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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장. 허대부 (2) (609/1,284)

612장. 허대부 (2)

“여사님, 이렇게 화끈하게 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 은혜는 무슨……. 동룡 주 회장님이 우리 애들을 예뻐라 했잖아요. 짐승도 아닌데 은혜는 갚고 살아야죠. 제가 원래 계산은 깔끔하잖아요.

“맞습니다. 여사님 계산은 언제나 정확하십니다.”

동룡의 주현태는 온갖 아부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저런 정보를 모아 일찍부터 주순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관계를 돈독히 해 왔다.

자식들을 승마로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하던 그녀에게 말(馬)로 접근했다.

해외 비자금을 동원해 비싼 말들을 수입해 넘겼다.

그 결과 주순자의 아들과 딸은 무난하게 명문대에 입학했다.

공짜가 아니었다.

그 대가로 주현태는 대웅 건설을 원했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더 이상 사업 확장을 하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

주현태의 그릇은 딱 수준이 거기까지라고.

이렇게 대웅에 욕심을 내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그 말이 주현태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계모를 없애고 모든 지분을 획득한 주현태는 열심히 사업을 확장했다.

알짜 그룹이라 돈이 되는 사업체가 많았다.

그룹이라면 한 번씩 다해 보는 바이오 쪽에 손댔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돈이 뭉텅이로 들어갔지만 성과 내는 게 만만치 않았다.

이런 저런 사업에 더 투자를 해봤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봤다.

일송회에 줄을 대고 특혜를 받아 유지했지만 여전히 사업은 쉽지 않았다.

이복동생과 조카가 그 틈에 등장했다.

거지꼴이 아니었다.

재벌 급 수준의 자산을 소유한 그들.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재산을 빼돌렸다고 주현태는 확신했다.

대한민국에서 자수성가해서 재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분노를 삼키며 큰 건수를 준비했다.

금구가 토해놓은 대웅 건설 인수.

진정한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인 주순자를 통해 작업에 들어갔다.

수년 간 쌓았던 공이 튼튼한 지지대가 됐다.

대웅 건설을 동룡에 넘겨주기 위해 권력이 움직였다.

‘기다려 건방진 새끼!’

주현태는 조카에게 당했던 수모를 잊지 않았다.

안아와 천일 건설을 암중에서 조종한 조카.

자신에게 보였던 강렬한 적대감을 주현태는 똑똑히 기억했다.

싹이 더 크기 전에 잘라야 했다.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가장 강력한 한 방은…….

“따로 부탁할 건 없나요?”

주순자는 주현태를 마음에 들어 했다.

자식들 일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세심하게 많이 챙겨줬다.

앞으로 함께 해도 될 파트너로 여겼다.

“제 이복 여동생이 아버지 유산을 몰래 받아서 착복한 것 같습니다.”

“어머. 그래요?”

주순자가 대번에 관심을 보였다.

그룹 유산 싸움은 돈이 좀 됐다.

“제가 부탁할 때 도움을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보은하겠습니다!”

보은을 강조해 말하는 주현태.

“당연히 도와줘야죠. 때가 되면 연락 주세요.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 회장님은 확실히 밀어 드릴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여사님!”

‘흐흐흐. 장태산…… 기다려라! 너를…… 확실히 밟아주마!’

이런 권력을 등에 업고 있어서 당당히 여동생을 찾아가 돈 내놓으라고 소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복수에 희망이 보였다.

최병박 정부와 다른 조근영 정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통용되고 비상식이 상식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

‘저 차는 뭐야? 그리고…… 저 남자는 또 누구야?’

법학관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던 허보영은 화들짝 놀랐다.

올 초에 출시된 자신의 것과 똑같은 스포츠카가 떡하니 주차되어 있었다.

어이가 없어 함께 쳐다봤다.

국내에서는 아직 자신만 그 차를 몰고 있었다.

그런데 똑같은 종류의 스포츠카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차만 문제가 아니었다.

주차장과 가까운 현관 입구에 서 있는 저 남자.

모델 같다.

손에 자신과 똑같은 차키를 들고 있었다.

그 남자도 어이가 없는 시선으로 자신을 봤다.

파바밧.

두 사람의 눈이 부딪쳤다.

‘뭐 이렇게 잘 났어?’

허보영은 연지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입학 뒤 미래를 고민하던 중 로스쿨을 선택했다.

연지대 졸업 후에 한국대 로스쿨에 무난하게 합격했다.

올해 2년차.

로스쿨 법학관에서 허보영은 유명했다.

언제나 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로스쿨 미녀.

허보영에게 감히 고백할 수 있는 남자는 없었다.

허보영도 아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이 높았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어둠의 경제인인 아버지.

허보영의 마음을 흔들고 아빠 눈에 들 남자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다.

재벌가 자식들 상당수가 제정신 박힌 이들이 드물었다.

갑질이 몸에 배고 약이나 여자 같은 자극적 쾌락을 탐했다.

개중에 괜찮은 남자들을 골라 몇 번 만난 적이 있지만 대부분 허보영을 은근히 무시했다.

허보영의 배경을 노리는 천박한 속성이 훤히 보였다.

남자에게 실망한 허보영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로스쿨 재학 중인 만큼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 허보영의 눈에 확 들어오는 남자.

