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장. 골칫덩이는 사건을 부른다 (2)
“찾았습니까?”
수십 개의 초가 켜진 신성한 기운이 도는 장소에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요즘 계절이 바뀌며 파도까지 강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집행사자님은 일처리를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석양이 지는 남해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낮은 산중턱에 세워진 고급스러운 건물.
사십 대 중반으로 중후한 인상을 가진 남자가 낮고 조용하고 추궁했다.
“큰 장로님. 발견된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경찰에도 손을 써놨습니다. 가출 신고가 되어 있어 경찰에서도 자살로 처리 할 겁니다.”
그 앞에서 쩔쩔매는 삼십 대 초반의 마른 체형의 남자.
황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지청 부장검사 어머니가 저희 신도입니다.”
“그래요?”
“이런 지방 도시에서는 큰 사건 나는 것도 귀찮아합니다. 그리고 요즘 이십 대 청년들이 자살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혹시 모르니까 감시 늦추지 마십시오. 교에 자그마한 불씨라도 튀어서는 안 됩니다.”
“걱정 마십시오. 장로님.”
“교에 폐가 되는 건 죽음과 죄악에서 승리하신 그분에 대한 신성 모욕입니다. 죽음으로 속죄해야 할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장로는 싸늘한 시선으로 앞에 선 남자에게 죽음까지 말하며 심기가 불편함을 내비쳤다.
“목숨으로 하늘사자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경태 신도님의 신심을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물러나십시오. 기도할 시간입니다.”
“하늘승리가 함께 하시기를…….”
합장한 채 고개를 숙여 이마를 손에 대고 물러가는 사내.
“쯧……. 적당히 하라니까…….”
장로의 입에서는 사방이 고요해지자 바로 싸구려 말투가 튀어 나왔다.
눈꼬리는 치켜 올라갔고 입술은 짜증으로 떨렸다.
뚜루루루루.
스마트폰을 잡고 직통 번호를 눌렀다.
- 탁장로 무슨 일인가?
“사자님. 일이 좀 복잡하게 됐습니다.”
- 죄인의 시체는 찾았나?
거만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들렸다.
“아직입니다.”
- 죄 사함을 다 받지 못했거늘……. 어리석은 여인이로고.
“제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하늘 여인들을 준비했습니다.”
- 하늘여인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가?
“교육사자들이 특별히 하늘의 은총에 관해 깊게 가르쳐 놨습니다.
- 오! 그래? 기대가 되는군.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입맛을 다시는 하늘사자.
“바로 입궁시키도록 하겠습니다.”
- 큰 장로의 공이 하늘치부책에 기록되었도다.
“감읍하옵니다. 하늘사자님.”
- 더욱 하늘궁전의 확장을 위해 정진하도록 하라.
“뜻을 받드옵니다.”
툭.
통화를 끝낸 큰 장로 탁태훈.
“하늘치부책? 미친 놈……. 설계를 잘못했어. 이 자식 갈수록 지가 신인 줄 아네?”
입맛을 쩝쩝 다셨다.
지난 시절 오늘을 위해 탁태훈은 큰 설계를 했다.
신학 공부부터 시작해 여러 사이비 종교에 직접 침투해 운영 기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택한 교주.
얼굴은 반반하고 말빨이 좋았던 제약회사 영업사원.
그가 요즘 들어 똥오줌 못 가리고 고개를 뻣뻣하게 처들 때가 많았다.
“그래 넌 잘난 교주해라. 난……. 돈만 있으면 되니까. 흐흐.”
오랜 전 탐욕스러운 욕망에 영혼을 팔아 버린 탁태훈은 음흉하게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둘도 없는 신흥 기업 사이비 종교.
아직도 당하는 순진한 것들이 세상에 널렸다는 게 그를 무한히 기쁘게 했다.
***
삐뽀 삐뽀.
항구에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파바밧.
출동한 경찰이 사진을 찍었다.
양우석 의원은 출동한 경찰에게 조용히 무슨 얘기인가를 속삭이고 곧장 사라졌다.
국회의원을 제지할 경찰은 없었다.
더욱이 양우석 의원은 행안부 소관위였다.
그리고.
“직무대리님은 별걸 다 낚아 오십니다그려~.”
사십 대 중반의 배가 나온 형사 한 사람이 나를 향해 다가오며 히쭉 웃는다.
