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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장. 분노하는 남자는 아름답다 (619/1,284)

622장. 분노하는 남자는 아름답다

“이런……. X새끼들이!”

“!!!”

즐겁게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갑자기 욕을 내뱉는 장태산.

세 사람 모두 급작스러운 상황에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 친절했던 남자의 분노.

‘왜?’

허보영은 장태산의 시선이 멈춘 곳으로 눈을 돌렸다.

예비역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학생들이 낄낄거리며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스마트폰 각도가 묘했다.

3층 식당 계단 쪽을 향한 스마트폰.

그 방향에는 계단을 올라가는 짧은 치마 입은 여학생의 날씬한 뒷모습이 보였다.

각도 상 정확하게 그쪽을 향하고 있는 스마트폰.

대충 상황이 짐작되었다.

과거 대학교 재학 시절에 느꼈던 불쾌하기 그지없는 그 기분이 되살아났다.

“태산아…… 왜 그래?”

아직 눈치를 못 챈 권예림이 당황하며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 점심은 청소하고 먹자.”

말과 함께 성큼성큼 걸어가는 장태산.

“응? 청소?”

“예림아, 가만있어.”

눈치 빠른 신은진이 권예림의 팔을 붙들었다.

‘상남자네.’

명동 사채왕인 아빠 허대부 앞에서도 느긋하기만 했던 장태산.

그가 거침없이 분노를 드러냈다.

거친 에너지가 활활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허보영은 장태산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빠가 대놓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남자.

그의 말대로 큰 걸음으로 쓰레기 청소를 하러 갔다.

“어디 가는 거야?”

“청소.”

권예림의 물음에 허보영이 심플하게 답했다.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신은진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허보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대는 둘.

딱 봐도 예비역으로 보이는 남자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변호사 장태산이 더 약해 보였다.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이네.”

“응? 뭐라고?”

“스키 뭐?”

허보영의 중얼거림에 친구들이 의아해하며 물어왔다.

‘완벽하게 일치해.’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던 허보영.

장태산은 자기 정체성과 일관성에 집착하는 파라노이아형 인간은 아님이 확신했다.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

처해진 상황과 조건에 맞게 직감으로 움직이는 인간형이었다.

일명, 감으로 사는 사람들.

노력의 총량보다 노력의 방향성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시대에 어울리는 장태산.

“이 쓰레기 새끼들! 당장 멈추지 못해!”

벼락처럼 울려 퍼지는 장태산의 외침.

“와아아……. 박력 보소.”

“쩐다.”

권예림과 신은진이 장태산을 지켜보다 화들짝 놀랐다.

전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장태산.

허보영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를 계속 바라봤다.

***

“다, 당신 뭐야!”

도촬로 몰카를 찍어 실시간으로 단톡방에 올리던 미대생 용창승.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했다.

갑자기 나타나 벼락같이 소리치는 남자.

모델처럼 키가 꽤 컸고 얼굴값이라도 하려는 듯 인물도 잘났다.

한눈에 봐도 재수 없는 스타일.

대뜸 큰소리부터 치던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내놔.”

“뭐, 뭘!”

‘X바 X됐다!’

용창승은 일단 시치미를 떼며 친구 유태윤을 바라봤다.

당황하기는 유태운도 마찬가지.

오늘은 신입생 입학 당시부터 유명했던 4학년 여학생이 타깃이었다.

선배나 동기들이 몇 번이나 대시했지만 철벽 방어로 일관하던 예술대 퀸카.

4학년이 되었지만 1학년보다 피부가 더 좋았다.

화장기 없는 물광 피부의 주인공.

오늘 입고 온 살짝 짧은 치마, 그리고 눈에 확 들어오는 매끈하게 빠진 다리의 각선미.

새하얀 피부는 보기만 해도 음심이 동했다.

밥 먹고 벤치에 앉아 있던 용창승과 유태윤은 주로 눈에 띄는 여자 후배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

같은 학번 남학생들만 들어올 수 있는 단톡방에 실시간으로 따끈따끈한 영상들을 올렸다.

남자들만 공유할 수 있는 음란한 대화가 주를 이뤘다.

