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장. 불벼락
“군수님. 이번 일도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렇게 큰 행사를 저희 군에서 개최해 주신 것만으로도 청부군 전 군민을 대표해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도로도 새로 포장해 주시고 주변에 이정표도 많이 세워주셔서 교주님도 무척 기뻐하십니다.”
“그렇습니까? 교주님이 만족하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청부군 군수 최승근은 큰장로 탁태훈이 전하는 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자치단체급에 속하는 청부군.
인구 5만 명의, 날이 갈수록 쇠락해가는 지방 소도시였다.
인구 밀도에 비해 유권자 수가 4만 명으로 비율이 높았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층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군의 여건 상황에서 하늘승리교는 엄청난 키를 잡고 있는 집단이었다.
궁전에 주소를 둔 신도만 해도 무려 2000명이 넘었다.
그들 모두 투표권을 적극 행사했다.
수백 표로 승부가 갈리는 지방선거다 보니 군수 입장에서는 무조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청부군 군수도 탁태훈의 허락을 받고 당선됐다.
그 역시 비밀 신도였다.
사이비 종교 단체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였다.
어떤 정치인도 10만 명 규모의 유권자를 보유한 종교단체를 건드릴 수 없었다.
특히 이런 소도시 지방은 더욱 그랬다.
사이비 종교들은 본교를 인적 드문 지역에 설립했다.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당연히 도와야죠. 전국 각지에서 수만 명이 몰려오는데 협조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하늘큰축제’는 이제 교를 떠나 청부군을 대표하는 축제입니다. 경찰서에도 일찍 협조 공문 보냈습니다.”
이렇다 할 지역 축제나 명소가 없었던 청부군인지라 일부러 찾아올 이유가 없는 소도시였다.
그런 곳에 전국에서 수만 명이 몰려오게 되는 종교 축제는 충분히 매력이 넘쳤다.
잠시나마 지역 상권 활성에 도움이 됐다.
군수 치적 쌓기에도 알맞았다.
하늘승리교도 암암리에 군수를 밀어줬다.
지방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외모의 치어리더들과 악단을 동원해 거리 행진을 벌였다.
전야제 때는 이런 큰 도시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대규모 불꽃놀이가 준비됐다.
하늘승리교의 하늘큰축제를 전국적으로 알리고 교를 치장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퍼포먼스였다.
서로 간에 필요한 만큼 도움이 되는 관계.
두 사람은 서로의 이익을 챙기며 마주보고 웃음을 지었다.
“오늘 전야제도 구경하고 가십시오. 불꽃놀이를 비롯해 특별한 이벤트를 많이 준비했습니다.”
특별한 이벤트.
탁태훈이 특히 강조하는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흐흐.”
나이 60을 넘기고 있는 군수였지만 남자로서의 끓는 욕망을 감추지 않았다.
오늘 같은 전야제 기간 동안 제공되는 특별한 이벤트.
청부군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미녀들과 광란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별히 선별된 이들만 출입이 가능했다.
얼굴에 가면을 쓴 채 진행되는 특별 행사라, 신분 노출 같은 건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군수 최승근의 얼굴은 이미 흥분으로 더 활짝 펴졌다.
***
“……명당자리를 귀신같이 알고 앉아 있네.”
눈으로 직접 확인한 하늘승리교의 하늘궁전.
멋모르는 사이비 집단이 아니라는 걸 터를 보고 확실히 알았다.
태백산맥 자락에서 뻗어난 복룡산 아래 터를 닦았다.
좌우를 호위하는 좌청룡과 우백호가 사기를 막아냈다.
전형적인 금계포란 명당 터.
사이비 교주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빰빠빰~♪ 빰빰~♬.
하늘악대라 불리는 이들이 경쾌한 음을 뽑아 분위기를 돋으며 하늘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작은 지방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늘씬한 미녀들이 치어리더 복을 입고 그 뒤를 줄 맞춰 따랐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하늘큰축제에 참가하는 하늘신도들은 하나같이 가면을 착용한 채다.
그 상태로 축제를 즐겼다.
물론 나도 가면을 썼다.
공짜는 아니었다.
하늘궁전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고 있던 청룡가면.
