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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장. 파업 (3) (545/1,284)

547장. 파업 (3)

“날씨 한번 따땃하다~.”

“비도 안 오는데 쉬니까 좋네~.”

“일당은 챙겨준다고 했지?”

“그럼~ 우리 지부장님 일처리 하나는 끝내주잖아. 현장소장 똥줄 타는 거 봤지? 물량 넘어오면 적당하게 손해배상 받아야지.”

“그런데 사택 아파트치고는 자재가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시멘트도 모두 수입산에 레미콘에 물도 못 타게 검사하더라.”

“삼룡차 직원들이 살 곳이란다. 들어보니까 이번에 인수한 외국 놈들 인심이 좋댜.”

“에이~ 그럴 리가 없지. 그 새끼들 뭔가 수작부리고 있는 거야. IMF 때 당해봤잖아. 양코쟁이 놈들 중에 좋은 놈은 한 놈도 없어.”

“정 사장 이리와. 자네도 한잔해.”

평택 삼룡차 사택 공사현장.

넓은 부지에 2000세대가 넘는 대형 아파트가 착공 중에 있었다.

그런 현장에 덤프트럭과 레미콘 몇 대가 입구를 봉쇄하고 통행을 막았다.

그 가로막힌 입구 바로 앞에서는 머리에 ‘투쟁’이라는 두 글자를 박은 머리띠를 두르고 20여 명의 사내들이 술판을 벌였다.

아직 이른 오후임에도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대한노총 소속 건설노조원들인 그들에게서는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도 가끔 수가 틀리면 이렇게 대놓고 생떼를 부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한 차례 버티고 나면 이후 대접이 후해졌다.

대한민국 웬만한 건설 현장에서는 건설노조의 도움 없이는 제 시간에 그 어떤 현장 건물도 완공할 수 없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측도 최대한 건설노조의 편의를 봐줬다.

건설 단가가 오르는 원인에도 노조가 얼마의 몫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오늘도 파업의 연속이지만 일당이 계산될 것이다.

중국 요리에 빼갈까지 놓고 노동자로서의 횡포를 부리며 축제를 즐겼다.

“오 사장, 그런데 분위기 좀 그렇지 않아?”

“뭐가?”

사실 현재 파업의 주동자들은 기사가 아니었다.

모두가 노조 임원인 임대사업자들이었다.

“너무 조용하잖아. 현장 소장 놈 말고 아무도 없어.”

“그러게 말이야? 그건 좀 그래. 아침까지 보이던 건축기사도 안 보이고…….”

“오늘 철수해서 그런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저기 타설해 놓으려고 작업해 놨잖아.”

“굳기 전에 작업해야 할 텐데…….”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신경 끄고 잔이나 받아. 저녁에는 여 지부장님이 한턱 크게 쏜다고 했잖아.”

“맞아! 술이나 마시자고.”

한 치 앞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임대 사업자들은 다시 술잔을 돌렸다.

그때.

부르르릉 부르르르르르르릉.

갑자기 지축을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거 뭐야?”

“크, 크레인 아냐?”

“저런 대형 언더 렉카를 누가 불렀어?”

평택 도심에서 벗어나 있는 공사 현장.

도로 위로 일단의 대형차들이 공격군처럼 거침없이 다가왔다.

삐뽀 삐뽀 삐뽀.

뿐만 아니라 몇 대의 경찰차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뭣이여! 지금 우리랑 해보자는 거여?”

“저 새끼들이 미쳤나!”

상황을 알아챈 업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준비해!”

“X발 새끼들 오늘 다 죽어보자!”

“지부장님에게 협조 요청해!”

“흐흐흐. 이것들이 조직의 뜨거움을 모르는구만!”

경찰을 보고도 두려워하기는커녕 기세가 더 당당해진 대한노총 건설노조 노조원들.

끼이익.

경찰차가 먼저 멈췄다.

“여러분, 모두 흉기를 내려놓으시고 업무방해행위를 중지하십시오!”

가장 선두에 선 경찰차에서 경감 계급 경찰관이 내리더니 곧장 확성기로 경고 방송을 시작했다.

노조원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더 가까이 다가서지 않았다.

“업무방해? X까 짭새들아~.”

“다가와서 신사적으로 말해라. 거기서 쫄지 말고~ 크크크.”

과거부터 공권력 알기를 개똥으로 알아온 노조원들이 경찰들의 하는 폼을 보며 비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여러분들은 업무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행위 중입니다. 지금 즉시 흉기를 내려놓으시고 파업 중인 차량을 빼주십시오.”

경찰들의 2차 경고가 울렸다.

“이거나 처먹어 짭새들아. 카악 퉤!”

“내 거도 먹어라. 퉤퉤퉤!”

“낄낄낄.”

덜컥.

나머지 경찰차 문이 열렸다.

가장 뒤에 있던 봉고차 문도 열리며 경찰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모두 다 방검복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어라? 니들은 뭐야?”

