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장.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2)
- 야! 염중천! 너 도대체 무슨 일을 이 따위로 만들어!!!
“형님 죄송합니다.”
- 죄송이면 다야! 지금 집 밖에 나갈 수도 없어. 기자들은 종일 진치고 앉아 있고 마누라는 친정 가겠다고 난리다! XX! 내 인생 이제 어떡하냐고!
‘미친 새끼야! 나도 내 코가 석 자야!’
염중천은 버럭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이학희의 포악스러운 전화를 받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막아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여우같은 마누라가 사고를 치고 미국으로 토꼈다.
협박했던 것처럼 거하게 뿌려진 동영상.
검찰총장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장기 플랜으로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 왔는데 아작이 났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경찰서나 검찰 쪽을 통해 고소가 진행됐다면 증거 인멸도 가능했다.
하지만 예상을 비켜 국회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동영상을 싹 거둬들여도 때가 되면 다시 뿌려졌다.
누가 봐도 변태적이고 자극적인 장면.
특히 황제도 부럽지 않다던 이학희 대사는 패러디가 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아는 기자들 동원해 새로운 뉴스거리를 터트리겠습니다!”
- 그 전에 내 속이 터져 죽겠어!!!
‘이 새끼가 지가 아직도 총장 후보인 줄 아나?’
염중천의 본심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어차피 한 배를 탄 몸 아닙니까!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세요!”
염중천 목소리가 커졌다.
- 뭐, 뭐라고……! 너…… 지금 나한테…….
스트레스를 풀려는 심산으로 염중천에게 전화했던 이학희.
도리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고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어린애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저에게 전화할 시간에 후배들 단속이나 하십시오. 이거 뿌리는 새끼들 다 조지라고 하세요! 누군지 몰라도 작심하고 우리를 엿 먹이려고 들쑤시는 거 모르시겠어요?”
- 엿? 누, 누가?
“아무래도 마누라 이혼소송 변호를 맡은 JS 로펌이 수상합니다. 그 새끼들이 수작질 하는 게 분명하다구요.”
- 그 새끼들은 또 뭔데?
“형님이 알아보세요. 그래도 따르는 후배들 있을 거 아닙니까. 저도 다른 방향으로 수습에 힘써 보겠습니다.”
강단 있게 나가는 염중천.
- ……알았다. 일단 알아보마.
“힘내세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사건 마무리하고 전관예우라도 받으셔야죠. 퇴직하고 손 빠실 겁니까?”
- …….
염중천의 현실적 충고에 이학희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손에 쥐기 일보직전이던 권력이 날아갔다.
이제 남은 건 돈밖에 없었다.
“알아낸 게 있으시면 그때 전화 주십시오. 제가 드린 대포폰으로 연락하세요. 지금 갖고 계신 스마트폰은 파기해 버리시고요.”
당부를 가장한 지시를 당당하게 하는 염중천.
- 끄으응.
신음을 흘리면서도 별 다른 대꾸도 하지 못하고 이학희는 통화를 끝냈다.
이제는 염중천이 갑이 됐다.
“멍청한 새끼. 내가 힘 좀 더 쓰라니까 괜히 몸사려가지고…….”
염충천이 마누라를 급한 대로 절도죄로 집어넣자고 했었다.
그때 구설수가 많은 청문회가 남아 있으니 잠깐 기다리라고 만류했던 이학희.
날줄과 씨줄이 어디서 끊어졌는지 예기치 못한 순간 제멋대로 뒤엉켜 엉망이 됐다.
“아직 나한테는 다른 동영상이 남아 있다. 그걸 이용하면…….”
와이프 조은희가 찾아낸 동영상 말고도 다른 곳에 수십 개 동영상이 존재했다.
경찰과 검찰, 정치인들 여럿의 목숨 줄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염중천이 지금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고 힘이었다.
그리고 감춰져 있는 비자금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드러난 재산은 가압류 되고 가처분 되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순수 현찰 300억 정도가 차명 계좌로 묶여 있다.
