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장. 개가 되어라
스으으읏.
천준규가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살인 현장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지워졌다.
넘칠 듯 출렁이던 바닷물은 부연 수증기를 피워 올리며 말라갔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과학수사대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도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남해용왕님 사업 마인드가 본받아야 할 정도로 확실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보았다.
바다 쪽에서 뻗어와 폐창고 뒷문으로 들어오던 기다란 문어 다리.
최도철과 천준규, 그리고 덩치 세 녀석을 처리했다.
생명체는 아니었지만 엄연히 살아 움직이는 용왕이 부린 바다의 사신이었다.
“……하아.”
이제야 한숨이 나왔다.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는 일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살인을 일삼던 자들이었지만 나와 같은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자비를 베풀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걸리지 않았다면 버젓이 세상에서 활개 치며 뻔뻔하게 살았을 것이다.
세상 곳곳에 악의 씨앗을 뿌리고 선한 자들을 괴롭히며.
감옥에 처넣어도 고작 몇 년 살고 다시 사회에 나왔을 놈들.
그런 자들을 상대로 인권이고 나발이고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구서현 검사는 물론 나까지 죽이려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수한 죄 없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쳐왔을 쓰레기들.
갱생 불가능한 폐기물들.
지옥에 가는 심정으로 손에 피를 묻혔다.
- 상당한 카르마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 리차드 강 차사가 본인 수당에서 신고 포인트를 지불했습니다.
- 악신이 처절하게 분노합니다.
- 쓰레기 처리 비용 포인트가 남해용왕님 계좌로 입금되었습니다.
- 남해용왕님이 만족하고 있습니다.
- 단골 업체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연달아 들려오는 알림음.
몸은 현실 세계에서 두 번째 생을 살고 있지만 정신은 또 다른 세상과 통신 가능한 나였다.
바닷가라 시체 처리하는 게 용이하지 않았다.
화염마법으로 처리할 수도 있었지만 방파제 특성상 화장할 때 불꽃이 화려해 시선을 끌 수 있었다.
고민하고 있던 참에 들려온 남해용왕님의 은근한 PR.
포인트를 지급하면 저렴하고 깔끔하게 뒤처리를 해 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콜!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양아치 깡패 덩치들과 비리 경찰을 넘겨줬다.
비용 포인트는 생각보다 저렴했다.
처리하고 받아낸 카르마 포인트가 훨씬 셌다.
워낙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덩치 몇 놈 담갔다고 바다가 달라질 리 없었다.
“문제는……. 아직 최종 보스가 남았다는 건데…….”
혹시 몰라 구서현 검사를 위해 안전장치를 해뒀다.
나와 엮이면 본의 아니게 다들 파란만장한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게 됐다.
씨큐리티 직원들 네 명이 2인 1조 감시체계로 돌아갔다.
구서현 검사는 중요한 인재다.
인연의 모습을 달라지면서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됐다.
다행히 시큐리티 직원들이 커버를 잘 해줬다.
권항산 신부 사무실에서 긴급하게 연락을 취하고 곧장 헬기를 이용했다.
이런 날을 대비해 TS 그룹을 통해 빠르고 안전한 헬기를 주문했었다.
시간이 보석 같은 시대다.
주말에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건 여러 모로 시간낭비다.
아쉽지만 이동 마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판타지 세계에서라면 개나 소나 다 펼칠 수 있는 이동 마법진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거 직접 배워보려고 덤벼본 사람이라면 다 알 거다.
난이도가 아주 상상을 초월한다.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마법은 현대의 양자공학과 비슷했다.
더욱이 지구는 좌표 잡기가 몹시 애매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분명 있었던 건물이 사라지고 도로와 처음 보는 시설들이 나타난다.
자칫 방심하다가 잘못 이동해 그대로 시멘트 속에 갇혀 죽을 수도 있다.
헬기를 이용해 통영까지 이동했고, 바로 차로 옮겨 타 방파제로 질주.
시큐리티 본사에서 쏴주는 실시간 감시체계 보고를 믿었지만 느낌이 싸해 과속했다.
진로를 방해한 방파제 철기둥은 가볍게 플라이 마법으로 통과했다.
이것저것 사람 눈 의식할 시간이 없었다.
그 덕에 늦지 않고 구서현 검사를 구해낼 수 있었다.
내가 먼저 도착해서 직원들도 무사했다.
깔끔한 한판 청소.
그러나 아직 최종 보스가 남았다.
“기다려. 이 악마 새끼들……. 이 형님이 간다.”
나를 지켜보고 있을 악마를 향해 의도적으로 경고를 날렸다.
저벅저벅.
미련 없이 사건 현장을 벗어났다.
베고 뽑고 제초제를 뿌려도 끊임없이 자라는 잡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잡초 제거는 나의 운명이었다.
***
“으음…….”
구서현은 오랜만에 기분 좋은 꿈에서 깨어났다.
야자수 가득한 이국의 바닷가.
