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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장. 야인(野人)의 부탁 (2) (605/1,284)

608장. 야인(野人)의 부탁 (2)

“곧 봄입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따뜻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진작 봄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가요? 하하하하하하.”

삼청동에 위치한 고급 한정식집의 한 룸.

조국일보 반종현 대표와 리앤장 손대균, 한국자유당의 중진 전운택 의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 사람 모두 기분이 좋았다.

최병박 정권 때부터 시작된 한국자유당의 득세는 일송회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국민들은 예상했던 대로 지역과 나이, 성별로 확연히 갈라졌다.

오랫동안 계획되어 온 술책과 교묘하게 연출된 언론을 통해 시시때때로 세뇌시켜온 결과였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여론이 먼저 통합되는 게 수순이었다.

하지만 현 대한민국은 사회적 갈등이 폭발 진전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가 지난해 대선 선거.

국민들 간의 갈림 현상은 극에 달했다.

여론조작은 물론 적극적 선거개입을 통해 정권을 다시 잡았다.

필요하다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수족처럼 움직여주는 자들을 통해 통제했다.

사회 현상에 대해 할 말 다 하는 언론인은 물론 아둔한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데 일조하는 예술인들을 골라 입에 재갈을 물렸다.

반면 정권에 충성하는 자들은 고르고 골라 고위직으로 승진시켰다.

그 이후에 시작된 논공행상.

이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이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다.

조국일보는 신문 등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일 년에 1000억 원 가까이 무상 지원을 받았다.

황룡봉사상을 비롯해 여러 특별상을 통해 경찰과 공무원들을 1계급 특진시켰다.

공무원들은 조국일보 눈치를 봤다.

일개 신문사에 불과했지만 버젓이 국가공무원 승진에 관여할 수 있는 키를 소유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는 이들만의 리그.

리앤장은 국가소송을 담당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돈을 긁었다.

상류층들은 승소율이 높은 리앤장에 거액을 주고 너나 할 것 없이 소송을 맡겼다.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한 쪽이 승소했다.

리앤장 소속 고문들은 고속철을 탄 것처럼 장관을 비롯해 고위직에 임명됐다.

오승택 대법원장도 두말 할 것 없이 대단히 협조적으로 나왔다.

전운택 또한 청와대와 교감하며 2016년 총선에서 자기 계파 사람들 공천권을 미리 약속 받았다.

상류층의 상부상조.

국영방송을 비롯해 상당수 언론들이 현 정권 눈치를 살폈다.

과거 독재시절의 권력에 준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중요 포털 업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협의를 가장한 협박과 회유로 그들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모든 게 일송회 뜻대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모이자고 한 이유는 술도 한잔하고, 그 동안의 노고도 풀 겸 겸사겸사 몇 가지 안건을 처리하고자 함입니다.”

전운택이 운을 뗐다.

청와대와 강하게 교감하는 여당 중진의원.

“뭐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술 몇 잔에 얼굴이 달아오른 반종현이 눈빛을 반짝였다.

정치권에서 딜이 들어왔다.

달콤한 냄새가 물씬 났다.

일송회도 결국은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

돈과 권력은 가장 맛있는 안주였다.

“……오태용을 이제 그만 쳐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운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태용을요?”

손대균이 의아한 듯 물었다.

정권 창출에 오태용의 공이 만만치 않았다.

“소문이 사실이군요. 주순자가 남편을 팽하려 한다더니…… 흐흐흐. 권력이 참 좋습니다. 살 비비던 남편도 쫓아낼 수 있을 정도니.”

정보를 알고 있던 반종현이 씁쓸한 비웃음을 흘렸다.

“오태용이 욕심이 많아요. 나중에 국회의원까지 해먹으려고 세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똑똑해서 피곤한 자입니다.”

전운택이 확정적으로 말했다.

미래의 정적이 될 자.

“장로님 허락이 떨어졌습니까?”

반종현이 물었다.

“주순자 손을 들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럼 결론이 났네요. 오태용……. 보내죠.”

반종현은 쿨하게 결정에 대해 동의했다.

“언론 작업 좀 해주십시오. 청와대 쪽은 제가 손쓰겠습니다.”

“일도 아닙니다. 오태용 치부가 몇 개 있습니다. 다른 쪽 라인으로 퍼트리겠습니다.”

“손 이사님 뜻은 어떻습니까?”

“뜻이 그렇다면…… 저도…… 찬성입니다.”

손대균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반대한다고 바뀔 일이 아니었다.

권력은 나눌 수 없는 법.

이 정도라면 대통령을 조종하는 주순자가 딜을 해왔음이 확실했다.

‘멍청한 년 같으니.’

손대균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나마 청와대가 이나마 굴러갈 수 있는 것도 오태용이 있어서 가능했다.

폭주 기질이 강한 주순자를 오태용이 옆에서 제어해 왔기에 조근영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나마 꽂혀 있던 안전장치마저 제거하려는 주순자.

언젠가 지금의 선택에 따르는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게 뻔했다.

