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장. 키다리 마법사 아저씨 (2)짹짹, 짹짹.
귀여운 새소리가 들렸다.
평소 듣던 칠룡 마을의 새소리와 달랐다.
‘부드러워……. 깨기 싫어…….’
늘 덮던 여름 습기를 잔뜩 먹어 눅눅했던 이불 감촉이 아니다.
마치 이불을 덮지 않은 듯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도 상쾌했다.
은은하게 이불을 투과해 비쳐드는 아침 햇살이 망막에 닿으며 서서히 감각을 깨웠다.
“아우우웅.”
한나는 기분 좋게 기지개를 쫙 켰다.
그리고 눈을 떴다.
“하아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 환경에 긴 한숨을 토했다.
“꾸, 꿈이 아니었어!”
어제 한나는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존재를 보았다.
힘없고 약한 자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괴롭히던 양아치 선배들을 혼쭐 내준 키다리 마법사 아저씨.
밤에도 상상 속의 요술을 부렸다.
직접 집까지 동행해 줬다.
알고 보니 구치소에 갇힌 오빠의 국선 변호인이었다.
나이도 많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고 놀라웠다.
얼굴도 아이돌 그룹 멤버들 저리가라 할 만큼 잘생겼다.
하지만 귀여운 외모의 아이돌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좌우지간 멋졌다.
아저씨는 할머니 상태가 좋지 않다며 본인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처음엔 할머니도 미안함에 망설였다.
정말 괜찮다며 쿨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말하던 아저씨.
할머니가 아저씨의 진심어린 배려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나도 칠룡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도 어떤 술 취한 아저씨들이 한나를 음흉한 시선으로 쳐다본 일이 있었다.
그때는 오빠가 곁에 있었다.
작은 키였지만 오빠는 무척 용감했다.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한나를 끌고 가려던 한 아저씨 머리통을 돌로 후려쳤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부터 칠룡 마을이 더 싫었다.
“엄마 아빠가 보내주신 천사일까?”
침대 위에 누운 채 한나는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렇게밖에는 오늘 일이 설명되지 않았다.
스르륵.
넓고 푹신한 침대에서 나와 창밖을 내다봤다.
“아름다워…….”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은 도도하게 흘러갔다.
서울에 살고 있지만 한나는 한강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서울 촌놈이었다.
칠룡 마을에서 벗어나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사고라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즈음 할머니까지 사기를 당했다.
어쩔 수 없이 칠룡 마을로 흘러들어와 살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고향이 이북이라 피붙이는 할머니와 오빠, 그리고 한나뿐이었다.
일가친척도 없고 도와줄 이웃 사람도 없었다.
기댈 곳 없던 한나와 식구들에게 하늘에서 키다리 아저씨를 보내주셨다.
그것도 마법사 아저씨.
“그 마법…… 진짜일까?”
한나도 마법에 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
반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제 봤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누구에게 말한다 해도 쉽게 믿지 못할 현상이었다.
“……좋다.”
아침 7시다.
정말 처음으로 푹 자서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개운했다.
입고 있는 잠옷도 날개옷처럼 가볍고 편했다.
사실 태어나 일상복 말고 잠옷이라는 걸 처음 입어봤다.
삐이이.
그때 거실 쪽 인터폰에서 소리가 났다.
“한나야~ 일어났으면 씻고 할머니 모시고 5층으로 와.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어제 잠깐 인사를 나눴던 쌍둥이 언니 목소리였다.
“네에!!!”
큰소리로 답했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언니들은 4층.
한나와 할머니는 3층에 있었다.
“방금 무신 소리냐?”
대신 할머니가 한나의 대답을 들은 모양이었다.
끼릭.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할머니!”
“하이고……. 선상님 솜씨가 보통이 아니여~ 할매 이렇게 팔팔한 거 봐라~.”
한나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어제까지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계시던 할머니가 멀쩡하게 거실에 서 계셨다.
아저씨가 할머니를 모시고 와 잠깐 침을 꽂고 몇 가지 치료를 했을 뿐이다.
게다가 치료를 받는 도중에 깊이 잠이 들어버렸던 할머니.
그게 어제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 상태였는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분이 돼 있었다.
얼굴에 화색까지 돌아 10년은 젊어 보였다.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푸다잉! 이게 뭔 일이다냐! 오메…….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사방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며 합장을 하고 연신 인사를 했다.
“할머니……. 흑.”
한나는 할머니 건강해진 모습을 확인하고 품에 뛰어들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폐지를 팔아 두 남매를 키웠다.
세상에 둘도 없는 보호자이자 혈육이었다.
“이제 괘안타……. 할매가 돈 많이 벌어서 내 새깽이들…… 공부 시킬껴…….”
할머니는 자기보다 훌쩍 커버린 손녀딸을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응! 한나도 공부 열심히 할게.”
“그래야지. 선상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혀. 하늘의 은혜를 받고도 못된 짓하면 짐승이여.”
“걱정 마. 엄마 아빠 안 부끄럽게 살게~.”
