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장. 감히! (2)
“실장님. 이거 위험합니다.”
“위험해도 밀어 붙이세요. VIP의 명입니다.”
“실장님 과거와 다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없습니다!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찌라시 수준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거주하는 청와대.심처에서 톤이 높은 목소리가 울렸다.
대통령 비서실장실에서 민정수석비서관 조상돈이 윗선의 지시에 반기를 들었다.
“조 수석. 그 자리 왜 앉았습니까?”
“네?”
“이런 일 처리하라고 앉아 있는 거 아닙니까!”
‘뭐야……? 이 빌어먹을 꼴통 새끼가!’
민정수석 조상돈은 호통을 치는 하태영의 언사에 어이가 없다.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패스하고 검사가 된 몸이다.
공안 검사 시절 승승장구하여 오늘의 자리에 이르렀다.
잠시 민주 정부 눈 밖에 나 외야로 밀려날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엄연히 대통령을 보좌하는 민정수석 비서관 신분.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무원에 대한 비리 감찰 및 임명에 관한 뒷조사가 고유 임무였다.
민정수석 눈 밖에 나면 고위 공무원이 되는 일은 불가능했다.
거기에 검찰을 손에 쥐고 흔들 수도 있다.
현직 검사들을 휘하에 두고 지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미래가 창창한 A급 검사들.
그들이 손발이 돼 주었다.
역대 민정수석을 거쳐 간 상당수가 검찰 출신이었다.
법무부 장관과 달리 검사의 마지막 권력 정점이 민정수석 자리였다.
대부분 검찰총장 자리가 검사의 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검찰총장과 독대를 하고 막말을 던질 수도 있는 위치가 민정수석이었다.
검찰총장이나 경찰총장이 된 자들 중에 비리가 없는 자들이 거의 전무했다.
국정원과 경찰 정보과를 동원해 획득한 자료들이 캐비닛에 고이 잠자고 있다.
눈앞에 있는 하태영 비서실장도 마찬가지였다.
행정고시 출신에 전직 국회의원이었다.
대통령 라인에 일찍 붙어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처세에 비해 능력이 모자랐다.
조만간 공안통 검사 출신인 공길춘이 임명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면에서 하태영은 정무적 감각을 비롯해 여러 가지 능력이 한참 부족했다.
“저도 막을 수 없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자료에 의하면 누군가 동영상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까발려지면 이런 망신이 없습니다. 검찰 총장 섹스 동영상이라니요…….”
검찰 출신인 조상돈은 마음이 급했다.
언제부터인가 검찰이 쥐고 있는 막대한 권력을 쪼개려는 세력이 나타났다.
중심이 경찰이었고 그 뒤에 야당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국민들이 검찰 내부 사정을 알게 해서는 안 됐다.
어떤 식으로든 막아야 했다.
점점 더 정보망이 개방되어 언론에 대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직 기자들의 말빨이 먹히고 있지만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뒤집어질지 몰랐다.
그런 마당에 검찰 총장 섹스 비디오가 터진다면 그런 개망신이 또 없었다.
“봤어요? 조 수석이 그 동영상 봤냐고요!”
다시 언성을 높이는 하태영 비서실장.
그도 괴로웠다.
정오가 다 돼서야 집무실에 모습을 보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가 진탕 깨졌다.
자신의 어릴 적 동무에 대한 찌라시 하나 통제하지 못했느냐고 도리어 면전에서 면박을 당했다.
하태영은 비서실장 자리가 나름 만족스럽고 좋았다, 국회의원과 비교할 수 없는 권력의 최상층부 자리였다.
국무총리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장관들 이하 공무원들도 알아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자리가 지금 위태로웠다.
대통령은 물론 그 뒤에 있는 정권 실세에게 제대로 찍혔다.
비자금을 비롯해 여러 가지 수단을 다 써봤지만 다시 신임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불안한 나머지 말하는 중에도 화가 치밀었다.
“아직 못 봤습니다…….”
