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장. 일단 500
“회장님! 내일 돌아올 어음이 220억입니다! 대책을…….”
“어음 유통해 봐!”
“은행뿐만 아니라 명동에서도 거절당했습니다. 지금 하청업체에서도 어음 할인 문제로 난리입니다.”
“통장 잔고는?”
“……1000억 정도 남았습니다.”
“그것밖에 없어? 도대체 내 돈 다 어디 간 거야!”
동룡 그룹 회장실.
비서실장과 재무이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보고 했다.
“…….”
회장의 말에 재무이사는 입을 다물었다.
‘사고는 지가 쳐놓고 왜 난리야!’
분명히 대웅 건설 인수를 말렸다.
회사 자금 사정으로는 어렵다고 진심으로 충언했다.
한동안 배포가 작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짖어라! 퇴직금 두둑이 챙겨 놨다. 흐흐흐.’
비자금 조성 과정에서 섭섭지 않을 정도의 자금을 빼돌렸다.
일반 회사원들은 꿈도 못 상당한 금액의 비밀 퇴직금.
더 이상 회사에 미련은 없었다.
아무리 계산기 두들겨 봐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대출 받은 자금들도 다 말랐어?”
“……은행에서 추가 담보를 요구하며 대출 자금 상당수를 동결했습니다.”
“그게 말이 돼!”
“계약서상에 급격한 신용 하락 시 적용되는…….”
“멍청한 새끼들! 왜 일을 그 따위로 하는 거야!!!”
화를 참지 못하고 동룡 주현태는 길길이 날뛰었다.
일반적인 대출 조건이었다.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탈이 났다.
“나가! 다 꼴도 보기 싫어!”
“넵!”
후다닥 비서실장과 재무이사가 내빼듯 사라졌다.
“크으으.”
의자에 몸을 기대며 주현태는 짐승의 신음을 흘렸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띠디디딕.
급하게 번호를 눌렀다.
뚜우우우 뚜우우우 뚜우우우.
길게 울리는 신호.
“이게 내 전화를 피해?”
화가 날 대로 나서 스마트폰을 노려보는 주현태.
- 무슨 일이에요. 오빠.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다.”
- 네.
평소와 달리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차갑게 대답하는 여동생.
“부탁한 거 어떻게 됐어?”
여동생이자 동룡 제과 대표인 주미란.
주현태는 그녀에게 여유 자금을 부탁해 놓은 상태였다.
요즘 해외 수출 덕분에 신용도를 비롯해 자금 사정이 좋다고 알고 있는 동룡 제과.
- 오빠. 30억 이상은 힘들 것 같아요.
“뭐라고 30억? 너 지금 장난해? 그 코딱지만 한 자금으로 뭘 어쩌라고!!!”
부탁했던 자금은 1000억이었다.
상반기에 돌아올 자금만 무난하게 막을 수 있다면 동룡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오빠. 나도 힘들어요! 이것도 남편 눈치 보면서 겨우 만들어 냈어요. 아시잖아요. 얼마 전에 대표이사 명의가 남편 앞으로 바뀐 거요.
“황 서방 바꿔봐.”
- 베트남 출장 갔어요.
“내가 전화해?”
- 바빠서 못 받을 거예요.
“야! 주미란! 너 이럴 거야!”
- 그만해요! 자금 남을 때 차라리 돈을 빼돌려요. 그래야 애들이라도 살죠. 오빠도 대책 좀 세우시고요. 자칫…….
“이게 미쳤나. 어디서 망하라고 부채질이야! 나 동룡의 주현태야! 쉽게 안 무너져!”
- 소문 다 났어요. 오빠…… 동룡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는 주미란.
“이이이이…….”
여동생의 팩트 폭로에 주현태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핏줄이 터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 오빠가 맡긴 제과 주식 회수를 위해 오늘 변호사가 갈 거예요. 계약한 대로 도장 찍어주길 바라요.
주미란은 냉정했다.
동룡 그룹이 처한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애써 마음을 비웠다.
어차피 자신은 출가외인으로 황씨 집안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간 오빠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더 안 받게 되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1년 전에 동룡이 보유하고 있던 제과 주식을 시가대로 계산해 빌려줬다.
