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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장. 개가 되어라 (2) (572/1,284)

574장. 개가 되어라 (2)

“하아아아…….”

아침부터 쾌락의 끝을 지나온 여인의 깊은 숨이 넓은 침실에 조용하게 퍼졌다.

두툼하게 쳐진 암막 커튼 덕에 방 안은 암흑처럼 어두웠다.

그 어떤 비밀도 철저하게 보장되는 한남동의 한 대형 빌라.

거칠고 격정적이었던 관계가 끝난 직후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자기……. 무슨 일 있어요?”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벌거벗은 남자의 가슴을 손끝으로 매만지는 여인.

오수연.

최근 핫하게 뜨고 있는 여배우 오수연은 짧게 자른 단발머리가 꽤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비율을 따라올 여배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늘씬하고 얼굴은 조그만 데다 이목구비는 빚어놓은 조각처럼 아름다웠다.

누구다 다 인정하는 미인은 아니었지만 인기가 많았다.

로맨스코미디 장르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여주인공을 꿰차며 상한가를 쳤다.

영화와 드라마 주연을 종종 맡는가 하면 수백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연기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활동하는 만큼 돈도 많이 벌었다.

방금 전까지 뜨겁게 관계를 했던 이 남자.

연대중공업 회장이다.

그는 오수연이 부족하다고 느끼던 부를 한순간 채워줬다.

뒤가 든든한 스폰 관계는 오수연이 연예계 생활을 하는 데 필수였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오수연이 데뷔할 당시만 해도 스폰 관계는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었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불려 다니고 직업여성 취급을 당하는 게 싫어 일찍 그의 여자가 됐다.

다른 재벌이나 여타 스폰들과 달리 그는 깔끔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수준이었지만 그 것만으로도 아낌없이 지원을 해줬다.

그룹 총수에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그.

몇 년 전 폭락하던 그룹 주식을 구입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물론 그를 믿었기에 의심 없이 구입했다.

작년까지 무려 20배가 넘게 주식 평가액이 올랐다.

팔아야 할 시점도 정확하게 정해줬다.

조 단위가 넘는 대기업 주식도 작전 세력과 결탁 하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주식을 정리해 강남에 빌딩을 구입했다.

이제는 평생 돈 걱정 같은 건 하지 않고 먹고 살 정도는 됐다.

그럼에도 오수연은 스폰을 바꾸거나 다른 남자를 바라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그는 여전히 잘생겼다.

전형적인 부잣집 도련님 얼굴에서는 시간이 흘러도 그만의 품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똑똑하기까지 했다.

큰 권력을 잡을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손에 꼽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보기와 달리 격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가끔 보이는 우수에 찬 시선은 오수연의 마음을 지금도 자극했다.

한 번 찾아오면 젊었을 때 못지않게 오수연을 오랫동안 괴롭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사랑의 행위는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과거 같았다면 누군가는 첩이라고 자신을 손가락질 했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렇게 불려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오수연에게 남자들이란 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요즘 자꾸 신경을 거스르는 놈이 있어.”

전문수는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에서 불길이 더 활활 타올랐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고도 형한테 얻어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다.

얼굴은 남는 손바닥 자국 따위는 상관없었다.

자존심이 회복하지 못할 상처를 입었다.

둘째 아들은 해외로 도망치듯 떠났고 손자는 강력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다행히 미성년자라 기록은 남지 않겠지만 문제는 인터넷이었다.

과거와 달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져 언제까지나 흑역사로 남게 된다.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어둠의 훈장.

할아비가 되어서 그깟 일 하나 막아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가장 컸다.

“누군데요?”

오수연이 관심을 드러냈다.

여당 국회의원에서 떨어졌지만 그는 아직 대한민국 권력계의 주류였다.

그가 매장 못할 사람은 드물었다.

“그놈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산산이 부셔버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방법이…….”

어린놈이 고약하게 머리가 비상했다.

파면 팔수록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의 재정적인 부분은 모두 다 월가 대형 자본과 합자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

섣불리 건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가족들을 비롯해 주변인들에 대한 경호나 보호 정도도 엄중했다.

뒷배가 얼마나 대단한지 검찰과 국세청, 심지어 청와대까지 그 어린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가진 자산만 해도 수조가 넘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결코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연수원에 들어오면서 투자회사 대표 자리도 휘하에 있던 직원에게 넘겨버렸다.

다른 인물들처럼 감을 잡고 예상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만만한 곳은 단 하나.

‘네가 가진 것들 중…… 하나는 꼭 부셔버리겠다!’

“MTS 황 대표 알지?”

