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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장. 끝판왕들 (2) (593/1,284)

596장. 끝판왕들 (2)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덩치의 보잉기가 활주로에 착륙했다.

개인 비행장이지만 대형 여객기가 착륙할 수 있는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다.

위풍당당하게 내려앉은 비행기.

보잉 747-200B.

활주로를 밝히는 조명 사이로 보이는 United States of Amarica라는 선명한 문장.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 사용한 디자인의 글자를 모르는 미국인들이 없었다.

보잉사가 1990년대에 기증한 아메리카 합중국, 약칭 미합중국 대통령의 공식 비행기가 도도한 자태를 뽐내며 멈췄다.

100명에 가까운 인원과 두 개의 요리실, 특수한 통신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세계 곳곳과 장애 없이 통신할 수 있다.

공중 연료 공급 및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장착돼 있어 날아다니는 집무실이나 마찬가지.

“미친…….”

“마, 맞지? 저거!”

“세상에……. 에어포스 원이 여긴 왜…….”

로버트 라이언이 선발해 고용한 경호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이곳 와이너리에 VVIP가 와 있었다.

고용주인 로버트 라이언이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 남자.

그와 함께 동행한 10여 명의 한국 경호원들은 딱 봐도 실력이 대단한 이들이다.

세계 특수부대 최정예 선발대회에서 마주쳤던 한국군을 연상시키는 그들.

미국 경호원들도 대부분 미국 특수부대 출신들이다 보니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 미국 경호원들이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비행기들.

처음 도착한 비행기에서는 엄청난 미녀가 나타났다.

이미 연락을 받은 상태라 신분 확인만 끝내고 와이너리로 안내했다.

여성과 같이 온 경호원들은 정문에서 대기 중이다.

경호원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묘하게 작용하고 있던 순간.

상공에서 다시 한 번 비행기가 출현했다.

이번에는 모두가 놀랐을 정도의 파격적인 인물.

스스스스스슷.

뿐만 아니다.

에어포스 원이 착륙하는 사이 스텔스 헬기 몇 대가 저공비행으로 소리 없이 나타났다.

잔디 깎는 기계 소리 수준의 소음.

공격용 헬기와 함께 대통령을 책임지는 비밀경호국 백악관 경호원들을 태운 수송용 헬기가 사뿐히 착륙했다.

그리고.

타다다닥.

헬기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슈트 차림 경호원들이 신속하게 주변으로 퍼지며 도열했다.

그 수가 약 30여 명.

대통령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던 일이 아님이 확실했다.

보통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는 장소는 며칠 전, 혹은 최소 하루 전에는 폭발물감지팀을 비롯해 선발대가 먼저 움직이는 게 관례다.

이런 식의 불시 경로 이동은 거의 없었다.

와이너리 경호원들은 감히 그들의 앞을 막지 못했다.

총을 겨누는 순간 국가반역죄였다.

뿐만 아니라 적외선 탐지기와 열상장치를 통해 자신들을 식별하고 있는 스텔스공격헬기가 있다.

거기에서 뭐가 날아올지 아무도 몰랐다.

“책임자가 누굽니까?”

중년의 사내가 선두에서 다가오며 책임자를 찾았다.

“케일 중령님, 접니다!”

“에르난데스?”

“넵!”

“반갑군. 퇴직한 자네를 초빙하려고 찾았었는데. 이런 곳에 있었군.”

백악관 비밀경호국 소속 팀장 케일이 앞으로 나서는 사내를 확인하고 반가워했다.

대테러 특수부대 네이버씰 전직 장교와 대원 관계였던 두 사람이다.

“중령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케일 팀장이라고 불러주게.”

“케일 팀장님.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보면 모르나.”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일이야. 대통령께서 갑작스럽게 움직이시는 바람에 경호팀도 바짝 긴장하고 있어. 그러니까 모두들 알지?”

“넵!”

두 말하면 잔소리였다.

미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통령인 오바마였다.

전직 군인이었던 이들이 대다수인 로버트 라이언의 경호팀이 힘차게 대답했다.

