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1장. 악마의 자식들 (2) (549/1,284)

551장. 악마의 자식들 (2)

“마지막 안건으로 물어보지. 내년 대통령 누가 될 것 같아? 허심탄회하게 얘기들 해봐.”

연대자동차 본사 회장실.

아침 일찍 조찬회동으로 그룹의 하루가 시작됐다.

선대 회장부터 시작된 중요 사장단과 핵심 측근들만의 모임이다.

따뜻한 전복죽과 김치, 동치미가 찬의 전부였다.

“……아무래도 최병박 정부 실정에 화가 난 국민들이 야당 쪽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오대강 사업과 해외 자본투자 실정이 스마트폰을 통해 유출되고 있습니다.”

연대 재철 사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최병박 정부가 실정을 거듭했지만 아직 야당 대권 주자에게 힘이 실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 여자 대통령이라는 점이 여성 표를 자극할 게 확실합니다. 노인들은 조정희 대통령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문에 민감한 연대 카드 대표가 반박했다.

“저도 오 대표 말에 동감합니다. 격전이 되겠지만 무난히 조근영 의원이 당선될 것 같습니다. 현 여당에서는 적수가 없습니다.”

“저도 조근영 의원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포장된 정치적 컬러에 넘어올 표들이 많습니다.”

사장단 상당수가 조근영 대표 당선을 예측했다.

대한민국 기업가들은 정치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VIP 의지에 따라 대그룹도 해체가 되기 일쑤였다.

은행에 잡혀 있는 담보에 대한 연장 없이 버틸 기업은 국내에 드물었다.

점점 늘어나는 연기금의 주식 보유수도 골치였다.

이래저래 정치권과 붙어 나눠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재계.

그 중에서 재계 순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연대 자동차 그룹의 고민은 더 깊었다.

“여당이나 야당 두 곳에 밉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서로 번갈아 정권을 잡을 게 확실합니다.”

조용하던 전문구 회장의 최측근 정진환 부회장이 운을 뗐다.

“맞아……. 돌아가면서 먹는 판에 한 쪽에 올인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

전문구 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

회장의 의견에 토를 다는 사장은 없었다.

“각 기업에서 대관 업무들 조율해서 사건 안 터지게 추진해. 각 당 원내대표나 각 파벌 핵심 의원들 섭섭하지 않게 지원들 하고 말이야.”

“넵! 회장님.”

아직까지 통하고 있는 제왕적 그룹 지배.

각 계열사 사장단은 회장의 말에 절대 복종했다.

어차피 소유한 주식도 없는 대표들이었기에 대주주의 말은 신의 계시보다 우선이었다.

“수고들 했어. 다들 나가봐.”

전문구 회장이 사장단을 해산시켰다.

고개 숙여 인사하며 별말 없이 사장단이 자리를 떴다.

“요즘 별일 없지?”

“중요한 사항은 없습니다.”

“사소한 건 있어?”

사장난이 나가고 최측근 정진환 부회장의 비밀 보고가 이어졌다.

“연대오일 전창승 전무 아들 문제가 좀 있습니다.”

“창승이면……. 문수 둘째 말하는 거야?”

“넵. 회장님.”

“그 녀석이 왜?”

연대 그룹 계열사들이 분리되어 독자적인 그룹을 운영했다.

하지만 전체 그룹의 맏형 격인 연대자동차 회장은 동생들이 맡은 그룹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수집했다.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 관리를 맡고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처럼 연대라는 이름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자손들에 대한 감시였다.

신경을 써야 할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연대 그룹 3세를 넘어 4세들까지 합치면 자손들 수가 백여 명을 훌쩍 넘었다.

“전창승 전무 아들이…… 사고를 쳤습니다.”

“무슨 사고?”

딸각 딸깍.

남아 있던 전복죽을 마저 싹싹 긁어 입에 넣으며 전문구 회장이 관심을 보였다.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부터 재벌가 자손들 관리하는 게 쉽지 않게 됐다.

과거에는 방송사나 신문사만 다독이면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사건 하나 터지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뻑치기입니다.”

“뻑치기? 길 가던 사람 돌로 쳐서 기절시킨다는 그거?”

전문구 회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왜? 용돈을 안 줬어? 문수 그 녀석이 사내새끼들한테는 후한 편인데…….”

“자세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뻑치기를 가장한 폭력 행위였습니다. 클럽에서 만난 여성을 아지트에서 어떻게 해보려다가 반항하자 각목으로 그만 후려친 겁니다.”

“후려쳐? 몇 살인데?”

“이제 열여섯입니다.”

“열여섯이면……. 중3이야?”

“네.”

“새끼……. 지 애비를 닮았구만. 창승이 그 노마가 본처랑 이혼하고 비서랑 재혼했지?”

