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장. 한국평등법연구회
“오! 나의 아들들아……. 너희들의 우둔함이…… 하늘을 진노하게 했다!……. 쇠탈의 후예가 뿌린 재물이 신들을 감응시켰으니…… 통제라……. 신국의 땅이 진노에 뒤덮였구나…….”
황금빛 뱀과 검은색 뱀이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뱀의 신전.
신을 대신하는 사령이 기괴한 목소리로 통탄을 금하지 못했다.
“요,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쿵! 쿵! 쿵!
머리 세 개가 바닥에 처박혔다.
일본에 지진이 발생했다.
어지간한 지진은 신탁으로 미리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못했다.
일본의 조상신도 감쪽같이 속았다.
긴 세월 동안 보호막이 되기를 자처했지만 번번이 재앙을 막지 못했다.
이 땅을 떠나기 위해 긴 세월 동안 이웃 나라들을 침공했지만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한때는 중국에 이어 동남아시아 전역을 식민지로 만드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때마다 그들 민족의 선대 혼령들이 힘을 다해 저항했다.
덕이 아닌 총칼로 침략하고 다스리려 했기에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업이 쌓였다.
그에 하늘도 노했다.
결국 다시 쫓겨 들어온 열도의 땅.
업과 업이 장성하여 화산과 지진을 통해 빈번한 심판이 가해졌다.
독니를 잔뜩 세우는 뱀의 조상신.
사령을 통해 억눌러온 절절한 분노를 토했다.
일이 자꾸 꼬여갔다.
과거처럼 총칼로 세상을 점령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개미 같은 신민들을 이용해 세계적 부를 일궜다.
돈으로 세상을 지배해 갔고,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은 열도의 바람과 달리 변하고 있었다.
중국은 황제의 자식들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발톱을 드러냈다.
한반도는 쇠탈의 후예가 태어난 후 계속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중에서 뱀도 눈치채지 못할 꾀주머니 같은 쇠탈의 후예가 가장 신경을 거스르게 했다.
그러나 달리 신경을 끌 방법이 없었다.
쇠탈의 특전으로 탁월한 무력이 부여되어 범접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간사하기 이를 데 없는 쇠탈의 후예는 카르마 포인트를 쌓고 또 쌓고 있었다.
놈은 보란 듯이 지진으로 무너진 뱀의 땅에 재해복구비를 선뜻 투척했다.
하늘의 계산은 언제나 정확한 법.
쇠탈의 후예는 뱀의 땅에서 돈을 착취하고 그 돈으로 선업을 쌓고 있었다.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자식들의 우둔함에 뱀은 분노했다.
“……신들이 지켜보고 있다. 모두…… 자중하라. 그리고 힘을 키우라!……. 너희에게 재신의 축복을 더 내리도록 하겠다…….”
쇳소리 같은 뱀의 목소리가 신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뱀신은 인간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쇠탈의 후예가 쌓은 선업의 규모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그만큼 영향을 받는 신들이 많았다.
이럴 때는 굳이 건드려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자중의 시간.
쿵! 쿵! 쿵!
이마를 바닥에 찍는 세 사람.
급기야 이마가 깨져 바닥에 피가 흘렀다.
일본 정치계와 재계, 그리고 밤을 다스리는 주인들이었지만 조상신 앞에서는 몸을 한없이 낮췄다.
“기다리라……. 그리고 새끼 뱀들을 더욱 키워라……. 집안에서 쇠탈의 후예를 물어뜯고 싸우도록 부추겨라……. 그 땅에 심은 나의 자식들은 너희들과 뿌리가 같으니……. 그들에게 돈을 뿌리고 세뇌하라……. 그리하면 천년 제국이 다시 열릴 것이다…….”
비열하기 그지없는 뱀의 신탁이 내려졌다.
“명을 따르옵니다!!!”
쿠웅! 쿠웅! 쿠웅!
거역할 수 없는 신명.