“알죠~. 그 오빠 예전 매니저 시절부터 친했어요.”

“……그럼 FOB는?”

“자기 그 어린것들한테 관심 있는 거예요?”

“…….”

오수연의 살짝 흘기는 눈짓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전문수.

그의 마음은 온전히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요즘 가장 핫한 걸그룹인데…….”

오수연은 전문수를 쳐다보며 혼자 오해를 했다.

대놓고 면전에서 어린 걸그룹 여자애들한테 관심을 보이는 전문수가 낯설었다.

처음 관계부터 유부남이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오직 오수연만을 품어 왔던 남자였다.

이제 자신도 퇴물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를 더 젊고 예쁜 여자에게 보내줘야 하나 생각했다.

“난 너만 있으면 돼.”

전문수가 그런 오수연의 마음을 눈치채고 한마디 했다.

“그런데…… 왜?”

“내가 싫어하는 놈이 거기 투자자야.”

“정말? 누구요?”

“장태산.”

“흐음~. 처음 듣는 이름인데……. 누굴까?”

관계를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오수연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FOB 애들 작업 좀 해봐.”

“어떤 거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묻는 오수연.

그의 심부름은 무엇 하나 공짜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잘 알았다.

돈이 흘러넘치는 재벌들한테 이 정도 청탁은 전부가 재물과 당연하다는 듯 연결 됐다.

“소속사 남자 아이돌 같은 연예인들 이용해……. FOB 해체시키는 방향으로.”

직접적인 지시였다.

추문을 이용한 걸그룹에 대한 이미지 타격.

해체까지 언급한 건 상당히 큰 사건이 터져야 한다는 말이다.

“알겠어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게요. 그러니…… 화 좀 풀어요~. 당신 그런 표정 지으면 무섭단 말이에요~.”

전문수의 몸을 쓸며 품으로 파고드는 오수연.

가늘고 긴 매끄러운 오수연의 손이 그의 가슴을 쓸며 아래로 흘렀다.

“흐음.”

기분 좋은 신음을 토하는 전문수.

약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런 만큼 금방 육신은 반응하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든 시름을 잊은 듯 강하게 오연수의 가슴을 움켜쥐는 굵은 손.

“하아…….”

다시 침실을 달구는 열락의 신음소리.

신음 중에도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듯 오수연의 눈동자가 요망하게 빛났다.

***

“모두 나가 있어.”

“넵!”

부장검사의 한마디에 직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군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중요한 손님이 오거나 하는 경우 가끔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검사 사무실.

그 안에서 버젓이 거래되는 형량 협상이 대표적이었다.

“커피 한 잔 주십시오. 이제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부장검사님이 손수 타주시는 커피를 마셔보고 싶습니다.”

“…….”

다시 존칭을 사용했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표정의 부장검사.

뼈까지 통증이 느껴질 정도의 강한 일격에 여형조 부장검사는 달리 대꾸를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실한 패.

해외에 있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하늘승리교의 관리 컴퓨터를 탈탈 털었다.

사람들 홀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기꾼들이었지만 자료 관리를 하는 컴퓨터 보안은 엉망이었다.

쓸 만한 것들이 꽤 넘쳤다.

최근 저장된 눈앞의 여형조 부장검사 비밀 고백 정도는 약과였다.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공무원과 국회의원급 인사들의 비리가 제법 됐다.

물론 모두 복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월요일 아침 일찍 여형조를 찾아왔다.

내가 서울에 가 있는 사이 구서현 검사를 추행하고 내쫓은 악독한 시어머니 같은 놈.

아래턱을 꽉 깨물고 커피를 손수 타서 내놓았다.

딸각.

탁자 위에 놓이는 믹스 커피.

“두 개 타셨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최대한 자존심을 지키려 애쓰는 여형조.

지금 머릿속이 아주 복잡할 거다.

혈압이 올라 뒷목이 터지기 일보 직전일 수도.

내 손에 들려 있는 자료가 밖으로 알려지는 순간 검사직은 날아간다.

하늘승리교가 거대 사이비 종교라는 사실은 상식 있는 국민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현직 부장검사가 사이비 비밀 신도가 됐다!

자신이 직접 고백하는 내용이 인터넷을 타면…….

검찰은 메가톤급 폭탄을 맞고 화염에 휩싸일 것이다.

“역시 검사실에서 마시는 커피가 최곱니다.”

일이 고되다 보니 믹스 커피 두 개를 타 마시는 것이 전통이 되어 버린 검찰.

물론 몸에는 좋지 않았지만 달달한 풍미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맛은 역시 최고였다.

