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1. 법정(法廷) (4) (559/1,284)

561. 법정(法廷) (4)

“NHTSA 놈들은 왜 그런 거야! 갑자기 조용하다가 신문에 왜 때리냐고!”

연대자동차 그룹 회장실.

전문구 회장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일단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누군가 내부 제보를 한 것 같습니다.”

“내부 제보? 뭘?”

“알파2 엔진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알파2……. 젠장! 빌어먹을!”

알파2 엔진이라는 말에 전문구는 욕설을 내뱉었다.

며칠 전 갑자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서 언론을 통해 연대자동차 엔진 문제를 거론했다.

미국 운수부 산하 정부기관으로 리콜을 비롯해 충돌실험 및 각종 자동차 안전에 관한 일체를 감독했다.

한 가지라도 걸리면 자동차 회사 박살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로교통안전국에서 검사 통보를 연대에 통보했다.

동시에 언론을 통해 엔진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내비쳤다.

순식간에 연대 주가가 폭락했다.

언론을 통해 상황이 발표되기 전 엄청난 해외 자본이 공매도를 실시했다.

그러고 난 후 직후 주식은 예상했던 대로 폭락.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과정 중에 급작스럽게 터진 악재였다.

더욱이 알파2 엔진은 답이 없었다.

엔진 성능을 단기간에 올리기 위해 자연흡기 방식에서 GDI로 바꾸면서 심각한 내구성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에 있던 시그마 엔진에 이은 두 번째 엔진 문제.

크랭크샤프트와 베어링 마찰 불량으로 소음과 진동이 발생했다.

최악의 경우 엔진이 도로를 달리는 중에 박살이 났다.

엔진 실린더가 고압 압축비를 감당하지 못한 데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쉽게 획득할 수 없는 금속재료 기초공학.

전문구 회장의 안색이 보기 흉할 정도로 썩어 들어가는 이유였다.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대책?”

“……선수 쳐서 리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많은 자동차를?”

“미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럼 내수 쪽은?”

“……미국 쪽 엔진 문제라고 몰아붙여야 합니다. 내수에 깔린 엔진까지 리콜 했다가는 회사가 버티지 못합니다.”

“다들 똑똑해졌단 말이야. 스마트폰이라는 그 물건이 요물이야. 국토부나 언론사 회유로 끝나지를 않아.”

“아직은 버틸 수 있습니다.”

“휴우……. 머리 아프다. 주가 폭락에 노조 놈들은 돈 달라고 빨간 띠 두르고……. 이제는 엔진 문제에…….”

경영이 쉽지 않다는 걸 전문구는 그룹을 경영할수록 뼈저리게 깨닫게 있었다.

작고한 부친의 빈자리가 생각하면 할수록 컸다.

왜소한 체구로 대한민국 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그룹을 일궈냈던 아버지 전준영 회장.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그때 전문구 회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총리?”

스마트폰에 저장된 번호는 정재계 중요 인사나 가족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전화를 걸어온 인물은 국무총리였다.

전문구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총리님, 전문구입니다. 공사다망하신데 어인 일이십니까?”

자신보다 연배가 한참 뒤이지만 국가의 중요 인물인 총리직에 있는 인사.

- 전 회장님. 도대체 연대는 가족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네?”

다짜고짜 심정 상한 소리를 전하는 소리를 내뱉는 국무총리.

- 인터넷도 안 보십니까? 지금 연대 그룹 자손 때문에 온 나라가 아주 시끄럽습니다. VIP께서도 대선 문제로 예민하신데…….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 연대오일 전창승 전무와 아들 이름이 실검에 오르는 거 모르세요? 오늘 재판 때문에 난리도 아닙니다.

“!!!”

전창승이라는 이름을 듣고 전문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 전 정진환 기획조종실 부회장이 언급했던 조카와 연관된 일.

“죄송합니다! 빠르게 조치하겠습니다!”

전문구가 신분에 맞지 않는 말로 자신을 낮추며 고개를 숙였다.

퇴임이 얼마 안 남은 레임덕 대통령이지만 청와대의 현재 실제 주인임은 분명했다.

지금 당장 마음만 먹는다면 그룹 하나쯤은 간단하게 공중분해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과거 한 솥밥을 먹었던 인연으로 여러 편의를 봐줘 왔던 VIP, 진정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 잘 좀 해주십시오. 조용히 퇴임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송구합니다. VIP께 면목이 없다고 꼭 전해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조만간 한번 모시겠습니다.”

- 그래요, 그럼…….

한번 모시겠다는 말에 총리 목소리가 대번에 잦아들었다.

퇴임 전에 만족할 수준의 한 몫을 챙겨줘야 할 것 같았다.

뚝.

통화가 끝났다.

“이런 개X!”

화에 얼굴이 벌겋게 변하고 부풀어 오른 전문구 회장.

