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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장. 초격차 (539/1,284)

541장. 초격차

“오늘따라 왜 이래? 그 날이야?”

“하아아. 언니……. 나 왜 이럴까?”

“왜 누가 또 스폰 하재?”

사법연수원 오후 마지막 강의가 끝난 강의실.

자치회 회장 권주희와 공수진이 한쪽에서 대화를 나눴다.

“언니!”

“왜 성질이야. 피곤하다. 어제 막둥이 열감기 걸려서 밤새 개고생 했어. 으으으. 넌 일찍 시집가라. 늙어서 늦둥이까지 생산했더니 삭신이 안 쑤신 데가 없다.”

권주희가 한쪽 팔을 둘러 어깨를 주물렀다.

공수진과는 학번 차이가 꽤 나는 대학교 같은 과 선배였다.

신림동 스터디 그룹에서 만나 연수원까지 인연이 이어졌다.

공수진은 권주희를 잘 따랐다.

신림동에서 치근덕거리는 남자 선배들을 권주희가 제거해줬다.

그뿐만 아니라 맏언니 같은 푸근함에 외롭게 살아온 공수진은 많이 의지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배다.

“언니, 연구회 들어갔어?”

“학회 말하는 거야?”

“응~.”

“아직 고민 중이야. 자치회장도 감투라고 여기저기서 은밀하게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그거 대단한 자리라고! 자치회장은 삼대가 안 굶어죽는다는 말 신림동에서 수없이 들었잖아.”

“흐흐. 내가 그래서 나이 먹고도 포기 못한 거다. 우리 막둥이 장가갈 때 전세 자금이라도 내놓으려면 죽을 때까지 일해야 돼.”

“변호사 할 거지?”

“그럼~ 누가 나 같은 늙다리 아줌마를 판사나 검사 시켜줄까. 거기도 다 얼굴 봐.”

“언니도 예쁘잖아.”

“됐다. 그런 건 네 나이 때나 필요한 거야. 이 나이 먹어서 선배들에게 치마 입고 애교 떨 일 있냐? 특히 검사 쪽 더러운 거 너 몰라?”

“……난 검사 할 거야.”

“그래. 검사 해라. 그래서 성희롱 하는 놈들 싹 집어넣어. 너라면 최소 검사들 열 명쯤 집어넣을 수 있을 거다.”

“농담 아니야.”

“그런데 연구회는 왜? 이제 선택했어?”

“응…….”

“어디?”

“그게…….”

“설마 한국민사소송연구회?”

은밀히 사법시험 준비하는 이들에게 알려진 최고의 연구회를 권주희가 언급했다.

“아니.”

“호오~ 얼굴 본다는 민법판례연구회구나~.”

“그것도 아냐.”

“그럼……. 인권법? 거기는……. 너랑 안 어울리는데. 너 돈 좋아하잖아.”

“신생이야.”

“신생……. 응? 신생? 만들었어?”

말을 주고받던 권주희가 깜짝 놀랐다.

공수진이 어렵게 살아 돈에 욕심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공부했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수진이었다.

목표가 뚜렷했던 후배가 듣도 보도 못한 신생 연구회에 입회한 듯했다.

“만든 게 아니라 누가 창설했는데 초기 멤버로 들어갔어.”

“미쳤구나!”

“그렇지? 나 미친 거 맞지?”

“얘가 열도 있네. 너 뭐야? 무슨 일 있었어?”

40년 살아온 아줌마 눈치로 권주희는 공수진의 변화를 직감했다.

공수진도 어제 있었던 일이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꽁꽁 감춰놓았던 본성이 고삐 풀리듯 풀려 드러났다.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하고 청순했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어 던졌다.

소주 몇 잔에 취하지도 않았었다.

장태산 앞에서 모든 걸 까발렸다.

감출 수 없었다.

맹수 앞에 선 여우처럼 꼬리를 말고 실토했다.

‘스폰이라니……. 스폰!’

장태산의 귓가에 조용히 내뱉었던 말은 ‘스폰’이었다.

갑자기 제어가 안 되고 불쑥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왜 그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갔다.

그 야시시한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기숙사에 돌아와 이불을 발로 수없이 찼다.