“저 새끼들 진짜 한판 하자는 거야?”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노조원들.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하겠습니다. 모두 연행에 협조해 주십시오!”

얼굴이 굳어진 경찰의 마지막 권고.

“덤벼! 짭새! 덤벼!”

“노조원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짭새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이미 술에 취해 이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노조원들이 경찰의 마지막 경고를 무시했다.

“전부 연행해!”

“넵!”

강력반 형사들이 굳은 얼굴로 노조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휘익 휘익!

“가까이 오지 마 대갈통 깨지기 싫으면 짭새 새끼들 꺼져!”

쇠파이프를 들고 휘두르며 위협하는 노조원들.

촤라랏.

경찰에게 지급되는 3단봉과 진압봉을 든 강력반 형사들의 인상은 어둡게 굳어졌다.

민중을 지키는 지팡이로써 사명감을 갖고 살아온 경찰들에게 짭새라는 말은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대놓고 공권력을 무시하는 노조들을 보며 분노가 일었다.

“무기 버려!”

더 이상 그런 그들을 존중할 수 없었다.

바로 반말이 튀어 나왔다.

경찰도 똑같은 한 사람이었다.

“X만한 니 거나 버려 새끼야!”

“와아! 짭새들 간땡이 많이 컸네? 너희들 우리 누군지 몰라? 대한노총 건설노조원들이야! 이 세금 버러지들아!”

술기운과 흥분에 눈이 충혈된 노조원들이 의기양양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무기 버려! 버리라고!”

강력반 형사 한 명이 굳은 얼굴로 거침없이 다가갔다.

“오지 마! 오지 마라고!!!”

쇄애애애앳.

그런 경찰관을 향해 쇠파이프를 사정없이 휘두르는 노조원.

뻐억.

방검복을 착용한 경찰의 복부를 노조원이 휘두른 파이프가 정통으로 가격했다.

“커억!”

경찰이 그대로 쓰러졌다.

“폭행범들이다! 인정사정 봐주지 마!!!”

쇄앳! 쇄애액!

때를 맞춘 경찰관들이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퍼어억!

“크아아악!”

다리에 3단봉을 맞고 쓰러지는 노조원이 숨이 넘어갈 듯 비명을 터트렸다.

뻐어어억!

인정사정 보지 않고 조폭처럼 행동하는 노조원들의 팔 다리를 공격했다.

“수갑 채워!”

진압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아무리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노원들이라 해도 강력반 형사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특별 요청을 받고 출동한 강력반 형사들은 노조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에 최단시간 진압을 단행했다.

“형씨들 차 키 주십시오.”

1차 진압이 있은 뒤 대형 크레인을 몰고 온 사람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곰같은 덩치의 남자가 선글라스를 낀 채 정중하게 키를 요구했다.

보이는 모습 자체가 위협이었다.

“우, 우리에게 없어! 지부장님이 가지고 갔어…….”

지도부가 파킹한 레미콘의 차 키를 회수해 갔다.

그들 허락 없이는 현장에서 한 발이라도 물러나는 걸 지도부는 원치 않았다.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씨익 웃음기를 띠는 곰.

“얘들아. 처리해라!”

“넵!”

어느새 주변으로 모인 20여 명의 사내들.

몇 명 손에는 야구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뭐, 뭐하는 거야!”

레미콘 지입 사장이 놀라 물었다.

“보면 몰라요. 똥차 치워야지요!”

곰이 피식 비웃듯 대답했다.

그리고.

콰자자자자자장창.

순식간에 개박살이 나는 레미콘 창문.

파장창창!

뒤를 이어 덤프트럭과 다른 차량들의 유리도 박살이 났다.

“!!!”

경찰들은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야! X새끼들아!!!”

“겨, 경찰들 뭐해! 저거 사유재산이야! 말려! 말리라고!!!”

짭새들이라고 부르며 비웃을 때는 언제고 자신들의 지입차량이 박살나자 눈이 돌아가는 노조원들.

“기어 중립에 놓고 살살 끌어다 치워!”

부르르르릉.

대기하고 있는 대형 크레인과 렉카 차가 현장 입구를 막고 있던 이입 차량들을 거칠게 하나둘 끌어내기 시작했다.

“변호사 선임 할 수 있고 묵비권 행사도 가능한 거 알죠? 다들 연행해!”

경감 직위를 단 경찰이 명령을 내렸다.

“으아아아아아! 짭새들!! 너희들 돈 처먹었지!”

“내 차……. 내 차아아아아아!”

수갑을 찬 채 연행되면서도 자신들의 재산인 차량이 박살나고 견인되는 걸 쳐다보며 노조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종료됐다.

“보스. 똥차들 다 처리했고 동영상도 확보했습니다.”

곰이 밝은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 수고했어요.

“하하. 시원하니 좋았습니다. 현장 통제하겠습니다!”

호탕하게 웃음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곰.

부릉 부르르릉.

잠시 후 공사 차량들이 현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

“시원하다~.”

