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9. 법정(法廷) (2)
[제 오빠의 억울함을 국민 여러분들께서 힘을 모아 밝혀 주세요. 저와 오빠는 교통사고로 일찍 부모님을 잃고 칠룡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한 달 전 저를 노리던 학교 선배들이 오빠를 새벽에 불러내어 특수강도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오빠는 왜소한 체격과 여린 성품에 절대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 학생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직 국회의원 아들과 재벌 4세, 높으신 판사님 아들들이 오빠에게 자신들의 살인 미수를…….]
중학교 교복을 입은 청순하고 가련한 외모의 여학생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호소문을 읽어 내려갔다.
2012년 9월 어느 날.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아침 6시.
각 포털과 대형 집단 모임 사이트로 퍼진 호소문이 담긴 영상은 엄청난 파급력을 싣고 빠르게 SNS 포털과 스마트폰 중심으로 침투했다.
누가 봐도 억울한 상황인 게 분명했다.
그러나 웹상 대형 포털에서는 전혀 노출이 되지 않았던 사건.
등교하던 학생들이 먼저 이 사건에 관한 내용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동급생들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 전해졌다.
분노한 학부모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 지역의 대표성을 띠는 인터넷 카페에 사건 내용을 올렸다.
남의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자식이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당하지 못한 세상의 일면을 이미 어른들이 더 잘고 있었다.
해당 사건에 관한 내용은 걷잡을 수 없는 들불처럼 번졌다.
그리고.
- 와……. 진짜 더럽네. 영화 찍냐?
- 이게 나라냐!
- 양아치 새끼들 아버지 다들 대단하시네~. 판사에, 국회의원에 재벌 3세?
- 진짜 저런 일도 있어요?
- 우리 학교 학생 맞아요! 저 양아치들…… 사고 여러 번 쳤어요!
진짜요?
학교에서 당한 여학생들도 많아요. 일진들이에요.
설마……. XX?
당하고 전학 간 학생들도 많아요. 선생님들도 찍 소리 못해요.
- 와아……. 진짜 쩐다!
- 방금 실명 떴습니다, 강남 와룡 중학교 3학년 마형곤, 차성철, 전동국. 마형곤 아버지가 국회의원 마제국입니다. 차성철 아버지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차성철, 그리고 전동국 아버지는 연대그룹 3세인 전창승 전무입니다.
헐……. 진짜 대단한 분들이네.
마제국 의원 친일파 사학 재단 집안입니다.
차광열 판사는 재벌 편들기로 유명한 판사 아닌가요?
연대……. 후덜덜.
- 오늘 재판이라고 하던데?
- 이거 공정한 재판 안 된다에 오백 원 겁니다.
- X발! 또 무전유죄! 유전무죄냐!
- 사법부 지켜보겠음!
- 저 정도 부모 스팩이면 없는 살인죄도 만들겠다…….
- 오늘 재판 어떻게 될까요?
- 이 정도 이슈면 언론사들 움직였을 겁니다.
- 꿀잼각!?
여론이 단시간에 들끓었다.
네티즌과 몰랐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이만한 뉴스가 없었다.
“장 기자, 도착한 거 맞지? 방청석 확보는?”
“선착순이라 겨우 차지했다고 합니다.”
“카메라 기자들도 보네! 이거 반드시 잡아야 해!”
“부장장님, 그러다 연대에 찍히는 거 아닙니까?”
“이 정도 사건이면 아무도 못 막아. 일단 터트리고 협상하면 돼. 전창승이라면 연대 내에서도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잖아.”
“여당 국회의원과 중앙지법 수석판사도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머리 아프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말자. 윗선에서 지시 내려올 거야. 우리는 그때까지 털면 된다.”
각 신문사 데스크도 난리가 났다.
하이에나처럼 자극적인 기사 거리를 기다리던 언론에 던져진 따끈따끈한 먹거리.
발 빠른 인터넷 신문사를 비롯해 중요 언론사들이 합세해 취재 경쟁에 뛰어들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창출해 낸 신흥 정보의 혁명.
국민들의 눈이 서울 동부지법 형사 합의부 사건으로 일제히 쏠리고 있었다.
***
‘이, 이게 뭐야!’
연대중공업 표준호 과장은 재판정에 빼곡하게 들어선 방청객을 보며 입이 떡 벌어졌다.
“줄 서세요. 줄 안 보여요?”
“아니 그게…….”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법정에 들어가려다 제지를 당하게 된 표준호.
“김 기자! 자리 났어?”
“아직입니다.”
“미치겠네. 편집장님 생생하게 스케치하라고 난리던데.”
“다른 쪽 신문 기자 중에 친한 학교 선배 있습니다. 토스 받기로 했습니다.”
“확실하지?”
“물론입니다.”
“아우! 다들 개코야. 언제 이렇게 몰린 거야?”
“주요 언론사들 다 온 것 같습니다. 난리도 아닙니다.”
