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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장. 끝판왕들 (592/1,284)

595장. 끝판왕들

“하나 둘! 하나 둘! 여기서 턴! 좋아!”

MTS 안무 연습실.

안무 지도자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5월에 발표될 신곡 ‘스프링 플라워’의 안무 연습이 한창이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어.”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안무 지도를 맡았던 지도자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헥헥…….”

“이, 이제 진짜 늙었나 봐.”

“으으으. 뼈마디가 쑤셔.”

FOB 멤버들이 격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한 명만은 아직 몸에 힘이 넘쳤다.

“아니 그게 말이 돼? 왜 내가 아니고 주민이 언니와 스캔들이야! 와아아……. 내가 기자회견 한번 해? 우리 장태산 이사님 애인이 나라고 말이야!”

서련이 농담이 아닌 말로 씩씩거렸다.

며칠 동안 인터넷 실검에 오르내렸던 주민의 스캔들 기사는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후 소속사의 적절한 기자회견과 대처로 전부 마무리됐다.

하지만 서련은 불만이 더 커졌다.

“내 말이~ 주민이 언니보다는 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무슨 소리야! 언니들보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린 내가 맞지!”

“김칫국들 마시지 마세요. 이사님이 날 보는 눈빛이 요즘 심상치 않았어~ 흐흐흐.”

FOB 멤버들은 서로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언니. 진짜 아니지?”

서련이 당차게 주민에게 물었다.

빙긋 웃어 보이기만 하는 주민.

“뭐야? 그 의미심장한 웃음은……. 설마!”

서련과 멤버들은 조용히 있다가 스캔들 소식이 가라앉자 이제야 추궁을 시작했다.

그동안 궁금해도 조용히 있었던 그녀들.

“이사님과 난…….”

주민이 활짝 웃으며 말을 하려다 끝을 흘렸다.

이 자리에서 제대로 장태산 이사의 품에 제대로 안겨본 멤버는 주민밖에 없었다.

“난 뭐!! 으아아아! 언니가 날 숨 막히게 해 죽일 생각인가 봐!”

서련이 말을 멈춘 주민을 보며 방방 뛰었다.

“친구야. 인생 친구.”

주민은 확신에 찬 말투로 답했다.

“친구 맞지?”

“그럼 그렇지.”

그제야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련이 말고도 다들 각자 장태산 이사에게 관심이 많았다.

막상 장태산 이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고마워. 태산아.’

주민은 장태산에 대한 이성적 감정은 진작 버렸다.

힘들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 하나 얻은 걸로 만족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믿을 만한 남자사람친구.

“다들 일어나. 한 번 더 맞춰보자! 그리고…… 이번 봄도 우리가 다 쓸어버리자!”

깔끔하게 주변 상황이 정리된 후 주민은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었다.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걸그룹의 수명.

그때까지 남아 있는 모든 정열을 노래와 춤에 담을 생각이다.

주민은 이제 더 이상 어설픈 사랑 놀음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

“좋다…….”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즐기는 휴가 타임.

흔들의자에 앉아 해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봤다.

넓은 평원과 저 멀리 산자락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그림 같았다.

캘리포니아 나파벨리에 위치한 다리우스 와이너리.

페르세폴리스 형태의 건축물을 온전히 나만 사용했다.

안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다.

중세 이란 풍의 건물은 이계에서 공자 신분을 딴 나와 참 잘 어울렸다.

그 사실을 나만 안다는 게 좀 아쉬웠을 뿐.

와이너리는 로버트가 파견한 경호원들과 AT 씨큐리티 직원들이 빈틈없이 경비를 섰다.

스르르릉.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캘리포니아의 2월 날씨는 쌀쌀했다.

한국 날씨처럼 영하까지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황혼 무렵에는 영상 10도 정도에 머물렀다.

두툼한 카디건을 걸치고 한 손에 와인을 들고 즐기는 황혼의 여유.

모든 시름이 싹 사라졌다.

한국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관한 근심은 오늘만큼은 모두 내려놓았다.

주민의 일로 얽혔던 백형조와의 한판.

본격적으로 마수를 뻗기 시작한 주순자의 더러운 정치 술수에서도 벗어났다.

화기가 넘치는 땅에서 즐기는 붉은 와인.

와인 요정이 정성을 들여서인지 와인 맛이 더 진했다.

“발론 머스크라……. 끝판왕과의 만남이군.”

로버트에게 들었던 이름 발론 머스크.

그는 괴짜 천재였다.

애플의 스티븐 매튜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지만 달랐다.

스티븐은 앱 생태계와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지엽적 천재.

반면 발론 머스크는 우주를 꿈꾸는 괴물이다.

남들이 ‘노’라고 할 때 혼자서 ‘예스’라고 말하는 남자.

미국 NASA도 천문학적 비용으로 반쯤 포기한 우주개발에 일개 민간인인 그가 뛰어들었다.

로켓 강국 러시아를 비롯해 그 어떤 국가도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영화 속 슈퍼 히어로의 모티브가 되었을 만큼 미국인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전기 자동차부터 시작해 인공지능, 하이퍼루프 프로젝트 솔라시티, 스페이스 프로젝트, 교통정책 기업 등등.

그가 기획하는 모든 사업들은 일반적 기업인의 사고를 벗어났다.

사업성은 누가 봐도 답이 없었지만 기업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물론 사람이니 완벽하지는 않았다.

머리에 떠오르는 말을 여과 없이 뱉어내 대중들을 충격에 빠뜨리곤 했다.

언플의 황제로 불리는 발론 머스크.

그가 나를 보고자 했다.

“머스크…… 기다리고 있었다.”