‘나쁜 놈! 그 정도면 확답해야 하는 거 아냐? 자존심 상하게!’

장태산은 스폰이라는 말에 잠시 공수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마치 비웃음 같았다.

확답은 없었다.

그 동안 살면서 스폰 제의도 몇 번 받아봤던 공수진이었다.

신림동 시절 밥 사러 왔던 잘나가는 검사 선배, 심지어는 학교 교수도 제안했었다.

그 정도로 매력적이던 공수진은 장태산 앞에서 그냥 그런 평범한 여학생 취급을 받았다.

다행이 입은 무거운 사람이었다.

좁은 곳에 2000명이나 모여 있어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면 금세 퍼졌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관리 잘 못하면 입방아에 오르내릴 게 뻔했다.

“누가 만들었어?”

권주희가 호기심을 보였다.

“언니는 말해도 모를 거야.”

“누군데!”

“장태산이라고 한국대 법학과 08학번.”

“……장태산! 오! 그 장태산?”

“언니 알아?”

“흐흐. 내가 아줌마지만 눈깔은 니들 못지않게 정상이다. 요즘 여자 동기들 중에 가장 핫하게 이름이 거론되는 남자 아냐. 모델 뺨치게 몸매 쫙 빠지고……. 얼굴은 아이돌급에 돈도 많다고 하더라.”

“그새 소문 돈 거야?”

“넌 언제 만났어? 둘이 무슨 사이인데?”

“사이는 무슨……. 그냥 어제 삼겹살에 소주 한잔했어.”

“난 왜 안 불렀어! 언니 일산 장항동 오피스텔로 이사 온 거 몰라? 이 배신자야!”

“애가 아팠다며! 유부녀는 퇴근 후에 조신하게 가정을 지키는 게 본분이라고 언니가 누누이 말했잖아!”

“그땐 그때고!”

“와아아……. 언니 진짜 웃겨!”

“장태산은 여기 공부벌레들과 초격차로 다르잖아. 같이 겹살이에 소주 한 잔 마시면서 눈과 마음을 정화시키면 얼마나 좋아……. 내가 아줌마지만 여자라고!”

“헐.”

권주희의 격한 반응에 공수진은 어이가 없었다.

‘맞아! 자치회장이라면…….’

그때 공수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계략 하나.

“언니 그럼 우리 연구회 들어올래?”

“응? 어디? 장태산 연구회?”

흥미를 보이는 권주희.

“어차피 언니 인권변호사 한다고 했잖아. 괜히 상위 학회에 들어가 권력 다툼의 중심에 서지 말고 심플하게 입회해라. 내가 주선해 볼게~.”

“고뤠?”

“언니니까 특별히 받아주는 거야. 거기 입회 엄청 까다로워.”

아직 자신도 입회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권주희를 미끼로 끌어들이는 공수진.

“그럴까?”

“연구회니까 장태산 자주 볼 수 있잖아. 선배들도 없으니까 강제적인 부담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얼마나 좋아. 자유롭게 강의 끝나고 겹살이에 소주 마시면서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소주……. 삼겹살…….”

각종 연구회에서 입회 제안이 끊이지 않았지만 권주희는 망설였다.

상위 연구회는 의외로 선후배 관계가 엄했다.

게다가 연수원은 대학교 학번보다 기수로 따졌다.

나이 먹은 권주희는 계륵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딸깍.

그때 강의실 문이 열렸다.

깔끔한 감청색 정장을 빼 입은 30대 중반의 사내가 들어왔다.

연수원생이 아니라 영업사원 같아 보였다.

“공수진 씨 맞습니까?”

“네? 저요?”

공수진이 깜짝 놀랐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직진해 다가왔다.

“여기 싸인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뭔가를 내미는 남자.

작고 고급진 레드 박스와 함께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공수진은 얼떨결에 박스를 받았다.

평소 가지고 싶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공수진의 로망.

앞발을 든 말 문양의 회사 로고가 금박으로 박혀 있는 키 케이스였다.

‘설마?’

눈이 커질 대로 커진 공수진은 순간 의심이 들었다.

“꺅! 이거 포르쉐 열쇠 아냐!”

권주희가 비명을 터트렸다.

“차는 주차장에 파킹해 놨습니다. 보험도 가입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용하시면 됩니다.”