“다음은 대웅 건설 문제입니다.”

전운택이 두 번째 안건을 꺼냈다.

“……동룡 주 회장이 돈이 있습니까?”

이번에도 반종현이 먼저 알고 물었다.

“이것저것 계열사를 통해 1조 정도는 준비한 것 같습니다.”

전운택이 이번에도 설명을 덧붙였다.

“겨우 1조로 가능합니까?”

“채권단끼리 채권 상각도 좀 하고 산업은행 쪽에서 대출해 주면 될 것도 같은데…….”

두 사람의 눈치를 살짝 보는 전운택.

“금구 장오구 회장이 참 멍청했어요.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큰 걸 두 개나 삼키다 입이 찢어져가지고…… 쯧쯧.”

“돈 욕심이 남다르죠.”

“흐흐흐. 멍청하게 대웅 건설과 한국통운까지 다 빼앗기고……. 몇 년 못 버틸 겁니다. 주제파악 못한 큰 욕심은 죄에요 죄. 사업 능력도 제로고.”

반종현이 냉정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지금 동룡 회장이 대웅 건설을 원한다는 겁니까?”

손대균 이사가 내심 놀라 물었다.

장태산과 악연 관계에 있는 동룡 주 회장.

그도 분수에 안 맞게 입을 크게 벌렸다.

“주순자 스폰입니다. 주순자 자식들에게 수십억 대 말을 사다 바쳤습니다.”

반종현이 알고 있는 정보를 풀었다.

“욕심이 많군요.”

“주 회장이 우리 회에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이번에 기회를 주면 섭섭지 않게 성의 표시한다고 했습니다.”

전운택 전하는 주 회장의 성의 표시.

“동룡 그룹보다 대웅 건설이 덩치가 더 큽니다. 국민들 납득시키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산업은행에서도 팔아야 할 매물입니다. 민간 대기업을 국가 기업으로 오래 품고 있으면 독이 된다는 논조로 작업할 생각입니다. 언론 쪽은 제가 다 마사지 하겠습니다.”

이미 동룡 주 회장에게 어떤 약조 받아 놓은 반종현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알겠습니다. 법원과 검찰은 제가 맡겠습니다.”

이런 거래는 콩고물이 최소 수백억 대를 넘겼다.

인수 대금의 10퍼센트까지 로비 자금으로 사용되어야 가능한 작업이었다.

“국회 쪽은 야당 중진 만나서 협의하겠습니다. 청와대가 행정 쪽은 주무를 겁니다.”

일이 술술 풀렸다.

정치, 언론, 법조계, 행정부가 한 판으로 돌아갔다.

균형과 견제의 묘리가 사라진 민주주의 민낯.

신이 난 전운택 목소리가 처음보다 들떴다.

어차피 그들에게 세금은 쌈짓돈이나 마찬가지.

퍼주다 망하면 세금으로 회수해 다른 기업에 팔면 그만.

멍청하게 눈 뜨고 당하는 국민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그럼 다음은…….”

회의는 계속됐다.

기업을 비롯해 여러 이해 관련 단체에서 들어온 부탁과 대가.

새 정부가 들어서도 일거리는 넘쳐났다.

***

자식? 누구?

도운중 회장은 자식들에게 경영을 맡기지 않기로 일찍 선포한 분이다.

과거 전적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사업하기는 불가능했다.

해외에 대부분 포진한 도운중 회장의 자녀들.

도도희만 한국에 있었다.

“어떤 자제분 말입니까?”

“다 배 아파서 낳은 내 자식들이 눈칫밥 먹으면서 떠돌고 있어. 내 청춘과 열정……. 직원들과 피땀 흘려 만들어 낸 그 천금 같은 자식들을 능력 없는 날강도 같은 놈들이 먹어치우려 혈안이 됐어! 이 나쁜 놈들!”

분노하는 도운중 회장.

인자한 모습과 달리 진짜 화가 나 있었다.

촉이 왔다.

“대웅 건설 말입니까?”

“대웅 건설! 대웅 자동차! 대웅 조선소! 대웅 전자! 내 금쪽같은 새끼들을 도둑놈들과 거렁뱅이 같은 놈들이 먹어치웠어. 정치하는 놈들도 다 똑같아! 잘만 키우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그 녀석들을 헐값에 팔아먹고…….”

꿀꺽 꿀꺽.

답답한 듯 소주병을 잡아 잔에 가득 채워 들이켰다.

이해가 갔다.

자식 농사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도운중 회장의 진짜 인생 결실물들.

국내보다 해외에서 뒤늦게 가치가 터졌던 대웅의 사업체.

2020년까지 동유럽과 동아시아에서는 대웅이라는 이름이 먹혔다.

“기술이 중요한 시대야. 멍청한 놈들이 내가 기술을 사오면 된다고 말했다는데……. 그때는 그랬어. 뭐 가진 게 있어야 발전하지. 기초 과학부터 시작해 소재 과학, 대학교 교육과 정부도 기술에 무지했어. 그럴 때는 돈 주고 사와야지.”