챙이 넓은 파라솔 아래 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다 깼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듯 몸이 가벼웠다.
시원한 맥주와 넓게 펼쳐진 바다를 마주하자 갈증이 확 풀렸다.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스르르 잠에서 깨 눈을 떴다.
“…….”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달랐다.
낯선 침대 위다.
스스슥.
빠르게 몸을 더듬었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깡패 한 놈한테 배를 얻어맞고 끌려가고 있을 때 장태산이 앞에 나타났다.
어렵지 않게 양아치 조폭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
도대체 누구의 방?
“아…….”
창밖이 보였다.
어두운 걸 보니 야심한 시각이 확실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 구서현.
“나폴리……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의 밤.
등이 켜진 항구와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통영에서도 돈 많은 부자들이 거주한다는 항구가 훤히 보이는 쪽의 건너편에 자리한 저택지.
모르는 낯선 곳이 아니라 일단 안심이 됐다.
“깼으면 거실로 나와요.”
“장태산?”
익숙한 목소리에 반가움이 일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장태산이라면 믿음이 갔다.
타닥.
침대 밑에 놓인 슬리퍼를 신고 거실로 나갔다.
바로 앞에 보이는 그.
편안해 보이는 흔들의자에 앉아 장태산이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여유가 넘쳐 보였다.
아니 여유 너머의 고독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태산의 분위기가 낯설었다.
나이를 초월한 어떤 절대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간 직무대리로 통영에 온 이후 봐왔던 장난스럽던 장태산과 무척 달라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이야?”
구서현은 장태산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한잔할래요?”
“……응.”
“앉아요.”
옆에 흔들의자를 가리켰다.
구서현은 장태산으로 가 앉았다.
또로록.
붉은 와인이 잔에 채워졌다.
꿀꺽.
구서현은 꿈에서 깨기 전 마셨던 맥주가 생각났다.
갑자기 목이 마르고 속이 타기 시작한 구서현은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깡패들은?”
“……믿을지 모르겠지만 남해용왕님이 쓸어갔습니다.”
“!!!”
무슨 뜻인지 구서현은 알아들었다.
남해용왕이라는 말은 은유적 표현.
“태산아…….”
구서현은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자신을 욕보이고 죽이려 했던 깡패 놈들에게 인간적 감정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다.
법집행자인 검사도 사람이고 구서현은 여자였다.
총기 소지가 가능했다면 현장에서 그놈들을 쏴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태산에게 살인죄를 묻게 되는 상황이 된다면 말이 달라진다.
“걱정 마십시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빙긋 웃는 장태산.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믿음이 갔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모든 기억들을 더듬어 상황을 되짚어 보면 지금 이 순간은 기적이었다.
구서현은 검사로서 스스로 진실을 밝히겠다는 어리석은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입을 닫아야 했다.
차라리 잘됐다.
백 번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처벌은 아무리 형량이 높아도 약했다.
대책 없이 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범죄자들까지 사람 대접을 하기도 했다.
그런 어설픈 인권론자들 때문에 사악하고 잔인한 죄인들이 피해자들보다 더 당당하게 설치며 세상을 살고 있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태산이는……. 내가 감당할 만한 그런 남자가 아니야.’
미혼의 여성이라면 한 번쯤 미래를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남자 장태산.
영혼이 탈탈 털릴 것처럼 멋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경험하고 나서 구서현은 확신하게 됐다.
자신이 품거나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주말까지 여기서 푹 쉬고 월요일에는 가뿐하게 출근하십시오. 통영의 악당들이 검사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나 출근 못 해.”
“네?”
“근신 처분 떨어졌어.”
“왜요?”
“부장판사님께 하늘승리교 수색영장 신청했다가 대차게 까였다.”
답답한 마음에 남아 있던 와인을 입에 모두 털어 넣는 구서현.
속이 쓰렸다.
근신처분이라고 말했지만 대놓고 조직에서 나가라는 신호다.
이걸 무시하고 모른 척 다시 출근했다가는 직원들의 항명 사태와 직면할 것이다.
검찰이라는 조직이 그랬다.
눈치 없으면 아무리 고위급 검사라도 아랫사람들과 직원들의 눈치를 받게 되는 이상한 집단.
항명이 존재할 수 없는 구조였다.
“걱정 말아요. 제가 다 해결하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영업 비밀입니다.”
“됐어. 네가 아무리 잘나가도 그건 불가능해. 이 썩어빠진 조직 떠나서 변호사나 하련다. 형사 사건 말고 죄다 민사 쪽만 수임할 거다. 다시는 검찰 쪽에 눈길도 안 줄 거야!”
구서현도 사실 많이 지쳤다.
과거 순수하게 꿈꿨던 멋진 검사직을 버리고 평범한 변호사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거친 깡패 놈들과 조서 작성하는 대신 가족과 친구들 만나 수다 떨며 평범하게 사는 인생도 괜찮았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습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훅 치고 들어오는 장태산의 물음.
“…….”