어제 노조원들과 장시간 달린 경인건설노조 지부장 여광현은 사우나실을 나서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삼룡차 금속노조 지부장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치러야 했을 파업이었다.

과거와 달리 요즘 들어 조합운영 노하우를 배운 개인 사업자들이 간부 명함을 만들기 위해 대한과 민족노총 등을 빈번하게 들락거렸다.

조직 확대를 위해서는 개인 사업자들의 숫자가 많아야 하는 게 필수였다.

이제 갓 세력을 키우는 민족노총을 길들이기 위해 한 수를 제대로 썼다.

일단은 성공이었다.

평택 사업장은 당분간 대한노총이 먹게 될 것이다.

“슬슬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이 정도 무력시위라면 현장소장이 죽는 소리를 열두 번은 해야 정상이다.

“큰 거 한 장은 받아야 밥값이라도 하지.”

여광현은 뒤로 받을 돈 생각에 기분이 한껏 들떴다.

그가 기대하는 금액은 1억.

어제 접대한 룸살롱 비용만 해도 1000만 원.

이것저것 쪼개 상부에 헌납하고 나면 반절 정도는 호주머니에 들어올 것이다.

이 맛에 지부장 자리도 돈 주고 땄다.

초기 3억이 들었지만 회수금을 훨씬 넘어 지금은 부인 명의로 수도권 아파트 2채를 구입해 놓았을 만큼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자식들까지 무리 없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어? 부재중 통화가 왜 이렇게 많아?”

몸을 닦고 옷장에서 옷을 꺼내다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100여 통이 넘었다.

가장 최근 걸려온 지부 사무실 부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우우.

- 지부장님! 어디에 계십니까!

통화음이 울리자마자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격한 음성이 들려왔다.

“왜 그래? 나 사우나야.”

- 큰일 났습니다! 큰일요!

“뭔 큰일? 사무실에 불이라도 났어?”

- 그게 아니라 인터넷 좀 보십시오! 지금…… 평택 파업 현장 사건으로 인터넷이 도배가 됐습니다!

“그래? 우리 파업에 국민들 관심이 그렇게 큰가?”

- 그게 아니라……. 에휴. 빨리 보시고 지부 사무실로 오십시오! 지금 위쪽에서도 지부장님 찾고 난리도 아닙니다!

“원 사람이……. 뭐가 그렇게 성격이 급해. 알았어. 바로 보고 전화할게.”

통화를 종료하고 스마트폰으로 포털 검색 사이트를 클릭했다.

“세상 많이 좋아졌어.”

순식간에 화면이 떴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포털 상단을 차지한 최신 뉴스 헤드라인.

“대한노총 깡패 노조 공권력에 대항하다……. 뭐라고? 깡패 노조?”

급히 뉴스 영상을 확인하는 여광현.

[오늘 오후에 발생했던 평택 S 회사 신축 사원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벌어졌던 노조원들의 공권력 대항 장면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저희 기자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노조원들은 대한노총 소속 건설노조 소속 조합원들로 무리한 단가 인상을 요구하며 기습적으로 현장 출입구를 폐쇄했습니다. 이에 출동한 경찰이 해산을 요구하자 욕설을 퍼붓고 경찰들을 폭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경찰들은 노조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배후를 캐고 있습니다.]

“허어억…….”

분노한 앵커의 말투에 여광현은 신음을 흘렸다.

손은 이미 벌벌 떨리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오늘 있었던 공권력에 도전한 노조원들의 경찰관 폭행 장면이…….]

아닌 게 아니라 사우나 탈의실에 설치된 TV에서도 속보 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하이고……. 저런 X놈의 새끼들 봤나! 깡패가 다름 없구만!”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쇠파이프로 경찰을 패다니…….”

“저런 놈들은 싹 잡아다가 콩밥 먹여야 한다니까요! 저건 노조가 아니라 조폭입니다 조폭!”

탈의실에 있던 남자들 모두 하나같이 노조원들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띠리리리리리리.

그때 여광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모르는 전화번호였지만 주변 분위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받았다.

- 경인건설노조 지부장 여광현 씨 맞습니까?

“누, 누구십니까?”

- 여기 평택 경찰서 강력2반 오정택 경삽니다. 오늘 오후에 발생한 노조원 업무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사건으로 서에 나와 조사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 출두하지 않으시면 바로 체포영장 발부받아…….

덜컥.

그만 스마트폰을 떨어트린 여광현.

- 여보세요? 여광현 씨 지금 바로 경찰서로 와주셔야 합니다. 듣고 계십니까?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경찰관의 딱딱한 목소리.

여광현 지부장은 그 소리를 더 들을 수 없었다.

초점이 풀린 눈동자.

혈압이 급상승하며 눈앞이 하얗게 변하더니 육중한 몸이 바닥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쿠웅!

“으헉! 사, 사람이 쓰러졌다!!!”

“119! 119 불러!!!”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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