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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장. 오빠 믿지? (631/1,284)

634장. 오빠 믿지?

- 상급 악신의 크나큰 후원자와 휴전을 맺었습니다.

- 악신이 기뻐합니다.

- 상당한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지급 받았습니다.

신들이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다.

거부감 없이 정해진 운명을 살아가는 인간들.

그러다 그 운명을 거스르며 한 순간의 선택에 의해 다음 미래가 재설정되고 결정되는 법.

주순자와의 계약에 악신이 풍악을 울렸다.

어리석은 악신.

그렇다 해도 주순자의 운명이 갖고 있는 큰 밑그림은 원칙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주순자를 후원하는 악신 면상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와인 잘 마셨습니다.”

말투를 바꿔 대했다.

와장창 깨진 와인병은 집 한쪽 벽면을 붉게 물들였다.

한 폭의 파괴적 예술 작품 같았다.

“……널 기억해둘게. 장태산.”

저런 말 한두 번 듣는 것도 아니고.

서로 휴전 협정을 맺었지만 좋게 끝날 사이는 아니다.

주순자를 직접 마주하며 잠시 갈등했었다.

여기서 조용히 처리해 버리면 한반도의 미래가 좀 바뀔까하고.

결론은 ‘아니다’였다.

쉽게 죽일 수도 없었다.

상급 악신의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는 주순자.

그녀를 죽이기 위해서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직은 척결의 때가 아니다라는 하늘의 뜻이 엿보였다.

아무리 사명을 띠었다 하더라도 한 개인이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안배.

선신들과 조상신이 연출해 낸 작품, 빅 피처가 확실했다.

주순자의 추악하고 더러운 심리를 이용한 한민족의 의식 개조 프로젝트.

“우리 어쩌다 마주쳐도 모르는 사이입니다~ 아시죠?”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

앞으로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 면상을 보는 일도 몇 년만 참으면 됐다.

“내가 부탁할 말이야.”

단단히 화가 난 그녀.

“유럽으로 애들 빼돌려도 금방 찾아갑니다. 이름 유명한 이탈리아 친구들이 유럽에서는 끗발이 장난 아닙니다.”

경고 또한 잊지 않았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내 친구다.

주순자가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그녀의 다음 행동을 염두하고 던진 경고.

주순자가 유럽으로 빼돌린 자금이 천문학적이었다.

주순자의 쌍둥이 자녀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악인도 새끼 소중한 것을 안다는 게 아이러니다.

자신의 악함을 고스란히 유전 받은 모습을 보면서 고슴도치 새끼처럼 귀여울 것이다.

파밧.

그녀가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럼.”

짧게 고개를 숙여 조우를 마무리 했다.

으득.

돌아서는데 뒤쪽에서 들려오는 이가는 소리.

이런 수모를 처음 겪었을 주순자가 제대로 열 받았다.

“아!”

다시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이대로 마무리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그거 아십니까?”

“뭘!”

“남편 분 애인이……. 정말 괜찮더군요. 학벌에 미모에~”

“!!!”

자신만 잘난 남자 친구가 있다고 착각하는 악인 아줌마.

아니나 다를까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젊고 예쁜 애인에게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남편 분 가용돈이 많은가 봅니다.”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주순자 같은 인간들 대부분이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법.

서비스로 가정 파탄 정보 하나 풀어주고 돌아섰다.

오태용은 그나마 똑똑했다.

그를 잘라내야 주순자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더 폭주할 것.

폭망이 예견된 집구석에 폭탄 하나 더 설치했다.

***

“대 크로얀 제국 황녀 폐하께서 입성하십니다!!!”

시종장의 낭랑한 외침이 크게 울렸다.

그그극.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모두들 고개를 숙였다.

나 또한 예외는 없었다.

한때는 내 영지에서 생선구이 해 나눠먹던 사이였던 여인.

그녀와 이제는 명확한 상하 관계가 됐다.

아린은 황제 대행 황녀.

난 황실수호공작.

나도 다른 이들보다 신분은 높았지만 아린은 보스다.

