성하고 나면 모두 다 따라오게 돼 있는 게 정권의 힘이다.

“트럼프. 당신은 미국 대통령이 되기에는 유례없이 부족합니다. 그 기질로는 결코 미국과 세계의 평화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세요. 미합중국을 위해!”

웃으면서 농담조로 쐐기를 박는 오바마.

씨익.

트럼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샴페인 잔을 들어 올렸다.

‘아프리카 라이온……. 네 처절한 미래를 위해 건배해 주마!’

***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죽으라는 말에는 화들짝 놀라는 임성철 회장.

죽음을 협상하기 위해 나를 만났지만 막상 직접 직면하자 초긴장 상태를 보였다.

“그렇다면 자네는 죽어 봤나? 말이 쉽군. 생각은 하고 있지만……. 이 자리는 살 도리를 찾기 위해 온 자리네. 그런데 죽으라니. 그러니 놀랄 수밖에 없잖나.”

벌컥.

임성철 회장은 소주잔을 거칠게 비워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말이라 더 당황스러울 것이리라.

“신이 공평하다는 가장 큰 증거가 바로 죽음이 아니겠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븐 매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은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고 말입니다.”

“그 친구는 괴짜고 난 평범한 기업가잖나.”

“왜 그러십니까. 살아생전 스티븐이 가장 경쟁하던 상대가 오정의 회장님 아닙니까.”

“경쟁이 아니라 욕을 그렇게 하더군. 세상에 직사각형 핸드폰 모형이 특허가 될 수 있다는 걸 미국에서 처음 알았네. 어차피 그들도 여기저기서 카피한 주제에…….”

죽음 앞에서도 스티븐에 대한 임성철 회장의 경쟁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입니다. 한국이었다면 정반대 결과가 나왔겠죠. 그래서 힘 있는 자들이 갑이 되는 겁니다.”

“서럽군.”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해도 되지만…… 회장님은 아닙니다.”

“나도 눈치라는 것을 보고 살아.”

“회사를 더 키우셔야죠.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규모로 말입니다.”

“우리 회사 주식 많이 사놨군.”

“전 백기사입니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자네가 다 벌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아.”

“투자자만의 재미가 아니겠습니까.”

“부러워. 난 벌어도 내 돈이 내 돈이 아니야.”

법인의 오너가 짊어진 운명.

수많은 이들의 삶까지 책임을 지는 자리이니 당연히 개인자산처럼 사용할 수 없었다.

횡령과 배임으로 어느 순간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될 수 있었다.

“중세 왕들도 영주들에게 시달렸습니다.”

“내가 왕은 아니잖아.”

“엄살이 심하십니다. 안주 드십시오. 비오는 날에는 육전이 최곱니다.”

한입에 넣기에 적당한 크기의 변형 육전.

“내년에는 제삿밥에 얻어먹으라는 소리 같군.”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임성철 회장도 나도 잘 알았다.

대한민국 최고 역술가에게 이미 모든 걸 들은 그.

“잠시 하늘을 속여야 합니다.”

“내가 그 정도로 죄를 많이 지었나?”

“그룹 성장할 때 그냥 큰 거 아니잖습니까. 회장님은 지시 정도만 하셨겠지만 그 아래 직원들이 갑질 한두 번 안 했겠습니까? 원가절감이라는 이유로 납품업체 단가 후려쳤을 건 뻔한 일이고……. 이것저것 죄가 많죠.”

“난 안 그랬어.”

“오정이 그랬죠. 그리고 오정의 주인은 회장님이시니 회장님 죄죠.”

하늘의 이치는 누리는 만큼 책임도 커지는 법이다.

오정이나 다른 그룹이 여기까지 성장하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저질렀을 불법들.

결코 적지 않았다.

다만 통념상 약육강식의 경쟁사회라 통용되었을 뿐이다.

“나쁜 놈……. 나만 잘 먹고 잘 살자고 그런 게 아니잖아.”

“하늘에 따지십시오.”

죽으라는 말에 대한 처음의 두려움이 대화를 통해 많이 반감됐다.

이제는.

“어떻게 죽으면 되나?”

“절 믿으십니까?”

“그게 전제야?”

“네.”

“……마누라보다 더 믿어야 하나?”

“그렇게 서로 많이 믿고 살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끄응.”

회장이라고 다를 게 없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밥 세끼 먹고 화장실 간다.

돈이 넘친다고 더 행복한 것도 아니다.

화평한 가족이 뒷받침되어야 기업 경영도 수월수월해지는 것이다.

그 점에서 오정 그룹 일가는 분업화가 철저했다.

가족의 정과 함께 사업적 계산법이 남달랐다.

태어나는 순간 경영인으로 점지되는 오정의 일가 구성원들.

