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0. 법정(法廷) (3) (558/1,284)

560. 법정(法廷) (3)

‘X발. 저치는 뭐야!’

여가영은 자신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듯한 국선변호인의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에 당황했다.

여태까지 수백 명이 넘는 남자를 만나봤다.

하지만 눈앞의 저런 사내 같은 부류는 처음 본다.

솔직히 잘생겼다.

그것도 아주 많이.

법정에 마주한 게 아니었다면 먼저 접근해 남친 삼고 싶을 정도다.

지금 상황이 영화나 드라마의 법정 신처럼 착각됐다.

스스로는 이미 여주가 됐고 저 남자는 남주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기분 나쁘게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과 미소가 소름 돋게 차가웠다.

뭔지 모르지만 비밀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여가영은 고개를 작게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오늘 한 번의 증언으로 몇 천이 통장에 꽂힌다.

세상에 믿을 건 돈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가영은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여가영 씨. 클럽 좋아하시나요?”

“네?”

느닷없이 던져진 변호인의 엉뚱한 질문.

“여가영 씨 같은 미인이라면 클럽에서 덮어놓고 환영받을 텐데요.”

누가 보면 증인 신문이 아니라 작업멘트로 착각할 만한 말이었다.

“재판장님. 지금 변호인은 본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검사 황준혁이 자리에서 뻘떡 일어나며 곧바로 변호사를 견제했다.

“변호인 중요한 질문입니까?”

“사건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그럼 계속하세요.”

“감사합니다.”

지은재는 흥미롭게 국선변호인을 바라봤다.

‘초짜 맞아?’

지은재 역시 연수원 실무실습 시절에 국선변호인으로 나선 적이 있었다.

단독 사건이라 준비하고 뭐하고 할 것도 없이 끝났다.

그런데 지금 변호를 맡고 있는 연수원과 학교 후배인 장태산은 뭔가 달랐다.

판사나 검사 생활을 오래한 노련한 변호인처럼 굴었다.

대부분 첫 증인 신문 때는 정신이 멍해지는 게 다반사였다.

특히 오늘처럼 기자들이 대거 몰려 있는 상황에서는 더 그랬다.

‘그래, 재롱 한 번 볼까.’

후배의 데뷔 무대가 될 변호 과정을 지은재는 사심 없이(?) 바라봤다.

판사도 그냥 보통 사람.

잘생긴 후배의 듣기 좋은 목소리는 참 좋았다.

“2012년 8월 17일 01시 15분 사건이 발생하기 전 증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장태산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여가영을 빤히 쳐다봤다.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여가영.

“……클럽에 있었습니다.”

“춤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 클럽만 한 곳이 없지 않나요?”

장태산 질문에 여가영이 발끈하며 물려 들어왔다.

“그렇죠. 요즘처럼 취직이 안 되는 시절에는 무직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죠.”

“그건 변호사님이…….”

“아직 변호사 아닙니다. 국선 변호인 내지 그냥 변호인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요. 제가 직업이 없는 건 변호인님이 상관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 대한민국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어요. 그리고 클럽도요!”

여가영의 목소리가 말끝에 가서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짜증이 났다는 걸 듣는 사람이면 다 알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저도 클럽 좋아합니다.”

여가영의 발끈하는 반응에 장태산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씨익 웃었다.

“재판장님 지금 피고 측 변호인은…….”

황준혁 검사가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났다.

‘멍청한 X!’

변호인에게 말려드는 여가영의 모습이 황준혁을 짜증나게 했다.

“변호인 신문 중입니다. 기다리세요.”

“…….”

지은재 판사의 경고에 황준혁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변호인 계속하세요.”

“그럼 사건이 발생한 그날도 클럽에 있었나요?”

“아마도요.”

여가영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두루뭉술 흘려 대답했다.

“왜 나갔습니까?”

그때 훅 들어오는 목적어 없는 질문.

“네?”

“한참 피크인 새벽 1시경에 물 좋은 클럽을 빠져나와 왜 피고인은 인적도 드물고 전혀 연관도 없는 잠실까지 갔냐는 말입니다. 그것도 혼자서요.”

“그게…….”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검찰 측 공소장에 보면 바람을 쐬러갔다고 돼 있으니 믿겠습니다. 저도 답답할 때 다른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이 자식 뭐야? 도대체 뭐가 문젠데!’

여가영은 살살 집중력이 흐려지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 틈에도 알리바이 문제에 신경이 바짝 쓰였다.

꽃뱀 일도 머리가 멍청해서는 못해 먹을 짓이다.

경찰과 연대에서 보낸 법무팀장과 상의해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변호인.

“맞아요. 답답해서 그랬어요. 잠실 쪽이 새벽에는 택시 타고 드라이브하기 좋아서 가끔 나가요.”

여가영은 태연하게 맞장구를 쳤다.

“혼자였습니까?”