오랜만에 다시 군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사이 에어포스 원은 활주로에 완전하게 멈췄다.

타다다닥.

곧 비행기에서 경호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려왔다.

뒤이어 미합중국 대통령 오바마가 두툼한 회색 카디건을 걸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느새 대기하고 있던 대통령 전용 리무진에 오르는 오바마.

주변 경계를 하던 경호원들이 대기 중인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모두 수고가 많아요.”

차 창문을 내리고 웃는 오바마.

“일동 차렷! 경례!”

처저저적.

전직 군인들은 칼같이 각을 맞춰 경례를 했다.

가벼운 경례로 오바마 역시 답례했다.

“갑자기 찾아와 미안한데 내가 저 안에 있는 다니엘이라는 친구 좀 보고 싶은데 괜찮겠나요?”

불쑥 방문한 것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오바마는 그에 맞는 예의를 구했다.

“괜찮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사설 경호원이라고 해도 대통령을 막을 깜냥은 안 됐다.

“고마워요.”

오바마는 특유의 미소로 활짝 웃었다.

부우웅.

차는 빠르게 와이너리로 향했다.

“다들 알겠지만 오늘 일은 비밀입니다.”

경호 팀장 케일이 주의를 줬다.

대통령 행선지는 언제나 탑 시크리트.

“옛 썰!”

로버트의 경호원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다만 씨큐리티 소속 경호원과 사라 요한슨의 경호원들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

“대통령을 초대했었나요?”

사라가 놀라 물어왔다.

아니다.

이번 방문에 대통령과의 만남은 계획에 없었다.

아니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까지 나와 마주한 적도 없다.

재선 당시에도 슈퍼팩으로 뒤에서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를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깔끔한 관계가 좋았다.

로버트를 통해 몇 번 만나자는 제의를 받긴 했지만 그때마다 거절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로 끝내야 감정 낭비가 없는 법.

어차피 미국의 대통령이 될 오바마였다.

보유한 자금을 활용해 그에게 빚을 안겼다.

그 대가로 최병박 정부 때 나름 톡톡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타다다다다닥.

오바마 대통령 경호원들이 점령군처럼 주변을 샅샅이 포위해 왔다

머리 위에 뜬 비밀 스텔스 헬리콥터가 몹시 거슬렸다.

녀석은 대놓고 포구를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여차하면 발포하겠다는 의미.

“다니엘…….”

사라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비쳤다.

나도 아쉽다.

한참 피가 뜨거울 나이.

주변에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중했다.

진심으로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이 갖는 나에 대한 호감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서로 지킬 것을 지키다 보니 몇 년 동안 노총각처럼 지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사라는 그녀들과 달랐다.

각자 서로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지 않았다.

눈빛이 통했다.

짧은 순간 서로에게 진실하고 충실하게 최선을 다 하고 싶었을 뿐인 사라와 나.

그녀 앞에서는 나 또한 마음이 열렸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훼방꾼이 나타났다.

예고 없는 미국 대통령의 방문.

타다다닥.

일단의 경호원들이 초근접 거리까지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총기를 소지하고 계시면 지금 제출해 주십시오.”

사무적인 태도로 딱딱하게 나오는 경호원.

누가 이곳의 주인인지 모르는 눈치다.

“리처드 요한슨 상원 의원, 그 분이 제 아버지입니다.”

사라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묵직하게 경고를 날렸다.

“!!!”

경호원들이 당황해 놀랐다.

표면적으로 미국은 대통령이 다스리는 것 같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거대 자금줄을 쥐고 있는 차일드 가문의 후손.

백악관 경호원들이라면 그 정도 정보는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자박자박.

그 사이 와이너리에 도착한 오바마가 핵가방을 든 수행원과 함께 테라스로 올라왔다.

“와우!”

석양이 거의 사라져 붉은 잔해만 남아 있는 하늘.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보며 오바마가 감탄을 터트렸다.

정작 나와는 인사도 나주지 않은 상태.