뱀의 자식들은 가슴 속 깊이 그 명을 새겨들었다.
***
- 선행으로 대규모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뱀이 당신을 어둠 속에서 노려봅니다.
보든지 말든지~.
통 크게 기부했다.
로버트에게 지시해 일본에서 벌어들인 자금 일부를 기부금으로 좀 던졌다.
김한별이 파견되어 설립한 국제기구를 통해서도 마찬가지.
남의 돈으로 생색 한 번 제대로 냈다.
카르마 포인트 수익이 짭짤했다.
일본을 수호하는 뱀신이 이를 가는 소리가 귀에 들릴 지경이다.
미치고 환장할 게 뻔했다.
인류애가 부족한 뱀신.
언젠가 마주치면 대가리를 콱 눌러 잡아 제대로 몸보신 해볼 생각이다.
“회장님, 그런데 여기는 언제 구입한 거예요?”
공수진이 궁금한지 물었다.
“한 달쯤 됐습니다.”
건전한 스폰(?) 관계가 형성된 뒤로 공식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 존칭을 사용했다.
“그럼 그때 벌써 연구회를 준비한 거예요?”
빙긋 웃었다.
이럴 때 굳이 구체적인 언어로 확인해 줄 필요까지는 없다.
“행님……. 이거 뺀트하우스 아닙니꺼?”
“그 정도는 아니고 가장 높은 층은 맞아.”
호수공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120평 오피스텔 최상층을 구입했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숫자 1501호.
“들어가시죠. 회장님~.”
포르쉐 하나로 사근사근 태도가 변한 공수진이 비밀 번호를 눌렀다.
오늘 하루 개방을 위해 번호는 1111.
초대된 모두에게 비밀 번호를 제공했다.
스르륵.
자동 도어락이 풀리고 덕수가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파바바밧.
그 순간 쏟아지는 열 쌍의 시선.
“와아아아아아아. 전망이 쥑입니다. 쥑여!”
유세라 팀장을 통해 리모델링한 오피스텔 창 너머로 초록물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와 시원한 호수공원이 한눈에 보였다.
덕수는 지리산 출신답게 사람보다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들 커피 한잔씩 하시죠~ 제가 내려드릴게요~.”
오피스텔 주인이 된 것처럼 공수진이 눈치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열 명.
얼굴 익숙한 자치회 회장 권주희.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수진아. 내가 도와줄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공수진 곁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남은 아홉 명.
“행님. 탁자가 억수로 좋습니데이.”
특별히 제작한 강화 유리의 기다란 탁자.
오피스텔답게 넓은 거실에 놓인 테이블 주변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지이이이이잉.
“어머! 커피 머신 진짜 좋은 거네!”
“흐음~ 향도 죽이는데? 원두가 좋은 거네.”
부엌 쪽에 세팅된 탕비실에서 자동 커피머신을 이용해 커피를 뽑던 공수진과 권주희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유세라 팀장의 배려였다.
나도 오늘 처음 봤다.
이런 날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 뒀던 일산 아지트 오피스텔.
바닥부터 시작해 책장과 블라인드 모두 모던함을 베이스로 럭셔리를 추구했다.
흑요석 같은 블랙 대리석에 가미된 유백색 색감의 인테리어.
깔려 있는 카펫부터 시작해 심플하면서도 개방성과 편리함을 추구한 스타일이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웠다.
뚜벅뚜벅.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비어 있는 중앙 가죽 의자에 앉았다.
“…….”
굳이 말은 필요 없었다.
단 하루 만에 포섭된 연구회 회원들.
팔미호가 그냥 팔미호가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덕수를 총무로 지지하는 데 손을 들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팔미호의 엄청난 기억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동시에 오늘 하루 동안 팔미호가 각 반을 뛰어다니며 이 인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능력 있는 자를 지원하는 스폰은 나쁜 게 아니었다.
그걸 이상하게 악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다.
“자~ 다들 커피 한잔씩 하세요.”
“친구들 긴장들 풀어.”