“……당연히 혼자였어요. 술도 취해 있어 좀 깰 겸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판사님, 여가영 씨 알리바이를 뒤집을 증거자료 화면을 프로젝터에 올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두말 않고 재판장이 허락했다.

사건 방향이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만약 여가영의 알리바이가 거짓이라면 경찰 초등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딸깍.

장태산이 재판정 피고 쪽에 설치된 프로젝터 화면을 조작했다.

파아아앗!

빛과 함께 화면에 보이는 장면.

빨간 외제 스포츠카에 타고 허세 표정을 짓고 있는 여가영이 보였다.

명품 액세서리와 옷, 가방 등을 걸치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

“!!!”

여가영은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SNS에 올려놓은 사진들이었다.

“저게 뭐야?”

“피해자 사진 같은데?”

“……무직이라고 하지 않았어?”

“뭔가 수상해…….”

재판장 방청석에 앉아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수군거렸다.

기자들이 갖고 있는 직업 특성상의 촉이 발동했다.

각자 수첩에 빠르게 뭔가를 기록하는 기자들.

“정숙해 주십시오.”

판사가 소란스러워진 방청석을 향해 경고를 날렸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SNS 파도를 타다가 여가영 씨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USB에 잘못 저장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태백에서 소작으로 농사를 지으며 사시던데……. 여가영 씨는 능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도 소년 사건으로 졸업하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요즘은 백수들 능력이 더 좋은 시대라지만…… 좀 과하게 보입니다만. 그렇죠 여가영 씨?”

여가영은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시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부모님의 경제력과 자신의 과거 전과까지 까발려졌다.

‘저 자식 나에 대해 다 알고 있어!’

부끄러움이나 분노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재판장님, 저 사진들은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개인 신상입니다!”

검사 황준혁이 다시 한 번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 주의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국선변호는 처음이라 이게 개인 신상에 해당하는지 몰라 실수했습니다. 여가영 씨, 미안합니다~.”

정신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여가영.

그녀를 향해 미소까지 지으며 너스레를 떠는 장태산 국선 변호인.

파앗!

그때 한 번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재생되는 장면.

“어!”

“혼자가 아니잖아?”

이번에는 여가영이 누군가와 손을 잡고 강남 유명 클럽에서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선명하게 찍혀 있는 시간은 8월 17일 오전 0시 15분.

CCTV는 흐릿했지만 분명 여가영의 마른 몸매와 스타일이 그녀라는 걸 판사를 비롯해 방청객들 모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여가영 씨 본인 맞죠?”

장태산이 능글맞게 물었다.

다 알고 있으니 이 정도 보여줬으면 다 고백하라는 말투였다.

“아, 아니에요. 저 화면 속 여자는 제가 아니에요!”

여가영은 목소리를 높여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판사님. 변호인은 지금 피해자를 겁박해 유도신문을 하고 있습니다!”

황준혁이 큰 목소리로 내질렀다.

“검사님이 봐도 화질이 구리죠? 여가영 씨 본인도 본인이 아니라고 할 정도니 말입니다.”

입술을 쪼개며 씨익 웃는 장태산.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짠!”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장태산.

사건을 다루는 데 긴장감도 없이 마치 물건은 파는 영업사원처럼 신이 나서 프로젝터를 조작했다.

파아앗.

그리고 돌아가는 화면.

이번에는 좀 전과 달리 선명하게 남자와 여자가 찍혔다.

8월 17일 0시 22분로 기록되어 있는 CCTV 날짜.

여자는 여가영이 확실할 정도로 판별 됐다.

다만 남자는 옆얼굴만 보이는 상태.

“요즘 편의점 CCTV 화질이 좋더군요. 이거 얻으려고 조미료 범벅 도시락과 라면을 구입해 먹었습니다. 그냥 자료 좀 구워주면 어디 덧날까요? 국선변호인 수당이 얼마나 된다고 그걸 나눠먹었습니다……. 참 세상 인심 야박해졌어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가벼운 사담을 나누는 식으로 질문을 던져지는 장태산.

“큭…….”

“킥킥.”

형사 사건 재판정이 아닌 판소리 마당놀이 같은 분위기에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은재 판사도 터질 뻔한 웃음을 꾹 참고 엄숙한 표정을 고수했다.

“이이!”

그에 반해 검사 황준혁은 미간에 깊은 주름까지 지으며 잔뜩 짜증이 났다.

얼굴은 분노를 참지 못해 달아올랐다.

페이스가 말려들고 있었다.

변호인은 완벽하게 법정 분위기를 통제하고 우위를 점했다.

판사도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변호인 측에 우호적이라는 의미였다.

“이의 있습니다! 저 증거 화면들은 충분히 조작 가능한 증거물들입니다. 공신력 있는…….”