“거봐요. 못 봤으면서 나도는 음해적 소문에 같이 휘둘리면 되겠습니까? 이학희 검찰총장 추진 건은 계속 진행하세요. 최대한 검증을 하겠지만 소문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쯧.”
하태영이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조상돈 민정수석이 일단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 측에서 밀어붙이라는 재가가 떨어진 게 확실했다.
이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소문처럼 존재한다는 동영상이 터지면…….
이 정권에 큰 타격이 올 수밖에 없었다.
과거처럼 무조건 감추고 누른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 변화를 전혀 모르는 노회한 기존 위정자들.
“최선을 다해 VIP를 보호하세요. 음해적 소문을 내는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세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내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집권 초기였기에 지지층의 지지율이 꽤 높았다.
공식적으로 국민들이 허락한 권력 남용의 시기.
하태영과 윗선은 영화를 누렸던 과거처럼 막강한 정부를 지향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일이 터져도 난 모른다. 이 영감탱이야!’
비리가 한두 개가 아닌 하태영 비서실장을 향해 조상돈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제 정치판을 떠날 때도 됐지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퇴물.
“나가봐요.”
“쉬십시오.”
조상돈은 끝까지 예의를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엿 한 번 거하게 잡숴봐.”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이죽거림.
감이 좋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검사로 살아오면서 발달한 촉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간과한 일이 생각보다 더 큰 문제로 터질 것이라고.
***
“이사님! 나 살찐 거 같지 않아요?”
“나도요! 요즘은 잘 먹지도 못하는데 대표님하고 매니저님이 살쪘다고 난리예요!”
“이사님이 보기에도 그래요?”
“오빠. 나도 살쪘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맞닥뜨린 FOB멤버들이 이사실로 우르르 따라 들어왔다.
말릴 생각은 없었다.
돈 주고도 못 맡을 대한민국 최고 걸그룹의 자연적 체취.
변태는 아니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피부는 소녀들처럼 탄력이 넘쳤다.
아직 꿈꾸는 소녀들의 면모를 다 벗지 않은 멤버들.
내가 보기에는 군살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살쪘다고 호들갑이다.
“살이 찐 거지?”
“네에에에! 300그램 쪘어요.”
“40킬로그램 넘었다고 다이어트하래요……. 흑.”
“이사님 우리 많이 슬픈데…… 위로 차원에서 치킨 사주세요!”
저 키에 40킬로그램이라면…… 엄청 마른 거다.
회사에서는 그 정도를 적정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들의 삶도 별 수 없었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마시는 즐거운 삶을 살 수 없었다.
“확실한 다이어트 비법 알려줄까?”
“그런 게 있어요?”
“와아! 역시 한국대 출신 이사님!”
“오빠! 뭐야?”
다이어트 비법이라는 말에 멤버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다이어트, 생각보다 쉽다.
성수 먹이고 화타 침 꼽고…….
추궁과혈이라는 대법을 펼치면 50대가 되어도 20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이 비법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쓸 수 없을 뿐이다.
“생각보다 간단해. 소리를 잘 들으면 돼.”
“소리요?”
“그게 무슨…….”
더 이상 뺄 살이 없음에도 빼야만 하는 가련한 중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내 앞에 바짝 모였다.
순진한 멤버들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배꼽 소리.”
“……?”
다들 이해를 못하고 눈만 껌벅였다.
“아주 쉬어. 첫 번째! 배꼽에서 꼬로록 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 먹으면 본전!”
“???”
그래도 이해를 못하는 일곱 마리 토끼들.
“두 번째, 배꼽에서 꼬로록 소리가 날 때 먹을 걸 참으면 살이 빠진다.”
손가락을 펼쳐가며 우롱은 계속 됐다.
“마지막 세 번째! 꼬로록 소리가 나기 전에 먹으면 그때부터 살찐다!”
“!!!”
말이 끝나는 순간 황당한 나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듯 눈을 껌뻑이는 그녀들.
“으아아아아아! 사기꾼!”
“이사님 미워요!”
“힝!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오빠…… 완전 나빠!”
