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4. 어린 양아치를 대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2)타닥 타다닥. (552/1,284)

554. 어린 양아치를 대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2)타닥 타다닥.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표준호 과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연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연대 그룹에 입사할 때만 해도 빛나는 청춘이었던 표준호 과장.

친구나 대학 동기들보다 무척 빠른 입사였다.

연대 중공업 그룹에서 핵심으로 꼽는 비서실로 발령받을 때까지만 해도 못 이룰 것이 없을 것처럼 좋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는 꺾였고 희망도 딱 거기까지였다.

비서실이 회장을 보좌하는 핵심 라인이라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표준호는 비서실 내에서도 특별 발령을 받았다.

일명 전 씨 가문 관리팀.

한마디로 그룹을 지배하는 전 씨 가문 구성원들의 뒷일처리팀인 셈이다.

처음 몇 년은 할만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룹을 휘어잡을 잠재적 회장 자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오정의 장한수 실장이나 연대자동차 그룹의 정진환 부회장처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망을 붙들고 놓지 않았다.

연봉도 생각보다 셌다.

뒤처리이긴 하지만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용돈은 연봉 수준에 가까웠다.

승진도 빨랐다.

동기들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과장을 달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호봉이 오르고 직책이 나아져도 일은 하면 할수록 힘이 빠졌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짓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표준호를 괴롭혔다.

연대 중공업 회장뿐만 아니라 그 아들들과 손자들이 저지른 불법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아직도 청춘인 줄 알고 여배우들과 시간을 즐기는 회장, 아버지 못지않게 여성 편력이 대단한 두 아들.

그리고 핏줄을 무시 못 하는 꼴통 손자들까지.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범죄가 하루 걸러 한 번씩 벌어졌다.

도덕적으로 바르거나 건전한 의식을 소유한 직원들은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퇴사했다.

버티고는 있었지만 표준호도 자괴감이 심하게 들었다.

그럼에도 돈이 발목을 잡았다.

대학교 학자금 대출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어엿한 직장 생활을 하는 그에게 부모님과 형제들도 부담 없이 손을 벌렸다.

몇 년 전에는 결혼을 하면서 집 마련을 위해 빚을 냈다.

아기도 태어났다.

이제는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 안에 스스로 갇혀 있는 꼴이었다.

직책은 과장이지만 부장급 수준의 액수를 받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도 언감생심 꿈꿀 수 없는 돈이었다.

더러워도 눈 한 번 딱 감고 참으면 그때마다 돈이 따박따박 들어왔다.

“X발.”

조용히 입술을 달싹거리며 욕을 내뱉었다.

요즘 뒤처리하고 있는 그룹 회장 손자 녀석은 아주 개쓰레기였다.

어린놈이 여자를 밝히는가 하면 집안의 전염병 같은 못된 짓만 쏙쏙 골라서 했다.

아버지인 전창승 전무는 그걸 알면서도 방치했다.

어린 자식 놈이 불법적인 일을 버젓이 벌여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최근 들어 사고를 아주 크게 쳤다.

전창승 전무가 마련해 준 아지트에서 어른 흉내를 내며 문란하게 놀던 놈이 급기야 일을 낸 것이다.

클럽에서 여자를 꼬여 내 아지트로 데려간 것까지는 그나마 봐줄 만했다.

술에 취한 여성도 잘한 건 없었다.

막상 돈 좀 있는 놈인 줄 알고 따라갔던 여성이 문제다.

아지트에서 녀석들이 청소년인 것을 알고 그제야 여성은 똥 밟은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상황을 돌리기에는 늦었고 할 수 있는 건 반항뿐.

지 아버지를 닮아 성질이 지랄 같은 아들 놈이 여성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잘못했으면 사망했을 수도 있는 상황.

살인은 재벌가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대가리가 장식은 아니었는지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그새 대타를 세워 상황을 뒤집어 놓았다.

그 덕에 뻑치기 주범이 아닌 공범 성격의 방조범이 됐다.

그룹 소속 변호사들과 표준호가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그 선에서 해결 했다.

다행히 얻어맞은 여성도 깨어났다.

클럽에 죽치고 앉아 꽃뱀 짓 하던 여성에게 상당한 금액을 제시하자 쉽게 해결됐다.

함께 있던 공범들의 집안도 짱짱했다.

여당 2선 국회의원에 중앙지법 형사수석 판사.

입김 한 번에 경찰과 검찰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빽 없는 놈이……. 그냥 병신이지.”

회장 직속 비서실에 제출할 비밀 보고서를 작성하며 표준호는 자조적인 한탄을 토했다.

언제 어느 때 자신도 그들의 대타 희생양이 될지 몰랐다.