“급하시긴. 그래서 제가 또 준비했습니다. TV를 통해 꽤 유명세를 타신 대한민국 최고 영상 전문가 호영대 영상학과 이학철 교수님과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진본이라고 확인 서명해 주신 문서 일체입니다.”

검사의 말에 바로 다른 증거들을 주섬주섬 챙겨 제시하는 장태산.

“증거로 제출하는 겁니까?”

지은재 판사가 물었다.

“아직 더 남았습니다.”

활기가 넘치는 장태산이 얼굴이 잔뜩 굳어 있는 여가영 쪽으로 다가갔다.

“여가영 씨, 진실을 밝힐 마음이 지금도 없습니까?”

“다 조작이에요! 전 그날 혼자 있었다고요!”

여가영이 발작적으로 빽 소리를 질렀다.

“…….”

누구 하나 동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어떤가요?”

장태산이 피고석으로 이동해 다시 마우스를 조작했다.

그러자 바뀐 또 다른 화면 하나.

택시를 타고 내리는 두 명의 남녀.

끓은 피를 어쩌지 못하고 길을 가다 말고 멈춰 길고 진한 키스를 퍼붓는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시간은 8월 12일 0시 42분.

장소는 잠실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여가영은 물론 남자 얼굴까지 선명하고 확실하게 보였다.

“어어! 저 남자 누구야?”

“어린데?”

“설마…….”

기자들은 빠르게 추리하고 상황을 파악해 정리해갔다.

약간의 소란이 일었지만 지은재 판사는 별달리 말리지 않았다.

여가영의 위증이 확실해져 가는 상황.

판사와 재판부를 무시한 상황이 된 여가영에 대한 신뢰도가 급추락했다.

“여가영 씨, 동행자가 누굽니까? 혹시 제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습니까?”

빠져나갈 구멍도 주지 않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는 장태산.

확인사살까지 했다.

여가영은 입을 꼭 다물고 눈을 감아 버렸다.

자신의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걸 그녀도 알았다.

숨겨 놓은 모든 게 다 까발려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왜 그날 뻑치기 행위자를 저기 피고석에 앉아 있는 이영진으로 특정하신 겁니까? 맞은 곳은 뒷목인데 혹시 이영진이 앞으로 다가와 뒷목을 후려 갈겼습니까? 그랬다면 얼굴이 노출될 텐데요……. 아무리 중3이지만 그 정도 범죄 기본 상식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장태산은 여가영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며 확인하듯 물었다.

“…….”

여가영은 침묵을 고수했다.

이미 모든 게 다 드러나 버렸다.

괜히 입을 놀렸다가는 위증죄에 괘씸죄까지 추가될 수 있다는 걸 여가영은 알고 있었다.

“제 질문은 여기까지입니다. 준비한 화면들은 증거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

장태산이 가벼운 걸음으로 증거자료들을 제출하고 변호인석으로 물러났다.

“검사 측 이 증거들에 대해 재확인 하고 싶은 의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검사 측이 동의했기에 증거자료로 인정하겠습니다.”

지은재 판사는 싸늘한 시선으로 여가영을 한 번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인 측 신문이 끝났습니다. 검사 측 신문하십시오.”

판사가 검사 황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황준혁은 자리에 앉은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누가 봐도 너무 명백한 증거를 부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 방청석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젠장! X같은!’

황준혁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국선 변호인 장태산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하지만 몇 가지 증거가 나타났다고 이영진의 혐의가 달라질 리는 없었다.

“없습니다.”

황준혁은 여가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증인석에 앉아 있는 여가영.

“증인……. 다음 증인신문을 위해 퇴정하십시오. 이번 증인 선서에 관해서는 추후…… 통지가 갈 겁니다.”

지은재 판사가 여가영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위증죄는 빼박이었다.

“그럼 변호인이 요청한 다른 증인들을 불러 주십시오. 시간 관계상 피고와 대질 신문을 위해 공동범인 세 사람을 동시 증인으로 신문을 진행하겠습니다.”

지은재는 빠르게 재판을 진행시켰다.

오늘 끝내지 못하면 재판이 어떻게 돌아갈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저벅저벅.

그때 증인 대기실에 있던 증인들이 재판정으로 들어왔다.

아직 순진한 학생임을 강조하려는 듯 교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세 명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 조금 전 화면의 그 남자 아냐?”

“맞네!”

“쟤 전동국 맞지?”

눈썰미가 귀신같은 기자들이 여가영과 택시에서 내렸던 남자를 전동국으로 특정했다.

세 명은 자신들을 알아보는 방청객들의 반응에 몹시 당황했다.

‘뭐야! X발!’

방청석에서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전동국은 고개를 살짝 들며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재판정과 방청석을 쓰윽 한 번 훑으며 노려봤다.

그러다 마주친 눈길.

씨익~

악마의 미소를 띠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놈.

“!!!”

그 순간 전동국은 며칠 전 당했던 고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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