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장. 호랑이 패밀리
“…….”
강당의 공기는 순식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신덕수의 예기치 못한 함축된 아픈 과거 이야기에 모두 숨을 죽였다.
법을 모르면 당하게 되는 대표적인 일반 서민 케이스였다.
신덕수의 얘기를 들은 연수생들은 대부분 머릿속으로 이미 법리를 마쳤을 것이다.
주인집은 신덕수에게 땅 문서 및 소유권 이전 등기를 제대로 해주지 않은 게 확실했다.
일명 구두계약.
세금도 신덕수 아버지가 아닌 주인집 쪽에서 대대로 내왔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처럼 그려지는 신덕수의 과거사 상황.
신덕수 집안은 20년 이상 증여받은 땅을 자기 땅으로 알고 사용하고 관리해 왔으므로 그 땅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충분한 권리를 소유했다.
만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경우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취득 시효’ 제도다.
다른 법리로 ‘점유 취득 시효’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평온, 공연이라는 요건에 걸렸다.
한국전쟁 전까지 노비로 살았다면 신덕수 아버지는 여러모로 세상 밝기에 부족했을 것이다.
주인집에서 그동안 세금을 냈고 신덕수의 부친은 소작이었다고 주장하면 일이 복잡하게 변한다.
평온, 공연이라는 조항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마법 같은 조항이었다.
민법 제197조 1항의 자주 점유자의 선의 평온 점유 추정 조항도 동법 제245조의 평온한 점유에 위반되면 박살이 난다.
상대가 지주 집안이었으니 시골에서는 충분히 그만한 권력이 넘쳤을 게 뻔했다.
게다가 면서기인 공무원 증언이 뒷받침됐다면 그 효력이 남달랐을 것이다.
유능한 변호사까지 고용했다면 지방 법원쯤 일이야 원고 측 승소로 끝나는 게 다반사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 냉혈적 규범이었다.
모르는 것도 죄였다.
“저 총무시켜 주이소! 결코 지는 대가리가 딸려서 판, 검사는 못 한다 아입니꺼. 경쟁자는 아니니께 그러니 다들 안심하이시고 밀어 주이소! 42기 동기들을 위해 몸이 썩어빠지라 충성하겠음더!”
신덕수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마치 조폭 형님의 인사 같았다.
인상이 강하다 보니 자리에 앉은 연수생들은 대놓고 야유를 부리거나 싫은 티를 내지 못했다.
변호사가 아니라 A.T씨큐리티 직원으로 고용하면 제격일 인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저들은 또 뭐야!!!
***
국회의원 선거를 방불케 할 만큼 신덕수는 총무직 사수에 최선을 다했다.
신덕수는 스스로 주제를 잘 알았다.
죽기를 각오하고 시험에 뛰어들었다.
농사 짓던 농고 출신 신덕수가 공부에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부모님과 자신을 무시하던 그 집안을 잘난 법으로 누르고 싶었다.
그러나 처해진 상황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날고뛰는 대한민국 수재들의 놀이터가 바로 사법시험이었다.
신덕수는 농고 축산과를 나왔다.
군대는 영농 후계자 선정을 받아 면제받았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국내 여성과의 결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돈 많이 벌어 동네 형들처럼 착하고 예쁜 동남아 쪽 아내를 얻을 생각이었다.
크지도 않았던 그런 소박한 꿈이 하루아침에 박살이 났다.
노가다 아르바이트로 벌어 샀던 소들이 소송비와 아버지 병원비로 날아갔다.
당연히 내 땅으로 알고 있던 땅들은 명의 이전도 안 되어 있었다.
그동안 팔순에 가까운 아버지가 해마다 미안한 마음에 잊지 않고 제공했던 쌀들이 소작비로 둔갑됐다.
인심 좋던 동네 사람들도 누구 하나 재판에 나와 증언해 주지 않았다.
지주의 둘째 아들이 도의원이었고 막내아들이 경찰 총경이었다.
괜히 기세 좋은 집안과 곤란한 관계로 엮이려 들지 않았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지주 가문의 영향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억울함에 사방팔방 뛰어다녔던 신덕수는 매번 절망을 맛봤다.
수십 년 동안 돌밭을 일궈 옥토를 만들었지만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걸 빼앗겼다.
신덕수는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2심 판결 선고 날에 지주집 아들과 함께 나타났던 안경을 쓴 변호사.
아버지가 이게 말이 되냐고 지주집 아들에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었다.
그때 그 안경 쓴 변호사가 나섰다.
서울 대형 로펌 변호사였다.
승소 판결 뒤 비릿하게 웃으며 ‘평생을 찬물에 밥 말아먹으며 빌어먹을 무식한 종놈 새끼들’이라며 신덕수와 아버지를 대놓고 비웃으며 자극했다.
신덕수는 분노가 정수리를 뚫고 올라올 정도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덩치가 남다르니 주먹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어길 뻔했다.