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내일의 시간을 기대했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머스크가 어떤 똘끼를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쇄애애애애애앳.

그때 자가용 비행기 한 대가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 기수를 낮추며 가까워졌다.

“로버트…… 벌써 온 건가?”

오늘은 일이 바쁘다고 했던 로버트.

공항에 마중도 나오지 못했다.

밤늦은 시간에나 오겠다고 했던 그였다.

와인을 마시며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비행기는 순탄하게 착륙했고 곧 자가용이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와이너리로 다가왔다.

경비를 서던 이들이 문을 여는 게 보였다.

“여자 친구가 또 바뀌었다더니…… 부러운 인생이야.”

한 번 결혼에 실패한 로버트는 다시는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1년에 한 번 정도 애인이 바뀌었다.

사생활이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게다가 여기는 연애에 대한 개념이 한국과 많이 다른 자유로운 미국.

월가의 거물에게 미녀들이 대시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또각또각.

“???”

그때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하이힐 소음.

“여자 친구만 먼저 보낸 건 아니겠지?”

자유분방한 스타일답게 로버트가 여자 친구를 먼저 보낼 수도 있었다.

와인을 마시며 테라스로 올라오는 구두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이상하게 구두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한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맡았던 그 체취.

고개를 돌려 테라스로 올라온 그녀를 봤다.

“……사라.”

***

오래 기다렸던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그의 놀란 눈빛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몇 년 전 여름 휴가 때 보고 처음이다.

가끔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 훌쩍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라는 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방계 투자 회사의 이사가 됐다.

다니엘 덕분에 차일드 가문의 주인이 된 로리아나와 다시 연결이 됐다.

방계 쪽 대표로 본가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서야만 했다.

방계 쪽이지만 본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익이 되는 일에 있어 반드시 같이 일을 추진했다.

본가와 방계의 권력 다툼이 있다고 해서 외부 적들과 손을 잡지는 않았다.

긴장 속에 지내온 사라는 오늘 마음껏 무장 해제했다.

그가 미국에 왔다는 정보를 얻었다.

로버트에게 연락을 넣어 부탁했다.

다니엘에게 깜짝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로버트와 사업적으로 얽혀 있어 쉽게 승낙을 받았다.

여름 휴가지에서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챘던 로버트.

사라 요한슨만 와이너리에 들어가도록 허락했다.

“사라…….”

다니엘은 자신을 잊지 않았다.

조용히 이름만 부르는 그의 눈동자에 드리워진 놀라움과 반가움.

사라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거친 바람이 오월의 꽃망울을 뒤흔들고

여름은 너무 짧아 어느덧 지나가고

이따금 햇살은 황금빛을 읽고 흐려진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아름다움이 줄어들거나 사라지지만

그대 지닌 아름다움은 잃지 않으리…….

다니엘은 역시 멋있었다.

사라를 보며 세익스피어의 시를 반가움의 인사로 대신했다.

이러니 사라 역시 다니엘을 잊지 못했다.

같은 인종은 아니었지만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예술적 감각.

다니엘은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박학다식했다.

세상에 저런 남자 흔치 않았다.

또한 그대에게서

죽음은 멀리 있고

연원한 시간 속에서 그대는 성장하리

인간이 숨 쉴 수 있고

눈이 볼 수 있을 때까지

오래도록 이 시는 살아 있을 것이고

또한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니…….

사라도 익히 알고 있던 시였기에 화답을 했다.

다니엘이 활짝 웃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심장이 먼저 뛰었다.

오늘 밤은 이곳에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다.

온전히 저 남자를 다시 영혼에 새기리라 사라는 마음먹었다.

용기 있는 여자가 영웅을 얻는 법.

오늘 밤 하루면 충분했다.

사랑의 감정은 오직 이 순간 느끼는 것만이 진실일 뿐.

타다닥.

사라는 용기를 내 다니엘에게 달려갔다.

와락.

그리고 깊고 넓은 품에 푹 안겼다.

“보고 싶었어. 다니엘…….”

금세 목소리가 울컥 뜨거워졌다.

참으려했지만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잊고 있었던 진한 그리움은 가랑비처럼 사라를 적셔왔다.

“나도 가끔…… 당신이 그리웠어.”

다니엘이 품에 안긴 사라의 등을 쓸어줬다.

사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그동안 끌어안고 있던 그리움의 병이 사르륵 녹는 것 같았다.

스윽.

다니엘의 뜨거운 손이 사라의 얼굴을 만져왔다.

가만히 고개를 드는 사라.

다가오는 입술.

달콤한 와인향이 묻어 있는 숨결.

사라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입안 깊숙이 찾아오는 농밀한 그 무엇.

사라는 오아시스를 찾은 길 잃은 사막의 상인처럼 격하게 다니엘의 입술을 탐했다.

“하아.”

거칠어진 다니엘의 숨결.

첫 만남 때 밤이 새우도록 들었던 짐승의 숨결이었다.

사라의 두 손이 다니엘의 단단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이 밤.

사라는 이 순간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여인이었다.

쇄애애애애애애앳.

저 멀리서 들려온 비행기 엔진 소리만 아니었다면.

“????”

뜨거워지는 분위기를 깨는 소리에 사라가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농밀했던 키스 타임은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다니엘이 고개를 돌려 비행기를 확인했다.

사라도 마찬가지.

방금 자신이 착륙했던 와이너리 비행장으로 착륙을 시도하는 상당한 덩치의 비행기.

로버트가 미리 확장 공사를 해 놓아 대형 비행기도 무리 없이 착륙이 가능한 곳에 비행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상공 위로 경계 비행하는 몇 대의 무장 전투기.

미국 내에서 저런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는…….

“에어포스원?”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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