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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장. 찌라시와 찌라시 (589/1,284)

592장. 찌라시와 찌라시

“이…… 개, 개새끼 뭐야!!!”

사론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진득하고 소름끼치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쫄았다.

평소 자신의 입을 통해 나왔던 말들.

상대했던 계집들을 농락할 때 쫙 깔았던 그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아니 더 독했다.

협박 수준이 아니라 당장 목을 조여와 죽일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덜덜 몸을 떠는 사론.

숨이 턱 막혀왔다.

외화에서 더빙으로 듣던 살인자 음성.

음악을 하고 있어 미세한 음역대의 소리에 예민했다.

귀에 콱 박혀버린 그놈 목소리.

사론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고개를 사정없이 저었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년이 그사이 남자가 생겼어! 더러운 X 같으니!”

현실적 공포도 잠시뿐.

들끓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사론은 상황판단을 못했다.

그간 자기 손을 탄 여성들은 모조리 재기불능 상태가 됐다.

상처를 극복하고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소문만 들려와도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다른 남성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되찾았다는 얘기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사론은 다시 악마의 손을 뻗어 괴로움을 줬다.

회사에서 특별히 마련해 준 대포폰을 사용해 과거의 사건을 증명하는 문자나 사진 한 장 정도 전송하면 바로 끝났다.

아주 연예계 바닥을 떠나 브라운관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나 손을 뗐다.

그런데 마무리도 안 된 주민이 감히 반항을 했다.

자신을 상대로 협박을 할 수준이라면 조폭으로 갈아탄 게 확실했다.

하지만 잘못 짚었다.

사론은 조폭 따위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백형조 대표는 조폭과 비교할 수 없는 권력과 손을 잡고 있었다.

대형 로펌뿐만 아니라 검찰, 법원, 언론 그리고 새로 권력을 잡은 청와대 핵심 인사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백형조 대표의 한 마디면 그 정도 잔챙이들은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직접 옆에서 지켜본 일이라 더 믿을 만했다.

“주민…… 넌 죽었어.”

먹빛의 악독한 눈빛을 줄기차게 뿜는 사론.

스마트폰을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무슨 일이야?

평소 형 동생처럼 지내는 사이인 백형조와 사론.

“대표님,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도움 요청이라……. 흐흐. 말만 해.

백형조가 음흉한 웃음을 터트렸다.

웬만하면 도움 같은 건 청하지 않는 사론이 이번만은 자존심을 굽혔다.

“주민이 그 계집애가 남자가 생긴 것 같습니다.”

- 남자? 너 말고?

“……양다리가 확실합니다. 방금 전 주민이 스마트폰을 어떤 남자 새끼가 받았습니다. 절 죽인답니다.”

- 호오, 그래?

백형조가 관심을 보였다.

스캔들이 한 번 터지면 대부분 거짓이 아닌 경우가 많다.

MTS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백형조는 건수를 잡은 셈이다.

진실이 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럴싸한 소문과 적당한 스토리만 존재하면 기자들이 알아서 소설을 쓸 것이다.

특히 데뷔 후 이런저런 소문 한 번 없었던 FOB라면!

작은 스캔들로도 거대 불길과 함께 부연 연기가 눈앞을 다 가릴 게 확실했다.

“소문 진하게 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떡밥 하나 던지겠습니다.”

- 뒤탈 없이 확실한 거지?

“작업 한두 번 해봅니까. 주민이 찍어 보낸 셀카입니다. 흐흐.

- 오케이! 그거면 확실하지.

“대표님. 잘 부탁드립니다.”

- 나만 믿고 신곡 작업이나 끝내. 5월에 나오는 거 맞지?

“거의 끝나갑니다.”

- 흐흐. 이번에도 대박치자.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쪽에서도 입질이 온다. 바람 타고 시장 확 넓혀야지.

백형조는 욕심이 많았다.

주식 상장으로 수천억대 자산가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저 사론입니다. 사론~.”

서로 끈끈한(?) 신뢰와 믿음으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사론과 백형조.

두 사람은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준비했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

“이런 개 쓰레기들이…… 스타라고…….”

사론과 그룹 원탑을 떠올리면 입에서 욕이 절로 터졌다.

주민은 멤버들에게 돌아갔다.

나에게 고백을 하고 난 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 스스로를 추슬렀다.

하지만 아주 끝난 문제가 아니고 분명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미봉책.

그동안 일이 많아서 잠시 잊고 있었다.

앞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사건들이 터지게 된다.

그렇다고 터질 사건들을 다 막을 수는 없다.

