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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장. 복수의 시간들 (2) (623/1,284)

626장. 복수의 시간들 (2)

“이…….”

장태산을 쓰러뜨리기 위해 동룡 그룹 주식을 매입했던 전문수.

이를 악물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이가 없어 분통이 터졌다.

느닷없이 터진 동룡 그룹의 악재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회장실에 설치된 모니터에 시시각각 주식 시황이 한눈에 보였다.

국제 신용 평가사인 마디스의 갑작스런 개입.

하루아침에 동룡 그룹 계열사 신용 등급 전부가 정크 수준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동룡 그룹 계열사 주식들이 순식간에 하한가가 됐다.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쌓여가는 매물.

수백억대를 투자한 만큼 떠안은 손해가 막심했다.

“진정 마디스를 움직인 배후가 놈이란 말인가……. 도대체 이런 수법까지 쓴다는 게 가능해? 그 어린놈이!!”

전문수도 범접하기 불가능한 영역이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손에 꼽히는 재벌 순위에 드는 기업.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연대중공업은 유조선이나 LNG선을 만드는 그런 조선소 중 하나였다.

가뜩이나 요즘 들어 조선업 불경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

아직 일감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언제 신용 평가 기관이 철퇴를 때릴지 몰랐다.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조선소들이 덤핑을 밥 먹듯이 던졌다.

발주는 줄어들고 가격은 떨어지니 단가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해마다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노조 때문에 인건비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상승했다.

인건비와 사업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헐값에 수주 경쟁에 뛰어든 마당.

그 와중에 터진 동룡의 악재.

백기사 역할을 하고 싶었던 전문수가 큰 타격을 입었다.

해외 비자금을 통한 투자였던 만큼 손실이 뼈아팠다.

“장태산……. 도대체 네놈은…….”

전문수는 목에서 신물이 다 올라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놈이라고 얕잡아 봤다가 큰 코를 다쳤다.

게다가 오수연도 요즘 들어 연락하기가 힘들었다.

화보 촬영과 새 작품에 들어갔다면서 은근히 자신을 피하는 눈치였다.

어차피 가까운 시일 내에 정리하려고 했었다.

집에 있는 와이프 눈치가 심상치 않았다.

과거 선친 때와 달리 후처를 함부로 들일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밖으로 좋지 않은 소문이라도 퍼지면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체면과 감투를 내놓아야 했다.

시대가 그랬다.

“오수연이 도망칠 정도라면…….”

오수연은 강예서 소속사를 방문한 뒤 며칠 동안 전혀 외출을 하지 않았다.

독하고 영악한 그녀가 장태산을 만나고 온 뒤 두문불출 했다.

그건 뭔가에 대단히 놀랐다는 의미.

KM 백형조도 MTS에 대한 공격을 멈췄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업되어 패배를 맛봤음이 확실했다.

“흐음……. 동룡의 대웅 건설 인수는 물 건너갔군.”

증권사 시황창에 속보가 떴다.

우리들 은행에서 내일 돌아오는 동룡 계열사 대출 연장을 거부했다는 내용.

이렇게 되면 타 은행들도 앞 다투어 대출 회수에 나설 것이다.

정부에서도 막을 수 없었다.

돈을 빌려줄 때는 간이라도 다 내 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손실 앞에서는 저승사자로 돌변하는 자들이 은행이었다.

대웅 건설 인수를 위해 만들어 놓은 1조가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다.

여기저기서 발행한 전환사채뿐만 아니라 고리사채까지 끌어 썼다고 소문이 자자한 동룡.

대웅 건설 인수 문제가 아니라 동룡의 존폐 문제였다.

“손절이 답이야.”

뼈아프지만 전문수도 손절 주문을 비밀 대화방에서 지시했다.

띠링.

비자금을 관리하는 자가 알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군.”

큰형 전문구가 직접 만나봤다던 장태산.

직접 보고 놈의 그릇을 평가해 보고 싶었다.

삐이이잇.

그때 울리는 비서실의 인터폰.

“무슨 일이야?”

[전문구 회장님이 로비에 도착했습니다.]

“형님이?”

전문수는 의아한 표정이 됐다.

형님이 찾으면 무조건 자신이 연대 자동차로 걸음했다.

이렇게 형님이 먼저 찾아온 건 몇 년 만에 있는 일.

“정중히 모셔.”

[이미……. 올라가고 계십니다.]

안내 데스크와 연결된 직통 비서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아버지를 닮아 성격이 불같은 전문구.

입맛을 다시며 전문수는 큰 형을 기다렸다.

대통령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때론 큰 형 전문구였다.

전문수는 옷차림을 가다듬었다.

덜컹.

그때 급하게 열리는 회장실 문.

“형님. 오셨습니까.”

전문수가 자동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벅저벅저벅.

인사도 받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전문구 회장.