“문수 당장 연결해!!!”

걷잡을 수 없이 포효했다.

“넵! 회장님!”

살벌한 분위기에 정진환 부회장은 잔뜩 몸을 낮춰 납작 엎드렸다.

연대라는 이름을 관리하는 맏형의 분노.

한바탕 피할 수 없는 거대 폭풍이 불어올 게 뻔했다.

***

‘저……. 악마 같은 새끼가…….’

증인대기실에 있으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오늘 피고 이영진의 변호인을 악마로 낙인찍었다.

수없이 괜찮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놈의 눈을 보는 순간 전동국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법정 분위기도 이상하게 돌아갔다.

재판정 방청석에서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낯선 이들.

그룹에서 파견한 변호사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주의를 들었다.

검사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맞장구를 치고 변호인 말에는 함부로 대꾸하지 말라고 지시였다.

‘어디 간 거야!’

방청석에 앉아 있겠다고 했던 변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화가 치밀었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예리한 눈빛의 판사가 무서웠다.

“착석한 증인들은 만16세 미만이라 증인선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변호인 측 신문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악마나 진배없는 자가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파르르 파르르.

전동국 옆에 앉아 있던 마형곤과 차성철이 눈에 띌 정도로 파르르 떨었다.

감히 눈도 못 마주쳤다.

뚜벅뚜벅.

악마의 발자국 소리가 소름끼치게 가까워졌다.

“교복이 잘 어울리는군요. 증인들도 그렇게 생각하죠?”

악마와 어울리지 않게 다정하게 물어왔다.

“네…….”

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절대 그를 마주칠 때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공포가 살아나서 그들의 입을 저절로 조정했다.

“증인들은 피고석에 앉아 있는 이영진 군과 친구인가요?”

“…….”

세 사람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친구가 아니라 매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대상이긴 했다.

“썩 친했던 사이는 아닌 것 같군요. 맞나요?”

“……네.”

“목소리가 작네요.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맞나요?”

악마의 사신이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듯 물어왔다.

“네엡!!!”

“넵!”

세 사람은 동시다발적으로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대답했다.

영혼에 각인된 공포는 정신과 육신의 기능을 강제적으로 통제했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은 어린 소년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즉시 신문을 중단해 주십시오!”

다급해진 검사 황준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기각합니다.”

“재판장님!!!”

“앞으로 검사는 변호인 신문 종료 시까지 그 어떤 발언도 하지 마십시오. 부적절한 신문 방식은 본 재판관이 주의시키겠습니다.”

검사의 입을 꽉 다물게 만드는 지은재 판사의 선언.

검사 황준혁의 얼굴이 보란 듯이 썩어 들어갔다.

아침 공판 직전 최경태 공판 송무 부장에게 불려 들어가 단단히 주의를 들은 상태였다.

위에서 엄청난 프레스가 가해지고 있는 상태라고 말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머리를 최대한 굴리는 황준혁 검사.

하지만 한낱 연수원 실무실습중인 국선변호인인데도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친하지도 않은 친구를 저녁 12시가 넘는 시간에 칠룡 마을에서 잠실까지 왜 불렀을까요? 아지트라 불리는 곳에서 따듯한 라면을 같이 나눠 먹을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마치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낮게 중얼거리는 장태산 변호인.

하지만 마이크를 사용한 것처럼 방청인들 귀에 생생하게 그의 말이 전달되고 있었다.

“여기 사진들을 자세히 봐주십시오.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장태산은 적극적으로 프로젝터를 활용했다.

찰칵.

선명하고 보기 좋게 사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소한 체격의 피고가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새벽 1시에 가까울 무렵 피고는 집에서 저기 앉아 있는 증인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섭니다. 칠룡 마을 집과 증인들이 사용하는 아지트와의 거리는 약 5.5km. 보통 체격의 소년이 빠르게 자전거 패달을 밟아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은…… 최단거리를 기준으로 20분. 여기 보시면 시시각각 이영진 피고가 지나가는 CCTV 화면이 보일 겁니다.”

찰칵 찰칵 찰칵.

누가 봐도 명확하기 그지없는 각종 CCTV 화면 속 사진.

죽기로 달리는 이영진의 모습에서는 다급함이 엿보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잠실에 도착한 시각은 8월 17일 오전 1시 20분입니다. 검찰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 발생 시각인 1시간 15분과는 엄염하게 5분 차이가 납니다.”

장태산은 논리적으로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 설명했다.

판사에 의해 발언이 금지된 검사 황준혁은 답답한 표정과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증거 사진들은 확실한가요?”

지은재 판사가 확인하듯 물어왔다.

“적법한 방법으로 수집된 증거들입니다. 이 또한 제출자와 이학철 교수님이 증거로써 명확한 자료가 된다는 서명을 해주셨습니다.”