최대한 나의 주변 최측근에게서 일어나는 일부터 정화시켜 나가야만 한다.

해외에서 몸집을 키운 수면 아래 묻어둔 거대 자금도 함부로 꺼내 쓸 수는 없었다.

범위를 넘는 나비효과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미래에 내가 알고 있던 세계 정치적, 경제, 사회적 변화가 조금씩 다른 현상으로 발생했다.

유럽과 엔화, 달러를 비롯해 환율에서 확실했던 숫자가 비틀어졌다.

대세적 흐름은 그 추세가 바뀌지 않았지만 미세한 변화는 확실히 동반됐다.

2012년 오바마의 재선도 미래에 있었던 지지율보다 더 올랐다.

슈퍼팩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삼룡이 볼부 자동차 인수를 가로채 중국 자동차 회사는 지난 생에서처럼 명성을 날리지 못했다.

인도 합작 회사도 진영을 갖췄다.

그만큼 곳곳이 연결된 투자금을 멋대로 늘리거나 뺄 수 없었다.

치열한 환율 전쟁에서 나도 한 지역을 담당하는 패자가 됐다.

여러 라인의 감시가 확연한 만큼 움직임에 있어 자중했다.

로버트 라이언 쪽도 몇 개 라인에 있어 의도적 사업 실패를 통해 수익률을 맞추는 추세였다.

세상은 넓고 시장은 다양했지만 실제적으로 주가 되는 경영 주체는 많지 않았다.

암암리에 그들과 직간접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인연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현실 세계였다.

이런 곳에서 이계의 드래곤처럼 싹 쓸어버리는 불을 뿜으며 살 수는 없었다.

“어떻게 조질까. 이 새끼들을 모조리…….”

감출 수 없는 살기가 불끈불끈 치솟아 올랐다.

세계에서 사라져야 할 악신의 추종자들.

인간들 모두 실수든 악의적이든 죄를 지으며 산다.

털어서 죄 안 나오는 성자들 빼고 신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인간들이 손에 꼽을 것이다.

매일 작동하는 눈과 귀, 입을 통해 의식과 결합해 짓는 죄들.

그것은 악한 열매가 되어 말로 뱉어지고 차곡차곡 선악의 카르마 포인트로 결산되고 있었다.

몰라서 짓는 죄.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해소 명목으로 여과 없이 쏟아내지는 악업의 씨앗들.

한 번 씨앗으로 영글어진 업은 돌고 돌아 다시 나의 눈앞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기억이 잊혀지고 지워진 어느 날, 나와 후손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아직은 젊고 스타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들.

그 실체를 깨달은 소수만이 속세를 버리고 초야에 들어 버린다.

스스로 재생산 되는 업과 인연을 끊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특히 보통 사람들의 죄와 달리 사론과 그 멤버들의 죄는 질적으로 달랐다.

순수한 팬들의 카르마 포인트를 어둠의 카르마로 바꿔먹는 악신의 종자들이다.

빛의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어둠의 추종자들.

가장 쉬운 제거 방법은 놈들을 사고로 위장해 치워버리는 것.

- 관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

갑자기 끼어드는 알림음.

- 상위 레벨 악신과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자들입니다.

- 약속된 보호 기간 전에 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뭐라고? 안 된다고???”

악인도 보호를 받는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 다시 확인했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답변이었다.

버젓이 악한 인간임에도 악신의 보호 기간이 존재하는 원탑.

그들을 사랑하는 팬들이 많은 만큼 상위 악신과의 계약도 확실한 듯했다.

악신도 명목을 유지하려 할 테니 가만있지 않을 터.

- 상위 악신이 되시겠습니까?

갑자기 들려오는 생각지 못한 제안 알림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현재 특별 적립 이벤트 기간입니다.

- 지금껏 쌓았던 카르마 포인트를 전부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로 전환하면 계약한 악신보다 더 상위의 악신이 될 수 있습니다.

- 강한 자가 모든 걸 취하는 악신 세계입니다.

친절하게 설명까지 덧붙이며 입질을 해 오는 유혹의 메시지.

현대판 알파닥 같은 놈들이다.

악신에 대한 환상을 품은 신은 화타 하나면 충분했다.

“……직접 터치가 안 된다면…… 다른 방법도 많아.”

스타는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군이다.

직접 터치가 안 되도 인간 같지 않은 그들의 행태에 엿을 먹이는 방법은 많았다.

특히 나에게 특화돼 있는 특별한 능력.

눈길이 컴퓨터로 향했다.

