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장. 청문회 (2)
“도대체 이게 무슨 망신이에요! 정권 들어서 처음 임명하는 검찰총장이 청문회장에서 섹스 동영상이 까발려지다니…….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청와대의 주인이 거주하는 관저 심처.
쩌렁쩌렁하고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분노에 차 울렸다.
“그 일이 그게 그렇게 막기가……. 그렇게 힘든가요? 내가 알고 있는 학희는 그런 남자가 아니라는 걸 보증할 수 있는 친군데. 국정원과 검찰은 뭐하고 있다 그런 실수를 저질렀나요? 충분히 시간이 있었을 텐데 다들 어쩌다 이렇게 사건을 키웠는지 의문이 드네요.”
이번에는 두서없는 여인의 목소리가 고저 없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오늘 청국장 드세요. 그게 미용에 좋아요.”
“네……. 전 차돌박이가 들어간 호박 청국장 좋아해요.”
주순자는 안경을 슬쩍 매만지며 조근영에게 뜬금없이 청국장을 추천했다.
방금 전까지 중요한 사안에 대해 얘기하다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누는 주순자와 조근영.
“사과도 같이 먹는 게 좋겠어요. 요즘 피부가 안 좋아 보여요.”
“그래요? 요즘 관리하는데……. 어떡하죠?”
“유 원장 내일 오라고 할게요.”
“그럼 일찍 자야겠네요.”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흔들며 대화를 나누던 조근영은 유 원장이라는 말에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유 원장이 청와대에 들어오면 그날은 하루가 다 행복했다.
세상 근심을 잊고 편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과거 온가족이 함께 살던 집 청와대가 지금 와서는 마냥 편하지 않았다.
기자들과 호기심 많은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조근영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였다.
그냥 어린 시절처럼 집 청와대에서 편하게 쉬고 싶을 뿐인 조근영.
오늘 어릴 적 친구였던 이학희가 청와대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 그가 청문회장에서 섹스 동영상이 까발려져 난처하게 됐다는 소식에 시름이 깊었다.
청와대 잔디밭에서 같이 놀던 친구를 곁에 가까이 두고 싶었다.
동영상 같은 것은 관심도 없다.
조근영에게 이학희는 좋은 친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서실장하고 민정수석 당장 자르세요.”
“네? 지금 당장요?”
“네! 당장요!”
“하지만 두 분이 그만 두면…….”
“뭐가 걱정이에요. 지금 화가 난 국민들을 달래야 할 것 아니에요! 다 필요 없어요. 윗선을 자르면 다들 조용해져요. 내가 정치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단 달래 놓고 봐야 돼요. 원인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해요. 그냥 잘라요. 그럼 당장 조용해 질 거예요. 그때 다른 사건으로 덮어요, 신문사 중에 연예인 사건 몇 개 가지고 있는 곳을 골라 작업하세요. 그리고 경찰 사이버팀을 동원해 차단하세요.”
깨알 같은 지시가 연이어 던져졌다.
“아, 알겠습니다.”
대통령이 버젓이 옆에 있지만 주순자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에 관한 징계 명령을 내렸다.
조근영은 다른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얼굴 이곳저곳을 누르고 만지며 눈을 감은 채 내일 만날 유 원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대변인 통해서 짧게 유감을 발표하세요.”
“어떤 내용으로…….”
“아니 지금 그걸 제가 다 말해줘야 알아요? 참나…….”
“죄송합니다. 선생님.”
주순자는 청와대에서 선생님으로 통했다.
조근영이 정치판에 뛰어든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호칭.
그 호칭이 청와대를 자신의 집처럼 드나들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수첩에 받아 적어요.”
“넵!”
정재근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은 수첩을 펴들었다.
그리고 휴대폰 녹음 기능도 켰다.
말이 많은 데다 수시로 지시가 바뀌는 대한민국 진짜 대통령 주순자의 명령.
토씨 하나 빠뜨리는 일 없이 반드시 따라야 했다.
이행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의 대명사.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의 리더 조근영 대통령은 사실상 주순자 말에 꼼짝도 못했다.
그 모습을 10년 이상 지켜봐온 정재근 또한 자연스럽게 주순자의 말을 더 귀담아 들었다.
“이번 검찰총장 임명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럼 또 야당이 물고 늘어지니까 두리뭉실 넘어가는 게 좋아요.”
“알겠습니다.”
“이번 인사 정책의 실패를 물어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자리를 내려놓고 민간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은 앞으로도 정부와 청와대가 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질책해 주시면 언제나 겸허하게 받아들여 민심을 수용하겠습니다.”
“민심을 수용…….”
정재근은 바쁘게 수첩에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대변인 지금 불러서 처리해요. 이런 건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어요.”
“비서실장님과 민정수석님께는…….”
“주봉석 부속비서관에게 통보하라고 하세요.”
“넵!”