천준규 경위.
2주 동안 통영에 있으면서 얼굴을 몇 번 본 사이다.
작은 도시에서는 검사와 형사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처럼 가까웠다.
그가 나를 향해 드러내는 거만함과 건방은 숨겨지지 않았다.
아직 나의 정체를 전혀 모르는 통영 경찰의 어설픈 몸짓이었다.
말은 존대를 했지만 눈빛은 나를 한참 깔아 놓고 보았다.
사건에도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천에 싸인 여성 시체를 한번 살펴보고도 반응은 시큰둥했다.
“경위님이 보기에 어떻습니까?”
“자살 같아요. 얼굴이 반반한 걸로 봐서 실연이라도 당한 거겠죠……. 일 년에 몇 건씩 벌어지는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타살 아닙니까?”
“에이~. 몸에 상처가 없는데 어떻게 타살입니까?”
“전라입니다. 자살을 한다 해도 여성들은 수치심 때문에 이렇게 죽지는 않습니다.”
“여기는 따뜻한 동네라 요즘도 반바지에 반팔 입은 사람들 많습니다. 파도에 휩쓸리다 보면 얇은 옷 정도는 금방 벗겨집니다.”
“속옷도 없었습니다.”
“안 입었을 수도 있죠~. 요즘 다들 프리하잖아요. 흐흐흐.”
낯선 여인의 죽음 앞에서도 동네 형사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쓰레기다.
형사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낚시하다 발견한 여성 사체.
바로 112에 신고하고 항구로 향했다.
사망한 지 며칠 된 듯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 사체는 알몸이었다.
보는 순간 강력사건을 의심했지만 형사는 자살로 마무리 지으려 했다.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그때 시니컬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내 지도 교사, 아니 지도 검사로 배정된 통영지청 검사 구서현.
운동화에 청바지, 가을 코트를 가볍게 걸치고 나타났다.
“충성~. 구 검사님. 여기 계시는 검사직무대리님이 바다에서 시체를 낚아……. 아니 건져오셨습니다.”
“장태산 네가 건졌어?”
“네.”
“……골칫덩이는 사건을 부른다는 말이 사실이었네.”
“네?”
“내 이야기다. 내가 서울에서 윗선들한테 그렇게 불렸거든. 구골치라고 말이야.”
그럼 난 장골치?
구서현 검사.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이다.
앞으로 몇 년 후 정권이 바뀐 뒤에 검사들 사이에서의 성추행을 폭로한 용감한 여검사다.
예쁘장한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검사실에서도 한숨을 쉴 때가 많았다.
윗선의 눈 밖에 나 찍어내려는 압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서울에서 잘나가다 내부 고발로 인해 통영으로 발령이 났다.
자신들의 더러운 치부를 덮느라 개수작 부리는 썩은 검사들.
직접 겪어보다 보니 그 썩은 내가 이곳에서도 진동을 했다.
검찰 조직 역시 군대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위에서 까라면 검사들은 그대로 움직여야 했다.
속이 문드러지고 터졌다.
이런 검사들이 사람들의 죄를 묻고 판단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깨끗하고 올곧은 인사들도 분명 섞여 있다.
하지만 거대 조직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한바탕 뒤집을 필요가 있었지만 아직은 그때가 아니었다.
스윽.
시집도 안간 삼십 대 초반의 구 검사가 하얀 천을 살짝 들췄다.
“흐음.”
심지어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도 깊게 맡았다.
검사……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생각보다 깨끗하네? 부패 진행속도가 늦게 진행된 건가? 요즘 해수면 온도가 높다지만 아직 떠오를 만큼은 아닌 것 같은데?”
“검사님 귀신이네~. 익사체만 보고도 바로 아시네. 부패가스로 떠오른 게 아닙니다. 요즘 같은 날씨면 최소 열흘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깨끗해요~.”
“이런 경우도 있나요?”
“물론입니다. 한 많은 시신들은 이렇게 상식을 깨고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자살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한 많은 시신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흘리는 천준규 경위.
“장태산! 발견할 때 이상한 점 없었어?”
“없었습니다. 시체가 해류를 타고 낚싯배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다가와? 말투가 익사체가 수영이라도 해서 온 것처럼 말한다.”
“네.”
“장난 그만해라……. 요즘 애들은 농담을 끊을 줄 모른다니까.”
구서현 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농담 아니다.