스타일도 다른 학생들과 달리 깔끔하고 몸가짐이 세련 됐다.

쉽게 볼 수 없는 남자.

또각또각.

힐을 신고 있는 허보영이 먼저 다가갔다.

‘……진짜 뭐야?’

머리카락은 짧고 단정했다.

대충 걸친 것 같지만 고가의 명품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자신감.

건방지거나 오만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저차 주인이세요?”

허보영은 머리칼은 넘기며 자연스럽게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발휘되는 스킬.

“네.”

짧게 대답하는 남자.

검은 눈동자가 허보영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나에게 관심 없는 거야?’

아빠는 밖에서 함부로 옷을 입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여자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고 교육했다.

투피스 정장에 회색 체크무늬 톰 그레이하운드 코트를 입고 있는 허보영.

자신이 봐도 괜찮았다.

졸업할 때까지 연지대 경영학과 퀸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의 눈빛은 시큰둥했다.

“여기 학생이세요?”

“네.”

‘처음 보는데…….’

아무리 봐도 초면이다.

저런 남자를 봤는데도 기억에 없다면 치매였다.

“신입생이세요?”

평소와 달리 허보영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닙니다.”

“네? 신입생이 아니면 다른 과?”

어려보이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만만치 않았다.

집에 찾아오는 기업가들을 많이 봐온 허보영은 남자에게서 묵직한 포스를 느꼈다.

“법학과 08학번입니다.”

“아! 법학과!”

바로 이해를 했다.

로스쿨 때문에 둥지를 빼앗긴 법대생.

다르게 보였다.

로스쿨에 입학한 한국대 법대생은 드물었다.

타과나 다른 학교 졸업생이 상당수였다.

한국대 법대생이라면 그 자체가 사회적 명함이었다.

“작년에 못 봤는데 이번에 복학하셨나 봐요. 군대 다녀오신 거예요?”

‘오늘 나 왜 이래?’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허보영은 남학생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스터디도 여학생들 위주로 꾸렸다.

남자들과 인간관계 맺는 걸 좋아하지 않는 허보영.

오늘은 수다쟁이처럼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그럼 신림동?”

로스쿨에 들어가지 않은 법대생들은 신림동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합리적 질문.

하지만.

“……연수원에 다녀왔습니다.”

“네? 여, 연수원요???”

***

저 차는 뭐야!?

부끄러웠다.

로버트 거짓말쟁이다.

분명 나에게는 새로 나온 신차라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거라 했다.

대당 5억을 호가하는 스포츠카.

누가 보면 돈 자랑하고 싶은 커플이 몰고 옷 것처럼 주차장에 나란히 두 대가 주차됐다.

그 차에서 내린 상당한 미모의 여인.

지금 내 앞에서 호구조사를 진행 중이다.

내 나이 또래로 보였다.

화장은 가벼웠지만 학생 같지는 않았다.

로스쿨은 대학원 개념이니 준사회인처럼 느껴졌다.

가벼운 화장과 고급 향수, 튀지 않지만 가격이 대단한 명품들을 조용하게 두르고 착용했다.

최소 재벌 급 자제.

웨이브 머리칼을 가볍게 넘기며 작업이 들어왔다.

계획적이지 않지만 그 자체가 여성성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설마……. 합격하셨어요?”

흔들리는 눈동자.

“네.”

“그럼…….”

“변호삽니다.”

여자는 전혀 천박하게 보이지 않았다.

기운이 맑았다.

뭔가 독특한 인상이다.

관상도 특이했다.

엄청난 부를 소유할 재복의 상을 타고 났다.

동시에 감춰져 있는 미래 운명선.

죽음의 사기가 어두운 상에 숨어 있었다.

곧 죽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죽음이 확정적이지도 않았다.

귀인의 도움을 받을 운명선도 보였다.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스윽.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JS 로펌 변호사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조금 전 명함은 협박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순수하게(?) 사업용이다.

미래 잠재 고객이 될 가능성이 엄청 높았다.

명함을 받아드는 그녀.

“대단해요. 08학번이면 나하고 같은 학번인데…… 벌써 변호사라니…….”

이름도 모르는 여자는 존경의 시선으로 날 봤다.

법 공부를 하고 있어서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 친구들도 변호삽니다. 저만 특별한 게 아닙니다.”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 1년을 이곳에서 마주쳐야 했다.

남아 있는 과목은 전공 수업이 대다수.

자주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법학관에서 마주쳐야만 했다.

같이 점심 먹기에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알던 이들 대다수가 학교를 떠났다.

“그런데 학교에는 왜?”

“그보다 이름을 알려주는 게 먼저 아닐까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예의가 아님을 알고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그녀.

사람이 살다보면 인연은 피할 수 없는 법.

남녀관계가 아니더라도 좋은 인연은 인생을 살찌우는 재료다.

“허보영이라고 해요. 로스쿨 2학년 재학 중이랍니다.”

밝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허보영.

맑게 웃는 그녀의 가지런한 치아가 봄 햇살에 보기 좋았다.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은 악하지 않는 법.

“다음에는 차를 바꿔서 오겠습니다.”

“왜요?”

“괜히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오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그녀.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커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안 되나요?”

응? 뭐라고???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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