개당 50만 원.
해당 교 신도들도 역시 돈에 따라 차별을 두고 있었다.
가장 싼 가면은 5만 원부터 시작했지만 누가 봐도 애들 장난감 수준이었다.
“하늘 형제님. 어느 별궁 소속인가요?”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축제는 어느새 막바지로 치달았다.
오후 6시.
상기된 목소리의 토끼 가면을 쓴 여자 하나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목소리 톤으로 보아 이십 대 후반 정도 되는 거 같다.
“아직 소속이 없습니다.”
“어머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오셨어요?”
여자는 반짝 호기심을 드러냈다.
“청부군의 유일한 축제라고 해서 찾아와 봤습니다.”
“형제님은 축복받은 분이세요. 하늘문이 열리는 오늘 같은 날에 찾아오시다니……. 하늘님께서 하늘치부책에 반드시 형제님의 이름을 올려놓았을 거예요.”
하늘님에 대한 믿음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토끼 가면의 하늘승리교 신도.
친절한 이웃집 누나 수준이다.
“정말 그럴까요?”
“의심하지 마세요. 하늘님에게 기름 부음받으시고 첫 번째로 영원한 생명과 권세를 인정받으신 하늘사자님을 만나 뵈면 확신할 수 있을 거예요.”
“하늘사자님이 진짜 대단하신가 봅니다.”
“네! 그분의 음성과 눈빛, 몸짓 모든 것들은 하늘님의 살아있으심과 재림의 증거예요. 쉽게 만나 뵐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사이비 교주에 아주 푹 빠진 토끼 가면의 여인.
목소리에 담겨 있는 충만한 은혜 입음과 간절함이 낯설었다.
색마를 하늘님의 지상 재림자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신들과 직접 대면 가능한 나였다.
하늘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걸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은 말도 안 되는 사이비에 푹 빠졌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외로운 이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증상.
사회와 개인의 불협화음.
그 안에서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한 모래알 같은 영혼들 상대로 발생한 아픈 현상이었다.
가정이 온전하고 사회 기반이 탄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었다.
모두가 건강해야만 치유될 수 있는 시대적 돌림병에 마음이 아파왔다.
“행복하세요?”
“네! 전 하늘님의 비밀을 알고 나서 모든 일상에서 자유를 얻었답니다. 하늘사자님이 주신 묵상명언으로 저를 무장했어요. 학업과 성적, 취직과 불확실한 미래 따위는 이제 두렵지 않아요. 화평하지 못한 가정도 하늘님이 안배한 시련일 뿐이에요. 하늘치부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걸 알았기에 모두 사라져 버릴 이 땅의 것들에게서 마음을 거두어 들였답니다. 형제님은 세상 것들에 괴롭지 않나요?”
“네……. 저도 괴롭습니다.”
토끼 가면 여인은 진짜 행복함의 오라를 풍겨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세상의 괴로운 것들은 하늘의 시련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지난 생에 스스로가 풀지 못한 자신의 업이고 다시 풀어야 할 과제일 뿐이다.
사이비 종교는 특히 업이라는 말에 벌벌 떠는 인간들의 원죄론에 갇혀 있는 심리를 이용했다.
업이란 것은 부정한 것만 존재하지 않았다.
선업과 악업이 뒤섞인 것이다.
선한 업은 공치사로 바꿔먹어 버리고 악업은 부끄러워 덮어 두는 인간의 심리.
그것을 너무 잘 아는 사이비 종교는 그런 인간의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 따라오게 만드는 교묘한 수법을 쓴다.
살아서 좋은 일 많이 하면 전생의 악업을 녹이고 착한 카르마 포인트로 저축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토끼 가면 여인.
하늘님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지고의 우주가 전하는 공평한 법칙이었다.
“그럼 우리 함께 하늘님께 기도해요.”
“네?”
스윽.
내 손을 덥석 잡은 여인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곧 하늘 큰 문이 열려요. 그때 반드시 하늘님께 온 마음과 영혼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그녀가 내 손을 끌고 인도했다.
“그게…….”
당황스러운 사태.
난 하늘문을 열러 온 게 아니다.
시커먼 지옥문을 열기 위해 왔다.