약 400억 정도.
동룡 제과에는 벅찬 돈이었지만 오빠는 단시간에 소진해 버렸다.
더 이상 답이 없는 주현태와 동룡.
“끊어! 이 싸가지 없는 년아!”
와장창창.
화를 못 이겨 스마트폰을 내던져버린 주현태.
“장태산…… 나만 못 죽는다…… 이 개새끼. 네놈의 것들도 모조리 부셔주마!”
분노로 이성을 상실한 주현태.
주현태는 책상 안쪽에서 대포폰을 꺼냈다.
그리고 거침없이 문자를 보냈다.
- 목표 처리.
내용은 간단했다.
띠링.
답변 문자가 바로 왔다.
- 접수 완료.
***
“충성!”
“수고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덕분에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베리아보다 더 춥다는 사하공화국에 있는 내 땅.
벨류아강 상류에 위치한 경기도의 세 배에 달하는 영지.
이곳으로 한국에서 파견한 씨큐리티 직원들이 날 반갑게 맞았다.
완전 무장한 상태다.
이곳에 파견된 직원들 숫자는 약 40여 명.
방탄복 착용은 물론 자동소총을 소지했다.
누가 봐도 전투 용병 같은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사용 불가능한 총기를 이 땅에서는 사용 가능했다.
튼튼하고 무식한 러시아 장갑차도 보였다.
완성된 비행기 활주로 옆 주기장에는 예전에 봤던 KA- 62 시리즈 헬기 말고도 몇 대의 중소형 헬기가 더 보였다.
탱크와 공격 헬기를 제외하고 없는 게 없었다.
“불편한 건 없습니다.”
“완벽하게 행복합니다!”
아직도 매서운 추위가 그대로 느껴졌지만 특전사 출신들은 역시 달랐다.
군대보다 더 자유롭게 무기를 만질 수 있고 총기 훈련도 가능했다.
헬기 타고 사냥하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두 달씩 코스를 짜 훈련을 했다.
총기류와 피복, 음식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한국에서처럼 슈트 차림으로 어설프게 각 잡지 않아도 됐다.
야성을 타고난 씨큐리티 직원들에게 이만한 스트레스 해소 장소는 없었다.
“차로 모시겠습니다.”
깔끔하게 치워진 활주로에 군용 방탄 지프차들이 보였다.
사륜 구동 아니면 이 동네에서는 답이 없었다.
“아닙니다. 중요한 손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손님요?”
“아! 저기 오는군요.”
두두두두두.
서쪽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단의 헬기.
쇄애애애애애앳.
머리 위에서는 전투가 몇 대가 나타나 가로 질러갔다.
“누, 누굽니까?”
처음 본 광경에 파견된 팀장이 놀라서 물었다.
“차르요.”
“네? 차르라면…… 그분요?”
***
“하하. 오랜만이야 친구!”
와락.
헬기에서 내린 푸틴은 기다리고 있던 한국 친구를 격하게 껴안았다.
차자자작.
그 사이 경호 헬기에서 내린 특수 요원들이 사방을 경계했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나도 나이가 먹었어. 이제는 얼음 깨고 수영은 못하겠더군.”
푸틴은 기분이 좋았다.
눈앞에 서 있는 한국인 청년 다니엘.
볼 때 마다 놀라움을 선사했다.
빼놓지 않고 올라오는 보고를 수시로 받았다.
엄청난 금융 투자 사업가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그리고 변호사였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올라온 푸틴에게도 다니엘은 신화적 인물이었다.
“약 좀 드릴까요?”
“약? 뭐?”
“동양에서 말하는 불로장생급은 아니지만 남자 몸에 매우 좋은 녀석이 있습니다. 몇 년은 젊어지실 겁니다. 부작용도 없고 말입니다.”
“그런 약도 있어?”
푸틴이 호기심을 보였다.
러시아를 비롯해 서방에서 제조되는 몸에 좋은 약은 골라서 챙겨 먹었다.
위대한 러시아를 위해서는 자신이 건강해야만 했다.