증거 수집과 증명력에 대해 장태산은 스스로 증명했다.

“사실 전 이번 사건을 떠맡기 전까지 세상이 깨끗하다고 믿었던 순진한 연수원생에 불가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파고들면서 의문에 의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경찰과 검찰이 본인들의 직무에 책임을 다했다면 힘없는 피고가 무죄라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 널리고 널렸었는데……. 왜 그 사실을 외면했을까?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공소장의 내용과 피해자의 알리바이가 법정에 제출될 수 있었을까……. 초등학생도 아니고 직업으로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수호하며 민생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이 왜 그랬을까?”

장태산이 수치심에 얼굴이 한껏 달아오른 황준혁을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으득.

황준혁은 순간 재판정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장태산을 노려봤다.

“의심은 곧 저기 앉아 있는 공동피고들 부모의 신분을 아는 순간 부정할 수 없는 확신으로 바뀝니다! 현 여당 2선 국회의원 마제국! 서울 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 차광열! 연대오일 전창승 전무. 그들이 저 증인들의 부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차분하기 그지없지만 서릿발 같은 기세를 띤 장태산의 발언.

동시에 그의 시선이 증인들에게 향했다.

놀라 고개를 더 깊숙이 처박는 3인의 증인들.

“…….”

재판정은 일순간 침묵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피고 이영진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피해자 여가영을 치료한 의사의 소견에 의하면 후두부 파열은 병원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발생했다고 합니다. 여가영이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8월 17일 01시 33분. 검사 공소장과 저기 있는 공동피고인 증인들의 주장 시각은 01시 15분. 그럼 범행 발생 시각은 넉넉하게 잡고 00시 55분부터 01시 10분 사이입니다. 하지만 증거사진으로 확인했듯이 그 시각에 피고 이영진은 아직 탄천 2교를 건너고 있을 시각입니다. 그런데 범인이라고요? 세상에 그 사실을 무시하고 이영진을 범인이라고 믿을 어리석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겁입니다!”

이미 준엄한 심판자나 다름없는 포스의 장태산 목소리가 재판정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럼 변호인은 이영진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진범일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지은재 판사가 흥미진진한 시각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부터 진범을 여러분에게 밝혀 드리겠습니다.”

장태산이 세 명의 공동증인들 앞으로 다가갔다.

“증인들, 이제부터 본 변호인이 신문하겠습니다. 착한 학생들이니 진실만을 대답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누가 들어도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변호인의 음성.

“마형곤 학생.”

“네……!”

“고개 들어봐요.”

스윽.

마형곤이 세뇌라도 당한 듯 고개를 바로 들었다.

“범죄 발생 시에 그곳에 있었죠?”

“……네.”

“본인이 피해자 여가영의 후두부를 가격했습니까? 여당 2선의 국회의원의 아들이 용돈이 부족해서 그깟 12만 원 때문에 뻑치기를 했나요?”

장태산의 질문에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마형곤.

“제, 제가 안 그랬습니다!”

공포에 눌린 반면 힘껏 목소리를 내 소리쳤다.

“그럼 누군가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까?”

“네……. 여, 여기 있습니다.”

마형곤의 고개가 좌측으로 향했다.

그곳에 자리한 차성철.

“아! 차성철 군이 피해자를 가격했군요! 맞나요?”

“아니에요! 제가 아니에요!!!”

차성철이 억울한 듯 소리를 지르며 부정했다.

학교에서는 소문 난 일진이지만 재판정 안에서는 뭣 모르는 피라미에 불과했다.

짓누르는 중압감에 차성철은 혼이 반쯤 가출한 상태였다.

눈앞에 선 젊은 변호인에게 얻어맞아 오줌을 지렸던 며칠 전 사건.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그럼 누구? 형곤이도 아니고 성철이도 아니면 누굴까~.”

인간의 탈을 쓴 악마처럼 조용히 묻는 장태산.

“그게…….”

옆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전동국을 돌아보는 차성철.

모두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전동국에게 향했다.

“전동국, 너야? 네가 여가영 씨를 아지트에서 가격하고 영진이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거야?”

전동국 정면에 서서 차디찬 목소리로 묻은 장태산.

“흐흐흐흐흐…….”

갑자기 전동국이 짐승 같은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숙이며 뱉는 웃음이 섬뜩했다.

“???”

갑작스런 웃음에 판사를 비롯 모두 다 의아하게 바라봤다.

순간 고개를 쳐드는 전동국.

파아앗.

장태산을 당장 찢어죽일 것 같이 새파란 눈빛에서 광기가 줄기차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래 X발 X새끼야! 내가 그 거지 같은 년 뒤통수 깠다! 그리고 저기 있는 병신 새끼한테 다 뒤집어 씌웠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 개같은 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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