그 사실을 상상도 못하는 텅 빈 영혼의 순수한 여인은 날아갈 듯 환희에 차 날 인도했다.
“하늘사자님께서 하늘문을 열 하늘 큰 기도를 시작할 거예요. 어서 가요.”
남녀 간의 이성이 아니라 진짜 하늘님께 인도하려는 여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토끼 가면을 쓴 여인이 손을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그녀에게 이끌려 하늘궁전 정문으로 들어갔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무수한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악대와 미녀 치어리더들.
가면을 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하늘승리교 궁전 안으로 줄맞춰 들어갔다.
그 순간.
- 악신의 사역장에 들어왔습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의 냉정한 목소리.
싸한 느낌이 전신을 훑었다.
***
“하늘~ 하늘~ 하늘문이 열리네~?. 영원한 생명책에 우리 이름이 기록되리니~♬. 이 세상 것에 미련 버리고 하늘만 바라보네~♪.”
수만 명에 육박한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하늘승리교의 대표적인 하늘문 찬송가를 불렀다.
교를 세울 초창기에 돈이 없어 유명 작곡가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가장 많이 불리는 기독교 찬송가 중 한 곡에 작사를 해 붙였다.
저작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후 익숙한 곡조에 기독교에서 개종해 온 신도들이 수많은 곡을 만들어 냈다.
이 땅의 것은 모두 하늘님의 것이기에 모든 곡들 또한 그러하다고 면죄부를 주었다.
열성 신도들 몇 명이 단숨에 하늘 찬송가를 펴냈다.
몇 년 만에 수천 곡을 채웠다.
“느낌이…… 안 좋은데…….”
일 년에 몇 번 사용하지 않는 하늘궁전 종합 운동장.
그 넓은 곳에 수만 명의 신도들이 모여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결코 순수한 믿음과 하늘님에 대한 신실함이 없는 이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열성이었다.
상관없는 일반인도 단번에 감동 시킬 수 있을 만큼 그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운동장 상층부 주관리실에서 열광하며 찬송하는 신도들 모습을 지켜보던 큰장로 탁태훈.
다른 때 같지 않은 불길함을 느꼈다.
처음 하늘승리교를 창설할 때부터 발동되던 감이었다.
사이비 교회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능력 중 하나였다.
“모든 게 완벽해. 그런데 뭐가 이렇게 찝찝한 거지?”
찬송가를 비롯해 기도 소리가 뜨겁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절정으로 치닫는 찬송, 그 가운데 교주 신도겸이 하늘선녀들을 대동하고 높은 단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각 별궁에서 찾아온 신도들의 수가 무려 3만 명이 넘었다.
점점 교세의 규모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확장 됐다.
오늘 축제만으로 거둬들이게 될 수입이 100억은 가뿐하게 넘길 것으로 예상됐다.
종교로 등록되어 있어 세금 같은 것은 없었다.
대형 교회나 거대 사찰들에서 정치인들을 잘 구워삶아 일궈낸 업적의 결과였다.
그 혜택이 사이비 교단들에도 돌아왔다.
어차피 교회나 절이나 정상적인 곳보다 사이비 단체들이 더 들끓었다.
서로 돕고 사는 상부상조의 종교계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흐음…….”
찝찝함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사방을 살피는 탁태훈.
이번 행사에서는 오늘 밤 하늘 문을 여는 전야제가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
헌금뿐만 아니라 교의 핵심인 새로운 하늘선녀, 포교와 집행사자를 선출하는 회의도 열렸다.
전국에서 모든 장로들이 올라왔다.
사이비 종교 단체지만 일반 기업체 이상으로 조직이 체계적으로 관리됐다.
“뭐지? 이 엿 같은 기분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 불길함에 눈을 질끈 감는 탁태훈.
하지만 불확실한 불길함 말고는 더 이상의 느껴지는 기운은 없었다.
- 하늘문을 여시기 위해 하늘사자님이 하늘선녀들과 제단에 오르고 계십니다! 모든 하늘신도들은 하늘님을 힘껏 부르십시오!!!
장로들이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왔다.
탁태훈은 쓴 입맛을 다시며 태극이 그려진 장로복을 착용했다.