국가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없도록 완벽하게 처리된 상태.
“나 그렇게 쉽게 안 죽어! 조은희……. 내가 미국까지 쫓아가서라도 반드시 네년은 담근다!”
도망친 와이프가 원망스러운 염중천.
덜컹.
그때 대표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뭐야!”
인상을 잔뜩 쓰는 염중천.
“대,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뭐가 큰일 나! 짭새라도 왔어?”
회사 재정담당 이사직을 맡고 있는 사촌 동생이 사색이 되어 튀어 들어왔다.
“비, 비자금 통장들이 가압류됐습니다! 가압류요!”
“뭐? 비자금 통장이!!!”
***
“!!!”
거짓말처럼 모든 상황이 일시 정지됐다.
좀비 떼처럼 달려들던 주민들이 일제히 멈췄다.
귀청을 찢을 듯 울린 천둥 같은 목소리.
청각이 좋은 몇몇은 아예 귀를 손으로 막았다.
스피커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지만 귀가 두 개인 사람 모두 고막이 찢어질 뻔했다.
‘뭐야!’
그 장관을 지켜본 도도희 역시 깜짝 놀랐다.
이제는 회장으로 불리는 장태산.
고함 한 번에 이성을 잃고 덤벼드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너, 너 뭐야!!!”
“누군데 우리 앞을 막아!”
욕심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려오던 주민들이 장태산을 둘러쌌다.
정체를 알지 못한 데서 벌인 어리석은 짓.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의외로 고함을 지른 후의 장태산은 차분했다.
“니가 뭔데 건방지게 그걸 물어!”
“당신들? 나이도 어린놈이 말버릇이 싸가지가 없어! 넌 에미도 없냐!”
“멈추라고? 멈췄다! 어쩔 건데!”
“너 저기 있는 황효관하고 뭔 사이야?”
덩치 좋은 풍채로 악다구니를 쓰는 아줌마들.
집단의 힘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대표님을 잘 아시나 봐요?”
도도희가 황효관에게 물었다.
“원만히 해결하려고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 아니죠?”
“평당 2000만 원은 받아야 집값이 오른다고 몇 달 전부터 압박해 왔습니다.”
“여기 강북이잖아요?”
“……다들 집값에 예민해져서 혈안이 됐습니다. 이곳은 본래 공무원 아파트 단지라 평당 분양가가 당시 기준으로 300만 원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집값이 건축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평당 1500만 원이 넘어갑니다.”
황효관이 난처한 듯 답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요.”
미국에서 살다온 도도희는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는 한국의 부동산 거품에 할 말을 잃었다.
강남 콘크리트 아파트가 비버리 힐스 저택보다 비쌌다.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에 캐슬이라는 말을 당연한 듯 갖다 붙였다.
그런데 그게 맞는 말이었다.
유럽의 오래된 성보다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 더 비싸니 이름을 그렇게 붙일 수밖에.
강남 집값을 다 합치면 LA 땅을 모두 사고도 남을지 몰랐다.
과거 일본이 부동산 거품 경제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던 것처럼 한국 역시 그 전철을 밟고 있었다.
일본 도쿄 부동산 값이 미국 전체 부동산보다 비싸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너도 나도 집값이 오르기만을 소망했다.
열심히 땀 흘려 자산을 늘리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취급됐다.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닌 일확천금으로 미래를 꿈꿨다.
분명한 건 건실하게 쌓아올리지 않은 성은 어느 날 모래성처럼 부서져 내리고 사라지는 걸 몰랐다.
“직원들을 더 부르겠습니다.”
주민들의 현장 불법 점거에도 경찰들은 뒤로 빠졌다.
이미 공권력을 우습게 보고 있는 주민들.
“아니요……. 됐습니다. 회장님이 알아서 할 겁니다.”
도도희는 장태산을 믿었다.
“자칫 폭행이라도 당하시면…….”