“제 가족들을 위해 특별히 제조한 약입니다.”
“흐음.”
잠깐 고민이 됐다.
친구라지만 약이라는 건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의리에 살고 죽는 러시아인이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 저도 마실 때가 됐는데 같이 드시죠.”
“보드카에 타서 마셔도 되나?”
“물론입니다. 좋은 안주 잡아서 술에 타서 마시죠.”
“그렇다면 먹겠네. 하하하하.”
푸틴이 호탕하게 웃었다.
등을 맡겨야만 진짜 친구라 여겨지는 러시아였다.
처음부터 척박한 자연환경이었던 만큼 친구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다.
“조금 걸을까요?”
“좋지.”
중요한 대화가 오갈 것을 알고 있는 푸틴은 손을 들어 경호대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사사삭.
경호원들이 간격을 넓히며 물러났다.
다니엘이 고용한 한국 경호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푸틴을 위한 배려.
세세한 마음 씀씀이가 자연스럽게 신뢰를 갖게 했다.
“제가 모스크바에 가도 되는데 너무 먼 곳까지 오셨습니다.”
“마침 몸이 근질거렸어. 한겨울보다 지금이 사냥하기가 좋아.”
푸틴은 다니엘이 만나자는 연락에 바로 승낙했다.
다니엘 덕분에 요즘 인기가 치솟았다.
모스크바에 설치된 대형 놀이동산.
실내 놀이시설까지 완비돼 있어 추운 러시아에서 특히 인기 만점이었다.
“피가 끓는군요.”
“필요하면 말해. 자네를 위해서는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푸틴이 살짝 미끼를 던졌다.
러시아에 찾아온 유력 인사들에게 푸틴은 미인계를 서슴없이 펼쳤다.
친구 사이지만 푸틴은 그보다 먼저 러시아의 지도자였다.
국익이 되는 상대를 포섭하는 게 첫 번째 임무.
“그것보다 다른 도움을 주십시오.”
“도움? 뭘?”
다니엘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일은 거의 없었다.
미국 행정부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 다니엘이다.
새로 들어선 한국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그들도 쉽게 다니엘을 건들지 못했다.
규모가 확인되지 않은 자금은 넘치고 다니엘에 대한 경호도 완벽했다.
“차르께서는 러시아에 부족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족함이라.”
푸틴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넓은 대지와 뜨거운 열정을 소유한 슬라브 민족.
넘쳐나는 자원 덕분에 큰 노력 없이도 먹고 살았다.
유전을 비롯해 천연가스가 넘쳐났다.
가스 밸브만 잠가도 유럽에 동사자가 넘쳐날 정도다.
그런 러시아에 부족한 것이라면…….
“공장이라도 세워 줄 생각인가?”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한국이 강세인 공업 부분이다.
먹거리 생필품은 넘쳐나지만 공산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 제제에도 굶어 죽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입장이었다.
기초 과학을 비롯해 무기 기술도 뛰어났다.
그럼에도 뒤를 받쳐줄 산업시설이 낙후되었거나 미비했다.
“차르는 현명한 지도자십니다.”
“!!!”
다니엘의 말에 푸틴은 깜짝 놀랐다.
“정말인가?”
“한국 반도체 업체에 제공될 부품 공장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도 되겠습니까?”
“블라디보스토크! 좋지!”
러시아도 인구 분포를 비롯해 여러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불균형 상태였다.
과거부터 동쪽 지역을 키우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로 여건이 부족했다.
기껏해야 관광산업이 전부.
그런 동쪽 지역에 공장이 건설된다면 잠재적 이득이 상당할 것이다.
“땅은 제공해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러시아는 남는 게 땅이야.”
“그럼 차르를 믿고 추진하겠습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남았다.
“투자금은 어느 정도인가?”
또다시 다가오는 선거철.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광고 재료가 꼭 필요했다.
수십 억 달러 정도면 대만족이었다.
“일단 500억 달러부터 시작하죠.”
“!!!”
500억 달러.
마치 어린 아이 용돈 주듯 가볍게 말하는 다니엘.
“친구!!! 오늘 밤 화끈하게 이 형이 대접하겠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