서련이를 비롯해 멤버들 모두가 아우성을 쳤다.
“더 쉽게 가르쳐 줄까?”
“이번에는 사기 아니죠?”
서련이가 대표로 물었다.
“당연하지. 귀에 쏙쏙 박힐 거다.”
“뭔데요?”
양치기 소년에게 당하는 동네 아줌마들 같다.
금세 잊고 다시 모이는 어린 양들.
흐흐흐. 오늘 이후로 너희들은 다이어트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정신 차려! 먹어서 살이 찌는 게 아니라 많이 먹어서 찌는 거야!”
“!!!”
강렬한 팩트 공격에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귀여운 멤버들.
“먹을 땐 만 원이면 되지만 뺄 때는 100만 원이다!”
“으아아아앙!”
“이사님…… 흐윽.”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모두 충격을 받은 듯 정말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자의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안 쪘을 때로 나뉜다!”
“그, 그만요! 그만!”
“오빠…….”
급기야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는 그녀들의 모습에 쾌감이 증폭 됐다.
“배가 고파서 배를 만졌는데 배가 진짜 불러 있었다!”
“이사니이이이이님!!!!”
“그만! 그마아아아안!”
아직 끝이 아니다.
“먹는 데는 1분이지만 빼는 데는 1시간!”
“날 죽여!”
“이사님…… 악마!”
FOB 멤버들이 진심으로 날 저주하기 시작했다.
-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강력한 저주를 받았습니다.
제대로 충격받은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한 발이 남았다.
씨익 입가에 번지는 악마의 미소.
“너희들은 통통한 거라 믿고 싶겠지만…… 사실…… 너희들 뚱뚱해!”
브레이크 타임 없이 터지는 화려한 핵폭탄!
“으아아아아아아앙!”
“이사님 미워! 미워워워워!!!”
“오빠…… 너무해! 흐윽!”
멤버들 몇은 얼굴을 가리고 또 몇은 귀를 막고 이사실을 뛰쳐나갔다.
타다다닥.
순식간에 거짓말처럼 모습을 감췄다.
뼈에 새겨졌을 팩트 폭력에 용감하게 내 앞에 서 있을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멤버들 모두가 장난 반 진심 반 울상을 지으며 나갔지만 주민만은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었다.
그것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어둠의 오라를 여전히 풍기고 있는 그녀.
- 악신의 사기에 물든 자를 마주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놀랍게도 주민은 악신의 사기에 물들어 있었다.
변호사 획득 축하 파티 때 보고 오늘 처음 마주한 주민은 그사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누가 봐도 말 못 할 고민을 잔뜩 갖고 있는 주민.
“물 한잔 마실래?”
“이사님…… 술은 없나요…….”
대낮부터 술을 찾는 주민.
그만큼 안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소속사 내에서 그것도 낮에 술을 찾는 연예인은 흔치 않았다.
딸깍.
일단 이사실 문을 잠궜다.
밖에서는 이사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음도 철저한 상태.
예기치 않게 주민과 일대일 면담 시간을 갖게 됐다.
“한잔하자.”
이사실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술이 비치돼 있었다.
또로로록.
투명한 잔에 붉은 와인을 따랐다.
“마셔.”
주민에게 잔을 건넸다.
“…… 고맙습니다. 이사님.”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말 봐. ……친구잖아.”
주민과는 동갑이다.
꿀꺽꿀꺽.
속이 답답한 듯 단숨에 와인을 비워낸 주민.
쭈루룩.
그러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그 무엇이 있는 눈치다.
“주민아…… 말해 봐. 내가 해결해 줄게.”
눈물을 흘리는 주민의 커다란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넸다.
“흐으으윽.”
순간 격하게 울음을 터트린 주민.
“무슨 일이야?”
“태…… 산아……”
친구로서의 다정한 질문에 내 이름을 부르며 와락 품에 안겨오는 그녀.
“나 좀 살려줘! 제발 그 악마 같은 새끼한테서 나 좀 구해줘어어어어!!!”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