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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장. 이의를 제기합니다! (546/1,284)

548장. 이의를 제기합니다!

“위원장님이 사측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 걸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강일권 위원장은 노조의 가장 중요한 합의 사항인 임금책정과 신규 직원 채용에 관해 사측에 모두 일임했습니다! 이는 동지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번에 체결된 단체협약도 저와 노조 측 위원들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 직권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는 명백한 조합 결의 위반입니다! 동지 여러분! 이에 저는 눈물을 머금고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까운 강일권 위원장님을 탄핵하는 바입니다!”

삼룡차 노조 수석부위원장 정성동의 피 끓는 듯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노조 대의원실에 울렸다.

“배신자를 탄핵한다! 탄핵한다!”

“우우우우우우우! 위원장은 자진 사퇴하라! 사퇴하라!”

정성동이 포섭한 노조 대의원들이 큰소리로 강일권 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대의원실 위원장석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강일권.

마음이 착잡한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동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배신자로 몰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저는 배신자가 아닙니다…….”

낮고 조용하지만 울림이 있는 강일권 위원장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진심이 담겨 있는 만큼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

“어려운 고난의 시절 동료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낼 때 저는…… 밤새 베개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그 힘없이 돌아서던 뒷모습의 동료가 결국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강일권.

또로록 진한 남자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한순간 대의원실 공간에 숙연함이 찾아왔다.

양심을 팔아치운 자들마저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진심의 무게감이 무겁게 깔렸다.

“저는 결단코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자신이 내몰린 상황을 부정하는 강일권 위원장은 동료들의 시선을 하나하나 응시하며 눈을 맞췄다.

샛별처럼 반짝이는 중년 남자의 눈동자와 흐르는 눈물은 뜨거웠다.

“목숨을 줘도 바꾸지 않을 사랑하는 쌍둥이 서연, 서준이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부모님과 제 영혼의 반려인 아내를 걸어도 좋습니다. 동료를 짓밟고 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만큼 저는…… 나쁜 놈이 아닙니다.”

강일권 위원장의 조용하고 절절한 심정이 대의원실을 채운 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그 사실만은 노조원 대부분 인정하는 바였다.

강일권 위원장이 공장을 살리기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닌 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성했던 노조의 옛 기억들이 대의원들의 꿈틀대는 욕망을 붙잡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당시의 영화에 대한 미련이 문제였다.

‘저 새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와 있는 권력욕에 눈이 먼 정성동.

그만이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올랐다.

강일권을 쳐내야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수순에 따라 위원장으로 선출되어야 사측을 상대로 성질대로 지르는 게 가능했다.

돈을 쥐고 싶었다.

이혼한 아내와 아이들을 돈으로라도 마음을 돌리고 회유하고 싶었다.

“……제 진심이 부족해 여러분들을 노하게 만들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강일권은 동료들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일순간 숙연해진 분위기.

정성동에게 회유됐던 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붉어졌다.

누구보다 강일권의 청렴함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식과 부모, 아내까지 팔지 않아도 그의 진실은 통했다.

‘안 돼!!!’

티끌만 한 양심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성동만 이를 악물었다.

“여러분 속으면 안 됩니다! 악어의 눈물입니다!!!”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정성동이 발악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의 말에 동조하는 이가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인간적 양심이 반응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성동아…….”

강일권이 정성동을 바라보며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과거에 누구보다 믿었던 열혈 아우.

어느새 권력을 탐하는 짐승이 되었다.

그의 순수했던 시절을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강일권을 아프게 했다.

“이 자리가 욕심나도 올해만 참아줘라. 종석이 형…… 광일이…… 동수……. 내 핏줄 같은 동료들과 단 하루만이라도 같은 라인에서 일해보고 싶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저녁에 소주 한 잔 나눌 기회만 다오.”

강일권이 바라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있는 하루.

그 단 하루면 됐다.

“크읍.”

“으음.”

투쟁의 길을 같이 걸었던 동료들의 신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지금도 잊히지 않고 가슴에 맺혀 있는 아픔의 순간들.

강일권이 원하는 하루는 삼룡차 직원 누구나 꿈꾸고 있는 하루였다.