“앉으세요. 누가 보면 제가 이 방 주인인 줄 알겠습니다.”

더 지켜줄 예의 따위는 없었다.

여형조와 대화를 나눴던 놈은 구서현 검사를 죽여 없애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에 동조해 동료를 팔아먹은 여형조 부장검사.

사람이 아니라 짐승새끼였다.

“너…… 어떻게 할 거냐…….”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서 조급함을 보였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이 지금 여형조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말하고 있었다.

배신자.

가식적인 물음도 치가 떨렸지만 일단 웃었다.

세상에 저런 놈들 한둘이 아닌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괜히 분노를 일으켜봐야 나만 손해다.

“그러게요. 어떻게 할까요?”

꿀꺽.

여형조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원하는 정답이 어떤 대답인지 그는 몰랐다.

나만 알고 있는 그 답.

“이번 한 번만 눈감아주면……. 어떻게든 보답하겠다.”

최대한 믿음을 사보려고 애쓰는 놈의 우거지상이 아주 볼만 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정신 상태.

“에이~. 그걸 어떻게 믿어요. 자식 같은 휘하 검사도 사이비 놈들한테 하룻밤 사이에 팔아먹는 개새끼 말을~.”

“!!!”

개새끼라는 말에 역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여형조.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뭘 째려요? 내가 앉으라고 했지!”

강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여전히 노려보는 여형조.

대수롭지 않게 웃어줬다.

털썩.

이내 자신이 아쉬운 입장인 것을 알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한번 꺾인 자존심.

어리석은 자들일수록 자존심만 강했다.

그런 면에서 여형조는 강단은 없는 인물이다.

“내 말투가 듣기 그렇지? 부장검사가 취조실에 불려온 죄인도 아닌데 말이죠.”

은근히 여형존의 본성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 모습이 가상할 지경이다.

이 정도 깡이면 쓸 만할 것도 같았다.

“이거 털어오면서 그쪽 서버에 보관된 자료는 지웠습니다. 검사 일이 년 하는 것도 아닌데 사이비에 영혼을 팔다니……. 짬밥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말투가 온탕과 냉탕을 수시로 오갔다.

썩은 정신을 쏙 뽑아내 갈아치우는 데는 이만한 게 없었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여형조.

눈빛이 좀 전과 달라졌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짬밥 경력은 이래서 무시 못했다.

귀신같이 타협이 가능할 것 같다는 걸 눈치챘다.

바로 눈빛을 바꾸고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목소리도 몇 톤 낮게 깔았다.

“일단 구서현 검사님 복직시켜야죠. 대한민국 법조계를 위해 큰일 하실 분인데 썩히는 건 옳지 않죠.”

“그게…… 윗선에서…….”

“거절하시는 겁니까?”

스마트폰을 들고 눈앞에서 흔들었다.

“……바로 처리하겠네.”

이래서 협박범들이 세상에 차고 넘쳐나는 거다.

약점 잡고 협박하면 얻고자 하는 걸 쉽게 얻게 되니 말이다.

나 역시 여러 번 경험하다 보니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강했다.

“그리고 이건 가장 중요한 건데…….”

살짝 뜸을 들였다.

어차피 아쉬운 건 내가 아니었다.

“말해 보게. 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본분은 상실하고 귀엽게(?) 꼬리를 흔드는 부장검사 나으리.

“이게 쉽다고 생각하면 쉽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인데.”

한 번 더 쫀득쫀득한 밑밥을 깔았다.

“……죽을힘을 다하겠네!”

이제야 듣고 싶었던 대답이 나왔다.

여형조 검사가 사태를 제대로 파악했다.

“여형조 검사님, 그래도 대한민국 검사인데 이름 한 번 날리셔야죠. 쌍둥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

여형조가 끔찍이 아낀다는 쌍둥이 아들을 언급했다.

역시 파르르 격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알아 본 바 의외로 여형조 부장검사는 가정적인 인물이었다.

아내는 정숙했고 초등학교 고학년인 쌍둥이들은 학교생활도 모범적으로 하고 있었다.

반듯했던 가정의 모습이 차라리 약점이 됐다.

아무리 가정을 모범적으로 꾸렸다 해도 부정한 돈을 취해 길러낸 자식일 때는 그들 역시 연대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였다.

해치거나 여형조 검사의 가정을 위협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협박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아주 제격이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남자는 아니다.

“으음…….”

여형조는 깊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몇 번 껌벅였다.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감출 수 없는 악마의 미소가 절로 번졌다.

“앞으로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충견이 되십시오.”

“뭐, 뭐라고!!! 개가 되라고???”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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