“이 사건 최소 한 달 짜리다. 잘 잡아야 해.”
“넵!”
‘미친!’
표준호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사방에 깔린 사람들 모두가 전부 기자들이었다.
최대한 조용히 재판이 마무리 되는 걸 지켜보려 했지만 틀어졌다.
“다들 녹음이나 촬영, 중계 안 됩니다! 방청 시에 핸드폰 통화, 조작하다 걸리면 바로 퇴정 조치하겠습니다!”
법정 경위 목소리가 법정을 가득 메운 기사들 사이로 쩌렁쩌렁 울렸다.
사건이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면서 대형화됐다.
띠리리리리리.
표준호 과장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복도 한쪽으로 이동해 전화를 받은 표준호.
- 도대체 이게 뭐야! 너 일 처리 어떻게 하는 거야!
비서실 직속 부장이 악을 썼다.
“그게 무슨…….”
- 야! 이 새끼야. 이영진 여동생이 새벽부터 울고불고 호소문 퍼트리고 난리 났어! 그런데 너 뭐했어? 언론사들 싹 막아야 하는 게 네 임무 아냐!
호소문이라는 말에 표준호는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이 사건은 표준호의 손을 벗어난 상태였다.
손에 들어온 장태산의 명함을 분명 상부로 전달했다.
그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부장님.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법원 왔는데…… 각 언론사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의외로 표준호 목소리는 담백하게 흘러나왔다.
- 끙…….
사실 언론사 담당은 과장급이 아닌 부장이나 그 이상 직책의 담당이었다.
괜히 입장이 난처해진 부장이 표준호에게 불똥을 던졌다.
“일단 재판을 지켜보겠습니다. 부장님은 그 이후를 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그 이후 뭐?
“최악의 상황 말입니다.”
- …….
부장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툭.
아무 말 없이 끊기는 전화.
‘차라리…… 다 터져 버려라!’
표준호 자신도 더는 편들어 주기 힘든 악마 새끼들의 만행.
“판사님이 들어오십니다! 모두 기립해 주십시오!”
재판정에서 들려오는 경위의 목소리.
이제 화살은 완벽하게 시위를 떠나버렸다.
***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합의부 판사들이 자리에 앉자 경위가 방청객을 향해 말했다.
“…….”
수십 명의 사람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웠지만 바늘 떨어지는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수첩을 든 기자들이 메모를 준비했다.
‘이게 다 뭐야?’
증인석에 앉아 있던 사건 피해자 여가영은 당황스러웠다.
증인 통보를 받고 공동범행자 측 담당 비서와 통화를 했다.
있었던 사실(?) 그대로 증언하면 오늘로 일이 모두 끝난다고 들었다.
귀찮았지만 여가영은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한 번 터지고 받게 된 돈이 수억이었다.
요 근래 수입 중 가장 거액의 돈이었다.
고등학교 때 학폭 사건에 연루돼 퇴학을 당한 여가영.
서울로 올라와 SEXY BAR에서 근무하며 얼빠진 남자들 상대로 작업해 왔다.
외모에 홀려 치근덕거리는 순진한 유부남과 하룻밤을 보내고 돈을 빌리는 수법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갚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획득한 돈으로 여가영은 스스로를 포장했다.
청소년 시기 때부터 남자들과 어울려 놀아봤기에 그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최대한 여린 척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면 백발백중 다 넘어왔다.
예쁜 여자라면 이것저것 생각지 않고 환장하는 남자들이 걸려들었다.
보통 여자들보다 뛰어난 외모와 그럴싸한 포장은 두둑한 수익으로 연결 됐다.
중고지만 스포츠카도 몰았고 명품백과 옷도 충분했다.
풀 옵션 원룸에 월세로 살지만 그 정도 세는 스폰을 맺거나 우연찮게 봉이 걸리면 문제없이 해결됐다.
순진하고 여자에 관해서 뭘 모르는 남자는 술에 취한 척 하룻밤을 보내고 준강간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면 예상치 못한 수익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쩔 때는 한 달 수입이 수천을 훌쩍 넘을 때도 있었다.
너무 얼굴이 팔린다 싶을 때는 성형에도 투자했다.
그러면 새로운 남자들이 끊이지 않고 대시를 해왔다.
한 달 전에도 그랬다.
재벌 후계자들과 돈 많은 물주들이 자주 목격된다는 클럽에 갔다.
적당한 대상을 찾고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전동국.
대학생 신입생 정도로 보였지만 VVIP 룸으로 들어갔다.
바로 작업했다.
장단에 넘어와 헤벌쭉 입이 벌어지던 순진한 남자.
잘만 하면 돈이 될 것 같다는 필을 강하게 왔다.
자리를 옮기자는 신호에 바로 따라 나왔다.
택시를 탔다.
그런데 목적지가 호텔이나 강남 방향이 아니었다.
여가영이 평소 무시해 오던 잠실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인적도 드문 골목길을 지나 한 건물 지하로 안내 됐다.
