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장. 끝판왕들 (3)
- 대통령님이 지금 와이너리에 와 계십니다.
“뭐라고? 세상에! 오바마…… 대통령이 와이너리에 갔다고? 오! 마이 갓!”
로버트 라이언은 느닷없는 소식에 신을 부르짖었다.
보스는 지금 와이너리에서 쉬고 있다.
월가에서 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만날 수밖에 없는 차일드 가문의 방계 후계자와 말이다.
사라 요한슨의 부탁에 로버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업 규모가 커지자 사방에서 견제가 심하게 들어왔다.
보스 명대로 철저하게 세금문제를 비롯해 합법적인 사업 위주로 꾸렸지만 투자라는 게 법대로만 될 수 없었다.
유력 정치인을 비롯해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월가가 미국에 위치해 있지만 그 안에 흐르는 자금은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세력의 무기들이다.
투자를 주도하는 입장에서 하루하루가 정말 살벌했다.
보스의 투자도 과거와 달리 100퍼센트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았다.
어떤 순간이 오면 사라 요한슨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투자 회사의 이사직에 올랐을 정도로 근래 가문의 신임을 톡톡히 받고 있는 그녀.
보스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남다르다는 것도 로버트는 알고 있었다.
뭔가 성사되려는 찰나에 갑작스럽게 오바마 대통령이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로버트를 통해 일체 양해를 구한 적도 없다.
작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보스는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다.
그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한 번 꼭 만나보고 싶다고 백악관 측에서 요청이 있었지만 매번 보스는 거절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보스는 오바마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상황이 그러한데 오바마 대통령이 사고를 쳤다.
보스 성격에 선약 없는 방문을 몹시 불편해 할 게 뻔했다.
자칫 이번 일이 큰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보스는 절대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들고 있을 세상에 몇 안 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
로버트는 전화기를 잡고 상대를 다그쳤다.
-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두 분이 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위기는?”
- 그것도 파악하기 힘듭니다.
“끄응.”
로버트는 답답한 마음에 신음을 흘렸다.
보스 눈 밖에 나면 오바마 대통령은 힘들어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스의 명을 받아 로버트는 오바마를 돕고 있었다.
미국 정치판도 절대적으로 돈이 필요했다.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하원과 상원 선거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
- 별문제야 있겠습니까. 상대는 대통령입니다.
속도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와이너리 경호팀장의 대답.
“알겠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 알겠습니다.
로버트가 취할 수 있는 액션은 아무것도 없었다.
털썩.
골치가 지끈 아파온 로버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젠장…….”
오랜만에 느껴보는 위기감.
월가에서도 멀고 먼 와이너리.
그곳에서 감도는 강렬한 부딪침이 이곳까지 느껴졌다.
겉모습과 달리 강단이 넘치는 두 존재.
제발 무사히 불시의 접촉이 마무리되기를 로버트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
‘이런 기분……. 오랜만이야.’
오바마는 묘한 시선으로 눈앞의 한국인을 바라봤다.
보통 자신이 깜짝 방문하면 열성 공화당 지지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호하고 격하게 반겨줬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다.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팍팍 드러냈다.
자신의 왕국에 무단 침입한 불청객을 대하는 듯한 태도.
세계의 지도자라 불리는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오바마도 정치인답게 눈치가 빨랐다.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자신의 초선과 재선을 뒤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힘껏 밀어준 사내다.
오바마는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미끼만 보고 무는 바보가 아니었다.
큰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의 정체와 뒤를 돕는 의도를 알고 싶었다.
로버트 라이언이 남자에 대해 비밀에 붙였지만 미국 대통령의 권한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캤다.
CIA를 비롯해 미국 비밀 정보기관이 투입됐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메일 정보도 파악하지 못했다.
본 적 없는 암호화 처리가 되어 있어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여러 가지 투자 정황과 증거들로 다니엘이 실제 보스이고 로버트가 그의 하수인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기분이 상했다.