황효관은 앞에서 벌어지는 긴장된 상황이 진심으로 걱정했다.
주민들을 여러 번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신혼부부 대상 임대 아파트로 공고했음에도 일반 분양으로 전환하라고 땡깡을 부렸다.
1인 시위부터 구청 민원까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신혼부부 상대 임대주택이라 딱히 자신들의 아파트 값이 떨어질 이유가 없었다.
동네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됐지 부정적인 요소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조건 반대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욕망과 탐욕의 덩어리들.
“너 뭐하는 놈이냐니까!”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 먹어가지고 어른들 일에 왜 끼어!”
나이가 어려 장태산 회장을 향해 함부로 손가락질을 하며 인신공격하는 주민들.
“후후후훗.”
장태산 대표는 그 와중에도 냉정하게 여유 있는 웃음을 흘렸다.
***
악다구니.
다다다 독한 말들을 뱉어내는 주민들의 집단적인 행동에서 난 분명하게 악마를 보았다.
들어야 하는 귀를 닫고 입으로 소리만 지르는 붉은 눈동자들.
빨간 띠를 이마에 두르고 피켓과 북을 들고 전진했다.
말이 통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불법이라는 걸 모르시지는 않겠죠?”
이럴 때 일수록 더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한 번 칼을 뽑았을 때는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법.
나 역시 조용히 칼을 뽑았다.
“부, 불법!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이게 무슨 불법이야!”
“나 법무사다! 네까짓 게 법을 알기나 해?”
“우리 남편이 법원 공무원이야! 어디서 법! 법! 거려!”
사회를 구성하는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이 암암리에 차별심이 더 강했다.
가난할수록 부유해지고 싶어 부패한 정당을 밀고 부자일수록 돈을 지키고 싶어 깨끗한 정당을 미는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가 이곳 현장에서 연출됐다.
내가 보기에 이들 모두 평범한 서민에 선량한 시민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보라.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위치와 알량한 직업으로 나를 협박하고 있다.
이럴 때는.
“JS 로펌 변호사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꺼낼 수 있는 명함을 펼쳐 보여야 한다.
“!!!”
“벼, 변호사?”
변호사라는 말에 의기양양 큰소리치던 사람들이 살짝 주춤거렸다.
그들의 사고방식이라면 분명 로펌 소속 변호사는 뭔가 더 있어 보일 것이다.
“천일 건설의 요청에 의해 불법 집회 현장 피해 사실을 확인 중입니다.”
같이 흥분해 날뛰는 것보다는 이럴 때는 냉정함이 더 빛을 바라는 법.
“집회 신청하셨습니까?”
“…….”
했을 리가 없다.
이곳은 집회 신청 자체가 안 되는 일반 공사 현장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아직도 먹히는 시대인 게 씁쓸하다.
‘주민’이라는 이름의 단체 행동도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
“그, 그래서! 어쩌라고!”
“너희들 때문에 집값 떨어져 망하게 생겼는데 법이 대수야!!!”
“변호사라면서도 생존권 몰라! 우리는 생존권이야!!!”
“맞아! 우리는 생존 투쟁 중이야!”
“물러가라! 악덕 천일 건설!”
누군가의 선동에 다시 한목소리로 힘을 내는 주민들.
“어떤 생존권에 위협이 되셨습니까? 아파트 값이 떨어졌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떨어질 게 걱정입니까? 그리고 아파트 폭락이 집을 망하게 할 정도로 충격을 준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소란을 조종하지 말고 증거 자료를 제시해 주십시오.”
줄줄 쏟아져 나오는 팩트 질문.
“야!!! 네가 아파트 값을 알아!”
“어린놈이 변호사 됐다고 우리를 가르치려들어! 임대 아파트잖아! 임대 아파트!!!”
말이 통하지 않을 줄 알았다.
막말에 삿대질은 기본이다.