비서실 동료들 중 죄를 뒤집어쓰고 투옥된 이들이 제법 있었다.

오로지 자신과 피붙이들만 아는 회장 전문수.

사업 실력이 좋고 명예욕이 높은 반면 인격은 바닥을 쳤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직통 대포폰이 울렸다.

- 과장님, 큰일 났습니다!

받자마자 짜증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 동국, 아니 작은 도련님 아지트에 낯선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뭐? 누군데? 경찰이야?”

- 경찰은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럼 뭔데?”

사건 친 이후 아지트를 감시하고 있는 경호팀 직원과의 통화였다.

표준호의 신경이 바짝 예민해졌다.

- 조폭 같습니다.

“조폭? 어떤 놈들이야!”

연대 그룹을 건들 조폭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표준호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자칫 사건이 커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뒷골을 스쳤다.

- 자세히는 파악 못했습니다.

“그게 지금 자랑이야! 당장 달려가서 막아! 당장!! 나도 갈 테니까 그 전까지 확실히 도련님 커버 해!”

- 넵!

뚝 통화가 끝났다.

“아오……. X발! 도대체 뭔 일이야!”

슈트를 챙겨 걸치며 표준호는 빠르게 뛰쳐나갔다.

“법무팀장님. 대기 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동시에 그룹 중요 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

우두두두둑.

발길질에 반쯤 뜯겨진 문짝을 손 하나가 나타나 마저 뜯어버렸다.

콰다당.

바닥에 나뒹구는 문짝.

방음이 되는 튼튼한 철문이었는데 마치 나무판자처럼 가볍게 뒹굴었다.

그리고 모습을 보이며 나타난 한 남자.

네이비 계열의 깔끔한 슈트에 연갈색 구두를 신었다.

곱게 자란 모델처럼 곱상하고 몸도 좋았다.

씨익.

슬쩍 고개를 들더니 정체불명의 남자가 웃는다.

“…….”

당황한 전동국과 어린 양아치들.

눈앞에서 벌어진 방금 전 상황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거대 로봇이 들이받은 듯한 문과 전혀 예상 밖의 허우대 멀쩡한 남자의 등장이었다.

찰칵 파앗!

그 틈에 스마트폰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아지트 공간을 촬영했다.

“지금 이곳은 악질 청소년들의 범죄 현장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대한민국 재벌 그룹 4세와 현직 판사와 국회의원 아들이 지하 아지트에서 금지된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분노가 서린 남자의 목소리가 지하 아지트에 울렸다.

“너, 너 뭐야!!!”

전동국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불의의 기습과 촬영.

“도, 도와주세요!”

이한나가 낯선 남자 목소리에 용기를 내 크게 외쳤다.

블라우스가 찢겨져 나간 모습은 누가 봐도 어떤 상황인지 예측 가능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남자는 계속해서 촬영을 하며 이한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학교 선배 오빠들이 저를…… XX 하려고 했어요. 흐윽……. 흑.”

이한나가 말을 잇지 못하고 서럽게 눈물을 쏟았다.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신할 수 있는 장면.

“야! 어 누구야! 내가 누군 줄 알고 지랄이야!!!”

전동국은 평소 형들이 흔하게 내뱉던 말들을 떠올리며 여과 없이 쏟아냈다.

형들이 이렇게 말하면 클럽 내에서 모두 벌벌 떨었다.

재계 거물급 그룹의 4세.

그 자체가 대한민국 내에서 명함이고 권력이었다.

“누구신데요?”

“나 연대 그룹 사람이다! 이 개새끼야!!!”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하는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며 달려드는 전동국.

어린 시절부터 남자는 맞고 크면 안 된다고 아버지가 배워두라던 복싱.

거기서 오는 깡이었다.

그 덕분에 중학교에서도 일진이 됐다.

쇄앳.

짧고 빠르게 뻗어나간 전동국의 오른 주먹.

촬영자의 얼굴을 향해 정통으로 날아갔다.

‘넌 뒈졌어!’

자신의 타격 성공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 전동국.

파악!

갑자기 막힌 주먹에 순간 당황했다.

뻗은 주먹이 남자의 왼손에 붙들렸다.

얼마나 빨랐는지 보지 못했다.

“촬영 끝. 강간 미수 증거 및 정당방위 자료까지 캡처했으니…….”

남자가 말을 끊고 전동국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제 어린 양아치 새끼들 교육 좀 시켜볼까~.”

왼손으로 전동국 주먹을 쥐고 여유롭게 오른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양복 주머니에 넣는 남자.

‘이 개새끼를!’

오른손이 붙들리자 왼손을 뻗는 전동국.

“아아악!”

