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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장.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1) (601/1,284)

604장.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1)

“마셔.”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는 무슨……. 연기 짧게 하고 끝낼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제부터 언니라고 불러.”

“저, 정말요?”

“수연 언니라고 불러봐.”

“수……연 언니.”

“그래. 예쁜 동생 강예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언니 동생 사이에 뭘 잘 부탁해. 그냥 친하게 지내면 되지.”

청담동에 위치한 VIP 레스토랑 휴(休).

연예인이나 재벌 같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손님들이 즐겨 찾는 맛집.

가장 안쪽 룸에서 두 여배우가 사적인 자리를 가졌다.

대한민국 탑 여배우 오수연.

그리고 이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높게 뜨고 있는 강예서.

조명 빛도 부끄럽게 만드는 아름다운 여배우 두 사람이 붉은 와인을 마셨다.

‘수연 선배, 까칠하다던데 전부 거짓말이었네.’

강예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오수연의 성격.

연예계 바닥에서 오수연은 까칠하기로 소문이 자자해 건들지 말라는 말이 파다했다.

재벌가의 스폰을 받는 몸이라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는 말이 암암리에 돌았다.

하지만 연기력과 미모가 받쳐줘 꿋꿋이 상종가를 쳤다.

무슨 바람인지 그런 오수연이 강예서를 불렀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간 여행’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활약한 강예서.

연기력이 마음에 들었다며 아는 후배를 통해 연락해 왔다.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연예계는 판이 워낙 좁았다.

과거보다는 덜했지만 아직 선후배 관계에 있어 지켜야 할 예의가 남아 있었다.

강예서가 뜨고 있는 별이긴 했지만 오수연에는 미치지 못했다.

처음 긴장했던 것과 달리 한결 분위기가 좋았다.

맛있는 안주와 와인이 곁들어졌다.

사람 좋은 미소를 거두지 않는 오수연.

“예서, 계약기간 끝나가지 않아?”

그녀가 생각지 못한 갑작스런 질문을 해왔다.

“네?”

와인을 마시다 말고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는 강예서.

“MTS 황 대표와 사이좋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가벼운 질문에 그렇게 토끼눈이 되면 어떡하니. 아마추어처럼.”

“그게…….”

“걱정하지 마. 내가 이익 좀 보겠다고 아끼는 동생을 스카웃하겠니.”

“네에…….”

강예서는 훅 치고 들어오는 오수연의 포스에 순간 당황했다.

계약 문제는 언제나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준 장태산.

그를 믿고 MTS에 둥지를 틀었다.

계약 조건과 지원은 대만족이다.

절대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 없었다.

설사 계약금이 수십억대가 넘어간다 해도 처음 자신을 배려해줬던 그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나 이번에 한중 합작 드라마 들어간다.”

“정말요?”

“제작비가 300억쯤 들어가는데 스토리가 괜찮아.”

“축하드려요.”

중국에서 명성을 얻으면서 올리게 된 부가수익이 장난 아니었다.

한국과 굴리는 판의 덩어리가 달랐다.

광고료가 한 편에 수십억이 넘어갔다.

연기력은 괜찮았지만 한국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연예인들 상당수가 중국에서 못지않은 명성을 얻었다.

“예서 너 나랑 같이 해볼래? 주연급 조연으로 넣어줄게.”

“네???”

“합작 영화라지만 감독님을 비롯해 대부분이 한국 스텝들이야.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와 연결돼 있어 수익도 보장되고.”

“……저 그게 소속사와 협의를 거쳐봐야…….”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것 또한 소속사가 직접 관여해야 할 문제.

강예서는 결코 감정적으로 들뜨지 않았다.

“강예서 너도 그 정도면 이 바닥 중견이야. 언제까지 소속사 의견을 따를 거니? 이런 건 강단 있게 밀어붙여야 해. 언니가 아무에게나 이런 조건 내거는 줄 알아?”

사실 쉽게 들을 수 없는 업계 선배의 조언.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야?’

오늘 처음 사석에서 만났다.

그런데 오해할 만큼 너무나 친절한 오수연.

같은 소속사 후배에게도 제안하기 쉽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뭐가 있는 건…….’

눈을 들어 오수연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강예서.

“의심하지 마. 내가 이래봬도 마음에 드는 후배들에게는 계산 없이 화끈해.”

“의……심 안 해요.”

당황해 손사래를 치는 강예서.

‘아직 순진하네. 얼굴도 봐줄만 하고.’

내심 오수연은 화가 끓어올랐다.

머저리 같은 사론이 전화를 안 받았다.