뭔지 모르지만 판은 크게 굴러가고 있었다.
지원 나온 경찰 100여 명에 특별히 고용한 안전 요원만도 수백 명.
위험해질 일은 없었다.
아닌 밤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면 모를까.
“오늘만 무사히 지나가자……. 그렇게만 되면…….”
하루가 다르게 새로이 포섭된 자들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10만에서 20만 명이 된다면 하늘승리교의 파워는 더 막강해질 것이다.
탁태훈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빠른 걸음으로 교주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
“하늘님이……. 그대들의 마음과 정성을 갸륵히 여겨 하늘문을 여시는도다! 이 아들의 몸을 통해 증명하시니……. 기도하라! 찬양하라!!!!”
찬송가와 뜨거운 기도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람의 영혼을 홀리는 데 특화된 사이비 종교답게 검고 붉은 에너지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왔다.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축적되며 하늘로 치솟는 게 보였다.
- 강력한 어둠의 카르마가 축적되었습니다.
- 악신의 사역장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악신들이 지상에 강림해 축복을 내리고 있습니다.
- 어둠의 성령이 인간들의 영혼을 조종합니다.
“하늘님 우리를……. @#$$$%…….”
“흐윽 흑. 하늘님!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늘치부책에 기록하시어……&*#@@”
알아들을 수 없는 악마의 방언들이 사방에서 터졌다.
집단 광기에 휩싸여 현실 세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늘님!!! 하늘님!!!”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하늘님을 찾는 내 옆의 여인.
한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빽빽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어둠의 방언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여기저기서 악신들이 날뛰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만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숨이 막혀왔다.
이건 정상적인 사람들의 세상이 아니다.
그야말로 악신들의 놀이터였다.
그러고 보니 하늘승리교의 신도들은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다.
인생을 진하게 살아본 사람들은 결코 쉽게 빠질 수 없는 어설픈 교리들의 짬뽕.
오늘을 위해 세상에서 자신들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내던지는 이들이 불쌍했다.
또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죽어본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삶.
결코 육신을 벗어났다고 그게 끝이 아닌 영혼들의 세계.
입이 있어도 전해줄 수 없어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진정 하늘님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다.
나와 네 이웃을 한 몸 같이 아끼고 사랑하라.
이것만을 하늘은 말하고 있다.
내가 하나 더 먹기 위해 이웃의 빵을 훔치지 않는 것.
시기 질투로 무고한 이의 삶을 망치지 않는 것.
무한 반복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을 통해 매순간 하늘은 말하고 있다.
오로지 사랑과 믿음, 평화만을 우주와 이 지구, 그리고 신들은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들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 뒤에서 개인만의 탐욕을 위해 순수한 영혼들을 타락시키는 악마의 종자들, 그들이 문제였다.
“하늘님! 하느으으으을님!”
황금실로 테두리를 돌린 태극문양의 교주복을 입고 높은 제단에서 많은 장로들과 하늘을 향해 팔을 뻗는 교주 신도겸.
역시 놈의 주변으로 엄청난 암흑의 기운이 뭉쳤다.
사이비 교주 놈은 인간 세상에 강림한 진짜 악신의 자식이었다.
알고는 용서가 되지 않았다.
여기 모인 몇 만 명의 영혼이 텅 빈 인간들로 인해 또다시 퍼져나갈 악신의 씨앗이 됐다.
빤히 보이는 역병 창궐을 알고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악신이 날 갈아먹으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걸어가야 할 정화의 길.
이를 악물었다.
나의 주변까지 밀려오는 어둠의 에너지.
-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취하시겠습니까?
“하늘님이 응답하시었도다! 오오오오오! 하늘문이 열린다! 열린다!!!”
하늘문은 고사하고 거대한 어둠이 하늘에서 소용돌이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악신에게 바쳐지는 순수한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
“!!!”
속이 탔다.
“열려라 하늘문!!!”
광기에 젖은 신도들이 두 팔을 넓게 열고 한목소리로 하늘문을 외쳤다.
그 순간 교주 신도겸의 몸뚱이를 거쳐 하늘로 치솟는 엄청난 어둠의 에너지 파장.