“닥쳐! 이 위선자야! 넌 동료들을 배신했어! 간악한 사측의 자본주의의 개가 되어 우리를 팔았잖아! 좀 더 뜯어낼 수 있었는데 거부했어! 개집 같은 아파트가 좋아? 난 싫어! 차라리 피 흘리며 투쟁하고 싶다고! 이 빌어먹을 세상! 다 뒈져버렸으면 좋겠어! 동료와의 의리? 개나 주라고 그래!!! 나 이혼할 때 다들 수군거렸지! 우리 와이프 부추겨 이혼시킨 형수라 불렀던 X같은 X들!! 다들 누군지 알잖아!!!”

콰앙!

정성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일권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쉽게 흥분하고 성격이 과격한 정성동은 이미 분노에 이지를 상실했다.

품고 살던 속마음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저런…… 개새끼가!”

“뭐야! 진심이 저거였어?”

“이런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함께 동조했던 동료인 대의원들이 발끈했다.

뒤에 발톱을 감추고 있던 정성동의 본심에 분노했다.

“흐흐흐흐. 개새끼? 그래 나 개새끼다! 이 위선자 새끼들아! 너희들! 동료들이 짤릴 때 뭐했어? 베개를 잡고 울어? 지랄하지 마. 같이 투쟁했으면 같이 잘렸어야지! 마누라 애새끼들 핑계대고 다들 외면했잖아! 동료들 거지꼴로 이사 갈 때 이사비용이라도 보태줬어? 이 양심도 없는 새끼들이 누굴 보고 개새끼라고 하는 거야!!!”

정성동은 악을 썼댔다.

기형적으로 한 쪽만 보고 자란 외눈박이 인생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돈 모아서 줬다 개새끼야! 사채 끌어다 이사 가는 친구 이삿짐에 넣어줬다!”

“이런 호로자식을 봤나! 애새끼 핑계? 야! 양심도 없는 놈아. 우리 와이프 몇 달 동안 울면서 산송장처럼 지냈어!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가 말 함부로 하고 지랄이야!”

“너 이리와! 정성동이 이 양아치 같은 새끼!”

묻어두었던 모두의 아픔들을 자극하자 대의원들이 자리에서 분분히 일어나며 대의원실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크크크. 그래 다 덤벼! 니들도 다 똑같은 자본주의의 개들일 뿐이야!”

정성동의 얼굴은 악귀처럼 변했다.

많은 것들이 눈앞에서 확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외눈박이 짐승이 돼 버린 정성동은 더 이상 이성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철컥.

그때 회의실 출입문이 열렸다.

처벅처벅.

입구로 들어서는 세 명의 덩치 좋은 남자들 중 맨 앞에 선 자의 손에 종이가 쥐어져 있다.

“정성동 씨?”

“X발! 니들은 뭐야!”

“평택 경찰서 강력2반 오철용 경위입니다. 아내 분과 회사 측이 고소하셨습니다, 정성동 씨를 상습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혐의 및 사측에 대한 협박, 배임수재죄로 체포합니다.”

“!!!”

형사의 말에 정성동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뭐, 뭐라고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혐의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체포해!”

“넵!”

“오지 마! 다가오지 마!!!”

정성동은 기세를 잃고 발악했다.

그리고.

“뭣들 합니까! 이건 명백한 노조 탄압입니다! 동지 여러분 막아주십시오!”

방금 전 동료들을 상대로 악을 쓰던 정성동은 노조 탄압을 부르짖었다.

“X새끼…….”

“아오! 배임수재? 도대체 얼마나 처먹은 건데?”

누구도 변호하며 나서주지 않았다.

급기야 눈에 불을 켜고 정성동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철컥.

수갑이 채워졌다.

“끌고 가.”

형사 두 사람이 강압적으로 팔을 잡고 정성동을 끌고 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미친 듯 악을 쓰며 끌려가는 정성동.

“충성! 다들 수고하십시오.”

체포영장을 집행한 형사가 경례를 올린 후 돌아서 나갔다.

“…….”

회의실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철컥.

그때 다시 닫혔던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고급 슈트 차림의 멀끔한 세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헛!”

강일권 위원장이 가운데 웃음기 띤 남자를 보고 신음을 터트렸다.

“삼룡차 노조 대의원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투자자와 사측을 대표하는 삼우 로펌의 이사 조윤태라고 합니다.”

반듯하게 선 채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조윤태 이사.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서 있던 젊은 변호사 한 명이 서류 뭉치를 꺼내 건넸다.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사건에 대해 삼룡의 실소유주인 투자자는 심각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세계에 유례없는 특혜와 배려를 제공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면…….”