직접 경험한 연애담이나 자극적인 성적 내용들, 같은 과 여학생들에 대한 품평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핫한 이슈는 지금 막 촬영한 그녀.

- 오늘따라 다리 라인 더 죽이네!

- 크크. 이거 하드 소장각.

- 걔 꼴!

- 오! 10점 만점에 11점!

- 짧다 짧아……. ㅋㅋ

- 죽인다. ㅎㅎㅎ

- 동영상 더 찍어!

깨톡 깨톡.

그 사이에도 알림음은 계속 울렸다.

“개새끼들…….”

장태산은 잔뜩 굳은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

“뭐라고! 너 뭐야! 왜 시비 털어 XX로마!”

“개새끼? 너 뒈지고 싶어!!!”

서로 눈을 맞추던 용창승과 유태윤은 건수를 잡은 듯 버럭 소리를 지르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턱!

그때 장태산이 용창승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잡았다.

“!!!”

급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두 사람.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놔! 그 손 못 놔!”

“이 새끼가 미쳤나! 너 무슨 과야!!!”

증거가 담긴 스마트폰을 빼앗기게 될 상황에 처하자 두 사람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몰카로 인한 발생하는 피해와 그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학교 내에서도 특별 공지가 내려온 상태.

걸리면 빼박이었다.

“뭐야? 대낮부터 싸워?”

“무슨 일이야?”

“스마트폰은 왜?”

점심시간 때라 식당 주변으로 오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금세 세 남자 주변으로 몰려드는 호기심 가득한 학생들.

‘X바!’

주도적으로 사진을 찍었던 용창승의 얼굴은 이미 하얗게 질렸다.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놈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저히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대로 있다가는 일이 커질 게 확실했다.

“이런 미친 새끼가!”

휘이익.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유태윤이 장태산의 얼굴 쪽으로 주먹을 날렸다.

뻐억!

작렬하는 주먹.

“꺄아아아아악!”

“싸운다!”

“112에 신고해!!!”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지며 순식간에 난장이 됐다.

지성의 요람인 대학교.

최근 들어서는 거의 구경할 수 없었던 학교 내 풍경에 모두 놀랐다.

‘뭐, 뭐야! 이 새끼!’

유태윤은 진심으로 놀랐다.

주먹을 날렸는데…… 웬일인지 자신의 손이 얼얼했다.

느껴지는 고통에 얼떨결에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쌌다.

파바밧.

그 사이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시비가 붙은 모습을 촬영했다.

“왜 저래?”

“스마트폰이잖아.”

“저걸 가지고 무슨 짓 한 거야?”

“몰카 찍었나 봐요.”

허보영이 슬쩍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여학생 한 명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뭐? 몰카!!!”

“꺄악! 지금 도촬 중이었던 거야?”

그 한 마디에 여대생들이 일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촬영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떤 과야! 우리 학교 학생 맞아?”

“미대생이네.”

“이번에 복학한 선배들 아냐?”

“세상에 대낮부터 발정난 거야?”

“말리다 맞은 남자 분 어떡해.”

금세 말은 입과 입을 통해 퍼져 나갔다.

“놔! 놓으라고! 이 빙신 새끼야!!!”

“너 정체가 뭐야! 우리한테 왜 이러는데!”

급기야 용창승과 유태윤은 악을 썼다.

더 이상 폭력을 쓰기에는 상황이 안 좋았다.

힘을 잔뜩 주며 스마트폰을 되찾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법학과 08학번 변호사 장태산.”

귓속으로 정확하게 들려오는 저승사자의 목소리.

“벼, 변호사!”

용창승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법학과 학생인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

거기에 변호사라는 말까지 붙자 정신이 멍해졌다.

특히 주먹을 날린 유태윤의 표정은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현직 변호사에게 폭행을 행사한 모자란 놈이 됐다.

“2010년 재정 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의한 특례법 제13조!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관한 벌률 위반! 카메라나 그 밖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음성 파일을 틀어놓은 듯 자연스럽고 우직하게 흘러나오는 장태산의 목소리.

용창승과 유태윤은 인상을 쓰며 두 눈을 감아 버렸다.

확실히 변호사가 맞는 것 같았다.

“야! 찍어!”