온갖 이유로 돈을 뜯어내던 항소심 담당 시골 변호사가 쫄아서 손을 털었다.
대법원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아버지가 바로 쓰러졌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혈압으로 쓰러져 몇 달을 병원에 누워 계시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날 병상에서 자신을 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
신덕수는 하늘이 무너져 땅을 덮어 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난 뒤 며칠 후 어머니도 제초제를 먹고 한 많은 세상을 등졌다.
늦은 나이에 부부가 얻은 외아들 신덕수는 그만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 됐다.
지주집 아들들을 모조리 죽이고 자신도 세상을 뜨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짐승처럼 살면 안 된다는 평소 부모님 말씀이 발목을 잡았다.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했다.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판, 검사가 되면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결심을 먹은 후 하루에 잠을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생활비를 위해 야간 노가다를 뛰면서 신림동에서 버텼다.
모르는 걸 알기 위해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고분고분 머리를 조아리며 법조문을 묻고 또 물었다.
인상과 달리 순박하기 그지없었던 신덕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워낙 기초가 없이 시작한 공부였기에 해도 해도 어려웠다.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내용들을 외우고 또 외웠다.
잠이 쏟아지는 날이면 눈가에 파스를 바르고 버텼다.
힘이 빠지고 의지가 흔들릴 때면 악마 같은 변호사와 지주 아들 놈만 생각하면 절로 천불이 났다.
화장해 한 줌 재로 남은 부모님은 자신들 땅에 뿌려졌다.
부모님 49재를 담당했던 스님의 경문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왔다.
바르게 살필 줄 알면 모든 게 쉬운 법이라고 했다.
바르게 살필 줄 알면 올바른 길이 보인다고 했다.
바르게 살필 줄 알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살기에 몸서리 칠 때마다 스님의 법문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하늘과 신을 믿었다.
지하에 계신 부모님과 지리산 산왕모가 도움을 주실 거라 믿었다.
그 믿음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얘기해 주셨다.
늦은 나이에 수태를 한 어머니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산신 할매가 지리산 산왕모의 자식들 중 하나를 빼앗아 데려왔다고 말이다.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신덕수를 보며 흐뭇한 눈빛으로 말씀하곤 했던 어머니.
신덕수는 어머니 말을 믿고 미친 듯 한우물만 팠다.
하늘의 도움이었는지 점점 사법시험 합격생 숫자가 늘었다.
1차에 겨우 턱걸이로 합격했다.
그해 2차 시험은 낙방했다.
그러다 2010년 2차 시험에서…….
거짓말처럼 합격했다.
물론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가장 약했던 민법 문제가 꿈에서 또렷하게 보였다.
배점이 컸던 문제였기에 2차 시험 평균 점수를 확 끌어올렸다.
그 덕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신덕수.
동네나 학교에는 전혀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소송에 휘말렸을 때 당시 가깝고 먼 친척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 모두 등을 돌렸다.
동네의 자랑이 될 수 없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니 이제 복수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만큼 신덕수는 순진했다.
판검사가 될 수 있는 상위권이 아닌 이상 지금은 먹고 살기 힘든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가지 일념으로 사법시험에 올인 했던 신덕수는 그 사실을 알고 절망했다.
그런 상황에서 알게 된 자치회 임원의 권력.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도 자치회 임원, 회장과 총무의 막강한 권한이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회장은 나이순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쉬웠지만 총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경험했던 부조리를 고백하면 미래의 법관이나 검사, 변호가 될 동기들이 밀어줄 거라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동기 연수생들은 정의로울 거라고 신덕수는 믿었다.
자신처럼 다들 순수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덩치 큰 바보의 착각이었다.
“마지막 총무 후보자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남의 일 같지 않네요…….”
42기 자치 회장 권주희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신덕수를 바라봤다.
사정은 안타깝지만 안 될 게 뻔했다.
권주희도 어린 시절부터 당한 게 많아 이쪽으로 발을 디뎠다.
나름 공부를 꽤 잘했던 권주희는 대학교 졸업 후 어렵지 않게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것이 악몽의 시작이었다.
처음 회식 자리부터 시작되었던 성추행.
먹고 살기 위해 많이 참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가 지나쳐졌다.
엉덩이 터치는 일상이 됐고 대놓고 성희롱을 해왔다.
나중에는 잠자리를 제안해 온 부장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일로 사회 경력은 단절됐고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
승진에 물먹은 것을 앙심 품고 고발했다는 말도 안 되는 딱지가 붙었다.
조직에서 자발적 퇴사를 요구했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쫓겨나듯이 회사를 나왔다.
대학 시절부터 사귀었던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평범한 주부가 돼 보려고 했지만 회사에서 겪었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다행히 공부에 집중하는 동안 트라우마와 산후 우울증까지 극복하며 7전 8기로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앞으로의 계획도 다 짰다.
인권 문제 변호사가 되어 사회 초년생으로서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가고 싶은 권주희.
그녀의 눈빛은 신덕수의 패배를 예견하고 있었다.