갑자기 오른손이 불로 지지는 듯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파와 비명을 토했다.

동시에 온몸의 힘이 쫙 빠졌다.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버지한테 얻어터질 때를 제외하고 타인에게는 처음 당하는 고통.

“내가 양아치 전문가다 인마. 어디서 개수작이야~.”

침입자는 여전히 전동국의 손을 잡고 여유 있게 웃었다.

“다,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야. 이거 불법 주거 침입이야! 그리고 폭행죄…….”

아버지가 판사인 차성철이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퍼부었다.

“새끼 잘난 척하기는~. 네 아버지가 차광열이지? 서울 중앙지법의 잘나신 형사수석부장판사님~.”

“!!!”

자신의 아버지를 분명히 알면서도 태연하게 나오는 남자의 태도에 차성철은 입을 다물었다.

눈치 없는 바보는 아니었다.

전동국과 어울려 나쁜 짓을 해도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상대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도 저렇게 당당하게 나온다는 건 뒷배가 든든하다는 것.

“너…… 뭐, 뭐야!”

마형곤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너? 이 새끼들 한참 형님을 보고 싸가지 없게 반말이야. 다시 얘기해 줘? 그럼 귓구멍 씻고 똑똑히 들어 새꺄. 형님은 양아치 개조 전문가다~. 특히 어린 쌩양아치들~.”

“뭐, 뭣들 해! 이 새끼 조져! 아니 죽여!!! 내가 다 책임질게! 죽이라고!!!”

꼭지가 돈 전동국이 고통 속에서도 미친 듯 악을 썼다.

“그 전에 네가 먼저 뒈져 새끼야~.”

“악!”

손목을 잡아 전동국 몸을 쭉 끌어올리는 남자.

쇄앳!

“!!!”

남자의 오른손이 거침없이 전동국의 뺨을 쌔렸다.

쫘아아아아앗.

격한 마찰음이 찰지게 울렸다.

콰다다다당.

얻어맞은 충격에 휘청 바닥으로 뒹굴어 버리는 전동국.

입안이 터지면서 피 묻은 이빨과 함께 핏물 한 움큼을 울컥 바닥에 토했다.

“왜 이렇게 약해? 시작도 안 했는데~.”

남자는 쓰러진 전동국 뒤에 있는 친구들을 천천히 바라봤다.

“선착순 한 명. 먼저 오면 가볍게 싸대기~ 한 대. 뒤에 오면 두 대.”

갑자기 뺨 싸대기가 걸린 선착순.

돌아가는 분위기에 쫄아 서로 눈치를 보는 차성철과 마형곤.

상대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다.

정식으로 복싱을 배운 전동국을 가볍게 제압할 정도라면 싸움도 잘할 게 분명했다.

입만 일진인 자신들 수준으로 상대하는 건 어림없었다.

타다닥.

그 순간 잔머리 마형곤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한 대 맞고 바닥을 뒹구는 전동국.

두 대 맞으면 죽을 게 뻔했다.

그런데.

“이 새끼가 우정을 파네~. 그러고도 네가 사내새끼냐?”

“???”

마형곤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쫘아앗! 쫘악!

순식간에 양쪽 볼에서 차례로 느껴지는 화끈한 열감.

얼마나 세게 얻어 터졌는지 입안 양쪽에서 피 맛이 확 돌았다.

그리고 혀끝에 느껴지는 이물감.

방금 전까지 잇몸에 박혀 있던 이빨 몇 개가 작은 돌멩이처럼 혀끝에서 굴렀다.

쿵!

고통과 충격에 다리 힘이 쭉 빠지면서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된 마형곤.

주루룩 눈물이 뺨을 타고 무심히 흘러내렸다.

“너 이리와.”

남자는 남아 있는 차성철을 향해 손짓했다.

친구들이 당하는 모습에 이미 질릴 대로 질린 차성철.

손짓 한 번에 영혼 없이 주춤주춤 다가섰다.

“너! 내 말이 우스워?”

“네???”

“내가 선착순이라고 했어? 안 했어?”

“……!”

어이없는 남자의 질문에 차성철은 일순간 할 말을 잃었다.

쫘아아아악! 쫘아아악!

그리고 찰지게 공간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

“아흑.”

뺨이 포를 뜬 듯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아픔에 차성철은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줄줄줄.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가랑이 사이로 뜨거운 오줌을 싸질렀다.

항상 무리 지어 애들을 패고만 다녔지 이렇게 얻어맞아 본 적이 없었던 차성철.

“자, 다시 시작해 볼까~. 그만 엄살 부리고……. 일어나! 바닥에 무릎 꿇어! 이 개 양아치 새끼들아!!!”

회귀의 전설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