정재근은 자신이 총대를 메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인간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버린 지 오래됐다.
새벽에도 수시로 전화를 해 명령하는 대한민국의 진짜 대통령 주순자.
남편 오태용을 밀어내고 청와대 안팎을 점령했다.
“공길춘 의원 아시죠?”
“공길춘 검사요? 잘 알죠. 아버지 때부터 나라에 충성하던 검사잖아요.”
“내가 병원에서 만나보니까 사람이 괜찮더라고요. 그 안 사람도 예의와 교양이 넘쳐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부를 게요.
묻는 것도 아니고 이미 확정하고 통보하는 주순자.
“다행이에요.”
인사 등용이 맘에 들었는지 활짝 웃는 조근영.
“민정수석은 윤병운이 좋겠어요.”
“윤병운요? 처음 듣는데…….”
“윤병운 장모가 예전에 궁중한복 선물했잖아요.”
“아! 맞아요. 그 한복 참 고왔어요.”
“사람이 선물을 받고 답례를 안 하면 예의를 모르는 거예요.”
“그럼 민정수석은 윤병운 씨가 좋겠네요.”
정부와 청와대의 핵심 인사가 순식간에 결정 됐다.
‘됐어!’
주순자는 자신의 결정에 만족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빨대를 꽂은 꿀통의 꿀이 엄청났다.
누구에게도 양보하기 싫었다.
아는 게 많다고 잔소리하는 오태용도 짜증났다.
사과 몇 마디하고 고개 숙이면 바로 용서해 주는 국민들 다루는 건 일도 아니었다.
권력을 손에 쥐고 나면 웬만한 불법 조작하는 건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다.
‘이제 조진원만 끌어내리면 돼!’
조근영 대통령의 오빠인 조진원.
군인 출신이라 군 인사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실세였다.
그 자리도 먹고 싶었다.
장군 승진에 최소 큰 거 몇 장이 거래됐다.
기회 있을 때 싹 쓸어 담는 게 똑똑한 처사였다.
“그리고 다음 주 중에 경제인들 초청해 청와대 오찬 잡아요. 국민들에게 경제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여론 돌리도록 청와대 상주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봉투 좀 돌려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시.
“조치하겠습니다.”
“경제인들 만나는 거 좋아요. 내가 생각하는 경제 정책이 있어요. 그걸 따라주면…….”
“‘운명 내 사랑’ 방송 할 시간이에요. 가서 TV 보세요.”
“어머.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어요? 오늘은 본방 사수해야 돼요. 여주인공이 얼마나 가련한지…….”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내실로 바쁘게 들어가는 조근영.
“후훗.”
그런 대통령을 쳐다보며 웃는 주순자.
그녀가 바로 대한민국의 진짜 대통령이었다.
***
-세상에……. 검찰총장 섹스 동영상이라니…….
-나 동영상 봤음! 대박!
-그거 어디에 풀렸음?
-지금 온라인에서 삭제 중입니다. 동영상 보고 싶으면 파일구리다로! htts…….
-이학희는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진짜 아닌가요? 설마 검찰총장이 될 분이 그런 저급한 짓을.
?너 알바지. 짭새냐?
?이걸 막을 수 있을까? ㅋㅋㅋ
-좌표 찾습니다!?
-애들이 볼까 겁난다.
-이학희가 대통령 어릴 적 친구라는 소문 있어요~.
-진짜? 미친…….
-방금 청와대가 비서질장과 민정수석 짜름!
-대처력 갑이네.
온라인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청문회장에서 까발려진 동영상은 순식간에 핫 이슈가 됐다.
과거라면 몇 번 시끄럽다 조용히 사그라졌을 뉴스였다.
염중천이 갖고 있는 로비력이 엄청났다.
이학희뿐만 아니라 검찰 고위직 인사 몇몇도 별장 멤버였다.
여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유력 정치인에 경제인, 의사, 변호사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동영상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지난 생에서도 결코 밝혀지지 않고 묻혀 버렸던 사안들.
신임 대통령이 강력조사를 명했음에도 검찰 측에서 혼신을 다해 필사코 막아냈다.
특별수사단장을 맡았던 자가 별장 파티 멤버였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누가 봐도 밝혀질 리가 없었다.
다 그 놈이 그 놈이었다.
그러나 이번 생에는 과거 경험했던 미래의 상황과 달랐다.
검찰총장 청문회 현장에서 라이브로 동영상이 까발려졌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나마 조사를 시작해야만 했다.
-양우석 국회의원 짱 멋있었음!
-‘자신 사퇴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그 말 오졌다.
-순간 움찔.
-2선 국회의원이라는데 미래가 기대된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모든 걸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긴 했지만 실제 벌어지는 상황에 나도 놀랐다.
청문회장에 있던 방송사 기자들을 향해 재생되는 스마트폰을 들고 보란 듯이 외치던 양우석 의원.
제대로 인싸가 됐다.