회장직을 제외하고 총무나 부회장 같은 고위 임원들의 자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신덕수는 학벌과 인맥이 너무 부족했다.
가뜩이나 호감이 가는 인상도 아니었다.
총무는 조직의 얼굴 마담이나 마찬가지였다.
인상뿐만 아니라 넉살도 좋아야 했다.
여러 후보를 두고 시작된 투표.
“42기 자치회 총무는……. 구희찬 씨로 선정되었습니다. 모든 후보자님들 수고하셨습니다. 41기 임원 선배님들과 모임을 가질 예정이오니 2번 세미나실로 다들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달랑 열 명의 선택을 받은 신덕수는 고개를 떨궜다.
우는 듯 어깨가 들썩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다가가 위로하지 않았다.
냉정한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사법 연수원에서는 그 누구도 진정한 친구가 없었다.
모두 다 경쟁자일 뿐.
하나 둘씩 강당에서 빠져나갔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연수원 강의.
오늘 이 시간부로 고등학교 시절 정신 상태로 돌아가 공부에 매진해야만 했다.
누구를 배려하기에는 닥친 현실이 만만치 않았다.
연수원생들 모두가 강당에서 사라졌다.
곧 밤이 깊어질 시간.
“하아…….”
한 남자만이 강단 위쪽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이분은 도대체 누구냐고!
조용히 살면서 시간 세탁을 위해 찾아들어 온 사법 연수원.
모두가 빠져 나간 강당에서 나는 특이한 존재들과 마주했다.
- 잘 컸구나.
큰 칼을 차고 호랑이 가죽 옷을 걸치고 있는 장군신이 날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덩치가 앉아 있는 대호보다 더 컸다.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떡 벌어진 어깨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축이 됐다.
어흐으응!
집채만 한 호랑이가 울음을 토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날 아는 체하는 저 호랑이 녀석…….
살벌한 모습과 달리 왠지 정감이 갔다.
“누구십니까?”
강당 앞쪽으로 다가갔다.
사법연수원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다.
호랑이를 데리고 장군신이 찾아오기에는 격이 맞지 않았다.
- 난 돌석이라고 한다.
“돌석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내 눈에 보일 정도의 신력이 대단한 신 이름치고는 참 평범했다.
어흐응! 어흐으응!
덩치큰 호랑이가 내게 다가와 다리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마치 하는 짓이 고양이 같은 영물 호랑이.
본래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무지 반가워했다.
- 어머니께서 너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하셨다.
“네? 어머니요? 우리 어머니요?”
돌석 장군신이 나에게 어머니 안부를 전해왔다.
지금 본가에 계실 어머니는 저렇게 대놓고 장군신과 교류할 정도로 신기가 있거나 공덕이 많지 않았다.
- 껄껄껄. 산왕모의 자식이 인간 세상에서 풍류를 즐기더니 기억을 다 잃었구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돌석 장군신.
“!!!”
하지만 산왕모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날 회귀시켜줬던 꿈속 할배도 그 이름을 말했었다.
그 할배도 분명 나한테 지리산 산왕모의 자식이라고…….
- 너 믿고 난 간다. 우리 후손 녀석 잘 부탁한다. 그리고 지리산에 올 때 막걸리 한 말 사오너라.
“네? 후손요? 누구를…….”
- 덕수가 내 증손자니라.
“더, 덕수요? 신덕수??”
- 그래.
“아! 그럼 성이 신씨니까……. 헉! 시, 신돌석!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님???”
씨익 웃는 상남자 돌석 장군.
맞나보다 신돌석.
구한말 일본군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평민 의병장 신돌석 장군.
그가 내 앞에 등장했다.
자신의 후손인 신덕수를 부탁하면서.
“…….”
뭔가 꼬인 게 확 풀리는 듯한 인연이었다.
내가 산왕모 자식이라는 걸 알고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떠는 저 호랑이는…… 그럼.
전생에 내 동생이나 조카쯤 되는 모양이었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신돌석 장군을 찬찬히 다시 봤다.
태백산 호랑이라 불렸던 장군신.
찌릿하고 가슴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장태산!”
그때 강단 출입문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오며 나를 불렀다.
파아앗.
순간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신돌석 장군과 호랑이 동생.
황당한 일 한두 번 겪는 내가 아니었기에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을 생생히 기억 속에 저장했다.
분명 다시 보게 될 것이었다.
“누구십니까?”
다가서는 이들에게 물었다.
초면에 장태산 씨도 아니고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다가오는 이들.
거만하고 오만한 기운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다.
“우리…… 미래에 대해 얘기 좀 할까?”
“미래요?”
“장태산, 너 우리 회에 들어와야겠다.”
회?
참신했다.
다짜고짜 나를 부르더니 회에 들어와야겠다고 말하는 중생들.
싸가지 없는 그들 태도에 심장에서 무언가가 배배 꼬이며 고개를 쳐들었다.
회귀의 전설 2부