수십 명의 조카들 중에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전창승이라는 이름.

“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친구를 뻑치기 주범으로 몰아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강간범보다는 뻑치기가 나은 거야?”

대놓고 물어보는 전문구.

“초범이고 워낙 요즘 그런 일들이 많아 보호처분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이미지 상으로도 여성성범죄보다는 나을 겁니다.”

그룹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도 미성년 강간범보다는 그 편이 나았다.

“문수는 뭐하고 있어?”

“여기저기 힘을 쓰고 있습니다.”

“쯧쯧. 알 달린 사내 놈들 관리 잘하라고 아버님이 생전에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도와줄까요?”

“됐어. 그 정도는 이제 알아서 해야지. 문수 그 녀석도 회장인데.”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전문구는 간단한 일로 생각했다.

그룹 회장 정도 되면 여기저기 뿌리내린 연줄이 많게 마련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미성년자 학생의 치기 어린 행동.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다.

오늘 이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

끼릭.

사방이 환히 보이는 투명한 공간에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였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키 160 정도 되는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소년이 앞에 섰다.

두려움이 서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앉아라.”

편하게 말을 놓았다.

“네…….”

“밥은 먹었어?”

“네…….”

어제 처음 보았던 국선변호인 신분인 나를 아직 신뢰하지 않는 눈빛이다.

“안에 생활은 어때?”

“……괜찮아요.”

전혀 괜찮을 리가 없는 것을 아는데 영진이는 씩씩했다.

청소년 미결수라 성인들과 분리되어 있겠지만 이곳은 엄연한 감방이었다.

미결수에게 지급되는 황토색 복장을 입고 있는 영진이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면회는 누가 왔어?”

“할머니가요…….”

할머니라는 말끝에 안타까움이 가득한 담기는 영진이의 눈동자.

“형이 뭐하는 사람인 줄 알지?”

“국선변호인이라고 들었어요.”

“그래. 형은 영진이 너 도와주려고 온 사람이야.”

“…….”

여전히 나의 말에 불신을 보이는 녀석.

이전 국선변호인한테 호되게 당한 게 확실했다.

진실을 밝히려 하기보다 자백과 선처를 먼저 요구했을 게 뻔했다.

“억울하지?”

“……네.”

“그럼 말해봐. 진범이 아니라면서 왜 정작 진범들을 밝히지 않는 거야? 그리고 야심한 그 시각에 거기는 왜 갔어? 집에서 사건 발생지인 잠실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는데 말이야.”

범죄 발생지가 송파구 잠실 일반 상업 주택단지였다.

그래서 동부지법에 사건이 배당된 것이다.

영진이가 살고 있는 칠룡 마을과는 거리가 제법 됐다.

그것도 새벽 1시 야심한 시각.

평범한 소년이 활동하기에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

질문을 하자 금세 침묵해 버리는 이영진.

“영진아. 형한테 얘기를 해줘야 네가 풀려나. 할머니하고 여동생 보고 싶지 않아?”

“흐으윽……. 할머니……. 흐윽. 한나야……. 우아아아아앙.”

……애가 운다.

중3이라고는 하지만 요즘 몸집 좋은 초등학교 남학생보다 작아 보이는 영진이였다.

그런 영진이가 애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급식 먹고 학교 다닐 시간에 변호인인 나를 접견하고 있다.

할머니와 여동생이라는 말에 저렇게 반응하는 녀석이 그런 나쁜 짓을 했을 리가 없었다.

아니 확실했다.

어제 저녁에 나타났던 그 존재들!

세상에…….

덕수와 팔미호와 대화하는 중에 뒷골이 서늘해 뒤를 돌아보니 10여 명의 귀신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들 모두 영진이의 조상들.

다들 새하얀 한복 차림이었다.

상투를 튼 할배와 쪽진 할매까지 섞여 몇 대에 걸친 조상이 모두 한자리에 등장했다.

저승에서도 이승에서 남긴 업에 따라 복장과 색이 달라진다.

대체적으로 하얀색 계열은 선한 삶을 살았다거나 죽어 그 업 닦음을 해왔다는 증거였다.

반면 흑색에 가까울수록 악업을 지었거나 여전히 자손들도 악업을 짓고 있는 경우가 그렇다.

무리 지어 나타난 영진의 조상들이 나를 향해 무릎부터 꿇더니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카르마 레벨이 낮아서 말문을 열 수 없었다.

그저 다문 입술을 깨물며 뚝뚝 눈물만 흘리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심장이 쥐어짜듯 아파왔다.

특히 맨 앞에 꿇어앉은 젊은 부부.

소박한 인상이었다.

간절함 가득한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랑하는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저승의 방식이었다.