구서현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검사복을 벗는 순간부터 뼈저린 후회가 밀려올 건 팩트였다.
“월요일 오후에 지청으로 출근하십시오. 저를 믿는다면요.”
구서현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장태산.
진실과 정의, 그리고 강한 믿음이 보이는 눈빛이다.
구서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실종? 천준규 이 새끼 뭐 잘못 처먹은 거야?”
통영 지청 여형조 부장검사는 긴급하게 올라온 보고에 인상을 잔뜩 썼다.
월요일 아침부터 기분이 아주 찝찝했다.
주말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남우현이 당차게 말했던 구서현 처리 건도 실행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넉넉한 사항이라 그건 신경을 껐다.
다만 권총을 차고 외근을 나간 형사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보고가 문제였다.
아는 놈이다.
부산에서 비리에 연루되며 통영까지 쫓겨 온 형사.
통영에 와서도 못된 버릇은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놈을 감싸는 윗선이 워낙 탄탄했고 여형조를 비롯해 검사들과도 친분이 꽤 있었다.
간간이 좋은 곳에 가서 술잔도 나누는 사이였다.
그동안은 큰 사고를 치지 않고 있어서 웬만한 건은 대충 눈감아줬다.
나름 눈치 빠른 형사를 수하에 두는 게 요즘은 쉽지 않았다.
“밀항한 거야? 아니면 뒈진 거야?”
맨몸으로 사라졌다면 대충 신변 처리를 할 수도 있었다.
경찰들도 이런저런 일들로 예고 없이 자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총기를 소지하고 사라진 게 문제였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 통영 경찰서장은 시말서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는 사건이다.
검찰도 입장이 난처해질 게 뻔했다.
“이제 별게 다 신경 쓰이게 만드네.”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입맛을 다시는 여형조.
하늘승리교의 비밀 신도가 된 직후에 일어난 문제라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내년 정기 인사 때 수도권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때까지 최대한 몸을 사릴 심산이다.
어차피 대부분 사건은 아래 검사들이 담당하고 있어서 크게 무리만 하지 않으면 됐다.
“날씨 좋다~.”
창거 너머로 보이는 가을이 찾아오는 벽방산의 풍경.
여형조는 보고 들은 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즐겼다.
삐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부장검사님, 장태산 검사직무대리님이 찾아왔습니다.]
여직원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지청에서 인기가 꽤 많은 재수 없는 검사직무대리.
수도권에서 법원 윗선에 제대로 찍혀 통영까지 밀려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여형조는 드러내 놓고 무시하지 못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어리바리한 놈이 아니었다.
언제 시내에서 빨간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가는 걸 목격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처리가 깔끔했고 행동에서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웬만해서는 건들지 말아야 할 놈이라는 걸 여형조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런 이유로 구서현에게 붙여줬다.
벌금이나 처리하는 구서현과 조용히 놀다 서울로 올라가라는 의미였다.
“들어오라고 해.”
발을 내리고 각을 잡는 여형조 부장검사.
사람 좋은 미소를 만면에 장착했다.
스륵.
문이 열리며 모습을 보인 장태산.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건방져.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여형조는 눈에 띄게 잘생긴 장태산에게 묘한 질투를 느꼈다.
아직 죽지 않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발동했다.
“별일 없지. 직무대리는 주말 어땠어?”
“저요? 좀 바빴습니다. 통영에 무슨 똥파리들이 그렇게 많은지…….”
“바닷가라 어쩔 수 없지. 아직 날씨도 따뜻해서 똥파리들이 좀 많아.”
그냥 날아다니는 똥파리라고만 생각한 여형조.
“그게 아니라…… 인간 똥파리요~.”
“응???”
삐딱한 장태산의 말투에 여형조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뭔가 자신과 관련 있을 것 같은 느낌.
일개 검사직무대리가 까마득한 선배이자 부장검사를 상대로 저렇게 싸가지 없는 말투로 대꾸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조용히 단둘이 말씀 좀 나누고 싶은데…… 직원들 좀 내보내시죠.”
꿈틀!?
시건방진 눈빛과 태도로 말하는 장태산의 제안에 여형조 눈썹이 순간 치켜 올라갔다.
“야! 너 뭐야!”
우렁차게 큰소리로 일갈하는 여형조.
장태산은 꿈쩍도 않고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틱.
여형조의 말을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대신 스마트폰을 가볍게 터치하는 손가락.
[비밀 보장 확실합니까?]
[물론입니다. 교주님을 비롯해 핵심 장로님, 그리고 저만 알게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하늘승리교의…… 비밀 신도가 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부터 부장검사님도 하늘치부책에 승리자로 기록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귓속을 파고드는 자신과 하늘승리교 집행사자 남우현과의 은밀한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
“!!!”
여형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윽.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는 장태산.
얼굴에 번지는 차가운 미소와 싸늘한 눈빛이 여형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여 검사, 자네도 와 앉아. 내가…… 할 말이 많아~.”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