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8장. 변곡점 (575/1,284)

578장. 변곡점

눈빛 반짝이는 겨울 바다의 사랑~♬상큼하고 발랄한 일곱 요정이 마지막 피날레를 향해 달려갔다.

새벽부터 시작된 녹화방송이 끝나고 있었다.

겨울 요정처럼 새하얀 투피스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는 그녀들.

- 사랑~♬

팬들이 중독성 강한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우리 같이 꿈꿔요……?.

그룹의 센터인 서련이 중심에 서서 꿈결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노래의 끝을 장식했다.

그렇게 ‘겨울 바다의 사랑’ 노래가 라이브로 끝났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일제히 터지는 팬들의 격한 함성.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성 팬 층도 두터운 FOB는 여성 그룹들 중 최고로 무적이었다.

“여러분 FOB는 사랑입니다~!”

멤버 일곱 명이 일제히 하트를 날렸다.

“FOB! FOB! FOB!"

지난 겨울 새 음반을 발표하면서 활동 기간 모두를 합쳐 절정에 치닫고 있는 FOB의 인기.

당당히 쇼! 음악세상에서 1등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것도 벌써 3주째 1위.

마지막까지 발랄한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무대 인사를 마친 FOB 멤버들이 대기실로 이동했다.

후두둑 땀이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귀엽고 사랑스런 노래였지만 걸그룹 특유의 칼군무는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음반이 나올 때마다 강행군이었다.

1년에 한 번/씩/ 정규 앨범이 나왔다.

그 사이사이 미니 앨범 형식으로 한 두곡 수록해 분기별로 발표됐다.

모든 곡이 음원 사이트 꼭지를 찍으며 차트를 휩쓸었다.

FOB는 이 시대의 별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한민국 최고 걸그룹으로 성장해 당당히 탑을 달리고 있다.

이제는 어엿한 가요계 선배 대접도 받았다.

멤버들 모두 그사이 성인이 되었기에 분위기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깜직 발랄한 소녀 인상이 강했다면 이제는 성숙한 여성으로 콘셉트가 바뀌었다.

저마다 색다르게 풍기는 독특한 매력은 각각의 두툼한 팬덤을 형성했다.

인기에 목말랐던 과거와 달랐다.

이제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최고 대우를 받았다.

“으으으. 이제 늙었나봐. 춤 한번 추고 나면 온몸이 쑤셔…….”

“피 끓던 10대가 그리워.”

“우리도 이제 노후 준비할 때가 온 거야?”

“너 작년에 빌딩 샀잖아.”

“그건 부모님 명의~.”

“그게 그거지. 어차피 부모님 돌아가시면 다 니 거잖아.”

멤버들은 여유로웠다.

회사에서 아낌없이 지원을 해줬고 그런 만큼 멤버들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장태산 이사가 플랜으로 제공했던 부동산 구입.

멤버들은 가볍게 돈을 사용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부모들까지 함께 교육시켰다.

괜히 딸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사업하지 말라는 주문이 그 첫 번째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업 구성을 하기도 했던 몇몇 멤버들의 부모들이 고개를 숙였다.

멤버들은 정산금을 모아 다들 목 좋은 자리의 건물을 매입했다.

그러나 절대 하늘 위에 건물주라는 말처럼 수준 낮게 갑질 하지 않았다.

/이전/ 건물주들과 계약한 세입자들을 배려해 그 월세 금액 그대로 계약해 매장을 사용하게 조치했다.

그 또한 회사에서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해 철저하게 관리했다.

걸그룹은 이미지가 생명이었다.

연말 불우이웃돕기나 세계 난민 돕기에도 앞장섰다.

흠잡을 데 없는 대한민국 대표 걸그룹.

그 명성이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까지 퍼져 해외 대형 콘서트도 연속 매진을 불러왔다.

“매니저님, 어디 갔어?”

“서련이 너 바빠? 왜 아침부터 안절부절이야?”

“우리 오빠 오늘 수료식이잖아.”

“이사님?”

“으아! 맞다. 이사님 오늘 연수원 수료하네.”

“우리 단체로 갈까?”

“흐흐흐. 대박!”

일곱 멤버들이 들뜬 표정이 됐다.

외부적으로 장태산이 이사 직함을 갖고 있지만 회사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황 대표도 장태산 이사가 사무실을 방문하거나 하면 항상 긴장했다.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지만 성년이 된 멤버들도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아니었다.

“스톱! 오직 나만 갈 거야. 난 부모님께 인사도 드린 사이야~.”

“됐어! 이사님이 우리를 박정하게 내칠 분이 아니야.”

“난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멋진 검사님이 될 줄 알았는데…….”

“좀 아쉽지? 팡팡 방망이 두들기며 ‘너 사형!’ 이런 거 하면 멋질 텐데.”

“이사님 돈 많은데 공무원 하겠어? 변호사가 제격이지.”

“으흐흐. 이제 변호사비 굳었다.”

“매니저님! 매니저님!!!”

멤버들은 급하게 매니저를 찾았다.

그러나 그 중 한 명은 표정이 달랐다.