“그런디 쬠 전에 저그서 뭐라고 한 거 같은디?”
“아! 할머니 세수 했어? 밥 먹으로 오라고 언니가 말했어.”
“오메……. 미안혀서 어쩐다야.”
“……. 그래도 밥 먹자. 건강해져서 갚으면 되지.”
“그랴. 염치없지만 그래야지.”
“그럼 어수 세수하고 가자. 나도 세수하고 올게.”
“오야~.”
한나는 욕실로 향했다.
어제까지 살았던 집보다 더 큰 욕실.
한나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세수를 했다.
마법사 키다리 아저씨가 만들어 준 꿈같은 날.
태어나서 이렇게 기쁜 하루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
“이, 이걸 아저씨가 만들었어요?”
“우리 오빠 요리 솜씨 짱이지?”
“흐흐흐. 한나도 이제 큰일 났다. 우리 오빠 요리 먹고 나면 학교 급식은 꿀꿀이 죽 맛일 텐데~.”
“어메야. 뭔 잔칫상도 아니고…… 이것이…….”
상을 보고 한나와 할머니는 기겁을 했다.
요리 스킬이 늘면서 이 정도 음식 준비는 일도 아니다.
할머니 몸보신을 위해 걸쭉한 장어곰국에 한우 영양불고기, 자연산 모듬 버섯밥, 단호박조림, 콩나물 해물찜, 시원한 비타민 냉채 정도 준비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식탁이 좀 푸짐했다.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바빠진 쌍둥이들.
바빠도 아침은 꼭 제대로 된 집밥 먹여서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의학 과목과 전쟁에 돌입한 주희, 실기 과제에 날밤 새우기 일쑤인 주아를 위해 정성을 들였다.
물론 일주일에 며칠씩은 엄마가 와서 음식을 하시긴 했다.
재단 이사장에 미술관 관장님 신분이지만 자식들 돌보는 일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자식은 낳는 순간부터 당신이 죽을 때까지 품어야 하는 업이고 의무라고 하셨다.
아직 그 말의 깊은 뜻을 다 알지 못하지만 아낌없는 사랑의 크기는 느낄 수 있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선상님, 여그 음식 보고 맛없다고 주둥이 놀리면 벼락 맞는당께요. 나가 시상에 태어나서…… 이런 아침상은 처음이지라…….”
이름이 오점례라고 밝혔던 영진이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혔다.
갑자기 숙연해지는 분위기.
어젯밤 한나와 점례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온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어차피 남아도는 집이었다.
쌍둥이들이 4층을 사용하고 있어 3층에 모셨다.
손님이 올 경우를 대비해 언제나 깔끔하게 관리했다.
공짜로 베푸는 인심이 아니다.
점례 할머니와 한나의 간단한 짐을 챙겨 집에 도착하는 순간 엄청난 포인트가 지급됐다.
내친 김에 할머니에게 성수를 먹였다.
폐 기능도 좋지 않았고 만성 위염에 혈압까지 높았다.
화타 침술을 사용해 기부터 북돋웠다.
하룻밤 푹 자고 났을 뿐인데 상태가 엄청나게 호전 됐다.
쌍둥이도 갑작스런 방문객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인상이 곱고 선한 점례 할머니를 친절하게 맞이했다.
그리고 예쁘장하고 싹싹한 한나를 여동생 삼아야겠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식기 전에 드십시오. 한나도 어서 먹고 학교 가야지.”
“학교 가도 돼요?”
한나가 어제 사건이 마음에 걸리는지 주저했다.
“그럼~ 아저씨가 경호원 언니들 붙여줄 거야. 스마트폰도 지급해 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 고맙습니다. 아저……. 오빠.”
응? 오빠?
“아저 오빠? 풋. 그건 뭐야? 키킥.”
“흐흐. 우리 한나가 오빠를 아재로 만들었어~. 어쩌나 장태산 오라버니. 이제 어쩡쩡한 아재 오빠가 됐으니~.”
쌍둥이가 기회는 이때다 싶게 날 놀렸다.
“어서 밥 드시고 학교들 가세요. 쌍둥이 아주머니~.”
“헐……. 아주머니?”
“오빠!!!”
“한나 눈에는 나나 너희들이 똑같은 아재에 아줌마지. 그렇지 한나야?”
“아니 그게 아니라…….”
얼굴이 빨개진 한나.
귀여운 소녀는 아직 우리 집에 적응을 못한 듯하다.
“할머니, 식사 많이 하십시오. 밖에 나가지 마시고 이집 주변 공원 산책 정도만 하세요. 경호원들 있으니까 필요하면 뭐든지 부탁하시면 됩니다.”
“선상님, 그럼 빨래라도…….”
“일하시는 분들 오세요. 몸 회복하실 때까지 천천히 운동하시고 잘 드셔야 합니다.”
“고맙습니더……. 이 은혜를 어찌 할꼬…….”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눈가에 다시 이슬이 맺혔다.
공짜는 아니지만 가슴이 따뜻해졌다.