조윤태 이사는 싸늘하게 식은 시선으로 대의원들을 바라봤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는 대의원들.

“여기 손에 들린 선의로 작성한 단체협약 모든 사항을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투자회수 및 민형사 소송을 비롯한 모든 법적 제제를 진행할 것임을 천명하셨습니다.”

“헛!”

“…….”

대의원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당황했다.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엄청난 특혜였던 단체협약.

만약 투자자가 말처럼 모든 걸 철회한다면 약속 받았던 미래는 거품처럼 사라진다.

아파트에 들어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들 앞에 얼굴도 들지 못할 것이다.

“투자자 대리를 떠나 양심 있는 한 사람으로서 경고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은 언제나 파멸을 가져올 뿐입니다.”

대의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에 박혀드는 송곳같은 경고.

“저도 감당 못하는 투자자를 분노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분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조윤태 이사의 진심 어린 충고이자 사실.

“…….”

회의장에 앉아 있는 사람 그 누구도 감히 반론 한 마디 꺼내지 못했다.

***

“존경하는 재판장님, 여기 있는 피고인은 비록 만 15세로 나이는 어리지만 2012년 8월 17일 새벽 1시 15분 경 동료 3인과 함께 길을 가던 만 23세의 선량한 여성을 뒤에서 각목으로 가격하여, 전치 8주의 중상을 입힌 뒤 현찰 12만 원과 귀중품을 훔친 특수강도 가해자입니다.”

동부지원에 설치된 합의부 재판장.

공판검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소규모 재판장에 울렸다.

평범한 사건인 만큼 방청객도 거의 없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검사의 눈빛에는 자비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벌벌 떨고 있는 왜소한 체격의 소년에게 준엄한 법 집행자의 모습을 낱낱이 보였다.

“비록 나이 어린 초범이지만 제출한 여러 증거자료와 조서에 기록된 바처럼 잔혹한 범죄행위였기에 소년법 사건이 아닌 형사법정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공판검사의 시선이 재판관을 향했다.

“또한 저 피고인은 경찰 조서 시작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진범 및 특수강도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이 범행을 실행한 자들은 처음부터 피고를 진범으로 지목하였고, 피해 여성도 피고를 자신을 가격한 주범이라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검사는 반성하지 않는 피고에게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법치와 사회 질서의 무서움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 중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아직 범죄 구형을 하지 않았지만 검사는 법정 최고형을 생각 중이었다.

발언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거침이 없었다.

‘저런 새끼들은 영원히 사회와 격리시켜야 돼!’

검사 황준혁은 차가운 시선으로 어린 피고를 노려봤다.

일명 뻑치기를 실행한 만 15세의 피고.

왜소하고 연약한 모습과 달리 말을 할 때면 강단이 넘쳤다.

경찰에 체포된 직후에도 결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거짓 주장을 했다.

황준혁도 이 사건에 관해 직접 조사했다.

검사 앞에서도 녀석은 자신이 진범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배경도 없는 녀석의 일관성 있는 뻔뻔한 강변에 기분이 더 상했다.

검사인 자신의 말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반성하는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괘씸죄가 적용됐다.

자신은 우연히 불러 나갔을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그에 반해 공범들은 피고를 한목소리로 주동자라 증언했다.

유흥비 마련을 위해 범죄를 예비하고 실행한 실체적 주동자라고 말이다.

경찰 조서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피해자인 여성도 병원에서 피고를 범행 실행자로 지목했다.

“검사 측 의견 다 끝났나요?”

합의부 여성 주심판사가 물었다.

“네. 이상입니다.”

자리에 착석하는 검사 황준혁.

“그럼 변호인은 변론을 시작하십시오.”

판사가 변호사에게 반론권을 넘겼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는 피고 측 변호사.

‘뭐야? 저 양아치 새끼는?’

황준혁은 자리에서 일어서자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피고 측 변호사를 쳐다봤다.

상당히 잘생긴 변호인을 보자 기분이 살짝 상했다.

이 자리가 법정이 아닌 패션쇼 행사장이라도 되는 듯 잘 차려입은 변호인.

전문 남자 모델 느낌이 더 강했다.

피고 측 변호인은 판사를 향해 짧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자리에 앉아 있는 검사를 바라봤다.

자신만만한 시선으로 황준혁을 똑바로 쳐다보는 변호인.

“존경하옵는 재판장님. 국선 변호인 장태산. 검사 측에서 말한 모든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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