철저하게 여성은 배제하고 의리로 경영하는 엘자 그룹과 처우가 달랐다.

“대가는…… 뭘 원해?”

이제야 진짜 본론이다.

만약 오정 임성철 회장이 다시 살아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온다.

신들도 거역할 수 없는 철저한 카르마 법칙의 세계.

“뭘 주시겠습니까?”

“살면 얼마나 더 살아?”

“회장님 하시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경영하시느라 선천지기를 많이 남용했습니다. 술과 여자를 멀리하시면 장수하실 테고…… 그렇지 않으시면 살아도 산 게 아니게 되겠죠.”

뼈를 찌르는 충고를 날렸다.

기업인들 대부분 스트레스를 술과 여자로 푸는 건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남자의 재(財)는 여자와 통하는 부정할 수 없는 이치.

금욕하면서 재물만을 탐하는 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간 DNA 속에 숨어 있는 이성에 대한 강렬한 욕망.

남자는 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물이나 권력을 꿈꾸는 것이다. 욕망이 없는 이들이 산이나 초야에 묻히는 이유와 정반대 현상이다.

수많은 기업가들이 여성과 연관된 스캔들 문제로 대부분 말썽을 일으키는 이유였다.

내 씨앗을 널리 퍼트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

“절에 들어가라는 소리야?”

“즐길 만큼 즐기셨잖습니까.”

“……아쉬워. 아직 마음은 청춘인데.”

“세상 멋지게 살다 가신 분들도 다 그렇게 사셨고 아쉬워하며 가셨습니다. 회장님뿐만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넌 젊잖아.”

“회장님도 젊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만 망각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피를 뜨겁게 만드는 욕망도 한순간만 참으면 뒷일로 100일을 근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젊은 녀석이 뭐 그렇게 잘난 척이야? 죽어보기라도 한 거야?”

“네.”

“……말을 말지.”

“뭘 주시겠습니까.”

“해외에 묻어 놓은 비자금.”

“아니라는 거 알지 않습니까?”

“그럼 오정전자 주식 어떠냐. 내가 큰마음 먹고 개인 주식 3분 1을 주마.”

아주 큰 결단이다.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합니다. 아드님이 가만히 있을까요?”

“윤아는…….”

“그건 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니 그럼 뭘 달라는 거야! 나 고민 많이 했다. 오정전자 주식 3분의 1이면 삼대가 먹고 살 수 있는 거금이야.”

답을 찾으려 애쓴 건 알겠지만 내놓는 것마다 내가 원하는 건 아니다.

오정전자 3분의 1이면 주인이 바뀔 수 있는 양이다.

임준형 부회장도 나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아직까지 임성철 회장의 주식을 상속받지 못한 임준형 부회장.

그가 소유한 오정전자 주식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조금 더 쓰십시오. 회장님 살리려면 저도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게 무슨…….”

길게 말해야 입만 아팠다.

아무리 대한민국 재계의 황제라지만 하늘의 법칙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설마 반절?”

기업은 주식이 모든 것.

오정 임성철 회장님이 정한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

“회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회장님 재산은…… 제가 가진 재산에 비하며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20조 되시나요?”

“!!!”

20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나의 말에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진 임성철 회장.

“세상에 나가보니 판돈 크기가 다르더군요. 20조라는 돈은……. 그 판에 낄 수 있는 기본 판돈도 안 됩니다.”

차일드 가문과 중국, 일본 그리고 또 다른 세력이 참여한 경제 전쟁에서 20조는 한 방에 사라질 배팅 금액이었다.

돈으로 안 된다는 걸 귀띔하는 중이다.

임성철 회장은 아직 날 파악 못 했다.

“너 부자구나…….”

“아침 점심 저녁으로 소고기 구워 먹을 정도는 됩니다.”

“그럼 원하는 바가 뭐냐?”

“몇 년을 더 살고 싶으십니까?”

“난…….”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과 대답이다.

저승사자도 이런 식으로 거래를 하지는 못했다.

오로지 포인트 부자인 나만 할 수 있는 거래 방식.

“10년이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럴 때는 내가 결론을 내려줘야 했다.

“…….”

10년이라는 세월에 묵묵히 날 바라보는 임성철 회장.

“만족해야지…… 그 정도라면.”

그렇게까지 욕심에 눈먼 이는 아니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살아도 죽은 것처럼 계셔야 합니다. 적어도 7년은 숨어 계셔야 합니다.”

“그게 살아있다 말할 수 있겠나?”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도 숨은 쉴 수 있습니다.”

파바밧.

날 날카롭게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임성철 회장.

“대가는…….”

이제야 입 밖에 내게 된 마지막 패.

“회장님의 인생 지분…… 51%를 제가 가지겠습니다.”

“!!!”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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