문득 어느 시인의 시가 머릿속을 스쳤다.
국화는 피어도 소리가 없고.
사랑은 뜨거워도 불꽃이 없으며.
착한 사람의 울음은 울어도 아프지 않다.
“다들! 맛있는 밥들 드시고 귀한 오늘 하루를 살아내도록 합시다!”
“잘 먹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오라버니.”
“……오빠……. 고맙습니다.”
“선상님…….”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식탁.
그렇게 신의 선물 같은 하루가 또 시작 됐다.
***
“공매도입니까?”
“요즘 이슈가 많더군요. 무차별적으로 밟아 주십시오.”
“그들에게 신의 가호를 빌어줘야겠군요.”
법률구조공단 동부 지부로 출근하기 전 사무실에 들렀다.
그리고 로버트에게 세세한 지시를 내렸다.
연대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선까지 보고가 올라갔는지는 모르지만 연대도 만만치 않은 그룹이었다.
특히 전문수 회장은 자존심이 아주 쌨다.
그는 나를 모르고 있겠지만 나는 그에 관한 객관적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다.
관상이 상당히 좋다.
후중지상(厚重之相)의 상등급 관상의 소유자다.
콧대는 힘이 넘쳤고 망울도 복스러웠다.
콧구멍이 잘 감춰져 있어 거부의 상을 득했다.
뿐만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눈썹의 복덕궁과 턱의 노복궁 또한 건실했다.
두상과 체형까지 잘 갖춰져 있으니 거부의 상과 일치했다.
하지만 눈썹이 깔끔하지 못하고 눈이 슬어 우울함을 우물처럼 품고 살았다.
귀 또한 복을 담기에는 그릇이 작았다.
잠룡 소리는 들어도 득룡까지는 힘든 관상인 셈이다.
거기에 고집이 담겨 있는 단단한 입 매무새는 사고를 만들어 내는 충지(衝地)였다.
고로 적을 만나면 반드시 꺾으려 할 것이다.
이 정도로 알면서 대비를 못한다면 바위에 머리 박고 저승길 가야 한다.
더군다나 기업적인 문제도 아니고 가장 치부라 할 수 있는 피붙이 손자와 관련한 일이다.
전문수가 칼을 빼 들 게 뻔했다.
그 전에 선빵이 필수였다.
“연대 중공업 말고도 연대 자동차도 이슈를 만들어 흔드십시오. 봐주지 말고 있는 힘껏 말입니다.”
연대의 장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자동차 그룹 회장이었다.
중공업을 박살내기 위해서는 자동차도 흔들어야만 했다.
“보스 뜻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로버트만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이 시간 이후 연대 그룹은 해외에서 쏟아지는 악재와 공매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타닥 타닥.
재판이 점점 다가왔다.
그 전에 확실한 증거를 수집해야 했다.
“흐음. 증거가 널렸네, 널렸어. 그런데 하나도 수거를 안 해? 경찰들도 참…….”
영진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밝혀 줄 증거가 화면에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간과 거리와 사건 발생 시간이 차이가 났다.
도저히 영진이가 갈 수 없는 시간에 사건은 터졌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 몇 개 보였다.
폐기되지 않은 사건 발생지까지의 흐름이 기록된 화면들이었다.
경찰이 수사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을 증거였다.
타다다닥.
증거가 고스란히 담긴 화면들을 다운 받았다.
동시에.
삐이잇.
- 보스.
“황 대표님, 개인 메일에 자료 보내놨습니다. 직원들 데리고 가서 CCTV 녹화영상 복사해 오십시오.”
증거 수집은 적법하게.
- 알겠습니다.
길게 지시할 게 없었다.
“흐음……. 이 여자는 관종이네. 그것도 꽃뱀.”
피해자의 전화번호도 알아냈다.
코코아페이지부터 시작해 페이스노트, 아웃스타에 깔려 있는 사진들을 봤다.
아니, 사실 슈퍼컴이 있는 미국 서버를 이용해 해킹을 했다.
거기에 기록된 어처구니없는 통화 내용들.
친한 친구와 사건에 관한 세세한 것들을 신랄하게 나눈 대화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얼굴은 제법 봐줄 만했다.
고등학교 때 일진 사건으로 퇴학을 당한 후 서울로 상경해 화려하게 살았다.
한 달에 기백씩 하는 강남 풀옵션 오피스텔에 거주했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카에 명품백과 화려한 옷들로 치장했다.
누가 보면 저명한 샐럽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더러운 수법들로 재물을 취득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어리석게 사람들은 가상의 세계를 너무 믿는단 말이야. 쯧.”
한심한 생각을 하며 눈에 띄는 증거들을 모두 모았다.
직접 대면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괜히 봐봐야 눈 버릴 게 뻔했다.
“재판이…… 기다려지는군.”
퍼즐처럼 조각들이 모이기 시작한 증거들.
가슴이 뜨거워졌다.
띠리리리리리리리.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장태산 군 번호 맞나?
장태산 군? 이건 또 뭐야!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