그룹의 리더인 주민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들뜬 동생들과 달리 주민의 눈빛은 부쩍 외로웠다.

다른 기획사처럼 철저하게 여성 멤버들의 사생활을 감시하지는 않지만 모두들 스스로가 조심했다.

개개인 모두 먹고 살 만하지만 아직도 숙소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FOB.

멤버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사이는 좋았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은 어떻게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주민은 음악이 좋아 걸그룹이 됐다.

/거짓말처럼 성공했다./

/시간의 흐름을 잊은 체 성공을 즐겼다./그런 만큼 가장 아름다운 청춘시절이 통째로 어디론가 사라진 기분을 요즘 부쩍 많이 느꼈다.

이사님을 열렬히 애모하는 서련과 다른 멤버들과 달리 주민은 현실적이었다.

한때 그녀도 장태산 이사를 몰래 좋아했었다.

어떤 여자나 호감을 품을 수밖에 없는 조건의 남자였다.

동갑인 장태산 이사는 평범하게 살 인생이 아닌 건 분명해 보였다.

외모는 물론 재력도 어마어마했고 개인이 /소유한/ 능력도 차고 넘쳤다.

한국대 법학과 출신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그리고 이제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대한민국 상위 0.00001%라는 표현도 모자랐다.

주변에 헤아릴 수 없는 여성들도 많을 게 확실했다.

서련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찜했다고 큰소리지만 이뤄질 가능성도 희박했다.

“하아.”

가장 뒷줄에서 한숨을 내쉬는 주민.

고개를 떨군 채 발 앞부리만 보며 걸었다.

예쁜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이제는 평범한 사랑을 하고 싶은 한 여인이 됐다.

스윽.

갑자기 그녀 눈에 기다랗고 하얀 손이 나타났다.

그 손에 들린 달달한 초콜릿 하나.

평소 맡을 수 없었던 퇴폐적이고 은근히 강렬한 남자 향수 냄새가 훅 코를 파고들었다.

주민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

놀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놀랐으면 미안.”

“아, 아니에요.”

“이거 먹어봐. 내가 좋아하는 건데 힘들 땐 최고야.”

묵직하고 감미로운 음성의 남자가 주민을 쳐다보며 말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주민은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 최고 걸그룹이지만 눈앞의 남자는 자신과 신분이 달랐다.

그룹 ‘원탑’.

오만한 이름답게 2000년도 중반에 등장해 /대한민국 최고의 보이그룹이 됐다./지금도 적수가 없었다.

민우, 주온, 사론, 가이아, 오준.

다섯 명의 멤버들에 대한 여성팬들의 지지는 압도적이다.

아시아권이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 쪽까지 알려지고 있는 원탑.

그 멤버들 중 한 사람인 사론이 지금 주민 앞에서 웃고 있다.

두근두근.

주민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거칠게 뛰었다.

팬으로서 진짜 좋아하는 남자 가수이자 선배.

악마 같이 검은 머리칼은 사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드러냈다.

꿈꾸듯 몽롱한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주민의 것보다 더 큰 귀걸이를 착용한 모습은 연예인들 중의 연예인 같았다.

마약을 한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직접 마주한 그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가 만들어낸 뜬 소문일 거라고 여겨졌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사론은 주민에게 초콜릿을 내밀고 있었다.

“받아. 나 팔 아파.”

“네? 네…….”

주민은 떨리는 손으로 사론이 건네는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그때 살짝 스치는 손끝의 접촉.

찌릿!

주민은 심장에 전해는 강한 전류에 화들짝 놀랐다.

“받았으면 줘.”

“네?”

씨익 웃으며 사론이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

제멋대로 얼굴이 붉어지는 주민.

“주민아~ 어딨어! 주민아!”

그때 매니저 목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먼저 나간 멤버들과 달리 주민은 사론에게 발이 묶였다.

“나 그냥 가?”

“……010-XXXX-1355.”

사론의 그만 간다는 말에 주민은 황급히 자신의 번호를 불렀다.

“기다리고 있어. 연락할게.”

다소 명령조에 가깝게 말하는 사론.

나타나 첫말부터 반말을 건넸던 사론이었는데 주민은 그의 말투가 전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스르릇.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사론.

“하아아아…….”

한순간 긴장이 풀리며 주민은 가슴 속에 남은 숨까지 길게 내쉬었다.

“여기서 뭐해? 무슨 일 있어?”

매니저가 나타나 멍한 표정의 주민 상태를 체크했다.

“아, 아니요.”

세차게 고개를 젓는 주민.

꿈속의 일처럼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손에 들린 초콜릿이 결코 환상이 아닌 걸 말해줬다.

쿵! 쿵! 쿵!

진정되지 않게 계속 거칠게 뛰는 심장.

주민은 초콜릿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

“앞으로 법조계에게 만날 여러분들의 뜨거운 건승을 기원합니다.”

연수원 졸업식에 참석한 오승택 대법원장이 축사를 끝냈다.

두꺼비처럼 가증스런 얼굴은 보고 있기 역겨웠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민족과 나라를 팔고 법치주의를 훼손한 매국노./짝짝짝짝짝짝.

