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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장. 파업 (2) (544/1,284)

546장. 파업 (2)

“형님, 투쟁 쟁취하십시오! 끝나면 제가 술 한잔 거하게 쏘겠습니다!”

- 하하. 그래. 우리 아우도 힘내야지. 동맹 파업이 언제라고 했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생각입니다. 형님이 먼저 선전하시니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 노동자들의 세상이 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천일 쪽 사업주가 바뀌면서 우리 대한노총보다 민족노총 애들 밀어준다고 말이 많았다. 한번 뒤집을 때가 됐지. 배부른 사업주 새끼들은 우리들의 고통을 전혀 모르니까!

“맞습니다! 그 새끼들은 돈만 아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개들입니다!”

- 맞아! 언제까지 우리가 개가 될 수는 없지!

‘됐다!’

대한노총 삼룡차 평택 지부장 황호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삼룡차를 인수한 놈들이 만만치 않다는 걸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

그러다 얻어걸린 정보 하나.

외국계 컨소시엄에 넘어간 천일건설이 삼룡차를 인수한 자본가들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를 통해 나름 손을 썼다.

형님동생 하는 대한노총 경인건설지부장에게 말을 넣어 부탁했다.

여광현 지부장은 흔쾌히 승낙했다.

대한민국 5대 건설사에 포함된 천일건설이 평택 아파트 공사장에서 민족노총 노조 소속에 일거리를 밀어줬다.

대한노총 건설 노조원들이 동요했다.

이럴 때 힘을 보여주지 못하면 탈퇴하는 노조원들이 발생한다.

다른 사업장에 비해 건설노조는 파워가 셌고 오가는 금액도 컸다.

노가다꾼이라 불리지만 뒷배로 움직이는 현찰금액이 장난 아니었다.

“형님 수고하십시오. 천일건설 인수한 놈들, 악질이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 흐흐. 그건 걱정 마. 지들이 그래봐야 우리보다 더 하겠어? 건설 현장은 덤프트럭으로 막아버리면 그만이야. 공기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엄청난 손해라는 걸 놈들이 더 잘아.

여광현은 파업에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노가다 판에 들어와 잔뼈가 굵었고 그 바닥에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

워낙 걸걸하고 과격해 피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다.

힘든 막일을 처리하는 만큼 건설 노조 소속 노조원들은 타 노조보다 더 과격했다.

대규모 상경 투쟁 때 앞장서는 건 대부분 건설노조원들의 몫이었다.

그 수만 해도 장난 아니었다.

어떤 건설업체도 건설노조원 허락 없이 건물을 올릴 수 없었다.

“대단하십니다. 형님!”

황호규는 부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때는 대한노총의 성지나 다름없었던 삼룡차.

이제는 삼룡차가 대한노총 소속 지부가 아닌 만큼 마음대로 참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되찾겠어!’

정성동을 통해 노조원들 상당수를 포섭해 놓았다.

강일권 위원장이 사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유언비어 살포가 그 시작이었다.

어리석은 놈들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제 강성한 대한노총의 힘만 보여주면 예전처럼 될 수 있었다.

자금을 투자한 사측도 투자금 회수를 위해서는 노조와 타협할 수밖에 없다.

사측으로부터 하나라도 더 뜯어내면 무조건 좋아라 하는 노조원들.

그들을 다루는 데 대한노총 상위 지부장들은 노련해질 대로 노련해져 있었다.

사측에서 100원을 주면 150원을 요구하면 그만이다.

- 동생도 힘내고! 우리 가열 차게 투쟁해 보자고!

“동지로서 진짜 마음 든든합니다!”

- 하하하. 그럼 수고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우리도 힘 보태줄 테니까.

“넵! 감사합니다! 충성!”

통화가 끝났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다 죽었어!”

투쟁이라는 명목으로 활활 욕망을 불태우는 황호규.

띠디디딕.

다시 스마트폰 번호를 눌렀다.

- 지부장님!

상대방 목소리가 반갑게 들렸다.

“동지들 다 모았어?”

- 바로 오시면 됩니다.

“그래 바로 갈게.”

- 넵!

신이 난 정성동에게 전화를 한 황호규.

“흐흐흐흐.”

그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짙게 번졌다.

***

“회장님 오셨습니까.”

나이 지긋한 이들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다들 앉으세요.”

체육대회 중에 전해 들은 짜증나는 보고.