“???”

이상한 기분에 전문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쇄애애애애앳.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노가다 판에서 일을 배운 큰형.

그의 솥뚜껑만 한 손이 허공을 갈랐다.

“!!!”

얼마나 놀랐는지 피할 생각도 못한 전문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쫘아아아아악.

“악!”

콰다다당.

뺨에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

단 한 대에 전문수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혀, 형님!!!”

곧바로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형님에게 허구한 날 뺨을 맞던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참 지난 과거였지만 기억이 확 떠올랐다.

여기서 개기면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전문수도 엄연히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

하지만 그런 사적인 입장을 따질 전문구 회장이 아니었다.

도리에 어긋나면 가차 없이 엄하게 훈육하는 전씨 가문.

아버지가 살아 계실 당시에는 집에 모여 한자리에서 새벽 밥 먹고 출근을 했을 정도였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집안 말아먹을 싹수가 있는 새끼는 다리를 분질러 버리라고.”

화를 꾹 누르며 또박또박 내뱉는 전문구 회장의 음성.

부르르.

전문수는 엄습해 오는 공포에 온몸을 떨었다.

아버지의 유언이 그거였다.

자신이 떠난 후 아우들이 잘못하면 큰형인 전문구가 아버지 대신 엄하게 훈육하고 가르치라는 주문.

완벽하게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큰형 전문구를 두려워했다.

뚝심 넘치는 모습은 아버지 생전 모습 그대로를 빼닮았다.

“노여움을 푸시고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려주시면…….”

“장태산!”

“!!!”

장태산이라는 이름에 다시 한 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에서 부린 수작질이 걸린 게 확실했다.

나름 조심한다고 했지만 연대 자동차 정보팀에 발각된 게 분명했다.

“내가 조심하라고 너에게 경고했건만 형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리더냐? 네 상대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쩌렁쩌렁 울리는 전문구의 호통.

“그게…….”

“그놈은 산군 중에서도 가장 큰 지리산 대호다. 그런데 일개 여우 새끼 주제에 장난질을 해? 너 때문에 연대에 피해가 오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 미련하고 멍청한 자식아!!!”

큰형의 고함에 전문수는 머리가 웅웅 울렸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멍해졌다.

전문구 회장의 말은 우려가 아닌 진심이었다.

자칫 그룹에 타격이 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꿀꺽.

얼얼한 뺨의 고통이 잦아들고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자존심 하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제가 알아서……. 수습을 하겠…….”

“닥쳐! 새끼들 단속도 못하는 못난 놈이 무슨 수습이야!”

전문구의 분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동룡, 곧 넘어간다. 어리석은 놈이 그런 곳에 비자금이나 털어 넣고…….”

이미 전문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있었던 전문구.

“장태산은 나도 상대하기 벅찬 놈이었다. 오정 임성철 회장도 막내딸을 던졌을 정도면 말 다한 것이야. 그런데 감히 주제도 모르는 놈이 딴따라 계집 따위로 상대하려 하다니…….”

전문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가진 같잖은 권력줄은 쓸 생각도 하지 마라. 장태산은…… 백악관이 뒷배다.”

“!!!”

전문구가 전하는 충격적인 말에 전문수는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노는 물 자체가 다르다. 나이는 문제가 안 돼.”

대한민국 내 기업들 중 손꼽히는 재벌이 분명한 전문구 회장.

그런 그가 스스로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조만간 자리를 만들 테니…… 준비해라.”

“아, 알겠습니다.”

“이제 정치 같은 것에서는 손을 떼. 아버지도 못한 걸 네깟 놈이 뭘 어쩌겠다고……. 에잉. 쯧.”

전문수를 쳐다보며 혀를 차는 전문구 회장.

“지켜보마.”

저벅저벅.

못난 동생에게 뜨거운 교육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전문구 회장.

“크으으으…….”

부끄러움과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짐승의 것 같은 신음을 흘리는 전문수.

그의 눈에서 늙은 여우의 눈물이 진하게 흘러내렸다.

***

“너…… 너!”

전화기를 든 주현태의 낯빛이 새카맣게 변했다.

갑자기 뒷목으로 혈압이 치솟으며 안면 혈관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악마 같은 놈이었다.

돌아가는 모든 정황을 다 알고 전화를 한 게 맞았다.

- 무슨 일 있습니까? 목소리가 안 좋으시네요.

태연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묻는 장태산.

“네놈 짓 맞지! 네놈이 다 꾸민 짓이 맞지!!!”

주현태가 눈에 핏대를 세우며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안아와 천일이 어떤 경로로 작업됐었는지 잠깐 잊었다.

타인이 겪는 불행 같은 것에 주현태는 쉽게 공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남의 일이라 여겼던 안아와 천일.

이제 와서 자신도 처지가 다르지 않은 입장이 됐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어버린 상태.