월가의 떠오르는 신성 투자자가 외국인, 그것도 한국의 젊은 남자에게 조종을 당한다는 게 언짢았다.
오바마는 누구보다 미국을 사랑했다.
조상이 아프리카인이었지만 오바마 스스로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지식과 사고방식, 경험과 사랑까지도 미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만들어졌다.
인종적 차별과 가치관에 반하는 여러 불합리한 점들이 많았지만 그 조차도 수용했다.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 다양한 의견과 사상이 자연스럽게 충돌하는 환상적인 국가였다.
그런 미국을 지탱하는 금융부분에서 의도치 않게 한 인물을 발견했다.
과거부터 실제 지배자나 다름없었던 차일드 가문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한만 침범하지 않으면 미국을 건들지 않았다.
세계적 부의 지배자였던 만큼 긍정적이고 여유가 넘쳤다.
반면 다니엘 장, 한국의 금융인은 어떤 의도를 갖고 투자를 거듭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위험했다.
대통령에 처음 취임할 당시 고위직 자리 몇 개를 요청했다.
관행적인 일이었기에 기꺼이 수용했다.
추천한 인물들 역시 모두 합리적이었다.
나름의 정보력을 동원해 미국 국익에 불이익을 가져올지 살폈다.
놀랍게도 부정적 요소는 거의 없었다.
추천한 장관들은 막상 로버트나 한국인을 위해 큰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겨우 한국에서 일어났던 불합리한 조치에 대해 몇 번의 발언을 행사했을 뿐이다.
이번 재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선 때보다 더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이런 정황에 생각이 깊어졌다.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더 큰 그림이 존재할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때마침 얼마 전 은밀히 보고된 사건 하나.
다니엘 장이 미래 민주당의 적이 될 수도 있는 트럼프와 접선한 사실이 파악됐다.
다들 트럼프를 우습게 여겼지만 오바마 생각은 달랐다.
자신도 정치 무명이나 진배없을 때 돌풍처럼 일어난 여론에 의해 대통령이 됐다.
아직까지는 힐러리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많았지만 그 폭풍이 언제 돌변할지 몰랐다.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걸 알고 있는 오바마로서는 적이나 다름없는 트럼프에게 선을 대고 있는 다니엘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당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라.
친구인지 적인지 확실히 밝혀 달라.
색을 분명히 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 물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오바마 당신과 민주당을 위해 거액을 투척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누구 편이냐고 묻는다면…….”
‘도대체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저런 인물이 난 거지?’
다니엘은 와인잔을 들고 빙긋 웃으며 도리어 반문을 했다.
미국 대통령 앞이었다.
전혀 밀리지 않았다.
분위기 조절 능력과 화법이 능수능란했다.
오바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누가 봐도 오바마의 질문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트럼프와 어떤 관계입니까?”
이럴 때는 돌려 말하기보다 직설적 질문이 상책이었다.
“투자자입니다.”
“투자 관계요?”
“트럼프는 특별한 사업 방식을 소유한 투자자입니다. 전 그 점을 높이 샀습니다.”
“불편한 대답이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트럼프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입니다.”
“작년 대선에서는 위험하지 않은 별난 후보였을 뿐입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그는 큰 사고를 칠 게 확실합니다.”
오바마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가 생각하는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했다.
인생에 한 번뿐인 대규모 사업.
그래서 무서웠다.
정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걸 돈으로 판단해 유권자를 유혹할 것이다.
“어떤 사고 말입니까?”
“트럼프는 장사치입니다. 그것도 더러운…….”
오바마는 트럼프를 이미 적으로 규정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요?”
“다니엘,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어떤 짓도 불사할 인물입니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그 가족들이 백악관에 입성해 이 나라를 갈가리 찢어 먹을 게 확실합니다!”
오바마는 흥분한 나머지 거친 말들을 다다다 쏟아냈다.
