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장. 악마의 자식들 (3)
“죽여 버린다. 개새끼! 아우……. 공판 검사 나부랭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고?”
동부지검 황준혁 공판 검사는 검사실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밤새 잠을 설쳤다.
불시에 어린놈에게 당한 충격이 컸다.
판사실 복도에서 일격을 당해 화도 내지 못했다.
아니 놈이 보인 자신감에 순간 주눅이 들었다는 말이 맞다.
배짱이 장난 아니었다.
뻔뻔한 살인자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세상에 두려울 게 하나도 없는 듯한 놈의 눈빛.
일순간 들었던 위축감이 패배감으로 이어졌다.
“연수원에서는 조용했던 새끼가 왜 갑자기 날뛰는 거야? 그깟 국선변호가 뭐라고…….”
연수원 학회 후배를 통해 녀석에 대해 좀 알아봤다.
자체적으로 만든 별 볼 일 없는 연구회 소속이었다.
2년 동안 크게 튀지도 않고 연수원 성적도 그저 그랬다는 정보였다.
입학성적은 제법이었지만 수료 성적은 100위권 밖이었다.
그만큼 판사나 검사로 임용될 가능성이 적었다.
몇몇 연수원 판사 교수에게 찍혔다는 말도 함께 들렸다.
대법원장을 배출한 한국민사소송연구회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었다.
“기분 나빠……. 그것도 매우…….”
검사는 거저 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황준혁은 그만큼 성적이 우수했기에 서울권인 동부지검에서 근무했다.
한국민법판례회 소속으로 선후배들도 짱짱했다.
이를 갈면서도 적에 대한 평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삐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검사님. 최경태 부장님 호출이십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황준혁은 옷매무새를 단속했다.
직속상관인 공판송무부장검사는 다음 승진 때 차장검사로 예약된 인물이었다.
타다닥.
빠르게 부장검사실로 향하는 황준혁.
‘직원들은 다 어디 갔어?’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똑똑.
“부장님, 황준혁입니다.”
“들어와.”
직접 노크하고 허락을 받았다.
“찾으셨습니까?”
“앉아.”
상명하복이 그 어느 곳보다 철저한 검찰이었다.
척!
빠르게 자리에 앉는 황준혁.
“커피 마실래?”
“넵!”
“직원들 잠시 커피 마시라고 내보냈다. 내가 타주는 것도 좋지?”
“물론입니다!”
“그래. 우리 준혁이 씩씩해서 좋다니까.”
학회의 하늘같은 선배였다.
수원에 근무하던 황준혁을 동부지검으로 끌어준 것도 최경태 부장이었다.
일명 직속라인.
“마셔.”
“감사합니다!”
“믹스 커피로 감사 받을 정도는 아니다.”
“아닙니다. 부장검사님 커피 타는 솜씨가 예술입니다.”
깨알 같은 아부를 날리는 황준혁.
“다름이 아니라……. 어제 사건 기일이 뒤로 밀렸더라.”
“네?”
“거 있잖아. 뻑치기.”
“……그게 새로 임명받은 국선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증거 자료 일체를 부정해 지은재 판사가 일주일 연기했습니다.”
“증인들 다 불러야 돼?”
“판사 지시입니다.”
“흐음…….”
판사 지시라는 말에 최경태 부장검사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지? 왜 그러지?’
심기가 불편해지는 부장검사 모습에 황준혁은 좌불안석이 됐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내가 황 검 믿어서 맡겼는데 일 처리가 늦어졌군…….”
“죄송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는 황준혁 검사.
“됐어. 판사가 까라면 까야지.”
됐다는 말에도 황준혁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설마 뒤집히는 건 아니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공범들과 피해자가 진범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재판에 절대라는 건 없어. 자기만의 고급 기술이 들어가야 끝에 승기를 잡는 법이지.”
‘이거 위험한데.’
공범들의 아버지들이 대단했다.
그래서 황준혁이 나름 손을 썼다.
먼저 서장에게 전화해 진행하던 담당 형사를 바꿨다.
이번 사건이 승진의 동아줄이 돼 줄 거라는 걸 황준혁은 직감으로 알았다.
그런데 순항하던 사건을 애송이 연수원생 하나가 끼어들면서 흔들어 놓고 있었다.
명백한 부장검사의 1차 경고였다.
“다음 기일 때 확실히 마무리하겠습니다!”
군대처럼 목청을 돋우는 황준혁 검사.
“그래야지. 내가 황 검 믿고 있는데 실력 좀 발휘해 봐. 윗선에서도 관심이 많아.”