그때 여가영은 빡 돌았다.
더럽고 시커먼 지하 아지트에는 핏기도 가시지 않은 두 명의 사내새끼가 더 있었다.
마치 자신을 전리품처럼 취급하는 전동국이 중3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과거 일진 때가 생각난 여가영은 똥 밟았다 생각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섰다.
그런데 어린 새끼 전동국이 경고를 해왔다.
어린놈이 제법 깡이 넘쳤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비린내 쩌는 X만한 중삐리 새끼’라며 찰지게 욕을 내뱉어 줬다.
아무리 꽃뱀으로 먹고 살고 있지만 비린내 나는 중삐리를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순간 뒤통수에 가해진 엄청난 충격.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전동국 중삐리 새끼가 각목을 쳐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걸 알았다.
고소를 생각하고 있을 때 연대 그룹 명함을 든 비서실 직원이 찾아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중삐리 새끼가 연대 그룹 4세였다.
머리를 빠르게 굴렸고 바로 돈 계산이 됐다.
흥정은 쉽게 이루어졌고 여가영은 한순간 목돈을 챙겼다.
오늘 증인 출석 또한 공짜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야…….’
여가영은 사방으로 눈을 굴렸다.
피고도 오늘 처음 봤다.
사진만 보고 범인이라 지목했고 그동안 대질 심문 같은 것은 없었다.
키가 작고 왜소한, 자칫 초등학생으로 오해할 만한 체구의 중학생.
양심 같은 게 찔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세상이 개 같다는 걸 여가영은 진작 깨달았다.
‘이거 잘못했다가는…….’
검사도 많이 당황하고 있음이 보였다.
착석한 판사는 서류를 살피며 묵직하게 무게를 잡았다.
어린 시절 학교 폭력 때문에 보호처분을 받아 봤던 기억이 있는 여가영은 이런 분위기에 나름 익숙했다.
하지만 뭔가 불길했다.
자칫 뭔가에 제대로 엮일 것 같은 분위기.
여가영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서울 동부지방법원 2012고합 271호 특수강도 사건에 관하여 2차 심리기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지은재 판사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렸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재판 시작과 동시에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요?”
“재판장님, 본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해 주실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검사 황준혁이 재빠르게 비공개 재판을 요구하고 나왔다.
“이유는요?”
“증인석에 앉아 있는 피해자를 비롯해 잠시 후 증인으로 소환될 아직 어린 학생들인 공범들에 대한 신상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기각합니다.”
“재판장님! 다시 한 번 재고해 주십시오!”
지은재 판사의 기각에 황준혁이 당황해 한 번 더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기각합니다.”
지은재 판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본 재판은 심리기일이 한 번 늦어진 상태입니다. 2007년 도입한 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절차에 위배 되는 바 오늘 중으로 모든 심리절차를 종료할 생각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검사와 변호인 측은 참고해 주십시오.”
냉정한 판사의 선언.
‘X발!’
황준혁은 속으로 욕을 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판사에게 씨도 안 먹혔다.
“1차 심리기일에 피고 변호인이 공소사실 일체와 증거자료를 부정했기에 본 기일이 열렸습니다. 오늘 재판은 증인심문 및 여러 증거자료에 대해 본 판사가 적극 개입해 실체적 진실을 찾을 생각입니다. 증인 여가영 씨 증인석으로 나와 증인선서를 해주십시오. 만약 위증하게 되면 위증죄로 처벌받게 될 것입니다.”
지은재 판사가 준엄하게 오늘 재판 방식에 대해 선포했다.
여가영은 주춤거리며 증인석에 섰다.
“증인선서문을 읽어 보시고 선서하시면 됩니다.”
법원직원이 여가영에게 증인선서 방식을 알려줬다.
“……본 증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한쪽 손을 들고 여가영은 선서를 했다.
파르르 떨리는 여가영의 목소리.
“서명하시고 증인석에 앉아 주십시오.”
법원 직원이 서류를 내밀었다.
스슥.
서명을 하고 난 뒤 여가영이 증인석에 앉았다.
“오늘 증인신문은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한 변호인 측에서 먼저 신문하겠습니다. 변호인 신문하세요.”
주심판사의 명령에 피고 옆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일어섰다.
스윽.
판사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변호인.
방청석에 앉아 있는 기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국선변호인 장태산. 존경하옵는 재판장님의 허락 하에 증인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뚜벅 뚜벅.
변호인석에서 앞으로 나와 증인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국선변호인.
걸음은 힘이 넘쳤으며 차분했다.
“증인. 신문에 앞서 오직 진실만을 증언해 주시기를 본 변호인은 다시 한 번 간절히 부탁하는 바입니다.”
여가영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진실을 요구하는 장태산.
“!!!”
동공을 파고드는 장태산의 눈빛과 입가에 맺힌 차디찬 미소.
꿀꺽.
여가영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