사론에게 빅엿을 선물할 단계별 계획이 차곡차곡 머리에 떠올랐다.

***

“이 여편네가 지금 미쳤나! 야! 조은희!!!”

일주일 만에 집에 들어온 염중천.

텅 빈 넓은 집이 전해주는 썰렁함에 화가 치밀었다.

아직은 온기가 돌지 않는 쌀쌀한 계절이다.

한참 난방을 넣지 않고 방치한 듯 집안은 냉기로 가득 찼다.

거실은 물론 집안 곳곳에 불도 켜지 않아 어두웠다.

하다못해 주방 냉장고도 전원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조은희! 조은희!!!”

악을 쓰며 다시 불러보는 와이프의 이름.

그러나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할 뿐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타다닥.

다급하게 안방 문을 벌컥 열었다.

아귀 입처럼 제각각 활짝 열려 있는 한 벽면을 다 채운 장의 문.

도둑이라도 들어 다 헤집어 놓았는지 그야말로 안방은 초토화였다.

“설마…… 이년…… 가출한 거야?”

문득 스치는 생각에 어이가 없어 안방을 천천히 둘러보는 염중천.

“!!!”

시선이 화장대 거울에서 멈췄다.

분명 안방으로 부부가 쓰는 방이었지만 그간 와이프만 침실로 쓰던 방이었다.

집에 들어와도 특별히 안방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던 염중천.

그는 넓은 서재에서 잠을 자고 출근했다.

애 키우고 밥 주는 역할로 끝난 와이프 자리.

집에는 중요한 서류 같은 것도 두지 않았다.

염중천이 똑바로 쳐다본 거울.

빨간 립스틱으로 적은 굵은 글씨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개새끼……!! 죽어서도 저주한다고??? 이 미친 X이 돌았나!”

와장창창창.

침대 옆에 세워진 조명을 들어 거울을 박살내는 염중천.

“그래 한 번 해봐라. 다시는 개기지 못하도록…… 반병신을 만들어 줄 테니까!”

시간이 날 때마다 폭력으로 제압을 해두었기에 안심하고 방심했다.

그렇게 맞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와이프.

염중천은 치솟는 화를 어쩌지 못하고 씩씩씩 콧김을 뿜어냈다.

- 띠리리리리리리.

그때 스마트폰이 조용히 울렸다.

막내 동생 이름이 화면에 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동천이냐…….”

- 형님! 큰일 났습니다!

동생 이름을 부르자마자 염동천이 호들갑을 떨며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무, 무슨 일이야? 너 사고 쳤어?”

- 아니 그게 아니라…… 형님, 형수님 지금 어디 계세요?

“형수는 왜? 시신으로 발견되기라도 했어?”

‘죽어서도 저주한다’는 말이 퍼뜩 떠올라 당황해서 물었다.

- 형님, 방금 전 고소당했습니다!

“뭐? 고소? 내가? 어떤 미친 새끼가 날 고소해!”

한시름 놓으면서도 염중천은 어이가 없어 물었다.

- 형수님이……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경찰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염동천.

윗선과 연이 잘 닿아 거의 모두가 총장이 되는 자리인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내정을 약속 받았다.

끗발 있는 일을 해야 할 동생이 고작 형수의 고소 소식을 알려왔다.

“그 여편네가? 나를? 뭘로 나를 고소했다는 거야?”

- 그게 상습 폭력과…… 간통죄입니다.

“뭐! 간통죄???”

간통죄는 법조계에서 폐지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폐지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증거는 있고?”

염중천은 내심 기분이 떨떠름했다.

단단히 작심을 하고 고소장을 접수한 게 확실했다.

얼마 전 이혼 얘기를 꺼냈을 때 죽지 않을 만큼 와이프를 두들겨 팼다.

정 원한다면 1억 정도는 준다고 비웃으며 말했던 염중천.

상습 폭행 부분은 가정 폭력 수준이니 어느 정도 무마가 가능했다.

하지만 간통죄는 얘기가 좀 달랐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동생들을 치는 파편이 튈 수 있었다.

- 형님과 다른 여성이 모텔과 별장에 드나드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제출됐습니다.

“그래?”

사진이라는 말에 염중천은 한숨 돌렸다.

하지만.

- 형님, 작은 일이 아닙니다!

염중천과 달리 염동천의 두려움이 서린 목소리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그 정도는 커버 가능하니까 마음 놓아.”

- 형님……. 다음 증거로…… 동영상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별장 성접대 동영상요!

“뭐, 뭐라고 동영상!!!”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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