영업사원은 사인을 재촉했다.

“아, 아니 제가 왜 이걸…….”

공수진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띠링.

그때 공수진의 스마트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이상한 기분에 급히 스마트폰을 꺼내보는 공수진.

“아!”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문자.

[스폰 선물이다.]

문자는 짧고 강렬했다.

공수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타올랐다.

온몸 혈관을 돌며 피어오르는 뜨거운 열기.

“뭐야? 뭔데? 누군데? 누가 선물한 건데!”

권주희가 공수진의 문자를 보려고 가까이 다가왔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감추는 공수진.

‘장태산……. 너…… 뭐야!’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태산의 얼굴.

공수진은 갑자기 그가 미친 듯이 보고 싶어졌다.

***

“후훗. 여우야 까불지 마라~.”

포르쉐 영업사원에게 연락처와 얼굴을 넘겼다.

덕수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공수진.

매장에 있던 차를 카드 일시불로 구입했다.

공수진과 어울리는 빨간색 2인용 포르쉐 박스터.

1억이 안 되는 금액으로 저렴하게 팔미호의 스폰서가 됐다.

팔미호는 자신의 값어치를 아직 몰랐다.

내 계산에 근거하면 공짜 수준이었다.

전생에 만날 일이 없었던 팔미호는 어제 호랑이에게 모든 걸 들켰다.

아직 미각성 팔미호 능력으로는 나에게 덤벼도 안 됐다.

겁도 없이 스폰 얘기를 꺼냈다.

진심이 아니라 날 자극하기 위해 던진 떡밥 같았다.

그래도 내심 심쿵했다.

전생에 꼬리 아홉 개 달았었으면 호랑이도 넘어갔을 게 확실했다.

귓가에 속삭이던 공수진의 떨리던 목소리.

부동심이 깨질 뻔했다.

유혹이자 시험.

팔미호를 비웃으며 승리의 패를 쥐었다.

어떤 확신도 주지 않았다.

부끄러울 법한데 공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우리 덜 자란 덕수만 멍하니 넋을 놓았다.

어른들 노는 세상을 경험한 사춘기 소년처럼 격정적인 감정변화를 맛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공수진이 제안한 ‘스폰’을 받아들였다.

“여우야 여우야~ 꼬리를 마음껏 흔들 거라~. 그리고 나에게 먹잇감을 가져오너라. 후후훗.”

나쁜 남자가 됐다.

여우에게 당하는 이솝 우화의 어리석은 사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줄 놓으면 여우가 나 대신 왕 노릇할 게 뻔했다.

앞으로 기대되는 팔미호와의 팽팽한 스폰 관계.

첫 번째 승기는 내가 잡았다.

초격차 돈질 앞에서 전생 팔미호도 무릎을 꿇었다.

띠링.

스마트폰 문자가 울렸다.

[선물 값은 두 배로 갚아줄게.]

감정을 억제하고 팔미호가 간결하게 답문을 보내왔다.

- 전생 인연과 연결됐습니다.

- 전생에 체결됐던 카르마 포인트 스폰 관계가 재 약정됐습니다.

“카르마 스폰 재 약정?”

평범한 인연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깊게 얽혀 있었다.

나도 파악 못한 보이지 않는 스폰 계약이 체결됐다.

공수진이 짐작도 못할 또 다른 계약 조항은 나와 그녀의 운명을 결정해 버렸다.

“두 배? 최소 열 배는 갚아야지.”

팔미호는 앞으로 내 계획에 반드시 필요했다.

결성된 ‘한국평등법연구회’.

팔미호는 평등연구회의 얼굴마담이다.

띠리리리리리리

스마트폰이 울렸다.

나와 특별한 사적 관계자에게만 따라 설정된 기본 멜로디.

- 보스 접니다. 지시하신 대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십시오.”

- 알겠습니다.

엄청난 세계적 재앙에 개입하고자 했지만 신들에 의해 거부당했다.

신벌!

쌓아온 민족의 악업이 넘쳐나 조상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하루 뒤에 일본에 쏟아질 엄청난 신벌!

마음 아프지만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타락한 정치인들에게 휘둘리는 것도 죄!

나는 그 일본을 위해 또 다른 징벌을 준비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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