영진에게 죄가 있었다면 결코 사자들이 저들을 인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선하게 살아야만 정해진 법 밖의 혜택이 주어졌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죽은 자들은 모두 영진이의 무죄를 증명하고 증인이 돼줬지만 산 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침 일찍 팩스로 변호인 접견 신청서를 냈다.

아직 자격증을 획득한 정식 변호사는 아니지만 국선변호인 신분이었기에 그 정도는 가능했다.

“집에 가자…… 영진아…….”

영진이의 울음에 나도 목이 메어왔다.

중3이면 다들 클 만큼 컸다고 쉽게 말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 내면은 아직 순수한 아이들의 그 상태였다.

학교 성적도 좋았다.

조서에 기록된 학업 자료에 의하면 영진은 반에서 상위권이었다.

지방도 아닌 서울 강남에서 상위권이 갖는 의미는 남달랐다.

지금껏 폭력 사건이나 사소한 일에도 전혀 얽힌 적이 없었다.

“형이 도와줄게. 너 반드시 집에 가게 해 줄게!”

처음 국선변호인에 선임되었을 때만 해도 대충하려고 했다.

조용히 시간을 채우는 일이 요즘 임무였다.

지난 2년 동안 성질 죽이며 조용히 살았다.

나름 인내를 배양하는 시간이라 여겼다.

회귀한 뒤 알게 모르게 사고 많이 쳤다.

그만큼 적들도 많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움직이는 폭탄이었다.

어제만 봐도 공판검사에게 빅엿을 날렸다.

아마 그 자식은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겁도 없는 후배 연수원생 주제에 하늘같은 검사를 엿 먹인 셈이다.

후회는 없다.

어차피 그런 밥맛없는 새끼들 조지라고 하늘이 나에게 두 번째 생을 허락하며 기회를 준 거다.

“솔직히 말해보자. 공범들이라 불리는 그 세 놈이 불러냈지?”

뚝뚝 황소 눈물을 흘리던 영진이 조용히 고개를 들며 날 봤다.

끄덕.

처음으로 긍정을 표시하는 영진이.

“피해자도 네가 때린 거 아니지?”

“네……. 제가 안 그랬어요.”

“그럼 그놈들 중에 누구야?”

“……전동국이가 그랬을 거예요.”

“‘그랬을 거’라면 넌 사건 현장에 없었다는 거야?”

“네.”

퍼즐이 하나씩 맞춰졌다.

“몽둥이는 누가 줬어?”

“형곤이가 줬어요.”

“형곤이는 뭐하는 놈이야?”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에요.”

“그 사람 이름 알아?”

“마제국 의원님요…….”

“아! 마제국!”

나도 아는 놈이다.

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에 지방 사학 재벌이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강남에 똬리를 튼 비겁한 현 여당 정치인.

이불리에 따라 철새처럼 당적을 옮기기로 유명했다.

그 아들 또한 음악을 한다고 설치다가 인성이 털려 개망신만 당했다.

아들 이름까지는 몰랐는데 마제국이라는 말에 기억이 났다.

“전동국이 아버지는 누구야?”

“재벌요.”

“재벌?”

“연대 그룹이라고 자랑했어요.”

“연대 그룹…….”

젠장, 이번에는 연대다.

어머니 미술관 인수 건으로 얼굴을 한 번 붉혔던 집안.

뭔가 판이 커질 것 같다.

“그리고 차성철이라고 한 놈 더 있는데…… 아버지가 판사랬어요.”

이제 판사까지 나왔다.

대한민국 상류층 최고급 세트 중 3종이 등장했다.

칠룡 마을 출신 영진이와 파워 팰리스 공범들.

황준혁 검사가 영진이를 상대로 근본이 다르다고 했던 말이 이제 이해가 됐다.

“그놈들이 그랬다고 왜 말하지 못했어? 협박이라도 받았어?”

이제는 진실을 알아야 할 때.

파르르 이영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겁을 먹었다는 증거.

“형이……. 거짓말 같지만 그 새끼들 정도는 충분히 막아줄 힘이 있다. 그러니까 말해도 돼.”

영진에게 힘을 줬다.

“형……. 그놈들 악마 새끼들이에요…….”

벌벌 떠는 영진이 목소리가 이미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괜찮아. 형 특기가 악마들 때려 잡는 거야.”

영진이 옆으로 이동해 어깨를 다독였다.

“흐으윽……. 그 악마 새끼들이 만약 제가 불면…… 제 여동생을…… XX한다고 했어요. 협박이 아니에요! 그 놈들은 진짜 마음먹으면 하는 놈들이에요! 여학생들 중에 당한 애들도 많아요!”

쿠웅!

XX?

말로만 듣던 중학교 3학년에 불과한 악마 새끼들의 만행.

화르르르르.

온몸에서 뜨거운 분노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회귀의 전설 2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