콰득 절로 힘이 들어가는 손.
더 이상 방치하고 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현장 상황.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순간 터지는 엄청난 폭죽.
수백 개의 대형 폭죽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화려하게 터졌다.
“하늘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신…… 의 불벼락!!!”
파아아아아아앗!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날벼락.
교주 신도겸과 타락한 장로들이 급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친히 소환한 마법의 불벼락.
어느 때 보다 화끈하고 빠르게 지상으로 내리 꽂혔다.
회귀의 전설 2부
77장. 영입제안서를 받다
번쩍.
화려하게 터져나가는 폭죽의 화염과 빛을 뚫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붉고 새파란 벼락 한 줄기.
콰아아아아앙! 콰과과과과광!
직방으로 제단 위에서 팔을 뻗고 있던 신도겸과 장로들을 강타했다.
“!!!”
놀라운 기사(奇事)에 정신 줄을 놓고 기도하던 신도들 모두 그대로 얼어붙었다.
너무나 선명한 불벼락.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교주 신도겸이 벼락을 맞고 비단 옷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화염에 싸여 고통스러워 온 몸을 뒤틀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대참사.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장로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한 줄기 벼락은 지상에 내리꽂히며 금방 새끼를 쳤다.
옆에 서 있던 장로들까지 한입에 집어삼켰다.
불벼락을 몸에 두르고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집단 화형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르.
화염에 휩싸였던 교주와 일곱 장로들는 불이 붙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단상 위에 한 줌 재만 남겼을 뿐이다.
벼락에 맞았다면 시커멓게 탔어도 몸뚱이는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시커멓게 탄 육신도 없어 모두 사라져버렸다.
누구 하나 달려들어 교주의 몸에 붙은 불을 끌 생각도 못했다.
“으으…….”
아예 얼이 다 빠져버린 신도들.
방금 전까지 하늘문을 열던 하늘사자와 장로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데 충격을 받았다.
아주 지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늘님이 하늘사자님을……. 소환해 가셨다!”
그때 누군가 격정에 목소리로 외쳤다.
“으아아아아아! 우리 죄를 대신하시어 하늘사자님과 장로님들이 제단의 재물이 되셨도다!”
“오오! 참회하고 기도하라!!!”
“하늘님! 하늘니이이이이임!”
괴이한 상황을 목격한 열성 신도들.
곧바로 운동장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기도를 올렸다.
“벼락 맞았어……. 세상에.”
“이게 도대체…….”
하지만 그나마 덜 세뇌된 신도들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방금 하늘에서 내리친 건 분명 불벼락.
박힌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엄청난 죄를 지어 하늘이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을 때 때린다는 불벼락이다.
눈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신도들이 하나둘 슬금슬금 자리에서 이탈했다.
“하늘님……. 흐으윽. 저희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에 반해 이미 악신에게 물이 제대로 든 열성신도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하늘승리교 신도가 되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대부분.
그들에게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었고 오직 하늘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허억! 이, 이게 뭐야!!!”
장로를 비롯해 중요 신도들이 모두 하늘궁전 축제에 참가해 핵심 인사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별궁.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생중계되는 하늘큰축제를 보고 있던 집행사자 남우현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승리교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우현이었다.
사이비교가 믿는 하늘님 따위는 없었다.
교주의 엽기행각과 비리를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지금 친 벼락이 진짜 불벼락임을 알았다.
덜덜덜 몸이 제멋대로 떨리는 남우현.
콰아아앙!
그때 별궁의 성전문이 누군가에 의해 강하게 열렸다.
타다다닥.
급한 걸음으로 우르르 몰려드는 정장 차림의 사람들.
맨 앞에 남우현도 알고 있는 통영지청의 꼴통 여검사 구서현이 보였다.
“저 자식 체포해!”
“넵!”
지청 소속 수사관들이 남우현에게 달려들었다.
“놔! 놓으라고! 너희들 죽고 싶어!”
놀라 저항하는 남우현.
“하늘승리교 집행사자 남우현. 당신을 살인방조 및 마약유통, 미성년자 약취 유인과 인신매매혐의로 체포한다. 변호사는 알아서 선임하는 거 알지?”