급하게 강남 사무실로 왔다.

중요 인사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하관우 TS그룹 회장, 현동영 삼룡차 대표, 황효관 천일 그룹 대표, 삼우 로펌 조윤태 이사까지 핵심라인이 모두 모였다.

파업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끈적거리고 불쾌감을 주는 비릿한 냄새가 맡아졌다.

“식사들 하셨습니까?”

“…….”

긴급 회동에 모두 점심을 걸렀을 게 뻔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식사를 거르면 안 되죠.”

삐이이잇.

인터폰을 눌렀다.

[네. 대표님.]

“유 팀장님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점심 세트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괜히 인상 쓴다고 안 좋은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이는 어리지만 엄연한 상급자로서 품격을 지켜야 한다.

잠깐 기분이 불쾌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동요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에게 대한민국 내에 있는 사업장은 수익 목적이 아닌 자선사업 개념이었다.

“황효관 대표님. 말씀해 보십시오.”

느긋하게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분위기 탓인지 조윤태 이사님도 농담을 걸어오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황효관 대표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상관을 끔찍하게 모시는 대웅맨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회장이라는 호칭을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는 공적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지위가 높아지면 호칭도 그에 맞게 불려야 권위가 서는 법이다.

“파업 주체가 누굽니까?”

“대한노총 소속 건설노조입니다.”

“건설노조요?”

이놈의 세상, 노조도 참 많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노조였다.

공사 현장에서까지 노조가 결성돼 있을 거라 미처 생각 못했다.

“건축하는 데 노조가 필요합니까?”

순진한 질문을 했다.

이런 면에서는 아직 세상을 덜 살아온 티가 났다.

“이쪽이 돈이 됩니다. 건설노조도 대한과 민족노동조합으로 크게 파벌이 나뉩니다.”

황효관 대표가 답변을 시작했다.

“파벌요? 건설 현장에만 수백 개 직종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 모두 노조 소속입니까?”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정치권 양대 정당도 아니고 노조도 양대 노조가 다 잡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명목상 노조는 존재했지만 힘을 쓸 정도의 조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IMF 당시 처참한 환경에 놓이자 단일노조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생존권이 위협을 받자 현장 관리직, 기술직, 일반 노동자들이 전략적으로 뭉쳐 단일 노조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타워크레인, 레미콘, 지역건설노조가 핵심 주축입니다. 그리고 토목건축, 플랜트 건설, 건설기계, 전기 등 분과위원회 체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조직이 전국에 걸쳐 퍼져 있다는 말입니까?”

“일반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금속노조인 자동차 파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모든 직종을 망라해 노동조직화 되어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넘쳐나는 세상이니 이해는 갔다.

살아남기 위해 약자들이 뭉쳐 사측을 향해 옳은 소리를 내는 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어느 사업장입니까?”

“평택 삼룡차 직원 아파트 건설 현장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곳은 하도급도 없이 공정 산출 가격대로 공사하는 곳 아닙니까? 파업할 이유가 있습니까?”

100년을 버티는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투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층간 소음과 진도 7의 지진에도 버틸 만큼 내구성도 제대로 갖추라 지시했다.

들어가는 자재뿐만 아니라 편의 시설도 최고 수준이다.

직접 지시가 가능한 천일 건설에 수의계약으로 맡겼다.

안아가 소유하고 있던 땅을 시가로 매입해 진행 중인 가장 이상적인 공사장이었다.

하청 업체에도 상당한 수익이 보전될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공사 현장에서 시비가 벌어졌다.

“공사비는 다른 현장보다 많이 지출되고 있습니다. 시공이 완료되면 바로 현찰로 지급이 됩니다. 감사도 깐깐하게 진행되어 속도도 빠르지 않아 안전합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아파트 건설 기반공사에 민족노조 소속 건설사업 노동조합에 일거리가 많이 넘어 갔습니다.”

“건설사업 노동조합요? 건설노조와 다릅니까?”

“대한노총은 아래로부터의 노조라고 말한다면 민족노조는 위에서 시작된 노조입니다. 그래서 건설사업 노동조합은 사업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주들이 만든 조직입니다.”

“사업주들이요?”

알면 알수록 복잡한 노조체계였다.