멤버들 중 한 명이 갑자기 군대에 가면서 활동도 멈췄다.

FOB에 대해 공격하던 백형조는 사색이 됐다.

백형조가 연예부 기자와 통화할 당시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오수연.

오정이라는 말을 끝으로 욕을 거칠게 퍼붓던 백형조.

그의 알 수 없는 분노에 찬 모습을 처음 봤다.

그 이후 거짓말처럼 백형조 대표는 FOB의 F도 입 밖에 안 꺼냈다.

MTS 뒤에 오정이 있다는 것을 그때 짐작했다.

오수연은 방향을 바꿨다.

걸그룹을 재끼고 강예서를 노렸다.

“일단 생각해봐. 그리고 나 MTS에 초대해줘.”

“초대요?”

“왜? 안 돼?”

“그게 아니라…….”

짬밥이 모자란 강예서는 선뜻 거절하지 못했다.

오수연이 연예계에서 강짜를 부리면 강예서는 물론 MTS 후배들도 피곤해졌다.

“대표님께 여쭤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고마워~ 예서야~. 자! 건배!”

잔을 드는 오수연.

눈동자에서 사악한 빛이 번뜩이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

“명품 동네에 임대 아파트가 웬 말이냐! 악덕 천일 건설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두둥! 둥둥! 두두둥!

“천일 건설은 일반 분양 추진하라! 추진하라!”

“추진하라! 추진하라!”

두둥! 두두두두둥!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찢어지는 목소리.

“저분들 뭡니까?”

어이가 없어 물었다.

명백한 한 기업의 사업장이다

기초 공사가 끝나고 하루하루가 중요한 공정이 진행되는 시기다.

겨울 끝물이었기에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건설 현장.

머리에 결사반대 띠를 두른 수십 명의 주민들이 현장 입구를 막고 사이렌 스피커로 악을 쓰며 북을 두들겼다.

“인근 아파트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의 임원들입니다.”

“그러니까 저분들이 왜 현장을 막고 있냐는 겁니다. 정말 임대 아파트 건설 때문에 그렇습니까?”

“……맞습니다.”

기분 좋게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황효관 대표의 SOS 신호에 현장으로 차를 돌렸다.

“상식이 없는 분들이네요.”

도도희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했다.

“입주 조건이 신혼부부 대상인데 왜 저런답니까?”

임대 아파트에 대해 일반 분양자들 대부분이 꺼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서민들 대상은 국가사업에 맡겨도 됐다.

그래서 지금 진행 중인 내 사업장은 전부 다 신혼부부 상대로 임대할 예정이었다.

결혼하고 싶어도 집 때문에 포기하는 젊은 청춘들을 구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노량진 쪽방에서 살다 한 생을 종쳤기에 코너에 몰리는 그 심정을 잘 알았다.

돈이 없어 멀쩡한 사람으로 존재하면서도 결혼에 엄두도 낼 수 없는 이 시대의 대한민국 청춘.

부동산 투기업자들이 수십 채 수백 채씩 갭 투자를 해 엄청난 규모로 재산을 불렸다.

이미 인구대비 주택 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어갔다.

집이 남아돌아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턱없이 모자랐다.

과감하게 소속 건설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건설 예정지에 임대 아파트 건설을 시작했다.

이번 건에 있어 정부에서도 지지를 받았다.

지자체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조건이 파격적이었다.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17평 아파트를 보증금 4000만 원에 월 20만 원씩 받는 조건으로 분양 예정이었다.

게다가 평수도 다양하게 건축 중이다.

아이가 한 명 있는 가정은 25평을, 6000만 원 보증금에 월 20만 원.

아이 둘 이상 애국하는 가정에는 32평을, 보증금 8000만 원에 월 20만 원으로 책정했다.

놀랍게도 그 정도 책정한 돈만으로도 건설사는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었다.

평당 건축비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저렴했다.

층수는 전체 동 21층 이상.

부지를 매입하고 법적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을 A급 자재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발생했다.

은행에서 파이낸싱 고리자금을 빌리지 않은 덕도 봤다.

비싼 이자비용이 들지 않았다.

시행과 시공을 직접 맡았다.

하도급으로 후려치지 않았다.

또한 임대 분양 광고 역시 광고 효과가 좋은 인터넷으로만 진행했다.

로비 자금이나 회사 뒷돈이 되었던 비자금을 조성할 필요도 없었다.

건물을 세우는 데 필요한 자금 중 일부도 헛돈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입소문이 금방 돌아 벌써 예비 대기자가 넘치기 시작했다.