씨익 웃으며 체포영장을 남우현 눈앞에서 흔드는 구서현 검사.
“……부장검사님 불러와! 이것들이 지금 누구를…….”
“나 불렀나?”
“……헛!”
부장검사 여형조가 수사관들 틈을 가르고 앞으로 나왔다.
“아니…… 여형조 검사님, 이게 지금 무슨…….”
쫘아앗.
그때 남우현의 뺨에 작렬하는 여형조의 매서운 손바닥.
“범죄인 새끼가 어디서 함부로 남의 귀한 이름을 불러! 뭣들 해! 압수수색하고 이 새끼 끌고 가!”
“넵!!!”
추상 같이 떨어지는 여형조 부장검사의 명령.
수사관들이 뺨을 맞고 멍해진 남우현을 끌고 나갔다.
“서류 포함 일체 자료 모조리 쓸어!!!”
타다닥.
구둣발로 거침없이 하늘승리교 별궁을 수색하는 수사관들.
“구 검사, 수고했어.”
“아닙니다. 부장검사님!”
“내가 많이 믿는 거 알지?”
과거와 달리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구서현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치는 부장검사 여형조.
“감사합니다!”
밝게 웃으며 답하는 구서현.
그녀는 이 순간 한 남자를 떠올렸다.
검사로서 오늘을 살게 만들어 준 장태산.
곧 서울에서 그를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
풍래운축래(風來雲逐來)
오늘 바람에 구름도 따라가고
풍거운수거(風去雲隨去)
바람이 가면 구름도 따라가니.
운종풍거래(雲從風去來)
구름은 바람 따라 오고 간다고 하지만 풍식운하처(風息運河處)바람 자면 구름은 어디로 가는가.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스님 목소리가 법당에 울렸다.
대자자비하신 미소로 낮은 자리에 엎드린 중생들을 굽어 살펴보고 있는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무량수전.
“흐윽……. 흐읍…….”
늙은 노구를 이끌고 남자는 부처님께 무릎을 굽혀 절을 올렸다.
그 옆에서 같이 무릎을 꿇었다.
똑또로로로로로로 똑도도도독.
나이 지긋한 스님이 목탁을 쳤다.
“모두 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연기처럼 사라짐이 인생입니다. 아침 이슬 같고 봄날의 아지랑이 같으니 아파할 것도 미워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습니다.”
스님의 음성은 차분하고 듣는 것만으로 위안을 주었다.
무량수전에 향이 살라지고 있었다.
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민주의 영정사진이 영가전에 놓여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신민주를 위해 기도 공덕을 올렸다.
향이 타면서 퍼지는 연기가 스님의 말씀처럼 안개와 같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하늘승리교 교주와 장로들을 모든 신도들 앞에서 벼락으로 불태워 없앴다.
놈에게 쌓여 있던 어둠의 카르마가 모두 선한 카르마로 대체되어 나에게 들어왔다.
지금까지 받았던 카르마 포인트 중에서 최고였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의 기대와 달리 하늘승리교는 해산되지 않았다.
하늘사자를 이어 받은 하늘큰선녀라는 여성이 나타나 교의 책임자가 됐다.
어이가 없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다.
누가 봐도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하지만 하늘승리교 신도들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던 것 같다.
교주 신도겸과 장로들이 눈앞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음에도 그 자체를 하늘의 소환이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 얘기를 믿고 다시 따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았다.
사이비 종교 처단은 내 선에서 가능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
그 집단 안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앞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신민주의 일은 잊어버릴 수 없었다.
시신을 인도 받았지만 바로 화장하지 않았던 신민주 아버지.
지청을 통해 나를 찾았다.
구서현 검사님이 중간에 연락을 줬다.
하고 있던 일을 접어두고 신민주 49제 첫 제가 치러지는 절을 찾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제는 경건하게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괴로움의 바다는 끝이 없지만 고개를 돌리면 바로 피안이라…….”
스님 법문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똑또로로로로로로로로.
스님의 목탁 소리가 맑고 경건하게 무량수전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조용한 극락왕생 발원제가 끝났다.
“목 좀 축이십시오.”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를 떠서 걷기 불편해 하는 신민주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렸다.