윗선이라 함은 검찰뿐만 아니라 정치권, 재계까지를 포함하는 발언이다.
검찰에서 부장검사 이상이 되려면 강력한 스폰이 필요했다.
연구회 연줄 너머 그 이상.
“목숨을 걸겠습니다!”
“하하. 목숨까지는 오버고……. 능력 발휘해 봐. 내년에는 부부장 달아야지.”
‘부부장검사!’
황준혁 기수 중에는 올해 처음 나오기 시작한 부부장검사.
내년이라면 승진이 엄청 빠른 편이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하하하하.”
최경태 부장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준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격려.
이제 남은 건 칼날 위에서 춤추는 일밖에 없었다.
***
“1년에 평균 15,000명 정도 되는 청소년들이 범죄로 입건이 돼. 그 중에서 95% 정도는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5% 정도는 아주 악마같은 새끼들이지. 검사 시절 깜짝 놀란 일이 많았다. 자기 여자 친구한테 말 걸었다고 몸뚱이에다 칼빵을 수십 개를 낸 놈도 있었지. 내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물었더니 그놈이 날 보고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습니까?”
“밤길 조심하라더라. 몇 년만 살고 나오면 만나자고 말이야.”
“네? 검사한테요?”
“소년범들은 흉악 범죄에도 판결이 관대해. 내 앞에서는 그래놓고 판사 앞으로 매일 반성문 쓰고 눈물로 참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가 갈리더라.”
사건이 커지면서 조윤태 변호사님을 만나러 왔다.
삼우 로펌 이사실.
과거를 회상하는 조윤태 변호사님 말에 등골이 오싹한 기분까지 들었다.
“5%로는 미래가 창창한 쓰레기들이다. 강도, 강간, 살인, 조직 폭력, 마약 같은 범죄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저지르는 악마의 새끼들이지.”
세상에 빛이 있다면 어둠도 있는 법.
악신들이 선택한 씨앗들이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영진이를 옭아맨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수저 상류층 집안에 태어나 인생을 막장으로 사는 전형적인 악마새끼들.
타락한 정권이 촛불의 열기에 뒤집힌 뒤 거짓말처럼 하나둘씩 낱낱이 까발려졌다.
그 전까지 철저히 권력 인맥을 통해 통제되었던 범죄들.
윗대가리가 깨끗하지 못한 썩은 정권은 동색끼리 서로 감싸며 세상을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대책은 없습니까?”
“청소년 범죄?”
“네.”
“대책이야 있지. 그런데 그게 힘들어.”
“뭡니까?”
“요즘 시도되고 있는 대안 가정이 가장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대안 가정요?”
“자라나는 아이들은 훈육을 비롯해 여러 방향의 양육에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런데 잘못된 양육 방법을 습득한 부모들이 1차 문제지. 자신들처럼 아이들을 방치해 사회 쓰레기를 만들어. 그걸 대체하기 위해 대안 가정과 비행 청소년을 연결해 줬더니 효과가 좋았다. 재범률은 뚝 떨어지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재탄생했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나 작년에 박사 학위 받았잖아. 그게 논문 주제였다.”
“박사세요?”
“그래~. 이제 조 변호사님보다 조 박사라고 불러줘라. 크크.”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편했다.
“뭔 일 있지?”
나와 몇 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한 조 변호사님이 재차 물어왔다.
“실무실습으로 국선변호인이 됐습니다.”
“오! 국선! 그거 좋지. 장 대표 성적이 중간 이상은 했나 보네.”
놀리듯 운을 떼는 조 변호사님.
“이틀 전 통보받고 어제 처음 변론기일에 나갔는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피의자가 청소년이야?”
“네.”
“꼴통이야?”
“그게 아니라 제대로 엮인 것 같습니다.”
“엮여? 뭐가?”
“이 자료 한번 보십시오.”
재판 서류와 복사한 증거자료를 내밀었다.
“뭔데 천하의 장 대표가 이렇게 심각해?”
날 잘 아는 조 변호사님이 건넨 서류를 살폈다.
“흐음……. 음.”
가볍게 들춰보다 이내 진지하게 사건 내용을 훑어보더니 신음을 흘리는 조 변호사님.
“이거 기획이네.”
단박에 냄새를 맡았다.
“그렇죠?”
“누구냐? 어린애를 이 정도 엮을 정도면 공범들 신분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최소 동부지검 차장검사 정도는 움직일 힘이 있는 집안이냐?”