평소의 지적이고 차분한 그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요?”
“다니엘, 만약 그렇게 되면…….”
“그건 미국 사정 아닙니까. 그리고 오바마 당신을 증오하는 남부 공화당 열성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화내지 마십시오. 전 당신에게 투자했을 뿐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정치 라이벌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트럼프가 더러운 장사치라고 했나요? 그럼 저도 그렇게 불러 주십시오. 나도 이익이 있는 곳에 투자하는 더러운 장사치입니다.”
여유 있는 미소를 띤 채 와인잔을 들며 자신을 과감하게 격하하는 다니엘 장.
“…….”
오바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눈앞의 외국 청년은 미국인이 아니라는 걸 순간 잊었다.
하물며 자신에 대한 지원 역시 투자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오바마 당신도 나에게는 트럼프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최병박의 비리를 알고도 묵인하지 않았습니까. 국부를 외국에 팔아넘긴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쥐새끼를 방관하지 않았나요? 미국과 당신의 이익을 위해서 말입니다.”
“!!!”
오바마의 눈동자가 당황함과 놀람으로 눈에 띄게 커졌다.
전 한국 대통령이었던 최병박.
그에 대한 비리를 오바마 역시 너무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 국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차 없이 팔아먹었다.
미국 정보당국에 의해 모든 것들이 체크됐다.
오바마는 최병박 시절의 일을 떠올렸다.
대한민국에는 손해가 분명했지만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는 이익이었다.
1달러 가치도 없는 석유 회사를 수십억 달러를 받고 팔았다.
캐나다 기업이었지만 미국 월가 투자자들의 자본도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오바마는 판단했다.
미국에서 흑자를 보는 수출 대국인 한국.
이익을 본 만큼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미국을 위해서는 동맹국 성장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한국 대통령 비리를 통해 얻는 유무형의 이익이 상당했다.
미래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할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미군 기지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다.
동시에 안보 불안을 이유로 미국 무기를 고가에 팔았다.
대통령 최병박으로 인해 한국 전체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국민적 선택에 대한 합리적 징벌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바마. 당신의 국정 철학과 고매한 이상은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해 보십시오. 당신은 신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하고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
오바마는 속이 바짝바짝 탔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치인들 중에 신 앞에 죄 없음을 선고 받을 자들은 없을 것이다.
“당신 덕분에 모든 세계인들이 평화롭습니까?”
“……지금 날 추궁하는 건가!”
오바마의 말투가 다소 거칠어졌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지금 전쟁이 벌어졌다.
그 일을 놓고 추궁해 오는 다니엘.
오바마의 심장에서 분노가 서서히 끓어올랐다.
일개 한국인 개인 투자자 따위가 미국 대통령을 꾸짖고 희롱했다.
경호원들이 옆에 있었다면 총구를 겨누었을 것이다.
“무슨 대답을 듣고 무엇을 판단하고 싶어 초대하지 않은 이곳에 찾아왔습니까?”
“!!!”
오바마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누구도 모를 자신의 진짜 속마음.
다니엘 장은 오바마의 격한 목소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가……. 정체가 뭐야!’
독심술이라도 습득한 듯한 다니엘의 태도와 눈빛에 오바마는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꿀꺽.
목이 타들어가 급하게 와인을 한 모금 넘겼다.
다니엘의 말처럼 오늘 오바마는 어떤 것에 대해 판단하고 결심이 필요해 이곳에 찾아왔다.
기준은 오로지 미국의 국익.
만약 눈앞의 한국인이 미국에 해가 된다면…….
“이제 제가 묻겠습니다.”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로 다니엘이 오바마를 직시했다.
웃는 얼굴이 분명하지만 다니엘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오바마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오바마 당신은……. 내 친구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적이 되겠습니까.”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일개 개인이 던지는 무례한 질문.
“으으음…….”
오바마는 자신도 모르게 긴 신음을 토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