제가 치러지는 동안 계속 절을 올리던 남자.
수척해진 얼굴과 달리 눈빛은 견고했다.
처음 나를 보고 검사로 착각하며 울부짖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검사님, 감사합니더.”
“저…… 검사 아닙니다.”
“괘안씁니다. 저에게는 진짜베기 검사입니더.”
부처님의 얼굴처럼 환하게 웃는 남자.
신민주 사건은 확실하게 마무리 되지 못했다.
신민주가 죽던 당시 함께 요트에 타고 있던 하늘승리교 신도들 대부분이 모른다고 발뺌했다.
피고가 될 교주가 죽어 버려 더 이상 추궁할 대상도 없었다.
하지만 신민주 아버지는 만족해 했다.
“마무리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더. 민주가 한이 없다고 했음니더……. 다 풀ㅤㄹㅣㅆ다고 한 없다고, 지보고 잘 살라코했음니더. 죽어서 다시 보자고……. 지 어매랑 기다린다코…….”
딸 생각에 다시 목이 메는 남자.
“그게 무슨.”
“검사님 만나던 날에 민주가 꿈에 찾아왔음니더. 아직 태우지 말로꼬…… 말입니더.”
시신은 진작 인계가 됐다.
그러나 바로 화장이 되지 않았던 신민주.
오늘 아침에야 화장을 해 이곳 절에 봉안됐다.
“얼매나 환하게 웃던지…….”
화장되어 한 줌 재가 된 딸을 떠올리는지 남자는 허공을 바라봤다.
“!!!”
순간 눈앞에 보이는 광경.
신민주였다.
남자의 말처럼 환하게 웃으며 새하얀 옷을 입고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쓰으윽.
그리고 나를 향해 큰 절을 했다.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업을 다 끝낸 듯 개운한 표정의 신민주.
사라락.
아버지 곁으로 다가와 어린 아이처럼 품에 안겼다.
죽어서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민주는 이 생의 인연인 아버지와 이별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인 듯 애절함 가득 담긴 손길로 아버지의 거친 얼굴을 매만졌다.
처음 국과수에서 봤던 흐리멍덩한 영체가 아니었다.
온전한 사람 형체의 모습.
카르마 포인트가 많아지고 레벨이 높아지면서 영혼을 볼 기회가 자주 찾아왔다.
“갸가……. 참 똑똑하고 이뻤음니더. 지 애미 죽고도 아빠 걱정할까 봐 내색도 안 했던 아인디………. 참 안타깝습니더……. 참말로 아깝습니더……. 검사님처럼 멋진 남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도 낳고 한 세상 살아야…….”
딸이 자신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다음 생에는 그럴 겁니다.”
신민주에게 다음 생의 축복을 빌어줬다.
이번 생은 사이비 교주에게 홀려 한 많은 생을 살다 떠났지만 다음 생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교주의 사악한 손길을 거부하다 바다에 몸을 던진 그녀.
하늘이 있으니 그녀의 삶을 안다면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고맙습니더. 검사님 분명……. 훌륭한 분이 되실 겁니더!”
- 축복의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귀한 카르마 포인트를 얻었다.
내 것 같지가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서 나도 돌려줘야 할 카르마였다.
파아앗.
그때 신민주 옆으로 빛과 함께 나타난 일단의 신들.
“???”
지금껏 내가 만났던 평범한 신들이 아니다.
손에 큰 칼과 언월도를 들고 있는 장군들과 관복을 입고 있는 고위급 신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 극락세계 경호팀 신들을 알현했습니다.
극락세계 경호팀? 그건 또 뭐야?
조금 전 무량수전에서 봤던 아미타부처님 뒤에 있던 탱화 속에 서 있던 각종 신들이 분명했다.
끔벅끔벅 당황스러워 눈만 꿈뻑이며 그들을 바라봤다.
그 순간 다시 들리는 알림음.
- 경호팀이 영입서를 제안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어이가 없어 신들을 쳐다봤다.
내 속도 모르고 흐뭇하게 웃는 신들.
- 과장 대우 108나한이 되시겠습니까?
뭐, 뭐라고! 과장 대우 108나한???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