“대한민국 건설사 중에 자체적으로 대형 건설기계를 소유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감가상각과 관리 문제가 발생해 소규모로 유지됩니다. 그런 까닭에 건설이 시작되면 건설기계를 소유한 대형 사업자들과 계약을 맺습니다. 그 사업자들이 만든 조직입니다.”

“노동조합의 본래 취지가 열악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사업자들은 대상이 아닌 것 같은데…….”

“장 회장, 세상에 돈으로 불가능 한 건 없어. 민족노조 건설사업 노동조합은 노조 인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조합원 서류를 조작해 만들었어.”

이번 사태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 말하는 조윤태 이사.

“대부분 소규모 임대사업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대형 사업자에게 조합비를 지불하고 10%정도 되는 배차 수수료인 똥띠기를 납부합니다.”

황효관 대표가 건설 비속 용어로 설명을 더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일종의 하도급 체계와 비슷하군요.”

대형 사업자가 물량을 따오면 조합원인 하도급 업체에 일을 쪼개 넘긴다는 소리였다.

계속되어 온 관행이어서 누가 끼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혜택을 받아야 하는 기사들이나 소규모 사업자들은 노조간부 명함을 소유한 대형 사업주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이 바닥이 좁아서 찍히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돈이 오가는 인간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피라미드 구조의 지배 형태.

건설판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아니 들어보니 현찰 단위가 커서 똥파리들이 더 많이 끄는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물량을 빼앗긴 대한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파업을 시작한 겁니다.”

“공사가 안 됩니까?”

“……덤프트럭과 레미콘으로 현장을 봉쇄했습니다.”

“봉쇄요?”

하도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네…….”

“경찰은요?”

“경찰들도 어쩌지 못합니다. 워낙 강성이라 끼어들기를 주저합니다. 알아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라고 말만 할 뿐입니다.”

“허어…….”

공권력이 너무 바닥을 쳤다.

“그놈들 돈을 잘 써. 대형 노총 쪽은 사업체들과 많이 얽혀있어 줄이 만만치 않아. 국회의원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해 관리할 정도지.”

조윤태 이사가 덧붙였다.

“공기가 늦어질수록 손해라는 걸 귀신같이 아는 자들입니다. 이번 사옥 신축 공사는 대규모라 인건비부터 시작해 공정에 차질이 발생하면 하루에 최소 10억 이상 지연 손해가 발생합니다.”

열흘만 붙잡고 있어도 100억이라는 소리다.

그 손해는 자연스럽게 아파트 품질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파업 명분이 뭡니까?”

“표면적인 명분은 노동자들 인건비를 비롯해 기계 쪽 사용료 단가 인상입니다.”

“표준 금액 이상 지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 대한민국 건설사업장 중 최고 수준입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를 넘어 방종을 일삼게 되는 법이다.

인상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삼룡차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현동영 대표도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무슨 문제 말입니까?”

“인수 시에 체결한 단체협약 무효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법적효력이 있는 노조와 사업자 간의 협약 아니었습니까?”

“기존 단체 협약에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는 노사교섭위원 전원의 서명날인을 받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서명하지 않은 정성동 수석부위원장과 몇몇 노조 측 교섭위원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오늘 당장 사측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강일권 위원장 탄핵 투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새끼들 악질이네. 놈들이 노조법 제29조 1항에 보면 노동조합의 대표와 사측 대표는 교섭 및 협약체결권을 소유하므로 쌍방 합의 서면의 서명날인도 효력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거 계획적이야.”

조윤태 이사가 살짝 분노를 일으키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똑똑.

“대표님 식사 준비됐습니다.”

“들어와요.”

스르륵 문이 열리고 유세라 팀장이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분위기를 살피고 유세라 팀장은 조용히 사라졌다.

“드세요.”

샌드위치 포장을 벗겼다.

아삭.

생각을 붙든 채 한 입 베어 물었다.

욱 하고 메스꺼운 화가 목울대를 치며 끌어 올랐다.

난 본래부터 이성보다 감정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캐릭터다.

멍청하게 인생 기회비용을 날리는 놈들에게 배알이 살살 꼴려왔다.

이런 문제의 답은 언제나 명확했다.

돈 몇 푼에 오락가락 끌려다닐 내가 결코 아니었다.

“엎죠.”

간단하게 정리된 한 마디.

“???”

네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꿀꺽.

씹고 있던 샌드위치를 삼켰다.

“다 엎어버리십시오. 뒤는…… 제가 책임집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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