정말 시체가 내 쪽으로 왔다.
억울한 죽음이라도 당한 듯 아직 덜 부패한 시체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눈도 치켜뜬 채였다.
시체를 건져 올렸다.
양우석 국회의원은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국회의원이라고 다들 간이 큰 건 아니다.
“일단 부검 의뢰하고 신분 확인부터 하세요.”
“충성~.”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는 천준규 경위.
“얘들아, 여기 정리해라. 저녁 밥 먹어야지~.”
검사의 사건지휘에 천준규 경위는 전혀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방관님들 익사체 정중히 모셔주세요. 냄새나니까 가시는 길에 약품 아끼지 말고 고이 뿌려주시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싸구려 경찰 천준규.
살아서는 꽤 미인 소리를 들었을 여인.
죽어서는 사람이면 맡기 거북한 냄새를 풍겼다.
삐뽀 삐뽀.
119응급차에 실려 익사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경찰들도 빠르게 떠났다.
“양 의원은 왜 만났어?”
시골 동네라 금방 소문이 났다.
둘만 남자 직설적으로 물어오는 구서현 검사.
“공안검사도 아닌데 추궁입니까?”
“묻는 말에 대답해.”
“예전부터 알던 낚시 동료입니다.”
“그 나이에?”
“친구에는 나이가 상관없는 법입니다.”
“야당 국회의원 만나는 꼴 보니 너도 서울로 발령받기는 글렀구나.”
“변호사 개업 할 겁니다.”
“철없는 소리 하네. 집에 돈 많냐?”
“네~.”
“정말?”
“개업하고 먹고 살 정도는 됩니다.”
“……그럼 나 좀 데려가라.”
“어디를요?”
“나 시집가서 잘 할게. 너 얼굴도 반반하니 바람 펴도 몇 번은 용서해 줄게. 생각보다 나 아량이 넓다.”
이 여검사 농담이 세다.
날 똑바로 쳐다보며 겁도 없이 진담 같은 농담을 한다.
“인생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닙니다.”
“그렇지? 내가 아깝지?”
착각도 자유.
“검사님 말고 저 말입니다.”
“……나쁜 놈.”
누가 할 소리!
어디 노처녀가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총각 인생을 망치려 들어!
“힘내십시오. 검사님 잘 하고 계십니다.”
“나만 잘 하면 뭐하냐. 세상이 개떡 같은데…….”
“언젠가 뒤집힐 날이 올 겁니다.”
“내가 보기에 이번 생은 아닌 것 같다.”
“시련도 셀프지만 극복도 셀프입니다.”
“그 말 재수 없다.”
“좋기만 한데…….”
“누구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잖아.”
“어차피 요즘은 친구들 충고 90% 걸러야 정신 건강에 좋은 세상입니다. 답답할 때마다 인간이 아니라 이 동네 유명한 방파제나 갯바위와 대화하십시오. 가끔 그렇게 사물과 대화할 때 답답함이 풀리는 법입니다.”
“……너 사이비냐?”
“서울 가면 따르는 신도들 많습니다.”
“쳇. 어떻게 한 마디를 안 져!”
혀를 차는 구서현 검사.
검사지만 귀여운 맛도 있었다.
“진미옥 아주머니에게 제가 잡아온 생선으로 매운탕 끓여 한잔해요. 어차피 밥시간 다 됐는데.”
통영에 와서 단골이 된 작은 식당.
“그럴까?”
“주말에 왜 나오셨습니까? 집에서 맥주나 한 잔 마시고 푹 쉬시지…….”
“나……. 검사잖아.”
석양이 물드는 항구에 늘어선 가로등 불빛.
그 아래서 구 검사가 한숨 섞인 무거운 한 마디를 뱉었다.
“…….”
검사라는 말이 왠지 아련하게 들려왔다.
겉모습은 보통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그녀는 분명 검사였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전사.
하지만 조직은 그녀를 조직원이 아니라 한 송이 꽃으로만 봤다.
개새끼들.
“가요. 청승 떨면 시집 못가요.”
익사체 보고 냄새 맡았다고 매운탕을 못 먹을 그런 간 작은 사람은 또 아니었다.
휘적휘적 생선박스를 들고 걸었다.
“장태산! 같이 가!!!”
뒤에서 들려오는 구서현 검사의 외침.
이곳 통영…….
생각보다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