공수진과 권주희가 커피를 전달하고 자리에 앉았다.
“캬아! 케피 맛이 죽어삔다 아입니꺼!”
분위기 메이커 덕수가 커피를 원샷으로 드링크 한 다음 감탄사를 터트렸다.
“모두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평등법연구회 초대 회장 장태산입니다.”
짧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양해 같은 건 구하지 않았다.
다른 연구회는 민주주의 선거에 의해 회장을 선출했지만 여긴 아니었다.
이런 거에 눈치 볼 시간이 없었다.
“뭐죠? 오늘 연구회 설명하는 자리 아니었나요?”
여자 연수생 한 명이 나섰다.
작은 키에 안경을 낀 모습이 완전 까칠해 보였다.
“공수진 씨 부탁으로 이곳에 왔습니다만……. 뭔가 착각을 한 것 같군요. 저도 오늘 연구회 입회 설명 자리라 들었습니다.”
덕수에게는 못 미치지만 한 덩치 하는 남자도 나섰다.
“회장이라고요?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얼굴이 새하얀 범생이 스타일 남자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날 째려봤다.
오늘 이 분위기 마음에 든다.
이 정도 깡은 필요하다.
여기 모인 자들은 덕수를 총무로 선택할 만큼 아직은 순수함이 남아 있는 연수원생들이다.
자신들의 이익만 ㅤㅉㅗㅈ는 자들과 달리 그래도 인정이 있고 가슴도 뜨거운 이들.
“이유라도 들어보죠.”
느긋한 인상의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 회장님 어떤 포부가 있기에 그런 광오한 말을 뱉었을까?”
자치회 회장 권주희가 한마디 얹었다.
씨익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당신 뭐야? 왜 이렇게 건방져!”
기다렸다는 듯 맞은편에 앉아 있던 눈썹 진한 남자가 인상을 팍 썼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죠.”
한 번 만나기 위해서는 전생에 삼천 번을 스쳐야 한다는 인연법.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이 정도 관계라면 평범한 인연은 아닐 것이다.
스윽.
호기심과 불쾌함이 공존하는 이들의 눈빛 하나하나를 돌아가며 마주쳤다.
나의 선포를 호락호락 받아들인다면 그게 더 재미없었다.
그러나…….
“여러분 인생을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인생? 뭘 말인가요? 우리 모두 취직이라도 시켜주겠다는 거예요? 장태산 씨가?”
아줌마 권주희가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로펌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곳에 여러분들을 소속 변호사로 입사시킬 생각입니다.”
“!!!”
아니나 다를까 화들짝 놀라는 이들.
이 자리에 합석하기 전 미리 공수진을 통해 이들에 대해 대충 설명을 들었다.
여기 모인 이들 모두 SKY 출신은 없었다.
서울 하위권이나 지방대를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성적 역시 상위권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이다.
“오, 오만하군요.”
처음 질문을 던졌던 여자 연수원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쯤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건 바보였다.
요즘 1000명씩 배출되는 연수원생 때문에 변호사들이 길거리에 넘쳐난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 상황에 자신들 모두를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나의 말이 오만하게 받아들여질 건 당연했다.
“연봉은 1억부터 시작합니다. 아파트 32평 이상에 중형차 이상 제공. 근무 기간은…… 평생입니다.”
“헛!”
“그런 말도 안 되는…….”
“으음.”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조건에 모두 기겁하는 표정이 됐다.
이 정도라면 최소 부부장 검사나 단독 판사가 퇴임 후에 받는 로펌 입사 조건들이었다.
내 능력을 맛봤던 공수진과 덕수만이 동요하지 않았다.
“……조건이 있겠죠?”
세월 그냥 살지 않은 아줌마 권주희가 물었다.
“단 하나의 조건만 따라주면 됩니다.”
“그게 뭡니까?”
나를 향해 건방지다고 했던 자존심 꽤나 강해 보이는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조용히 열린 내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
“복종.”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