- 뭘 꾸며요? 나이도 어린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상투도 못 튼 어린놈의 새끼가 말입니다.

스스로를 낮추며 비하하는 듯했지만 전혀 반대로 해석됐다.

나이도 어린 자신에게 당한 어리석은 놈이라고 욕하고 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돌려놔라……. 마지막 경고다.”

이를 악물고 주현태는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으며 경고했다.

- 왜요! 저를 비롯해 가족들 모두 외할머니 때처럼 죽이시게요?

전혀 감정을 섞지 않은 무덤덤한 말투로 묻는 장태산.

으드득.

더 화가 치미는 주현태는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 외삼촌, 남자는 말입니다. 경고 그딴 거 필요 없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사람도 죽이는 분이 낯간지럽게 왜 그러십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며 사세요. 그 쥐꼬리만 한 재력 얼마 남지도 않은 것 같은데……. 후후.

“야! 장태산!”

- 네~ 외삼촌~

넉살 좋게 실실거리며 대꾸하는 장태산.

“너…… 너 이 빌어먹을 개자식…….”

- 지금 개인적인 감정으로 화내고 그러실 만한 시간 있으십니까? 신용등급은 강등되고 은행은 돈 달라 아우성이고……. 통장에 있는 돈도 다 빌린 거라 금방 털릴 텐데……. 이거 어쩌나. 돈 좀 빌려드려요? 제가 특별히 외삼촌 되시니까 빌라 지하 보증금 정도는 그냥 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이 아니잖아요~.

장태산은 연신 놀리듯 말을 이었다.

“크으…….”

주현태는 뒷목이 당겨와도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놈이 파놓은 함정에 제대로 걸렸다.

주순자만 믿고 판을 키웠다가 왕창 엎어지는 형국.

판돈 없는 도박꾼의 말로와 비슷했다.

‘당했다!’

뼈저리게 정곡을 찔러오는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은 단 하나.

- 바쁘신 것 거 같은데…… 전화 끊겠습니다. 저라면 당장 여기저기 돈 빌리러 다닐 텐데……. 건승을 빕니다. 외. 삼. 촌!

뚝.

외삼촌이라는 호칭을 귀에 박히도록 또박또박 부른 후 통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장태산.

‘돈!’

주현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은행권에서는 대출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장태산 말처럼 어디서든 돈을 빌려야만 했다.

돈은 그룹은 물론 자신의 생존과 직결됐다.

일분일초를 낭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티디딕.

빠르게 스마트폰으로 번호를 검색해 누군가와 통화를 시도하는 주현태.

- 여보십시오.

언제 들어도 느긋하고 여유가 느껴지는 상대의 목소리.

“허대부님, 동룡의 주현태입니다.

- 주 회장, 무슨 일인가? 지금 한참 바쁠 때 아닌가.

‘영감탱이, 다 알고 있으면서!’

사채왕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모른다면 말이 안 됐다.

더군다나 여기서 동룡이 쓰러지면 사채왕도 큰 손해를 입는다.

주현태를 비롯해 가족들의 주식과 여러 물건 담보가 잡혀 있는 상황.

“대부님, 저를 좀 더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주현태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최대한 겸손을 떨었다.

이제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단 한 명, 허대부밖에 없었다.

주순자도 이런 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세 주순자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우리들 은행 현준규 행장이 자신을 쳤다.

그건 이미 자리를 걸었다는 의미.

- 도와줘야지. 나도 손해를 볼 수는 없으니까. 한 2000억이면 되나?

‘좋았어!’

주현태는 왼쪽 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쥐새끼 같은 놈, 기다려라! 이번 위기만 넘기면…….’

주현태는 장태산이 허대부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다.

잘만하면 모든 걸 한 방에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었다.

“그럼 바로…….”

- 변호사와 같이 오게나.

“네?”

- 상황이 변했으면 조건도 바뀌는 게 이 바닥 규칙 아닌가. 설마 나를 봉으로 보는 건 아니지?

“그, 그럼요. 변호사 대동하고 가겠습니다.

- 기다림세.

통화는 잘 끝났다.

“으으으.”

긴장이 풀리자 주현태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떤 조건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반드시 돈을 빌려야 했다.

걸려 있는 돈의 규모가 큰 게 다행이었다.

한 번 망하고 나면 다시 재기할 수 없는 대한민국 내에서의 사업.

‘이 새끼, 장태산…… 기다려라! 오늘 받은 수모는 백 배 천 배로 갚아주마!’

뒤통수에 올라왔던 혈압은 스르르 가라앉았다.

한숨 돌린 주현태는 다시 한 번 이를 갈았다.

정작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태산이 쳐놓은 그물이 얼마나 촘촘하고 단단한지.

밧줄의 굵기와 그물의 폭이 얼마나 넓고 넓은지를…….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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