자박자박.

그녀의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준 황제 대우 아린이 붉은 바탕에 황금실로 수놓아진 골드 드래곤 망토를 두르고 들어왔다.

흉터가 선명한 오른쪽 얼굴에는 반면 황금가면이 부착되어 있었다.

“모두 고개를 드세요.”

그녀가 원탁회의 탁자 중앙 권좌에 앉았다.

큼지막한 마력석으로 인해 보온 보냉 마법이 걸려 있어 언제나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는 마법 의자.

지옥에 간 아라돈 드 쥬넨 후작이 남긴 선물이었다.

후작성은 매우 넓고 좋았다.

내 영지성과 비교할 수 없는 고품격 럭셔리 마법 시스템으로 건축됐다.

그곳을 차지한 아린.

고개를 들어 그녀를 봤다.

다이어트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살이 많이 빠졌다.

제국의 주인된 자로서 신경 쓸 일이 널렸을 것이다.

힐링을 위해 때마침 성에 도착한 순간 아린의 호출을 받았다.

이동 마법진 설치를 위해 진작 마탑 관계자들을 초대했지만 놈들이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하는 짓이 일본 쪽바리들을 닮았다.

미래에 내정간섭을 위해 반도체 물자를 팔지 않겠다고 했던 일본놈들은 마탑과 동급이었다.

한반도의 통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쪽바리들.

미래 먹거리를 약탈하기 위해 제대로 기회를 노렸었다.

제국이 강성할 시기에는 고개 숙이고 ‘네네’하던 놈들.

놈들이나 마탑이나 동급.

마탑은 약자인 아린에게 강짜를 부렸다.

더럽고 치사해도 참아야 했다.

왕국을 선포한 귀족들과의 전쟁은 필연.

아직은 미약하기만 한 아린을 믿고 마탑이 도박에 나설 수는 없을 것이다.

더러워도 힘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내 나라 내 것, 내 민족이 아니면 이웃한 종족들은 언제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기회를 엿보는 적일뿐이다.

“황녀 폐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나와 카이루 후작 그리고 새로 합류한 백작급 귀족들 몇몇이 보였다.

크로얀 제국을 잊지 않고 있던 충신들이다.

아린을 섬기기 위해 방랑 기사들이 매일처럼 찾아들고 있었다.

과거 황실 기사단의 후예들이 앞장서서 그녀를 수호했다.

뿌리 깊은 크로얀 제국의 저력.

그러나 과거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아직 그 힘이 미약했다.

“오늘 이렇게 경들을 급히 소환한 이유는……. 팰트론 왕국의 위협 때문입니다.”

아린이 회의를 소집한 이유와 논의할 주제를 꺼냈다.

이곳에도 봄이 찾아왔다.

전쟁하기 딱 좋은 계절.

가장 가깝게 이웃한 왕국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입니다. 사망한 아라돈 후작의 여동생이 왕국의 왕비입니다.”

이곳에 머물며 아린을 보필하는 카이루 후작의 부연 설명.

대귀족들은 혼맥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아라돈 후작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영지 상속이 주된 문제입니다. 그 쪽도 명분이 약하지 않습니다.”

자라스라 불리는 백작이 나섰다.

이곳이나 지구나 당사자 사후 부동산 재산은 언제나 문제였다.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대귀족의 땅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라돈 후작은 반역죄인.

“그건 그냥 명분일 뿐입니다.”

“……팰트론은 대대로 큰 왕국 가문이었습니다. 그 전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귀족들이 의견을 개진했다.

아라돈 후작을 훌쩍 뛰어넘는 왕국의 저력.

제국이 망한 뒤에 독립한 왕국들은 무섭게 영역을 확장하며 커가고 있었다.

“큰일입니다. 팰트론 왕국의 마법 전력이 대단합니다. 7서클 마법사를 비롯해 다수의 마법사들이 왕실 마탑 소속입니다.”

“마탑이 이럴 때 도와만 준다면…….”