“다니엘 장……. 만나서 반가워요.”

풍경에 시선을 뺏겼다 나를 돌아보며 눈이 마주치자 손을 내미는 오바마.

지난 4년 동안의 국정 운영 때문인지 그 사이 많이 늙었다.

“다니엘 장입니다.”

내민 손, 잡아줬다.

“……사라 요한슨 양이 이곳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 심정입니다.”

뜨거운 분위기를 해친 오바마를 쌀쌀하게 대하며 쳐다보는 그녀.

오! 사라!

감히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를 향해 한 방을 날린 사라 요한슨.

그녀 가문이 갖는 힘의 크기를 짐작 가능하게 했다.

“하하. 반성해야겠군요. 제가 요즘 감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오바마.

그러나 동조의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먼저 나를 찾아 온 이유가 궁금했다.

웃음을 거두지 않고 있었지만 눈동자 깊숙이 냉철함이 엿보였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알림음은 부지불식간에 방문한 오바마에 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선과 악의 관계가 아닌 오로지 인간 대 인간의 만남.

“잠시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오바마가 경호원들은 돌아보며 자리를 비켜달라는 의중을 비쳤다.

차자작.

위험 사항 파악을 끝낸 듯 근접경호를 맡은 인원들까지 모두 테라스 아래로 내려갔다.

“다니엘. 난 그럼…….”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사라도 대통령의 말을 따랐다.

“금방 끝날 것 같으니…… 아래층에서 와인 한 잔 마시고 있어요.”

“!”

동그랗게 눈을 뜨는 사라.

바로 앞에 대통령을 두고 할 말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내가 오바마 대통령보다 사라를 더 소중하게 대하고 있음도.

“이런……. 제 방문이 무례했군요.”

오바마가 사라와 나의 분위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마 이런 식의 푸대접은 처음 받아 볼 것이다.

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국빈으로 초대해도 남는 시간이 없어 방문이 쉽지 않은 미국 대통령이다.

그런 오바마를 면전에서 면박 줬다.

“예약 없는 방문은 그 어떤 곳에서도 예의가 아닙니다. 설사 당신이라 해도 말입니다.”

파바바밧.

오바마와 눈빛이 부딪쳤다.

강렬했다.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오바마의 눈빛은 매서웠다.

부드러운 미소와 아이들을 향해 늘 짓고 있던 따뜻한 미소와 사뭇 달랐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미국의 대통령.

“……그 점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합니다.”

“이번만은 받아들이겠습니다.”

“…….”

나와 오바마의 짧은 대화 몇 마디에 사라는 잔뜩 얼어붙었다.

차일드 가문 수장도 미국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이렇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굽히고 들어가기 싫었다.

사실 이런 방문은 정말 예의가 아니었다.

오바마 경호원들이 마치 자신들의 거처처럼 수색하던 행동 자체도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앉으십시오.”

오바마를 향해 테라스에 놓인 자리를 권했다.

“고맙습니다.”

오바마, 대단했다.

성질 급한 이였다면 얼굴을 붉힐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어느새 평정의 표정을 되찾았다.

“그럼.”

사라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오바마는 내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와인 드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처음 올 때와 달리 한결 차분해진 오바마.

와인을 따라줬다.

건배는 없었다.

“흐음……. 훌륭한 맛이군요.”

속이 탄 듯 와인을 시원하게 마시며 오바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머릿속이 몹시 복잡한 듯했다.

“이곳 와이너리 생산품입니다. 요정이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요정요? 하하하하하하하.”

진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인 듯 오바마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프로 정치인은 달랐다.

금세 분위기 전환을 의도하는 오바마.

나도 빙긋 웃어줬다.

그리고.

“바쁘신 대통령께서 선약도 없이 절 찾아오신 용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나 급하다.

빙빙 돌릴 것 없이 날린 직구.

“…….”

와인잔을 든 채 날 지그시 바라보는 오바마.

“다니엘……. 당신은 적입니까? 친구입니까?”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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