“학교 게시판에 올려!”

“저런 놈들은 퇴학 시켜야 해!!!”

흥분한 학생들 사이에서 더 난리가 났다.

삐뽀 삐뽀 삐뽀.

그때 지령을 받고 나타난 순찰 중이던 경찰차.

학교 주변에 있었던 듯 빠르게 나타났다.

학생들이 모여 있는 식당 앞에 주차했다.

“신고 받고 왔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경찰차에서 내린 경위 계급의 경찰관이 상황에 대해 물었다.

“경찰관님! 이 자식이 제 스마트폰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용창승이 잔머리를 굴렸다.

다시 손에 쥐기만 하면 상황은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계속해서 상황도 모르고 열나게 울리고 있는 알림음.

자칫 이 자리에서 공개라도 되면 한순간 매장이었다.

“저분 말이 맞습니까?”

신림 지구대 소속 남주형 경위가 확인 차 물었다.

“맞습니다.”

“……그럼 돌려주시죠.”

‘바빠 죽겠는데 이런 일로 신고야.’

남학생들 간에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 남주형 경위.

폭행 신고가 들어와 출동했지만 다행히 말짱해 보였다.

대한민국 최고 지성인이라 평가 받는 한국대생.

그들이 대낮부터 주먹을 휘두르며 싸운다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았다.

“현행범 증거보전 중입니다.”

“네?”

갑자기 튀어나온 현행범 증거보전이라는 말.

일반인은 보통 사용하지 않는 용어였다.

“뭐하시는 분입니까?”

남주형 경위 옆에 있던 강재환 순경이 물었다.

“JS 로펌 소속 변호사 장태산입니다.”

“네? 로펌 변호사요???”

변호사라는 말에 경찰관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쉽게 생각하고 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자칫 여기서 작은 실수라도 범하게 되면 큰 사고가 됐다.

학생들 손에서 연신 플래시가 터지고 있는 스마트폰.

대충 처리했다가는 하루아침에 무능한 경찰로 낙인찍힐 수 있었다.

“어떤 범죄입니까?”

표정을 바꾼 남주형 경위가 물었다.

“몰카 찍었어요!”

“저 미대생들이 여학생들 도촬했어요!!!”

“우리가 봤어요!!”

“저놈들이 변호사님 얼굴도 때렸어요!”

사방에서 들려오는 여학생들의 분노한 목소리.

용창승과 유태윤은 절망에 빠졌다.

그 어느 방향에서도 우호적인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의한 특례법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특정되었습니까?”

남주형 경위가 신중하게 물었다.

현행범이라고 할 수 있지만 촬영한 것을 직접 본 게 아니다.

어정쩡하게 사건을 처리하면 피의자들이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진정하게 될 것이다.

일이 또 그렇게 흘러가면 곤란했다.

“제 여동생이…… 피해잡니다.”

“네? 여동생이요???”

뜬금없는 변호사의 말.

“누구…….”

경찰관 두 명이 주변에 몰려 있는 여학생들을 둘러봤다.

그 때.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미모의 여학생.

짧은 치마를 입은 그 뒷모습의 주인공이었다.

“오빠…….”

그녀가 장태산 변호사를 보며 정확하게 ‘오빠’라고 불렀다..

“주아야. 오빠가 이 새끼들 너 도촬 혐의로 대리해서 고소한다. 동의하지?”

“어? 응…….”

분위기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계속 흘렀다.

용창승과 유태윤은 이미 넋이 나간 상태다.

“피해자가 동의했습니다.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스마트폰은 증거로 보전해 주십시오.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확인할 것도 없는 상황.

“강 순경 연행해!”

“넵!”

“스마트폰 주십시오.”

남주형 경위가 손을 내밀었다.

“아, 아니에요! 내가 찍은 게 아니라고요!!!”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정하는 유태윤.

“으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꼬일 대로 꼬여버린 상황에 비명을 지르는 용창승.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할 수 없이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차가운 눈빛의 장태산.

“오늘 점심은 다음에 갚도록 할게.”

장태산은 허보영과 친구들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멋있잖아.’

허보영의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정의를 위해 분노하는 남자.

그 모습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깨달았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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