도운중 회장의 절절한 한탄.

“미국 월가 놈들이 돈놀이 기술로 재미를 보고 있지만 그것도 한때야. 미래 시대에도 진짜 존재하는 공장이 돌아가야 국가와 국민이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서비스 산업 발전? 사 먹을 놈이 있어야 그것도 굴러가는 거야. 기술과 공장! 이게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야.”

아직도 남다른 식견에는 변화가 없었다.

미중 무역전쟁도 기술 때문에 벌어진 사태였다.

미래 먹거리를 차지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피터지게 싸운다.

전통적인 제조 산업을 뛰어넘는 디지털 기업의 부상.

중국은 자국 성장을 위해 외자 규제와 기술 이전 강제, 기술 탈취로 세상의 모든 걸 빨아 마시려 했다.

인권과 상도덕이 제로인 민족 특성이 고스란히 발현됐다.

나만 잘 멀고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민족의 특질이었다.

그들이 세계 패권 국가가 된다면 주변 인접국을 비롯해 상당수 국가가 조공을 바치는 국가로 전락하고 말 상황이었다.

2013년, 현재 아직 미국과 중국은 겉으로 평화로웠다.

하지만 암중에서는 기술과 경제 전투가 이미 시작됐다.

“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IT 산업도 다 기술이야. 대한민국 같이 수출로 먹고 사는 국가는 반드시 선도적 기술로 치고 나가야 돼. 내수가 약하기 때문에 다른 놈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기술을 소유해야 버텨.”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회귀한 뒤 기술 기업들 주식을 끌어 모았던 거다.

“좋은 일자리가 진짜 복지야. 나보다 더 지독하게 돈 밝히는 대형 노조놈들이 문제지만 어차피 그건 사업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악재 중 하나일 뿐이야. 일은 적당히 하고 싶고 돈은 많이 쳐 받고 싶은 인간 본성이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야. 그래서 그놈들은 진짜 부자가 될 수 없어. 진짜 부자는 하늘이 감동할 정도는 되어야 얻을 수 있는 훈장 같은 거거든. 남들 잘 때 다 자고 쉴 때 쉬는데 하늘이 거저 그 훈장을 줄 것 같아? 그게 도둑놈 심보지.”

“동감합니다.”

“전준영 회장이 살아생전 더 휘어잡았어야 했는데……. 그 양반도 마음이 약했어.”

도운중 회장도 노조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회사가 조금만 이익이 나면 배분하라고 난리치는 대형 노조.

적자를 보면 경영진 탓만 했다.

노조 파업자의 임금을 머리 터져가며 내실을 다져온 직원들보다 더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는 미친놈들이 세상에 참 많았다.

알음알음 직원 채용에 개입해 돈을 쳐 받는 도적 떼 같은 상급 노조 단체.

과거 열악한 시대에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던 선배들의 피를 더럽히고 있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다.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그들도 이제는 적폐가 됐다.

근무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고, 유기 화합물이 넘치는 사업장에서 경각심 없이 담배를 태우는 비상식적인 작태.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갈수록 떨어지는 기업 생산성.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기 회사라면 절대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잠시 이야기가 샜네……. 장 대표…….”

어느새 태백산 준령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방파제 주변으로 밝게 켜지는 가로등.

휘리리리링.

밤바람이 차갑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육풍과 해풍의 교차 시간.

“대웅 건설 먼저 살려주게. 내가 사막에서 왕세자들 시중들고 모래바람 맞으며 세웠던 녀석이야. 그 놈 덕분에 대한민국이 한때 밥 먹고 살았어.”

야인(野人)의 간절한 부탁.

그는 아직도 대한민국을 위해 뛰는 살아 있는 기업인이었다.

대한민국을 산업 강국으로 이끌었던 검소했던 1세대 기업가들.

그 시대의 살아 있는 신화.

갑질이 몸에 밴 2세와 3세들과는 정말 달랐다.

배가 고팠던 세월을 견디며 살아 봤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았다.

“한잔하시죠.”

또로로록.

이제는 밤이 깊었다.

술자리를 끝내야 할 시간.

“…….”

짧아지는 시간 앞에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도운중 회장.

그도 자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연약한 부모가 됐다.

이 우월한 기분……. 흐흐흐.

“회장님,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여유 있게 술잔을 기울였다.

나를 불러놓고 라면을 끓이라고 명하던 도운중 회장이 이제는 을이 됐다.

하아! 회귀해 돈 모아 놓은 보람. 이 맛에 또 사는 게 즐거운 거다.

“응?”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 별장 공사 때문에 큰 건설사 하나 더 수집하려고 했습니다.”

쿨내 진동하는 나의 반응.

“벼, 별장 공사?”

아직 상황 이해를 못한 도운중 회장의 얼떨떨해 하는 모습.

“대웅 건설, 몇 푼이나 한다고……. 까짓 거 일시불로 구입하겠습니다.”

“자, 장 대표!!!”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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