경쟁률이 엄청나 추첨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누가 봐도 사회 환원 사업이 분명했다.

신용이 아직 좋지 않는 신혼부부에게는 장기저리 자금으로 대출도 시행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청춘들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는 신혼부부들은 미래를 알차게 설계할 수 있었다.

행복한 가정이 곧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다.

입주기간 제한도 없었다.

100년을 보고 건축한 아파트인 만큼 이곳에서 애를 낳고 키우다 여생을 마무리해도 됐다.

월세 20만 원은 절대 큰돈이 아닌 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대기업 회사원이 아니어도, 알바 정도만 해도 먹고 살 정도의 금액 수준이었다.

게다가 바로 앞이 지하철 역세권이다.

걸어서 5분 거리.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도 가까웠다.

누가 봐도 기반 없는 청춘들이 살기 좋은 임대 아파트 터.

그런데 더 가진 자들, 욕심 많은 돼지들이 날뛰었다.

부동산을 생에 한 번 갖는 생활 터전이 아니라 투기로 생각하는 이들의 행태.

“물러가라! 물러가라!”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돼지들의 멱따는 목소리.

“경찰 부르십시오.”

“……왔었습니다만 알아서 처리하라고 돌아갔습니다.”

황효관 대표가 답답한 듯 입을 열었다.

경찰을 아직도 믿고 있는 내가 바보였다.

“신축 현장에서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도도희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물었다.

“임대아파트를 대부분 싫어합니다. 정책적으로 같은 단지에 분양되는 공공 임대 아파트 현장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일입니다. 임대 입주자들 가정이 대부분 열악한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 보니 일반 입주자들이 덮어 놓고 꺼려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용 통로를 따로 만들기도 합니다.”

“…….”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화가 났다.

자신들 역시 처음 태어 날 때부터 부자가 아니었을 텐데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으로 세상을 사는 부류들.

부동산 역시 소모재라는 걸 몰랐다.

평생 거품이 꺼지지 않고 계속 부풀어 올라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배불리 먹여줄 것이라 착각했다.

교묘하게도 상류층과 건설업자들은 이 같은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했다.

사업 실패나 건강상 문제로 언제 어느 때고 누구나 하루아침에 약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 미래가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고 전혀 예측하지 않았다.

하늘이 공평하다는 걸 망각했다.

부(富)는 돌고 도는 게 이치다.

부자임에도 가난한 자를 위해 넉넉하게 베푸는 자들은 다시 카르마 포인트를 얻어 부자로 태어날 기회를 얻었다.

한 치 앞의 미래를 생각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 보고 사는 영혼들이 안타까웠다.

악한 마음을 일으켜 번 돈으로 자식들을 길러내면 언젠가는 큰 탈이 나는 법이다.

하늘이 해와 달의 눈으로 밤낮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 방에 가장 귀하다고 착각하는 재물이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운명은 끊임없이 도는 수레바퀴와 같았다.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것도 한순간이다.

우주의 섭리는 낮과 밤의 순환처럼 해와 달의 배려로 완성됐다.

그 이치를 전혀 모르는 저 무지한 이들.

저벅저벅.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회장님!”

“회, 회장님!”

도도희와 황효관 대표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뒤에서 불렀다.

분위기가 살벌한 전쟁터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무모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어! 저기 천일 건설 황효관이다!”

“오! 너 잘 걸렸다!”

“이 악독한 사장 놈아! 우리 집값 떨어지면 네가 책임질래!”

“저놈 잡아요!!!”

이웃 아파트 주민들이 벌떼처럼 달려왔다.

욕심에 눈먼 이들의 집단행동은 흡사 좀비처럼 보였다.

물질에 점령당한 가련한 영혼들의 모습이었다.

말 그대로 황효관 대표를 향해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마, 막아요!”

“으허허헛!”

사업장 경비들과 회사 임원들이 좀비 떼처럼 달려드는 이들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터더덕.

“아이고!”

“사람 살려!”

막아서다 넘어지는 회사 관계자들.

경찰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무법천지.

사람의 영혼을 상실한 좀비들이 내 앞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눈동자가 하나같이 충혈 된 듯 빨갛다.

표정은 흉신 악살처럼 온통 악기만 남아 어두운 기운을 뿜어냈다.

선과 악을 스스로 선택해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생을 부여받는 인간들.

눈앞에 몰려오는 이들은 지금 모두가 악신의 종이 된 상태였다.

그들을 마주하니 분노가 일었다.

심장 깊은 곳에서 아프게 일어나는 뜨거움.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멈춰! 모두 멈추라고오오오오오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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