향후 몇 년 뒤에 시대를 대변하는 언어가 되는 인싸.
제대로 멋졌다.
300명에 달하는 국회의원들 중 국민들 뇌리에 각인될 정도의 활동을 하는 의원들은 극히 드물었다.
정치판에서도 인기가 있는 의원들이나 미래를 장담할 수 있었다.
정보의 바다에 당당하게 기록된 양우석 의원의 행동.
이 한 건의 사건이 앞으로 그의 정치 인생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다.
“진짜 뻔뻔한 놈이다. 그래서 더럽고 독한 놈들이지.”
누가 봐도 본인이 맞는데 뻔뻔하게 아니라고 외치는 이학희 모습에 할 말이 없었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싫어해 빛에 나가지 않는다.
그건 자기 행위가 선명한 그림자로써 어느 방향으로 모습을 드러낼지 몰라 두렵기 때문이다.
음지에서 자생하는 독버섯들은 세상 곳곳에 널렸다.
특히 권력을 잡고 있는 검찰과 경찰, 국회의원과 재벌들의 행태는 미래에 가서도 일반인들의 상식을 아예 뒤집어 놓는다.
이학희 동영상 사건만 봐도 그렇다.
물증이 넘치고 증인도 버젓이 있건만 검찰은 믿을 만한 증거가 못된다고 사건을 묻었다.
더러운 개XXX!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을 좀 먹어온 부패한 정치 검찰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힘을 갖고 오래도록 휘둘러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 생에서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스타트부터 인터넷에 쫙 풀었다.
그것도 청문회장에서 국회의원에 의해 까발려졌다.
이것을 개기로 지속적으로 괴롭힐 생각이다.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또 다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권에 의해 덮일 게 뻔했다.
그 꼴은 두 번 보기 싫다.
똑똑.
사무실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요즘 들어 재미를 붙인 도도희 상무, 아니 이제 도 대표 그녀의 장난.
“들어와요.”
스르릇.
문이 열렸다.
“회장님~ 점심 드셔야죠~.”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도도희 대표가 들어섰다.
나이는 30대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성수의 효능이 실로 대단했다.
20대 초반의 발랄한 미모와 함께 조화롭게 느껴지는 30대의 단단한 눈빛.
그녀의 스타일은 언제나 한결같이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일반인은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차림이다.
끈이 길게 달린 밝은 하늘색 바지에 깔끔한 하얀 셔츠.
붉은 안경테가 그녀를 더욱 도도하게 만들었다.
“유 상무님요?”
유세라 팀장도 상무로 승진시켰다.
사무실에는 여전히 그녀밖에 없다.
모두가 다 비밀스러운 사업들인 만큼 많은 사람들을 쉽게 들일만 한 여건이 아니었다.
“지금 정리하고 있어요.”
“그럼 갈까요?”
“오늘 맛있는 거 먹어요. 다음 달부터 바쁘다고 하셨죠?”
“학교 졸업해야죠.”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변호사 자격증까지 따놓고 무슨 학교에요.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이지만 신입생들은 안 돼요!”
아직 4학년 수업이 좀 남았다.
며칠 후면 개강이다.
변호사 타이틀을 쥔 한국대학교 법학과 4학년.
화끈하게(?) 남은 대학 생활을 마무리 하고 싶다.
사락.
어느새 바짝 다가와 팔짱을 거는 도도희.
익숙한 향기가 상쾌함을 더했다.
그녀와 밖으로 나왔다.
“회장님. 오늘 점심은…… 쌀쌀한데 베트남 쌀국수 어때요? 최근 개업했는데 맛집이래요.”
승진을 했음에도 여전히 나에게만큼은 극진한 예의를 갖추는 유세라 상무.
“콜!”
그녀는 나의 왼편으로 다가와 섰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미녀들과의 점심시간은 삶의 활력을 더했다.
이 순간 필요한 건!
“오이가 무덤에 묻히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갑자기 또 발동이 걸린 지난 생에 써먹던 삼십대 아재의 숨길 수 없는 개그.
“거름이겠죠.”
단순한 유세라 상무.
“흐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습관적으로 의심하는 도도희.
아직은 유행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재 개그.
“오이무침!”
“……헐.”
“회장님…….”
나를 외계인 쳐다보듯 바라보는 두 여인.
농담 센스가 아직 썰렁 개그에 머물러 발달하지 못했다.
“고추가 웃으면?”
“설마…… 풋…… 고추???”
“오! 유세라 상무님 정말 똑똑해요.”
“회장님!!!”
“하하하하하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밖으로 나갔다.
띠리리리릿.
꼭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울리는 스마트폰.
천일의 황효관 대표다.
“무슨 일입니까?”
- 회장님……. 지시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어떤 지시 말입니까?”
- 임대 아파트 건설현장을 이웃 아파트 주민들이 점거했습니다.
“네? 점거요?”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