차장검사와 로펌 변호사로 근무했던 짬밥은 금방 본질을 파악했다.
“현직 여당 국회의원, 재벌 3세, 중앙지법 수석 부장판사 자제들입니다.”
“……요즘 애들 말로 ‘헐’이다.”
조윤태 변호사님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럼 여기 이영진이라는 피고는?”
“칠룡 마을에서 할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셋이 삽니다.”
“……X발 X 같네.”
조 변호사님이 대번에 욕을 내깔렸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격한 감정 표현이다.
“공범들, 아니 진짜 피고들이 변호사님이 말한 상위 5%로 같습니다. 범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이영진을 호출했습니다.”
“주소지와 범죄지 거리가 제법 되는데 같이 있었어?”
사건의 핵심을 짚었다.
“여동생 문제로 협박 전화를 받고 돈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
“칠룡 마을에서 거기까지 거리는?”
“약 5킬로 정도 됩니다.”
“사건 발생 시각이 새벽 1시 15분이면……. 최소 집에서 1시 전에는 나갔을 것 같고……. 진짜 뻑치기 맞아?”
“영진이 말로는 놈들 아지트가 그곳에 있답니다. 그 앞에서 여자가 가격당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에 말 안 했어?”
“……그게 여동생 문제로 지독하게 협박당한 것 같습니다. 돌봐주시는 할머니도 연로하시니 의지할 곳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어른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법칙이 있지. 일진 새끼들 그렇게 잡아도 발본색원이 안 되는 이유가 그거야. 어른들만 모르는 악질 악마새끼들 협박이 지독하다는 거. 청소년 성폭행이 많이 안 알려져서 그렇지 생각보다 훨씬 많다.”
조 변호사님과는 말이 통했다.
“여동생은 중학교 2학년인데 길거리 캐스팅이 들어올 정도로 예쁘답니다. 공부도 전교 탑입니다.”
“칠룡 마을 전설이겠네. 강남 중학교 탑이라면 한국대 정도는 무난히 들어가겠다.”
“그 전설을 악마새끼들이 노리는 것 같습니다.”
“발정난 개새끼들이네.”
“시간은 앞으로 6일 남았습니다. 판사가 그날 증인신문과 동시에 증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개념 있는 판사네. 이 정도면 위에서 압력받을 게 뻔한데.”
“그 정도입니까?”
“장 대표. 자네도 힘써 봐서 알잖아. 국회의원이라면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도 움직일 수 있어. 재벌 3세? 그놈은 어디야?”
“연대그룹입니다.”
“……제대로네. 연대 쪽은 그룹 이미지 관리한다고 전문구 회장이 직접 관리한다. 이 정도 사건이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그래요?”
“한 놈 애비는 중앙지법 형사수석이라고 했지? 그럼 작년에 임명된 오승택 대법원장 최측근일 거다. 영장담당하고 형사 쪽은 원래 대법관 라인으로 채우는 법이니까.”
오승택 이름도 언급됐다.
상대 사이즈가 빅 사이즈다.
“장 대표, 성격상 포기할 것 같지 않는데……. 증거자료뿐만 아니라 증인까지 완벽하다. 빼박이다.”
서류를 살피며 조 변호사님이 미래를 예측했다.
“변호사님이 국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 나 같으면……. 이런저런 핑계대고 사임계 낸다. 괜히 이런 걸로 찍히면 답 없어. 국선 할 정도라면 법원 눈치 보는 힘없는 변호사다. 괜히 찍혀서 밥줄 날아가는 것보다 사임하는 게 마음 편하지.”
삼우 로펌 이사도 쫄 만한 사건이다.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증거가 필요해. 장 대표, 내가 힘 있는 건 아는데 이건 현재 기득권 대표 선수들과의 싸움이야. 적당히 타협하는 걸 추천한다.”
조 변호사님의 충고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기로의 순간.
영진이에게 큰소리는 쳤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
띠리리리리리리.
그때 울리는 스마트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보스. 여학생이 친구들과 택시를 탔습니다.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 방향을 보아하니 잠실 쪽입니다.
“잠실요?”
- 어떻게 할까요?
“계속 따라 가십시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넵!
통화가 끝났다.
“무슨 일이야? 여학생? 이영진 동생이야?”
조 변호사님이 관심을 보였다.
“변호사님……. 하늘이 생각보다 무심치 않습니다.”
쓰윽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만 아는 카르마 포인트 계산법.
오늘 변함없이 신들이 나를 위해 가시밭길을 쫙 깔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