아무것도 모르는 연수원 수료생들은 박수를 힘차게 쳤다.

드디어 길고 긴 2년 동안의 연수원 생활이 종료됐다.

모두 다 만족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지만 홀가분한 표정이 대부분이다.

판사나 검사, 로펌에 입사하지 못한 반 백수 변호사들도 오늘은 졸업식 분위기를 만끽했다.

“…….”

그렇게 문제없이 조용히 연수원 수료식이 끝났다.

엊그제 입소한 것 같은데 벌써 2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그 기간 동안 일들이 참 많았다.

연수원 수료는 또 한 번 /맞이하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다.

변곡점.

조용하게 고여 있었던 것 같지만 나름 내실을 다졌다.

뜨겁고 화끈했던 실무실습에서 새로운 인연도 만났고 또 어떤 인연은 정리했다.

하도 사고를 쳐서 그런지 마지막 실무실습 때에는 중앙지법에서 민사소장만 주구장창 작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군말 없이 조용히 따랐다.

//나도 쉬고 싶었다.

결코 쉽게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흘러 나는 변호사가 됐다.

지난 생에서는 결코 꿈꿀 수도 없었고 이룰 수도 없었던 삶의 모습.

두 번째 살게 된 새로운 인생은 확실히 달랐다.

결코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고 알차게 살아가고 있다.

“형님. 가시죠.”

옆에 앉아 있던 덕수가 불렀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여자 친구 오는 거야?”

팔미호가 배시시 웃으며 오늘도 꼬리를 친다.

은은하게 달콤한 향수 냄새가 여전히 남자의 마음을 자극해 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공수진은 자신의 능력을 눈에 띄게 배양시켰다.

판사가 된 예린 선배를 누르고 연수원 얼짱 1위에 등극했다.

평범한(?) 인간 여성 예린 선배는 결코 각성한 팔미호의 적수가 안 됐다.

“첫 부임지가 중앙지검이라……. 초 엘리트 코스네.”

“실력이면 실력 미모면 미모. 내가 안 되는 게 있어야지~.”

팔미호 미혼술에 당한 검찰총장 이하 임명권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다.

지금 자신들이 내가 제조한 핵폭탄을 가장 깊은 곳으로 손수 끌고 들어가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검사 초임지가 중앙지검이라면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의미였다.

“조신하게 근무해.”

“넵! 회장님.”

그사이 한국 평등법 연구회는 규모가 커졌다.

후배들 중에서 싹수가 있는 녀석들을 선별해 받아들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모두 다 관상을 보고 뽑았다.

집안도 좀 봤고 성격 테스트도 마쳤다.

입이 무겁고 정의감이 남다른 후배들까지 합쳐 약 4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한 한국 평등법 연구회.

이번 졸업자 중에서 15명을 포섭해 로펌을 개업했다.

새로운 대한민국 법조계를 위한 발판.

과거와 다른 마음가짐이 됐다.

/불의한/ 기득권과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형님. 가시죠.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덕수는 날 형님으로 모셨고, 내 부모님도 자신의 부모님처럼 깍듯하게 대했다.

그런 덕수를 우리 부모님도 오케이.

쌍둥이들도 덕수를 친오빠처럼 여기고 따랐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장~.”

“왜 그러십니까. 대표님~”

“흐흐. 잘 부탁해. 나 우리 애들 시집 장가 보내야 하는 거 알지?”

자치회 회장 권주희가 다가왔다.

지난 2년 동안 자치회를 무난하게 이끌었던 그녀.

수더분한 성격과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대외적으로 그런 그녀가 새로운 로펌의 대표 자리를 맡았다.

난 로펌 소속 일개 변호사로 저렴하게 포장 됐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

“회장과 대표라. 캬아~ 권주희, 중년에 귀인 만나 쭉쭉 풀리는구나.”

나이 많은 아줌마답게 성격이 참 좋았다.

“대표님. 오늘 저녁에 보는 거 잊지 마십시오.”

“다들 오늘 각오하세요!”

평등회 회원들이 다가와 서로 인사를 건넸다.

/평생/ 딱 한번 맛볼 수 있는 연수원 수료식.

가족들과 점심을 보내고 모두 저녁에 따로 자리를 하기로 약조가 됐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와아아아아!”

“싸인 해 주세요.”

파바바밧.

“???”

지성인을 배출하는 사법연수원 수료식.

저렴한 밀가루 폭탄 같은 것 없이 조용하게 치러지는 게 보통인데 오늘은 달랐다.

연수원 수료식 기사를 따기 위해 참석했던 기자들의 셔터가 빠르게 터졌다.

“FOB다!”

“누구를 만나러 온 거야?”

“와아아아……. 내가 연수원에서 FOB를 볼 줄이야.”

옆에 있던 연수원 동료들이 수군거렸다.

“!!!”

나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겠다는 걸 그렇게 극구 말렸는데 사고를 친 FOB 멤버들.

“형님. 저기 부모님이 계시는데……. 그 옆에…….”

큰 키의 덕수가 한쪽에서 대기 중이던 부모님과 가족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내 말끝을 흐리는 덕수.

무슨 일인가 나도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헐…….”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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