“기사들의 숫자도 최소 다섯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병력도 100만이 넘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대적하기 힘들다는 얘기들로 암담한 분위기가 장내에 쫙 깔렸다.

이요한의 빈집털이 전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남은 건 전면전.

“펠트론 왕국 국왕이 최상급 마력 기사입니다. 그 휘하 기사단장 또한 상급 마력 기사가 지휘합니다.”

“휘하 귀족 가문들의 마력 기사들까지 합치면 무려 1000명이 넘어갑니다.”

적들의 질적 양적 우위가 확실했다.

“…….”

아린은 쏟아지는 보고들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당장 그녀가 결단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명분과 크로얀이라는 성 말고 그녀가 가진 것이 펠트론 왕국에 한참 못 미쳤다.

아린이 나를 봤다.

“가장 필요한 게 뭡니까?”

모인 이들 중 아린을 빼고 가장 계급이 높은 나였다.

이런 일은 윗사람이 해결하는 게 맞았다.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쏠렸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중요 군수물자입니다. 각하.”

자라스 백작이 답했다.

오늘 모인 대귀족들은 나를 포함 일곱 명.

나에 대해 아직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소문으로 주워들은 나에 관한 정보와 직접 경험한 후에 체득한 나에 대한 정보는 차이가 클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물자 말입니까?”

“기사들이 착용할 마력 갑옷과 무기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물건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웃돈을 준다 해도 마탑에서도 판매를 거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라스 백작은 제국 물자 담당이라고 했다.

“그거면 됩니까?”

“네?”

“기사 마력 갑옷 300벌? 그 정도면 됩니까?”

중국산 컨테이너 떨이 상품 취급하듯 가볍게 물었다.

“그 정도면…….”

자라스 백작이 살짝 기가 죽어 대답했다.

“기간은 얼마면 됩니까?”

“적어도 한 달 안에 준비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더 끌지 않게 시원하게 답했다.

제갈공명이 주유의 시험 통과를 위해 10만 발의 화살을 받아온 일과 비교 할 수 없는 규모.

나의 대책 없이 시원시원한 대답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과묵한 카이루 후작이 다시 물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이루 후작이 확인하듯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덤도 조금 더 준비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덤이요?”

“네~.”

다들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봤다.

아린만이 유일하게 믿음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럼 다음 안건을 토의하죠.”

그리고 이어진 귀족들의 연속 회의.

다들 복잡한 심사의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못 믿겠지? 기다려봐.

내가 다 준비해 놨다니까.

***

“정말……. 괜찮아요?”

모두들 물러갔다.

넓은 공간에 나와 아린만이 남았다.

황실 수호 공작과 황녀간의 은밀한 대화에 낄 자는 없었다.

“아린.”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코앞에 서 있는 황금 가면으로 얼굴 반쪽을 가린 그녀.

흉한 흉터가 가려지자 아린은 완벽한 여신이었다.

“네.”

황제에 직위하지 않았지만 유일한 황가의 핏줄인 아린이 내 말에 부드럽게 답했다.

사락.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장 위험한 자리에 오른 그녀.

나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런 아린을 지키지 못하면 주민번호 뒷자리 시작을 2로 바꿔야 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말이야. 남자들이 자신들의 여자를 위해 이런 말을 해.”

“어떤 말요?”

품속에서 속삭이는 아린.

“오빠…… 믿지?”

“…….”

품에 안긴 채 선뜻 대답을 하지 않는 아린.

너무 셌나?

“네……. 아린은 오빠, 아니 당신을 믿어요.”

그래! 똑똑한 우리 아린.

그녀를 품에서 살짝 밀어 얼굴을 바라봤다.

촉촉하게 눈빛이 젖어 있는 이계 여자 친구.

그녀의 드러나 있는 뺨이 사과 빛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

천천히 내 입술이…….

- 에라이! 이계 막장 바람둥이 XXX!!!

지금껏 닥치고 있다 불필요한 순간 출현해 욕을 퍼붓는 알파닥.

항상 말하지만…… 알파닥.

부러우면 지는 거다.

후후후후훗.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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