산뜻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지금 진행 중인 1500세대 하루 공사비가 대략 15억 정도입니다. 저기 지금 한심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분들 보이시죠. 저분들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데 여러분들 때문에 일당 다 받기는 글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덤프트럭 줄줄이 대기 중인 것도 보이시죠? 시멘트 굳으면 그게 다 건축 폐기물 됩니다.”
정확한 수치를 계산한 건 아니지만 대강 때려잡고 협박을(?) 시작했다.
“거기 아주머니. 조금 전 어머니 없냐고 물으셨죠? 계십니다. 아주머니처럼 말이 안 통하는 분이 아니시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뭐라고!!!”
살이 많이 쪄 건강이 걱정스러운 아주머니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생각과 말, 그리고 감정에 의도를 갖고 내뱉은 이상 그 말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르게 된다.
그것은 선함으로 돌아오든 부정적인 상황으로 돌아오든 책임은 본인이 지는 법.
자신이 뱉은 말은 형태를 바꿔서라도 다시 의도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게 카르마의 정한 법칙.
이들도 그대로 돌려받게 될 것이다.
“생존권 투쟁 좋습니다. 불법적인 일로 망한다면 북과 꽹과리가 아니라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도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정확하게 맞췄다.
상당수 주민들이 실재 부동산 값에 눈이 멀어 있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미래 세대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
자신들의 후손이 숨 쉬기도 힘들어 진다는 걸 진정 모른다.
부동산 투기꾼을 대통령으로 모신 자신들의 선택을 부끄러워야 한다.
무지한 사고와 선택이 죄가 되는 시대다.
과거와 달리 진실과 거짓을 금방 분별해 낼 수 있는 정보가 사방에 널렸다.
그럼에도 귀를 닫고 기득권에 기대 선동 당하고 반성할 줄을 몰랐다.
부동산으로 돈 몇 푼 쉽게 벌겠다고 눈감아 버린 양심이 결국 자식들의 살 곳을 없애고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걸 보지 못했다.
기회가 왔을 때 각성시켜야 했다.
확실히!
“손해 배상 청구하겠습니다.”
“뭐! 소, 손해배상!”
“야! 너 말이면 단 줄 알아!”
“해라 해! 손해배상 무서울 줄 알아!”
아직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들.
“저기 CCTV 보이시죠. 증거 자료 다 수집됐습니다.”
이럴 때보며 나란 남자는 정말 품격을 잃지 않는 젠틀맨이다.
손가락으로 공사장을 내려다보며 찍고 있는 CCTV를 가리켰다.
“…….”
그제야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는 일부 주민들 표정이 굳어졌다.
“미, 민원 넣을 거야!”
“맞아! 구청에 민원 넣어 이 공사 중단시키고 천일 망하게 할 거야!”
“주민들이 무섭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마!”
사태 파악은 물론 주제 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건 여러분 뜻대로 하십시오. 천일 건설은 외국 자본이 주인인 기업입니다. 민사소송 들어가면 볼만 할 겁니다. 미국 측으로부터 소송 안 당해보셨죠? FTA 발효돼서 미국 소송도 가능하다는 거 알고 계시겠죠?”
최대한 밝고 친절한 자세를 유지하며 앞으로 진행될 상황에 대해 말해줬다.
“!!!”
그제야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듯했다.
금세 얼굴이 어둡게 썩어갔다.
우매한 집단행동이 불러온 무식한 짓거리가 가져온 파장.
이런 상황을 우려해 처음부터 외국 자본으로 작업했다.
국내 자본을 깔고 앉은 기업이었다면 행정청이나 정치권 입김에 좌지우지됐을 것이다.
천일은 달랐다.
“집에 가서 기다리십시오……. 제가 그 대단한 집값…… 제대로 계산해 집 없는 서러움이 뭔지 직접 경험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거품을 일으킬 수 있는 조각비누 하나 없는 세대의 서러움.
그 서러움을 당해봐야 약자의 입장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볼 것이다.
난 이 순간 악마를 상대하는 또 다른 악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